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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영남)

통영시내관광('09. 8. 5)

by 산사랑 1 2009.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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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케이블카를 탄 후 해저터널 - 충렬사 - 세병관 - 동피랑 - 강구항 - 남망산공원 등을 둘러 보았음 

 

강구항에서 본 미륵산..

 

미륵산 케이블카에 있는 안내표...

 

케이블카에서 10번 버스타고 10분거리에 있는 해저터널

 

 

해저터널은 1932년 완성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01호이기도 하다. 입구에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용의 문을 지나서 양지에 도달한다'는 의미 정도 되겠다. 용문은 원래 중국 황하 상류에 있는 여울목의 이름이다. 이곳의 물살이 너무 거세 물고기가 여간해서는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한 번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그래서 용문을 오른다는 것은 온갖 힘든 일을 이겨내고 뜻을 이룬다는 말과 같이 어려운 공사를 마치고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터널을 완성했다는 의미로 용문달양이라고 했다. '수중세계를 지나 육지에 다다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해저터널 안에는 수중 13m란 표시까지 있다. 해저터널 500m 가까이 지나면 순식간에 육지에서 미륵도 섬으로 건넌다. 옛날엔 섬에서 육지로 건너기 위해서 썰물 때를 기다려 하루 두 번 지났지만, 해저터널이 생기고 현대식 연육교인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놓인 뒤로는 미륵도가 육지로 변했다.(출처 :월간 산 2014. 7.23)

 

해저터널 내부(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

 

 

해저터널 반대편

 

해저터널에서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충렬사

 

충렬사에 있는 보호수  네그루 중 하나

 

 

 

 

충무공 이순신 영정이 모셔져 있음..

 

 

이순신과 한산대첩, 임진왜란의 대세를 조선으로 바꾼 최대의 인물이고 최대 전환기적 사건이다. 한산대첩은 행주대첩·진주성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며,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인 명량대첩과 노량대첩 중에서도 으뜸으로 평가받는다. 뿐만 아니라 한산대첩은 기원 전 480년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Salamis)해전, 1588년 영국 하워드의 칼레(Calais)해전, 1805년 영국 넬슨의 트라팔가(Trapalgar)해전과 더불어 세계 4대 해전에 꼽힐 정도로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일부에서는 세계 3대 해전뿐이고, 4대 해전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순신과 거북선은 미국 워싱턴의 전쟁기념관, 영국 해사박물관, 중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역사기념관에 전시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번에 걸친 왜군과의 7년 전쟁 중에 총 23번을 싸워 23번을 이겼다. 즉 23전23승이다.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영국의 외교사가인 머독(James Murdoch·1856~1921)은 한산대첩을 가리켜 "이 해전은 한국의 살라미스해전이라 할 수 있으며, 일본 침략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라고 평가했다.(출처 : 월간산 2014. 7.23)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한 달도 안 된 5월 4~10일 첫 출전해서 옥포·합포·적진포의 세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다. 5월 29일~6월 2일 2차 출전에서도 사천·당포·당황포·율포의 네 전투에서 왜적의 선박을 모두 격침시키는 전과를 거둔다. 2차 출전 사천 전투에서 거북선을 처음 출전시켰다. 하지만 수군이 연전연패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의 심복인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구키 요시타가(九鬼嘉降)·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에게 단시일 내에 합동해 조선 수군을 격파하라는 엄명을 내린다. 세 장수는 서울에서 급히 남하해 부산에서 전선을 정비한 후 해전에 대비했다. 육지에서의 승리에 들뜬 왜장들은 조선 수군을 우습게 보고 73척을 앞세워 몰아붙였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들이 도망갈 수 없도록 먼 바다로 유인한 뒤 그 유명한 학익진(鶴翼陣)을 펼치며 적을 포위하고 포와 화살을 퍼부었다. 적은 59척이 침몰하고 9,000여 명이 사살되는 등 14척 400여 명만이 겨우 도주하는 대참패를 당한다. 역시 이순신 장군의 대승리였다. 이 전투가 바로 해전사에 길이 남을 '한산대첩'이다. 한산도 앞바다는 아군에겐 승리의 바다였고, 왜군에게 통한의 바다, 피의 바다이자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이후 왜군은 부산포 등 안전한 포구에 주둔하게 하고 조선 수군과는 가급적 해전을 피하도록 명했다. 이순신은 모두 3차례에 걸친 출전과 10여 회의 해전으로 적을 섬멸시키는 동시에 가덕도 서쪽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영국의 넬슨은 군신(軍神)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은 오직 이순신 장군뿐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한다면 나는 일개 하사관도 못 된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또 "당대의 어떤 과학자가 거북선이라는 우수한 과학 병기를 만들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군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놓고 볼 때 동서고금을 통해 이순신 장군에 비견될 인물이 그 누가 있겠는가? 죄인복을 입으면서까지 죽음으로써 조국에 최후까지 봉사하지 않았던가? 나를 이순신 장군에 비교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엄연한 모독이다"고 덧붙였다.(출처 : 월간산 2014.7.23)

위 충렬사 좌측(대나무 밭으로 둘러쌓여 있음)

 

 

보호수(300년 넘은 느티나무)

 

기념관 내부..

 

 

 

충렬사에서 걸어서 10분거리에 있는 세병관.. 

 

 

 

 세병관은 복원 중에 있었음

 

동피랑(세병관에서 걸어서 약 20분거리에 있음)

 

동피랑은 담벽에 그림을 그린 곳으로 요증 많은 사람이 찾는 장소임

 

 

 

 

강구항에 있는 3대 충무할매 깁밥(2인분 8,000원)

 

충무할매 김밥집 앞에 있는 거북선(MB가 서울시장 시절 통영시에 보내준 것임)

 

 

 

 남망산 조각공원(거북선 있는 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음)

 

 

 남망산 조각공원에서 본 마륵산...

 

 

강구항이 그림같이 보이고...

 

 

석양모드로 찍은 충무공 동상(공원 중심부에 있음)

 

 남망산 공원 정자

 

남망산 정자에서 본 통영만의 모습(건너편에 마리나 리조트도 보이고...)

 

미륵산과 강구항..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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