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산 (2010. 10. 10일 일요일)】
복건성(福建省·푸젠성) 남평시(南平市·난핑시)에 소재한 중국 100대명승의 열번째인 무이산(武夷山, Wuyishan)은 ‘바위산’으로 불릴 만큼 수백m 높이의 산 하나가 바위 한 개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바위산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구곡계(九曲溪)의 강물은 수십km나 이어지며, 수심은 무릎 정도로 얕고 깨끗하며 물살도 빠르지 않아 뗏목선 유람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무이산은 중국에서 태산, 황산, 아미산에 이어 자연과 문화가 함께 번성한 네 번째 산이다. 태산에서 공자에 의해 유가사상이 나왔다고 한다면 무이산에서는 주희에 의해 예학사상이 나왔다고 할 수 있으며, 예학은 우리나라 유학에도 큰 영향을 줬으며 퇴계 이황의 무이구곡가, 율곡의 고산구곡가는 주희의 영향력과 무이산의 흠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희는 14살에 무이산에 들어와 71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이산에서 평생을 두고 학문을 닦았으며, 당시 주자이학(朱子理學)을 배우던 제자가 2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무이산은 "기이함과 수려함으로"유명한 산이며, 야생 동식물과 희귀 곤충류는 물론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자원들이 많아 1999년부터 세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는 곳이다. 복건성의 서북부, 구곡계의 제6곡 북쪽에 위치한 무이산. 이곳은 2개의 병풍절벽과 3개의 암봉, 9개의 계곡(구곡계), 36개의 봉우리, 8개의 고개, 72개의 동굴, 11개의 골짜기, 13개의 샘, 99개의 기암괴석 등이 있다고 하는데 천유봉은 해발 410m로 무이산 봉우리 중에 높은 봉은 아니지만 하나의 거대한 암석이 봉우리를 이루는 호쾌한 크기와 사방의 아름다운 조망, 그리고 천유봉 앞을 휘돌아 나가는 6곡의 비취빛 강물과 어우러져 "천유봉에 오르지 않으면 무이산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이산의 백미라 불리 운다고 한다.
정상은 돌로 깎은 듯 평탄하고 오랜 세월동안 비물이 암석위를 흘러 암석에 물이 흐른 흔적이 보여 암석 위쪽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해볕을 쪼일려고 암석위에 널어놓은 원단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 일명 쇄포암이라고도 하고, 그리고 이 암석의 한쪽에는 사람의 손바닥을 연상케 하는 깊은 자국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이 천유봉을 일명 선장봉(仙掌峰, Xian zhang feng) 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맨발바람의 한 선인이 능라주단을 어깨에 메고 이곳을 경유하다가 원흔적과 손바닥자국을 남겨서 쇄포암과 선장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선인은 무이산을 경유하다 무이산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어깨에 메었던 비단을 바위위에 내려놓고 각처로 돌아다니며 구경했으며, 산과 물을 다 보고나서야 자신이 메고왔던 비단이 생각나 돌아와 보니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비단은 이미 물에 젖어 있어 선인은 하는 수 없이 비단을 큰 암석위에 널어서 햇볕에 말리기 시작했는데 햇빛이 너무 갈해서 그만 천이 바위에 들어붙게 되어 급히 천을 거두다가 바위위에 천자국은 물론 손바닥 자국까지 남게 되었다고 한다.
무이산 입구에 도착하면 천유봉 입구까지 데려다주는 미니열차 모양의 전동차가 일렬로 대기하고 있고 무료로 탈 수 있으며, 좌우 문이 지퍼형 커튼형식이어서 간간히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도 만끽할 수 있다. 한국의 산처럼 가기만 하면 무료로 등산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천유봉은 뛰어난 절경의 대가인지 천유봉을 비롯해 무이산의 여섯 곳을 포함하여 중국 돈으로 약 140위안, 한국 돈으로는 약 2만7000원 정도인데 돈을 내고 올라가야 한다.
천유봉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2시간 정도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며 880여개의 계단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정상으로 갈수록 폭이 점점 좁아진다. 올려다보는 모습 보다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인 천유봉은 정상에 올라서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단순히 산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산 아래 구불구불한 강줄기는 물론 노젓는 뗏목선까지 한 폭의 산수화다.
