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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제주지역

오대산 선재길(24. 7.24) 트레킹

by 산사랑 1 202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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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길 출발 전 상원사에서 인증..

【오대산 선재길 트레킹(2024. 7. 24일)】 

전 구간이 아름드리나무로 덮여있어 삼림욕을 즐기며 걷기에는 가장 좋은 코스!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고 가을이면 계곡을 따라 물드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코스 선재길은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 9km 숲길로 60년대 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다니던 길이다. 선재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옛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과거의 문화를 만날 수 있고, 오대천을 품은 숲 터널을 지나면서 다양한 동·식물 친구들도 볼 수 있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선재길은 1960년대 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불교 신도들이 다니던 길로 월정사에서 동피골을 거쳐 상원사까지 약 9㎞ 이어지며 편도 3시간 정도 걸린다.  월정사∼동피골 구간은 트레킹 내내 계곡이 따라다니며 신갈나무, 단풍나무가 울창하고 다양한 야생화도 여행자를 반긴다. 조릿대숲길과 빽빽한 전나무 숲길이 이어지며 멸종위기 희귀 식물 30여 종을 복원한 자생식물관찰원도 들어서 있다. 대부분 평지여서 걷기 좋지만 상원사에서 길이 끝나 다시 월정사로 돌아 나와야 하는데 왕복 18㎞ 코스를 한꺼번에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힘이 들면 진부역∼월정사∼상원사를 오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국방동우회 등산팀은 여름 무더위 휴식기간(7.25~8.25일 한달기간) 전 오대산 선재길을 찾았다. 07:30분 승용차 2대로 서울 강남구청역을 출발하여 중간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오대산 월정사 주차장에 10시 50분경 도착하여 월정사 경내를 둘러본 후 월정사 입구에서 11:20분 진부역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상원사로 이동하여 상원사를 둘러 본 후 12:10분부터 선재길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문수전 앞에 고양이 형상이 있는 상원사 전경..

여름꽃들이 곳곳에 피어 산객을 반겨주었다..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총 9km로 ‘화엄경’에 등장하는 선재(동자)에서 유래됐다. 상원사에서 세조의 병을 치료해 준 동자(문수보살) 때문인 것 같다. 길은 계곡을 오가며 월정사에서 부터 상원사까지 산림철길∼조선사고길∼거제수나무길∼화전민길∼왕의 길 등 5개 테마로 이어진다. 우리 팀은 상원사에서 출발을 하기 때문에 선재길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왕의 길에서 산림철길의 역순으로 진행을 하였다. 왕의 길은 상원사부터 월정사를 향해 나 있는 선재길 1.8km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상원사 입구 표지석에는 쇠귀 신영복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차도 옆의 데크 길로 나아가다가 오대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넌 후 오대천을 오른쪽에 끼고 진행한다. ..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선재길은 ‘오대산 천년의 숲길’로 불리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로 꼽힌다. 한암과 탄허 선사 같은 고승들이 사색에 잠겨 걸었을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무념무상에 빠지게 될 것 같다. 선재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곡을 따라 진행을 하는데 장마철이고 그동안 비가 많이 내려 세찬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가면서 시원한 기운을 뿜어주기에 요즘 같은 무더위에  걷기는 최고일 것 같다. 장마철이라 곳곳에 버섯들이 올라오고 있었으며, 천천히 숲의 기운을 음미해 가면서 출발한다.

 

선재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곡을 따라 진행을 함에 따라 여름 트레킹 장소로는 최적이라 할 수 있다..

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선재길을 걸어갑니다..

선재길 옆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바람까지 간간히 불어 걷기 최고의 날씨였다..

계곡을 건너갑니다..

장마철이라 곳곳에 버섯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고..

장마 기간이라서 그런지 물이 세차게 흘러갑니다..

