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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서울, 경기)

청와대 탐방(22. 5.21)

by 산사랑 1 202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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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신규 개방 코스인 칠궁코스 산행 후 청와대 탐방을 하였다..

 

이번 청와대 개방을 통해 대통령의 집무실인 본관과 부속 건물들은 물론 일반인들에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대통령의 생활공간인 관저까지 모두 시민에 공개됐다. 시민에게 공개된 청와대는 곳곳에 한국적인 미가 녹아있으면서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멋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건축과 자연풍경을 전시한 박람회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외국의 유명 궁전이나 공원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워 가볍게 방문해도 충분히 좋지만, 알고 가면 더 재밌고 흥미로운 곳이 청와대다.

 

청와대의 중심이자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공간인 청와대 본관..

 청와대 본관

청와대 본관은 조선총독부 관사를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1991년에 조성했다. 한옥에서 가장 격조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지붕을 올리고 15만여 개의 청기와를 얹었으며, 본관 앞으로는 대정원이라고 이름 붙은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청기와는 청자의 나라였던 고려 시대부터 사용되어 조선 전기까지 궁궐 지붕에 쓰였다. 청기와를 만들기 위해선 전략자산이자 화약의 핵심 원료인 염초(질산칼륨)가 다량으로 필요했다. 자연적인 초석 광산이 없던 한반도에서 염초는 생산이 매우 어려웠으며 군사용으로도 늘 재고가 부족했다. 그만큼 청기와는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됐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의 청기와는 창덕궁에 있는 선정전이 유일하다.

 

청와대 본관의 지붕에는 잡상 11개가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에 잡상이 9개가 있는데 청와대가 근정전보다 격이 더 높은 셈이다. 전체적인 건물 구조는 궁궐의 목조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한국적인 미가 담겨 있으면서도 팔작지붕이 중후한 느낌을 가미한다.(출처 : 서울신문)

 

1978년에 개관한 영빈관..

영빈관(迎賓館)

영빈관(迎賓館)은 청와대 본관 아래쪽 서편에 있다. 1978년에 지은 2층 구조의 현대식 건물이다. 외국의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빈 방문 시 공연과 만찬 등 공식 행사를 진행하던 장소이다. 우리나라를 알리는 각종 민속공연과 만찬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쓰이거나 회의와 연회를 위한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영빈관은 박정희 대통령 때 지은 건물로 경회루를 연상시키는 18개의 돌기둥이 매력적이다. 특히 앞쪽을 받치는 4개 돌기둥은 큰 바위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13m 길이의 석주(石柱)이다. 어느 곳에서도 이음새를 찾을 수 없는 특별한 돌기둥이다.(출처 : 서울신문 등을 토대로 재작성)

 

청와대 관람은 사전 예약(1인 4명까지 가능)을 한 후 테그를 발급받아야 관람이 가능합니다..

 

 

영빈관 광장 앞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반송이 예쁘게 조성된 이 길을 따라 관람을 진행합니다..

청와대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청와대 본관 앞에서 5,22일 열린음악회가 열리기에 방송시설들이 설치되어 있고(이 날 윤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북악을 배경으로 한 청와대 본관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만들어 졌다..

청와대 본관은 관람객들이 인증사진을 하는 최고의 장소가 되었네요..

경무대가 있던 수궁터..

경무대는 광복 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로 이용되다가 4대 대통령인 윤보선 시절에 청와대로 이름이 바뀐다. 경무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서 착안해 청와대(靑瓦臺)로 했다고 한다.

 

수궁터

관저로 넘어가는 길에는 수궁(守宮)터가 있다.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던 곳으로 이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는데, 조선총독부가 전각을 허물고 총독관사를 지었다. 광복 이후에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다가 지금의 청와대 본관을 지으면서 총독관사는 철거했고, 현재는 총독관사 현관 지붕 위에 장식으로 놓여있던 절병통만 옛 자리에 놓아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아울러 수령이 700년이 넘는 주목도 볼거리다.(출처 : 서울신문)

 

원추리가 피어 있고..