천유봉의 특이한 재미는 가마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마는 당시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개석(1887~1975)이 방문했을 때 가마로 올라가고 내려가기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수십여 년의 전통을 가진 이동수단인 셈이다. 천유봉 정상에 장개석 부인인 송미령 동상을 세워놓고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에도 천유봉의 인기는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마로 한 번 올라가거나 내려가는데 드는 비용은 280위안(약 5만원) 정도로 다소 비싸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무이산은 명차(名茶)의 원산지로도 통한다. 무이산 계곡 곳곳에는 암반 위에서 자라는 암차(巖茶)밭이 있다. 그 중 대홍포가 유명한데 반 발효시킨 우롱차의 일종으로 무이산의 최고 특산품이다. 하문시 상가 어디서나 구입이 가능하다. 무이산의 정산소종(正山小種)은 홍차의 기원으로 발전했다.
【무이암차】
무이산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무이암차는 무이산의 천혜의 환경 속에서 자라고 가공된다. 거대한 암석들이 햇빛을 가려주어 일조량이 적고 습기도 많아 차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암석를 타고 흐르던 맑은 물에 암석의 향이 깃들고 이 암향은 찻잎에 오롯이 남아 특별한 차 무이암차가 탄생하는 것이다.
또 무이암차는 반발효차인 우룽차의 원조로도 유명하다. 우롱은 오룡(烏龍)의 중국 발음으로 우롱차의 어원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하나는 옛날에 차밭에 검은 뱀이 많아 사람들이 꺼렸는데 노인이 검은 뱀은 작은 용으로 차밭을 지키는 신물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킨 데서 이 지역의 차를 흑사차(黑蛇茶)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후에 검은 색을 오(烏)로 바꾸고 뱀을 용으로 바꾸어 오룡차(烏龍茶)라 불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룡(烏龍)이란 사람이 차를 따놓고는 닦지 않고 피곤해 잠이 들었는데 그사이 찻잎이 발효돼 맛이 좋게 변해서 그 뒤로 반 발효차의 이름이 오룡차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무이암차의 맛과 효능은 황제의 하사품, 대홍포와 결합해 대홍포라는 이름을 낳았는데 그 전설이라는 것이 꽤 그럴듯하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무이에서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무이산 사찰의 스님이 암벽에 자생한 찻잎을 우려서 선비에게 마시게 했더니 병이 나았다고 하며, 이후 황비도 선비와 같은 병이 있어서 이 선비가 무이암차를 구해 황비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황제가 이를 가상히 여겨 황금과 비단을 이 절에 내렸는데 스님은 모든 공이 차나무에 있다고 차나무에 대홍포를 걸쳐주었다고 하는 데서 ‘대홍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가장 흔한 이야기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에 암벽의 차나무에서 차를 따기 위해 원숭이를 훈련시켜 사용했고 눈에 잘 띄게 하려고 붉은 옷을 입힌 데서 대홍포가 유래 되었다는 것도 있다.
현재 남은 대홍포의 원래 나무는 절벽 한 가운데 6그루가 남아 일체의 채엽을 금지하고 중국을 방문하는 국빈에게만 선물하는 극히 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1970년대 미국 존슨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미 대통령 일행을 환대하고 전달한 선물이 무이암차 200g이었으며 이를 받은 존슨대통령이 선물이 너무 적어보여서 불만이 있었던지 보좌관에게 불평을 했다고 한다. 이말을 들은 당시 외교부장 주은래는 “천하의 절반을 주었는데 만족하지 못하는 미국은 천하를 다 갖으려 하는가!”라고 말했다 하며, 실제로 6그루 모수의 수확은 당시 400g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현재도 많은 차들이 대홍포로 팔리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대홍포는 서민들이 마실 수 있는 차가 아니다. 대체적으로 6그루의 모수에서 유성·무성 생식한 차나무에서 채취한 차를 대홍포로 부르는 것이며 그것도 무이산 안에서도 해발 600m 이상의 정암(正岩)에서 기른 것이 그나마 좋은 것이며 고도가 낮고 조건이 좀 떨어지는 측암(側岩) 지대에서 기른 것이 다음이고 해발 100~300m의 하천변에 있는 평지의 주암(洲岩)에서 기른 것은 가격이 싸서 일반인들이 흔히 마시는 차이다. 이런 것들은 그래도 무이산에서 기른 것이지만 상당수는 다른 곳에서 길러 이름만 ‘대홍포’, ‘무이암차’ 등으로 부르는 게 많은 것 같다.