'왕의 길' 숲은 짙은 녹음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며, 계곡의 물은 느리게 가다가 급하게 흐르기를 반복하면서 굽이굽이 흘러가고 있었다. 계곡의 물가에는 예쁜 꽃이 피어 있고 길은 초록의 숲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상원사를 출발한지 약 40분 경과하여 '왕의 길'이 끝나고 '  '화전민 길'로 이어졌다. 아직 월정사까지는 7.2km 남았으며, 화전민의 길로 들어선 5분 후 쉼터가 있어 잠시 쉬어갔다. 

 

숲은 녹음이 짙어가고..

계곡의 물은 느리다가도 급하게 흐르기를 반복하면서 구비구비 흘러간다..

물가에 피어 있는 꽃..

길은 초록의 숲으로 계속 이어지고..

섬말나리가 곱게 피어 있고..

여기서 '왕의 길'이 끝나고 '화전민 길'이 2.4km가 이어진다..

아직 월정사까지는 7.2km 남았습니다..

물이 깊은 곳도 있고..

쉼터가 있어 잠시 쉬어 갑니다..

쉼터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하여 잠시 후 오대산 화전민 터에 '너와집' 모형이 있었다. 현재 40여 가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대산은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리적 특성상 뽕나무를 쌓아 올린 귀틀집에 나뭇조각으로 만든 너와 지붕을 얹고 두둥불화티고불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난방시설을 조성한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너와집을 지나면 선재골 출렁다리가 나왔으며, 이제 월정사까지는 6.6km 남았다.  

 

화전민마을의 너와집 모습(화전민이 15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오대산 화전민】 

오대산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가 있고 사고 주변에는 금표를 설치하여 일반 백성들의 접근을 엄금하여 화전민이 거의 없었으나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오대산 일대 화전민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1913년 조선총독부는 오대산에 보관 중이던 조선왕조실록을 일본 동경제국대학에 기증했고, 1922년 조선왕실 의궤를 일본 궁내청에 기증했다. 이후 오대산 일대에서 대대적인 벌목이 진행되고 벌목에 필요한 노동력을 동원함으로써 화전민이 급격하게 늘어 한때 150여 가구 300여 명이 겨울에는 벌목을 하고 여름에는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한다. 월정사 가는 길에 '회사거리'란 터가 있고, 목재를 실어 나르기 위해 설치한 목차 레일의 일부도 남아있다.

 

신선골 출렁다리에서 본 계곡의 모습..

선재골 출렁다리를 지나면 물살이 다시 거칠어졌으며, 잠시 후 다시 다리가 나오고 다리 위에서 본 계곡은 유속이 그리 급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길은 다시 데크길로 연결되어 있고, 월정사 5.6km 지점에서 차도로 잠시 나왔다. 차도 오른쪽으로 올빼미 정원과 자생식물관찰원이 있으며, 이곳에서 동자꽃과 산수국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생식물 관찰원에서 다시 차도를 건너 길은 선재교를 지나 다시 숲길로 이어졌다. 선재교에서 약 10분 숲길을 다라 진행하면 화전민의 길이 끝나고 거제수나무 길로 이어졌다.

 

버섯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고..

물살이 급하게 흘러갑니다..

다리 위에서 본 계곡의 모습..

길은 다시 데크길로 연결되어 있고..

월정사 5.6km 지점에서 차도로 잠시 나옵니다..

차도 오른쪽으로 올빼미 정원과 자생식물관찰원이 있으며, 이곳에서 동자꽃과 산수국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생식물 관찰원에서 다시 차도를 건너 길은 선재교를 지나 다시 숲길로 이어진다..

벌들이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꿀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 화전민의 길이 끝나고 거제수나무 길 0.8km로 이어집니다..

화전민의 길을 지나 잠시 후 물이 급하게 흘러 내렸으며, 계곡 바닥에는 물안개가 피어 올라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데크길을 따라 약 10분 걸으니 쉼터가 나와 잠시 쉬어 갔으며, 그곳에는 거제수 나무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물이 급하게 흘러 내리고 있으며.

