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운대 트레킹(25. 3. 21) & 다대포 낙조
감천문화마을 탐방을 마치고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이동을 하여 갈맷길 4-1코스인 몰운대코스를 트레킹 하였다. 몰운대 트레킹 후 인근의 다대포로 이동하여 일몰을 보려고 하였으나 시간도 어중간하고 바람도 많이 불어 잠시 다대포를 구경한 후 부산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몰운대는 해운대, 태종대, 이기대와 함께 부산의 4대(臺) 관광지 중의 하나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고 해안 절경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갈맷길 4-3코스의 일부로 부산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몰운대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바다경관을 보고 걸을 수 있고 이름 자체가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시적인 이름을 가질 정도로 천혜의 명승이라 할 수 있다.
몰운대 입구..

【몰운대(沒雲臺)】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의 가장 남쪽에서 바다와 맞닿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까지는 몰운대라는 섬이 있었으나, 그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지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1592) 때에는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이었던 충장공 정운도 이 앞바다에서500여 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순국하는 등 역사의 한 장면이 연출된 곳이기도 하다. 정운의 순국을 기리기 위한 사당과 비석이 있는 이 곳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승지이다.(출처 : 다음 문화유산)
트레킹 코스 : 몰운대 입구 ~ 화손대 ~ 자갈마당 ~ 모래마당 ~ 전망대 ~ 정운공 순의비 ~ 다대포객사 ~ 몰운대 입구의 원점회귀..

몰운대는 갈맷길 2~3구간 & 남파랑길이 지나갑니다..

이곳으로 가다가 바닷가 옆의 소로길로 진행을 합니다..

몰운대는 사유지와 군사보호지역으로 되어 있으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개방이 되어 있고 중간중간에 체육시설과 쉼터가 있어 산책을 하기 좋은 곳이다. 화손대로 가는 길에 해안이 있어 잠시 내려가 구경을 하였다.
바닷가 옆 소로길을 따라 화손대로 가면서 본모습으로 이곳은 방파제 안이라서 그런지 파도가 잠잠합니다..