무이산 뗏목유람의 백미인 2곡 옥녀봉..
▶ 08: 20 무이산트레킹시작(약 7시간 소요/ 식사,휴식포함)
금일 무이산 트레킹은 건강셀프등산회의 제195차 산행으로 트레킹전문여행사인 “산이 좋은 사람들”을 통한 중국 황산, 삼청산, 무의산 산행의 4박5일중 둘째날 처음일정으로 계획된 것으로, 전날 인천공항을 출발 2기간의 비행 끝에 항주공항에 도착하여, 현지가이드(조송운)와 미팅 후 35인 버스를 타고 3시간이 소요된 후 삼청산에 있는 옥산호태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4시간여 버스로 달린 후 무이산 화남세신호텔에 도착하여 여정을 풀었다.
이날 중국에서의 이동을 살펴보면 절강성(항주공항)에 도착하여 강서성(삼청산)에서 저녁을 먹고 복건성(무이산)에서 숙박을 하였으니 3개성을 돌았다(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3개국을돌아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둘째날 아침 6시에 기상을 하고 식사를 한 후 뗏목계류장까지 약 20분간 버스로 이동하여 티켓팅 후 뗏목계류장에 08:10분경 도착하여 잠시 기다린 후 08:20분부터 뗏목유람을 실시하였다. 이번 중국 황산트레킹에는 소요경비는 1인당 97만원, 총 10명이 참석하였으며, 이날 아침은 약간 흐리고 다소 습기가 많았다.
【항주】
항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절강성의 성도이며, 7대 고도의 하나로서 중국이 자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수려하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항주에 들렸다가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항주는 아름다운 도시다. 아열대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이 분명하고 6개의 구와 2개의 현으로 나뉘며, 총면적은 16㎢이고, 인구는 600만 명을 초과한다고 한다.
절강성의 성도(省都)인 항주는 소주와 함께 중국 제일의 관광도시로서 서호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할 만큼 그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따뜻한 기후와 많은 강수량으로 절강성은 항주의 용정차를 비롯한 녹차의 재배지로도 유명하며, 그 생산량도 전국에서 제일 많다고 한다. 이 밖에도 뽕의 재배도 성하여 비단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도시이며, 산이 많고 중앙에 전당강이 흐르고 있어 마치 서울의 한복판을 흐르고 있는 한강을 보는 듯하다.
• 뗏목유람 : 9곡(08:22) - 1곡(10:03) (9곡에서 1곡까지 1시간 41분소요)
지금부터 뗏목유람을 시작하기로 하겠다. 송나라 때의 주희는 1곡에서 시작하여 9곡까지 경치를 살펴본 후 무이구곡가를 읊었는데 지금은 9곡부터 시작하여 1곡에서 뗏목유람을 마친다. 무이 구곡계의 대나무 뗏목 유람은 무이산 관광의 백미라 할 수 있으며, 천유봉에서 보는 무이(武夷)의 아름다움의 반은 구곡의 비취빛에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이 구곡계의 아름다움은 꼽을 만했다. 구곡계라는 이름은 강이 산을 둘러싸고 아홉 굽이를 이루며 흐른다는 모습에서 유래했으며, 총 길이 62.8km, 유역면적 526㎢로 평균수심이 일반 성인의 하반신 정도로 제2의 아마존 강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울창한 숲과 부드러운 물살은 뗏목 유람을 하기엔 최고로 뗏목선이 실제 유람하는 구간은 약 9.5km 정도다.
뗏목계류장에 도착하니 강가에 뗏목들이 줄지어 있었으며, 뗏목의 무게를 고려하여 베낭등 무거운 짐은 소지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도 중량을 고려하여 적절히 배치하는것 같았다. 뗏목선은 길이 7~8m짜리 굵은 대나무 16개를 엮에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대나무 의자 2열로 6개를
놓아 구명조끼를 입은 6명이 타고 뗏목선 앞뒤로 뱃사공이 각각 1명씩 노를 젓는 형태다. 현재 무이구곡의 뗏목은 300척, 사공은 600명, 이들 중 여자 사공은 80명이라고 하는데 모두 운항면허를 갖고 있고, 뗏목의 수명은 약 6개월이라 한다.
