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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20.4.15)과 역사공원 탐방

산사랑 1 2020. 4.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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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4월 15일 오후 행주산성으로 향했다. 행주산성은 1593년 임진왜란 당시 3대 승첩지의 하나로 권율 장군이 일본군을 크게 격파한 곳이다. 현재 성안에는 160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와 1963년에 세운 대첩비가 있다. 1970년에 대대적인 정화 작업을 벌려 권율을 모시는 충장사를 건립하였다.

 

1602년에 건립한 행주대첩비와 196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

 

【행주산성】

덕양산 정상에 축조된 행주산성(사적 제56호)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승명을 포함한 2천3백명으로 왜군 3만여 명을 크게 물리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일어났던 이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순찰사로 있던 권율 장군은 이 터에서 3만 왜군을 막아내고 그 여세를 몰아 수원 독산성에 포진하여 서울을 탈환하고자 경기, 충청, 전라 3도의 총 지휘관이 되어 선조 26년(1593) 2월 11일 승장 처영이 이끄는 승군을 포함한 장병 만여 명을 거느리고 행주산성에 진주하였다. 이 싸움에서는 우리나라의 전쟁 역사상 처음으로 '재주머니 던지기'라는 전법이 쓰였다. 아낙네들은 긴치마를 잘라 짧게 덧치마를 만들어 입고는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싸움을 거들었는데, 행주치마라는 이름이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확한 축성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나, 성 안에서 백제시대의 기와 조각과 토기 등 유물이 많이 나와 아마도 백제 때 처음 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행주산성 내에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셔놓은 충장사가 자리한다. 원래는 행주나루터 안마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행주 기공사가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되고 1970년 대대적인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곳에 다시 짓고, 정자와 문을 세워 경역을 조성하였다. 1602년 건립한 행주대첩비가 비각 속에 남아 있으며 1963년에 세운 대첩비도 서 있다. 이 비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 이곳은 자유로가 개통되고 신행주대교가 완공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져 휴일이면 많은 나들이객들이 찾아온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행주산성 출입문..

 

 

행주대첩에서 유명한 일화는 동산동 밥 할머니를 주축으로 조직된 여성 의병부대가 치마에 돌을 날라 무기로 사용하여 크게 이길 수 있었다. 이때부터 여자들의 부엌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행주산성 출입문인 대첩문입니다..

 

권율장군의 동상..

 

대첩문을 지나 처음 찾아간 곳은 활터인 충훈정..

 

활터를 돌아본 후 찾았던 권율 장군 동상..

 

1593.2.12일 임진왜란 당시 전라감사로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격파한 권율 장군, 그 공으로 도원수가 되어 임진왜란을 지휘..

 

본격적인 행주산성 탐방으로 들어갑니다..

 

1970년 문화재 재건 사업으로 건립한 충장사로 현재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문을 폐쇄하였네요..

 

 

대첩 기념관으로 앞에는 멋진 반송이 있었고 기념관 역시 들어갈 수 없네요..

 

 

반송이 아주 멋집니다..

 

나무 가지들을 모두 잘라버렸네요..

 

진강정 가는 길에서 본 방화대교..

 

진강정이란 정자로 이곳에서는 한강을 비롯하여 서울시의 서북부를 조망하기에 좋은 쉼터..

 

반대편에서 본모습..

 

 

 

 

진강정을 둘러본 후 덕양정에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네요..

 

덕양정 위쪽에 있는 행주산성의 가장 대표적인 행주대첩비..

 

196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

 

멋진 소나무도 있고..

 

1602년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비각 속에 있습니다..

 

행주대첩비에서 본모습으로 방화대교, 덕양정, 대첩비각이 한꺼번에 보입니다..

 

마곡철교와 멀리 가양대교가 보이고..

 

열차가 지나가네요..

 

멋진 소나무도 보이고..

 

행주산성의 영상교육관인 충의정도 문이 닫혀있고..

 

 

야트막한 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토성길..

 

행주대첩의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행주 기씨의 우물인 기감천..

 

행주산성을 마무리하고 인근에 있는 행주산성 역사공원으로 이동합니다..

 

행주산성 역사공원으로 사람들도 제법 있고 개나리가 한창이더군요..

 

무명의 가수도 보이고..

 

 

나리와 방화대교..

 

 

래터인 빨래돌머리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예전에 고기잡이하던 배로 노는 1개, 사람은 2~3명이 탄다고 하네요..

 

나리가 만개하고..

 

주대첩 관련 동상도 있고..

 

권율 장군의주서원입니다..

【행주서원】

행주서원은 원래 기공사(紀功祠)라는 명칭으로 1842년(헌종 8)에 왕명에 의해 건립되었고 1843년(헌종 9)에 사액을 받았다. 임진왜란 3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幸州大捷)을 승리로 이끈 충장공(忠莊公) 권율(權慄, 1537∼1599)을 배향한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47개의 서원과 사(祠) 중의 하나로 후에 행주서원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행주서원지(幸州書院址)는 1985년 9월 20일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되었고 1988년에 강당을 건립하였으며, 1997년에 사당을 복원하여 기공사라 편액 하였다. 외삼문의 서원 현판은 조선 후기의 무신이자 외교가로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던 신헌(申櫶)이 썼다.

 

서원 현판은 조선 후기의 무신이자 외교가로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던 신헌(申櫶)이 썼다.

 

행주서원도 문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옆에서 본 행주서원..

 

한강공원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보니 생육신의 한 분인 추강 남효은 선생 시비가 있더군요..

 

 

행주산성 탐방 후기

서울에서 40년을 살면서 행주산성은 처음 가봤는데 산성이라는 이미지와 남한산성, 금정산성 등 그동안 수없이 가 보았던 많은 산성들과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전투를 했던 것들을 생각할 때 최소한 남한산성급의 산성일 것이라 짐작을 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행주산성은 토성으로 임진왜란 당시에는 목책을 세워 전투를 하여 2천여 명의 군사로 왜군 3만 명을 물리쳤다니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미루어 짐작이 된다.

 

1970년 이후 대대적인 정화작업으로 오늘과 같은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을 한 행주산성의 멋진 모습을 보고 인근에 있는 행주산성 역사공원을 둘러보았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역사공원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한강을 거닐 수도 있고 인근의 행주서원도 둘러볼 수 있고 공원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쉬어 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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