데크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거제수나무길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거제수나무

우리 조상들은 '곡우'를 전후하여 '곡우물'을 마시면 잔병을 앓지 않고 건강하다고 믿었던 풍습이 있었는데, 거제수나무가 으뜸이었다고 한다. 하얀 껍질의 나무가 거제수나무이다. 북한에서는 '물자작나무'라 불린다고 한다. 옛날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거제수나무 껍질에 편지를 써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거제수나무길이 끝나면 조선사고길이 이어진다. 조선사고 길은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하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조선의 실록을 품은 명당길로 꼽히는 0.9km의 길이다. 오대산사고본은 교정 실록으로 교정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실록의 편찬 과정과 한자 자형을 연구하는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오대산 사고는 일제 강점기인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된 뒤 관동대지진 당시 화재로 대부분 불타 788책 가운데 75책만 돌아왔다. 조선왕조실록은 2006년, 의궤는 2011년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그동안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 머무르다 2년 오대산으로 110년 만에 되돌아왔다. 

 

거제수나무 길이 끝나면 조선사고길이 이어진다..

85세의 선배님은 오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월정사 3.2km, 오대산 사고 이정표가 서 있는 섶다리가 나왔다. 섶다리는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임시로 만든 다리로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다리 상판 위에 섶을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이다. 섶다리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10~11월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다리를 만들어 겨우내 강을 건너 다니는 다리로 이용한다. 여름이 되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 가므로 '이별다리'라고도 한다. 섭다리를 지나면 조선사고길이 끝나고 삼림철길 2.7km가 시작되었다.

 

섶다리..

조선사고길이 끝나고 삼림철길 2.7km가 시작된다.

조선사고길을 지나 산림철길로 들어섰다. 삼림철길은 일제 강점기 때 오대산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상원사까지 산림철길을 깔아 소나무박달나무참나무 등 27종의 나무를 1927년부터 해방 전까지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에 실어 내간 아픔이 있는 길이. 뒤돌아보니 지나 온 섶다리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은 차갑고 공기는 따뜻해서 물안개가 생기는 것으로 계곡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오면서 본 섶다리에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네요..

길은 계곡을 따라 데크길이 이어지고 물살은 거칠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물안개가 많이 피어 올라 수면을 뒤덮고 있는 황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오대산 보메기'에 닿았다. 오대산 보메기는 계곡에 보를 막고 나무를 쌓았다가 여름철 우기에 보를 터트려 물의 힘으로 목재를 이동시키는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다리를 지나 잠시 계곡을 벗어나니 명상쉼터가 나왔다. 명상쉼터를 지나 약 10분 후 회사거리와 제재소터를 지났으며, 약 18분 후 월정사 출발지에 도착하여 오늘의 트레킹을 마무리하였다. 트레킹을 마치고 가마솥 식당에서 산채정식(1인 22,000원)에 막걸리 한 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데크길이 이어지고..

물길은 급하게 흐르네요..

데크길이 계속 이어지고..

위쪽 물살이 거칠게 흐르고 / 아래쪽 물안개가 피어오르네요..

물안개가 계곡을 덮을 정도로 피어나고..

환상적입니다..

오대산 보메기로 목재들을 가두어 두었다가 우기에 보를 터뜨려 목재를 운반하는 것 ..

보메기에서 터뜨린 목재들이 이런 거친 물을 따라 이동을 했을 것 같네요..

다리를 지나 잠시 계곡을 벗어납니다..

작물재배지..

명상쉼터..

마치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네요..

버섯과 이름 모를 꽃..

이제 선재길이 거의 끝나 갑니다..

회사거리와 제재소터..

회사거리는 일제강점기 때 오대산 울창한 산림을 벌목하여 나무를 제재하는 장소이다. 일제는 상원사까지 철길을 놓아 오대산의 울창한 소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등 27종의 나무를 벌채하여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물줄기가 마치 용이 지나가는 현상 같네요..

전망대와 그 아래 물이 흘러가는 모습..

이제 선재길을 마무리합니다..

선재길을 걸은 후 가마솥 식당에서 산채정식(1인 22,000원)에 막걸리 한 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산채정식은 산채나물들이 30여 가지가 나온다고 되어 있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 리필도 되고 맛은 있었다.

혹서기 건강관리 잘하시고 8월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