뗏목계류장에 도착하고(10.10일 08:22분)
주희가 읊은 9곡의 내용으로 무의산 구곡 텟목유람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구곡장궁안활연(九曲將窮眼豁然) 상마우로애평천(桑麻雨露靄平川)
‘어랑갱공비원로(漁郞更貢批源路) 제시인간별유천(除是人間別有川)
장차 구곡의 시야가 열리니 평천이 흐르고 뽕나무와 삼이 이슬비에 젖어 있으니’
어부는 다시 도원을 찾지 마라. 이곳 외의 별천지를 본적이 없었노라.’
물속에 투영된 모습이 아름답네요..
숲으로 우거진 계곡과 기암절벽이 운무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네요(08:31분)
두꺼비 바위도 보이고요..
뗏목을 타면서 이런 몽환적인 분위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둥근 바위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네요..
강의 수심이 깊은 곳은 2-3m 정도 되므로 뗏목은 될 수 있는 한 강가로 다니고 있습니다..
고루암 앞으로 펼쳐져 있는 8곡을 따라 뗏목이 흘러가고 있으며,
8곡 반대편으로 쌍유봉(젖가슴 모양의 봉우리)이 볼만하다고 하는데 운무로 볼 수 없는것이 안타깝네요..
절경입니다..
강 폭은 여유가 있다가도 이와같이 좁은 지역도 있네요..
여유롭습니다..
구비구비 돌아갑니다..
드디어 6곡입니다..
뗏목은 6곡을 지나가며, 6곡에 있는 천유봉(선장암 또는 쐐포암이라고도 함)을 오후에 올라갑니다
주희는 육곡에 이르러 북쪽에 우뚝 솟은 천유봉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자연의 극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육곡창병요벽만(六曲蒼屛繞碧灣) 모자종일암자궐(茅茨終日掩柴關)
육곡의 푸른 병풍은 물굽이 휘감아 돌고 이끼는 종일토록 사립문 덮고 있네.’
‘객래의도암화락(客來倚櫂巖花落) 원조불경춘의한(猿鳥不驚春意閑)
나그네 노에 몸을 기대니 바위엔 꽃잎 휘날리고 봄빛에 원숭이와 새소리에 봄날이 저무네...
병풍 같은 기암은 남아 있으되 선장봉 아래의 집도 없고,
새며 원숭이의 소리로 저무는 봄날을 맞이할 수도 없지만 그 유장한 가락은 계곡 내에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는 듯했다.
뗏목은 5곡으로 들어 섭니다..
5곡은 무이구곡의 중심으로 계곡북쪽으로는 은병봉이 우뚝 솟아있고
그아래 주희가 세운 무이정사가 있습니다.
주희는 5곡에서 산은 높고 구름이 깊어 연우가 항상 평립의 입구에 가득한데,
나그네(주희)는 수풀을 거닐때 들려오는 뱃사공의 노래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 진다고 노래했습니다.
다리를 따라 5곡으로 흘러가는 뗏목들..이 다리위에서 보는 경치도 좋습니다..
멋진 기암이 나오는 군요..
뗏목은 여행객을 싣고 무심하게 흘러갑니다..
여행객은 경치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연신 카메라 세트를 눌리네요..
4곡으로 들어갑니요..멋집니다..
4곡으로 돌아들면 엄청난 바위산이 앞을 가로 막는데 그것이 대장봉(大藏峯)이라 하며,
도가(道家)가 대장경을 숨겨둔 곳이라고 합니다.
대장봉 아래의 와룡담은 구곡중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고 하네요..
보는 각도에 따라 암벽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연출되네요..
강가에는 대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대나무는 해발 900m이하에서 주로 자라며, 번식력이 아주 강하다고 합니다.
3곡 소장봉인것 같네요..