추정 수령이 740여 년인 청와대 최고령 나무인 수궁터 주목(우측)

수궁터에 있는 주목(朱木)은 추정 수령이 740여 년으로 청와대 경내 최고령 나무이다. 청와대 경호처가 2019년 펴낸 ‘청와대의 나무와 풀꽃’에서 이 나무는 “고려 충렬왕 때인 1280년에 태어났다”라고 했다.

 

멋진 소나무들..

5월의 장미도 한창입니다..

관저 대문인 인수문..

관저 별관(위 우측). 본관(아래 좌측), 사랑방인 청안당(아래 우측)

대통령의 사적 공간 관저

관저는 본관처럼 팔작지붕에 청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 구조다.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가 ‘ㄱ’ 자 형태로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으로 마당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사랑채인 청안당이 있으며, 관저 바로 앞에는 의무실이 있다. 청안당은 ‘청와대에서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다.(출처 : 서울신문)

 

 ‘청와대에서 편안한 곳’이라는 뜻인 청안당..

 

 

 

관저 대문 앞에 있는 작은 연못에는 노랑꽃창포가 피어 있고 물속 돌 위에는 많은 동전들이 있네요..

관저 연못 위로 가면 나오는 오운정과 미남불..

오운정(五雲亭)

관저 뒤 숲엔 오운정과 ‘미남불’이라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5색 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 곳과 같다'는 의미를 담은 오운정은 1865년(고종 2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래 경복궁 후원에 있던 '오운각(五雲閣)'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현재 현판의 글씨 오운정(五雲亭)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출처 ; 내 손안에 서울)

 

미남불(美男佛)

미남불은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하여 9세기에 조각된 것이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교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 유물이다. 정식 이름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으로, 보물 1977호·서울시 유형문화재 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생김새가 멋스러워 ‘미남불’이라 불린다. 원래 경북 경주에 있었는데, 일제 때 서울 남산의 총독관사에 놓였다가 청와대 자리로 총독관사를 옮기면서 함께 이곳으로 왔다.(출처 : 서울신문)

 

봉황 문양으로 이것을 배경으로 인증을 하고..

운치가 있는 향나무..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침류각..

침류각

춘추문으로 들어가 관저로 향하면 오른편에 전통 한옥이 보인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된 침류각(枕流閣)이다. 침류(枕流)란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으로 본래 경복궁 후원(지금의 청와대 영역)에 있던 북궐(北闕)의 부속 건물로 추정된다. 1989년 청와대 본관을 신축할 때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침류각은 정면 4칸, 측면 2칸, 약 24평 규모로 중앙에 방과 넓은 마루인 대청을 두고, 앞쪽으로 누마루를 설치해 한옥 건물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1900년대에 지었다고 하나 정확한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침류각 옆의 작은 초가집과 어울려 옛 시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출처 ; 내 손안에 서울)

 

200년 이상된 춘양목(홍송)으로 지은 전통 한옥 상춘재(常春齋)..

외국 귀빈을 위한 한옥 상춘재

상춘재는 외국 귀빈들을 맞이하는 의전 행사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사용된 한옥이다. 1983년에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해 지었다. 상춘재 위로는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침류각이 있다.(출처 : 서울신문)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녹지원에 있는 키 12m, 폭 15m가 넘는 수령 170여년된 반송의 아름다운 모습..

청와대의 숲, 녹지원

녹지원은 청와대 최고의 녹지 공간이다. 대통령과 국민이 만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던 공간이다.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들이 곳곳에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출처 : 서울신문)

 

해태상..

춘추관 앞 광장(헬기장)에서 줄타기 공연이 펼쳐지고..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이자 기자들이 상주하던 춘추관..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광장시장을 가지 위해 안국역으로 이동합니다..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으로 마무리합니다..

 

국민의 힘 윤석열 대통령(당시 후보자)의 공약에 따라 시민들에 개방된 청와대를 탐방한 결과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구중궁궐 같았다. 문제인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약으로 추진하였지만 결국 나오지 못했고 급기야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방부 이전 예비비도 제 때 통과시키지 않고 발목을 잡은 것은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준 것은 너무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민주당 송영길 서울 시장 후보는 그들이 정권을 잡으면 다시 청와대로 들어간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