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제가 열리는 군자봉 정상..
건강셀프등산회 제914차 산행은 시흥의 군자봉, 옥구산이 추진되었다. 군자봉 가는 길에 조선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 당시 공을 세운 이숙번 묘와 시흥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건물이자 광해군의 장인이었던 유사신의 제실인 영모제를 들러보았다. 이숙번의 묘를 둘러본 후 군자봉 산행을 하였으며, 군자봉은 영각사에서 주차를 한 후 산행을 하였는데 정상에는 정자가 있었고 성황제를 거행한다고 한다. 군자봉 성화제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과 부인 안 씨 그리고 장모 홍 씨를 성황신으로 모신다고 전해지는데 단언할 수는 없다. 군자봉 산행을 마치고 소담스럽게 눈이 덮인 시흥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건물이자 광해군의 장인이었던 유사신의 제실인 영모제의 아름다운 모습을 둘러본 후 옥구산 산행을 하기 위해 옥구공원 제3주차장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에 차를 주차한 후 덕섬으로 이동하여 잠시 둘러보고 해물전과 막걸리, 그리고 바지락 칼국수로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한 후 옥구산 산행을 하였다. 산행은 옥구공원 제3주차장 ~ 덕섬 ~ 한울공원 ~ 옥구가람공원 ~ 옥구산 ~ 옥구조각공원 ~ 옥구공원 제3주차장의 원점회귀로 진행하였다.
시흥시 신현동에 있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측근이었던 이숙번 묘..
이숙번
이숙번은 태종 이방원의 측근으로 이방원을 왕위에 올린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1차 왕자의 난에 참여하고2차 왕자의 난을 진압했다는 점, 또한 정치적 변란이 많았던 여말선초 사극에서 갑주를 입고 무인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숙번을 무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숙번은 1393년(태조 2) 조선 최초의 문과 급제자로 엄연히 문관이다.
이숙번은 1차 왕자의난 후 이방원의 측근이 되었으며, 2차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다. 그 후 동북면절도사, 병조판서 등 많은 직책을 맡았으며, 1415년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원래 성품이 망령된 데다 자신의 공과 태종의 총애를 믿고 거만방자해 국왕에게 불충하고 동료들에게 무례하게 굴어 여러 차례 대간의 탄핵을 받아, 결국은 관작을 삭탈당하고 1417년 경상도 함양에 유배되었다.
태종이 자신의 최측근인 이숙번을 유배 보낸 것은 최측근까지도 내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시 말썽이 많았지만 세자와 엮이지 않았고 나이도 많았던 하륜과는 달리, 이숙번은 40대의 창창한 나이였고 태종이 죽은 이후 세자를 가지고 놀 소지가 있었기에 왕권에 위협이 되는 요소였다. 태종은 죽기 전 세종에게 "이숙번은 내가 죽더라도 절대로 유배를 풀어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신신당부하고 승하했다고 하는데 세종 역시 이 말을 따라 이숙번의 유배를 풀어주지 않았다.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짓게 되자 선왕 때의 일을 상세히 알고 있었기에 서울에 불려 와서 편찬을 도왔으나, 편찬이 끝난 뒤 다시 유배지에 보내져 그곳에서 67세에 죽었다.
위에서 본 모습..
이숙번의 묘를 본 후 군자봉 산행을 합니다. 산행은 영각사 옆길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원점회귀하였다..
영각사 절..
길 한쪽으로 눈이 쌓여 있고..
군자봉 정상에 있는 고목..
군자정과 군자봉 정상..
군자정은 2014년에 설치하였네요..
군자봉 정상인증..
군자봉에는 성황제를 실시하네요..
군자봉(198.4m)은 시흥시 군자동과 안산시 선부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현재 경기도 남부 서해안 지역에서 무속인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산으로 주위에는 여러 개의 굿당들이 들어서 있다. 군자봉에는 군사산성(君子山城)터와 함께 성황단이 남아 있다. 성황단은 산성이나 고을 관아의 주위에 나타나는데, 고을이나 성안[城內]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 수령이 백성들과 더불어 위무(慰撫)했던 곳이다. 군자봉에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과 부인 안 씨 그리고 장모 홍 씨를 성황신으로 모신다고 전하는데, 그 역사적 진실은 단언할 수 없으며,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군자봉은 이 지역사회에서 모셔지는 성황당이 있던 곳으로 이곳에서 행해지는 굿은 강릉단오제와 같은 마을굿이다. 군자봉에서 하는 굿은 경기도 산이(세습무 화랭이)들이 하는 도당굿이며, 굿을 하기 전에 먼저 유교식 제례를 지낸다. 오늘날은 구준물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정도로 축소되었으나, 그 유래는 오래되었다. 군자봉성황제는 2002년 시흥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방송에 소개된 군자봉성황제의 일부..
하산길에서 본 나무에 붙어 있는 버섯으로 나무 전체를 덮고 있더군요..
산행 들머리에 있는 영각사를 잠시 둘러봅니다..
군자봉 산행 후 들렀던 시흥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건물이자 광해군의 장인이었던 유자신의 재실인 영모재를 둘러보았다..
유자신(柳自新)
유자신은 조선중기의 문인으로 광해군의 장인이다.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 태릉참봉을 거쳐 돈녕부직장(敦寧府直長)·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평강현감·호조좌랑·김포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1587년 셋째 딸이 군부인으로 간택되었으니, 뒷날 광해군의 비가 되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옥사가 일어나자 특명으로 안악현감에 임명되어 역도들을 잡아 처리하고, 광주목사(廣州牧使)에 제수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가(大駕)를 호종하고, 평양에서 묘사주(廟社主)를 모시고 광해군을 따라 강원도 방면으로 나갔다가 그 해 겨울 성천으로 나왔는데 특명으로 동지돈녕부사에 제수되었다.
그 뒤 성천부사·개성유수에 이어 한성부우윤으로 있을 때인 1598년 명군을 구타한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그 뒤 한성판윤·도총부도총관 등을 지냈으며,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보국숭록대부 영돈녕부사 문양부원군(輔國崇祿大夫領敦寧府事文陽府院君)에 진봉되었다. 그러나 평소와 다름없이 겸공(謙恭)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에 근신하고 권문세가로 행세하는 일이 없었다. 1610년(광해군 2) 기로소에 들어갔다. 인조반정 때 관작과 봉호가 추탈되었으며, 아들 유희분(柳希奮)·유희발(柳希發)·유희량(柳希亮) 등은 처형, 유배되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방송에 소개 된 영모재와 류자신 묘역..
영모재는 일반 주택과 같이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재실이면서도 사당을 갖추고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흥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건물인 안채..
문화해설사가 상주를 하며 제설작업을 하네요..
유자신 묘역 가는 길의 반송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광해군의 장인이었던 유자신의 묘..
묘역은 그리 크지 않으나, 계단석 위에 호석을 두른 봉분을 설치해서 주인공이 남다름을 표시하고 있다. 봉분 앞에 세워진 묘비는 신도비처럼 여의주를 물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느 묘역에서도 보기 어려운 양식이다. 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자신의 묘에서 내려다본 영모제에 소담스럽게 눈이 쌓여 있네요..
영모재와 주변 마을이 눈으로 덮여 있는 모습..
눈이 내리는 영모제를 뒤로 하고 옥구산 산행을 하기 위하여 옥구공원 3 주차장으로 이동합니다
다음은 시흥 덕섬과 옥구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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