3곡 소장봉(小藏峯)에 이르면 절벽 틈에 설치된 특이한 것들이 드러나는데
배 모양의 목제 관이 가학선관(架壑船棺)이고 무지개 다리판 모양으로 선관을 고정시키는 목판이 홍판교(虹板橋)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가학선관은 골짜기에 설치한 배라는 뜻으로 배 모양의 관(棺)을 말하고,
신선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남긴 배(舟)로서 배 안에는 유골이 있었다고 하는데,
비바람에도 썩지 않고 천년을 그대로 있었다고 합니다.
3곡을 지나며(멀리 2곡에 옥녀봉이 보이네요..)
3곡을 지나 2곡으로 접어드네요..
2곡에는 무이계곡의 백미인 옥녀봉이 있으며 주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二曲亭亭玉女峯(이곡정정옥녀봉) 두 굽이 돌아 우뚝 솟은 옥녀봉이여
揷花臨水爲誰容(삽화임수위수용)꽃을 들고 물가에서 누구를 기다리시나
道人不復荒坮夢(도인부부황대몽) 도인은 황대몽 다시 꾸지 않으리興入前山翠幾重(흥입전산취기중) 흥에 겨워 앞산에 들어가니 프르름이 겹겹이네
배는 소장봉을 뒤로하고 무이산에서 가장 빼어나다고 하는 옥녀봉으로 흘러갑니다.
배흘림기둥처럼 가운데가 미끈하게 불룩해지며 하늘로 솟은 옥녀봉 정상에는 푸른 나무들이 있어
옥을 조각한 것 같은 매력적인 모습을 지녔다고 합니다. 옥
황상제의 딸이었던 옥녀가 몰래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가 무이구곡의 산수에 매료되어 돌아가지 못하다가
우연히 대왕(大王)과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둘 다 바위로 변해(옥녀봉과 대왕봉) 서로를 그리워만 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무이계곡의 백미인 옥녀봉이며, 옥녀봉 뒤가 옥녀와 사랑을 나눈 대왕이 바위가 된 대왕암
진정 무이구곡의 백미라 할만 합니다..
지나온 3곡을 돌이켜 보니 다른 모습이네요..
옥녀봉의 꼭대기에도 나무들이 자라고 있네요..
1곡으로 들어갑니다..
일곡에 있는 대왕암(300여m)으로 무이산에서 가장 웅장한 바위산으로 옥녀봉 맞은편에 있으며,
구름을 뚫고 하늘을 받치고 우뚝 선 모습이
영웅의 형상을 띄고 있어 2곡에 있는 옥녀봉과 사랑에 빠집니다.
지나온 계곡을 돌아보니 멋진 경치가 마음을 앗아가네요..
드디어 9.5km 뗏목유람의 종착지가 보이네요(10.10일 10:03분)
뗏목유람시간은 사공의 노젓는 솜씨에 따라 약 1시간 30분에서 1시간 50분이 소요됩니다..
• 수렴동경구 구경(10:30- 11:35 1시간 5분소요)
무이산 뗏목유람을 마친 후 버스로 잠시 이동하여 10:30분 수렴동입구에 도착하여 독수리 부리를 지나 10:55분경 수렴동에 도착하였으며, 수렴동에는 뱀이 올라가는 형상이 있었고, 삼현사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여기서 약 15분 정도 구경을 한 후 11:35분에 다시 수렴동경구 입구에 도착하여 수렴동 구경을 마쳤다.
독수리 부리..
수렴동
(수렴동) 수렴동(水簾洞)은 높이가 100여m에 달하고 절벽 정상부가 앞으로 돌출되어 광대한 바위동굴이 형성되었으며, 봉우리 정상에서 두 물줄기가 품어 내리치듯 떨어져 반은 떨어지고 반은 비산(飛散)되는 경관이 흡사 발(簾)을 친 것과 같아서 수렴동(水簾洞)이라고 부른다. 두 물줄기는 연중 마르지 않고 떨어져 아래에 짙은 비취빛의 목용지(沐龍池)를 만들어 놓았으며, 목용지(沐龍池)의 주위를 남자는 좌측으로 여자는 우측으로 돌면 장수를 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한다.