이곳이 화손대로 이곳에서 바다로 내려갑니다..
바다 초소에서 본 모습으로 쥐섬(위) & 모자섬(아래 우측)..
이곳은 예전 간첩들이 자주 출몰하던 곳으로 곳곳에 해안 초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보는 경치들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른 초소에서 본 모습..
쥐섬(서도)으로 쥐가 쭈그리고 있는 모형 같다고 쥐섬으로 불립니다..
바닷가 옆으로 난 소로길로 초소로 내려가기 위해 만든 길로 다소 험합니다..
방풍림으로 이곳에서 전망대로 진행을 합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은 군초소 가는 길은 경사도 있고 길도 좁으나, 그 길을 벗어나면 산책길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몰운대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서 이곳 앞바다에서 전사한 녹도만호(鹿島萬戶)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이 이곳 지명을 듣고 운(雲)과 운(運)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자갈마당 입구에 도착하고..
다시 해안가로 내려가보니 몽돌이 있고, 파도가 엄청나더군요..
쥐섬(좌측), 몰운대등표섬, 모자섬(우측)이 보입니다..
이곳은 자갈마당입니다..
자갈마당에 노인 한 분이 무엇을 찾는지 왔다 갔다 하고 있더군요..
파도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해조류가 떠 밀려와 있네요..
조망처 겸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전망대 가는 길목에 있는 음수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전망대 가지 전 우측면에서 본모습으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전망대 가지 전 좌측면에서 본 모습으로 화손대와 지나 온 해변들이 보입니다..
전망대 초소입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킵니다..
몰운대 관리소..
관리소 앞에 있는 다대포 동헌(객사)..
【다대진 동헌(多大鎭 東軒)】
다대포 동헌은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3호 '다대포객사'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3월 18일 '다대포 객사'로 명칭이 변경, 2020년 7월부 '다대진 동헌'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다대진 동헌은 조선시대 동래 지역 수군(水軍) 군영인 다대포진의 첨절제사(첨사)가 정무를 보던 건물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며, 관아 일곽의 하단 구역에 위치했던 동헌 건물로서 수호각(睡虎閣)이라 불렸었다. 시간이 흘러 방치되던 것을 다대포실용학교의 학교 건물로 사용되다가 다시 다대초등학교의 건물로 사용되었었고, 1970년 다대초등학교 운동장 평탄화 공사 때 지금 위치인 몰운대로 이전 복원되었는데 이때 학교 관계자들이 건물을 객사로 잘못 기록하여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호(1972. 6. 26)로 지정될 당시 '다대포객사'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었다. 이후 이 건물이 객사가 아닌 동헌임이 밝혀지면서 2020년 7월 부산시 문화재 위원회 심의에서 '다대진 동헌'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출처 : 위키백과)
정운공 순의비로 이동하였으며, 이곳까지 출입이 허용되고 뒤쪽은 군부대가 있습니다..
【정운공 순의비】
정운(鄭運, 1543~1592)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지방 군직을 지내다가 1591년(선조 24)에 녹도만호로 부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부관으로 부산포 해전(釜山浦海戰)에 참전하였다. 이 싸움에서 조선 측은 왜선 100여 척을 격파하는 등 크게 승리하지만, 정운은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 비석은 정운의 8대손 정혁(鄭爀)이 1798년(정조 22) 다대첨사로 있을 때, 명소인 몰운대(沒雲台)에 세운 것이다. 이조판서 민종현(閔鍾顯)이 글을 짓고, 훈련대장 서유대(徐有大)가 썼다. 비 앞면에는 ‘충신정공운순의비(忠臣鄭公運殉義碑)’라 적혀 있고, 음기에는 그의 순절 사적을 적고 있다. 그가 선봉으로 몰운대 아래에서 왜적을 만났을 때, 몰운의 ‘운(雲)’자가 이름인 ‘운(運)’과 음이 같음을 알고, 이것은 이 싸움에서 죽을 것을 예시한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죽더라도 적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라고 지시하고 분전하다 순절하였다고 적고 있다. 충장공실기』와 『충무공전서』에는 정운이 부산포해전에서 순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974년 부산광역시가 비각을 건립하였다.(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다시 다대포 동헌으로 되돌아왔으며 원점회귀합니다..
출입구로 돌아가는 길가에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네요..
동백꽃도 피어 있고..
몰운대 트레킹을 마치고 다대포 일몰을 보러 갔으나 바람도 강하고 시간도 1시간 30분 정도 기다려야 됨에 따라 다대포 해변만 돌아보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부산시는 2014년 '그 순간 그 장면-부산관광 명소' 9곳을 발표했으며 이중 다대포 바닷가는 두 곳이나 선정됐다. 부산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8㎞ 떨어진 곳에 있는 다대포 해수욕장은 낙동강과 바다를 동시에 품고 있다. 낙동강에서 밀려 내려온 부드러운 모래가 반원형으로 완만하게 쌓여 경사를 이루는 다대포 해변은 '부산 낙조 1번지'다. 하늘에 붉은 색감이 진해질 때면 다대포의 모든 것들이 피사체가 된다. 노을을 배경으로 걷는 남녀와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모습은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예쁘다.
일몰까지 약 1시간 30분이 남아 있고..
무지개 의자에 한 사람만 외로이 앉아 있는 것이 조금은 쓸쓸한 것 같습니다..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전망대에서 본 다대포 해수욕장 전경..
몰운대와 다대포 일정을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아래는 19.19.4일 보았던 석양이 그린 한 폭의 그림 다대포 낙조 사진입니다..
구름을 뚫고 나온 해와 새와 아름다운 연인의 앙상블..
낙조 속의 연인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네요..
추억 만들기가 한창 진행되고..
노을이 일출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현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