삼현사 모신 사당
(삼현사)
수렴동 정중앙에 남송 소흥 17년(서기 1147년)에 처음 세워진 삼현사가 위치 하고 있으며, 원명은 병산선생사(屛山先生祠)로 처음에는 유자취를 모신 사당이었으나, 1201-1204년 사이에 주희와 류보를 함께 모셔 삼현사(三賢祠)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 천유동 산행(13:00- 15:20 2시간 20분소요)
점식식사를 한후 다시 오전에 갔었던 무이산입구에 13:00에 도착하였으며, 이곳에서 사슴형상의 나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미니열차 모양의 전동차를 타고 천유봉 매표소 입구까지 이동하였다. 이동 중 5곡이 지나가는 다리에 13:35분경 도착하였는데 이곳을 지나는 뗏목들의 행렬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지나가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사슴형상의 나무..
6곡을 향하여 뗏목이 내려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13:37분)
13:45분경 천유봉매표소에서 다시 입장료를 끊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으며, 매표소 지나고 바로 후에 호랑이가 살았던 커다란 굴이 나왔고 15분 정도 지난 후 6곡을 지나는 뗏목들의 행렬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처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으며 감히 천유봉 산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으며, 이석을 봄으로써 오늘 무이산 트레킹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ㄷ.
사진으로만 보던 천유봉 제일의 경관이 나타나네요(14:00)
뗏목들이 암릉을 따라 휘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비가 오고 운무에 젖어 경관은 희미해도 오히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더욱 신비롭네요..
시간가는 줄 모르게 구경한 후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데 계단의 경사가 장난이 이니었으며, 정상100m전에 또 다시 전망대가 나오는데 운무가 더욱 짙어 조망은 별로 였다. 천유봉 정상에는 천유봉매표소에서 35분이 소요된 2시 20분이 도착하였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하산을 실시하였는데 노인 두분이 가마를 타고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가마는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개석(1887~1975)이 방문했을 때 가마로 올라가고 내려가기 위해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천유봉 정상에 장개석 부인인 송미령 동상을 세워놓고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민당 시절에도 천유봉의 인기는 대단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마로 한 번 올라가거나 내려가는데 드는 비용은 280위안(약 5만원) 정도로 다소 비싸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부근 기념품 판매하는 곳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14:35분부터 하산을 시작하였으며, 하산시 더욱 더 운무가 많이 끼어 제대로 된 경치를 볼 수 없었다. 천유봉의 옆면을 보니 오랜 세월동안 빗물이 암석위를 흘러내려 암석이 패여 있어 쇄포암(암석 위쪽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햇볕을 쪼일려고 암석위에 널어놓은 원단을 방불케 하여 일명쇄포암이라 한다)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도 오고 운무도 자욱한 상테에서 신선이 되어 거닐다보니 어느덧 무이정사(15:08분)입구를 지났으며, 15:20분에 다시 천유봉입구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암석에가는 줄이 있어 쇄포암이라고도 함
무이정사입구
▶트레킹 후기
이번 무이산 트레킹은 건셀의 해외(중국)원정산행의 첫 번째 지역으로 무이산 자체는 산의 높이가 낮지만 무이구곡의 절경과 함께 천유봉에서의 뗏목행렬은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무이구곡의 절경에 대하여 송나라때 주자학을 창시한 주희의 ‘무의구곡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무의산에 한번도 가지 않았던 퇴계와 율곡 등 조선의 유학자들이 구곡가(이황의 무이구곡가, 율곡의 고산구곡가)를 읊은 것은 주희의 영향력과 무이산에 대한 흠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날씨가 쾌청하였더라면 더욱더 그림같은 경관을 볼 수 있었겠지만 운무에 싸여 있는 기암 괴봉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따라 진행되는 뗏목의 행렬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라 할 수 있어 오히려 더 운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트레킹을 위하여 멋진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한 일출대장의 노고에 우선 감사를 드리며, 모처럼 참여하여 즐거운 추억을 공유한 정남진님과 일출님의 친구이신 남해다님도 만나서 반가웠으며, 매번 산행에 동행하여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심통회장님 이하 건셀의 울님들의 수고에도 감사드리며, 무이산은 처음이지만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현지 가이드 조송운님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며, 내일 삼청산의 산행도 기대해 본다.
(금번 중국 트레킹행에 동행하신 10명은 심통회장, 일출대장, 산누리대장, 솟대총무, 천송, 종재기, 준민, 정남진, 남해다, 그리고 나)
천유봉 등반 후 삼청산으로 이동하여 저녁식사중(20:00)
종재기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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