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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보문사(22. 5. 5일) / 고인돌 & 백년된 교회

by 산사랑 1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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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적봉 평화전망대와 천도공원을 들러본 후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으로 유명한 석모도 보문사로 이동하였다.

 

보문사 극락보전에 석탄일을 기해 연등이 걸려 있고..

보문사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서, 우리나라 3대 관음영지(觀音靈地) 중의 한 곳이다. 이 절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전한다. 635년(선덕여왕 4) 4월,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닷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壇)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신라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에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음진신(觀音眞身)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이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 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존 중 삼존불과 18나한은 굴 속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낙가산 보문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절의 역사는 사찰의 격에 비하여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1893년(고종 30)에는 명성왕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하였다. 1911년 일제가 30본·말사를 제정하면서 전등사 말사가 되었다. 1918년에 대원(大圓)이 관음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주지 배선주(裵善周)가 객실 7칸을 새로 지었으며, 1935년에는 나한전을 중창하였다. 그 뒤 관음전을 중건하고 대범종을 조성하였으며, 1976년 범종각과 요사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대방(大房)·종각·석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실 굴 안에는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석굴 입구에는 세 개의 홍예문을 설치하였고, 동굴 안에는 반원형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撐柱)를 설치하였으며, 탱주 사이에 21개 소의 감실이 있어 석불을 안치하였다.

 

이 밖에 이 절에는 마애석불좌상과 천인대(千人臺)가 있다. 마애석불좌상은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승려인 이화응(李華應)이 보문사 주지 배선주와 함께 조각한 것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석불좌상의 상부에는 거대한 눈썹바위가 있고, 좌측에는 비명(碑銘)이 있으며, 불상 앞에는 소규모의 석등이 있다. 이 석불과 석굴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찾는 여인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또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이다. 이 절의 창건 당시 서역(西域)의 고승이 이 천인대에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바위 위에 1,000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고 명명하였다. 1994년 10월 대한불교 조계종 직영 사찰이 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보문사 가는 길에 있는 우리나라 고인돌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덮개돌 무게만 50t이 넘는 강화 부근리 지석묘도 잠시 둘러보고..

강화 고인돌

강화도에는 한반도 고인돌을 대표하는 부근리 지석묘(사적 137호)를 비롯하여 많은 고인돌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고창과 화순 고인돌군과 함께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강화 고인돌은 한강하구에 해당하는 고려산 북쪽 편과 별립산에서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고인돌들은 지금은 바다에서 먼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오늘날 강화도의 들판은 대부분 간척을 통해 조성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해안가 언덕에 조성한 무덤이라 할 수 있다. 강화도의 고인돌은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이 섞여 있으며, 고인돌에서는 청동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출처 : 위키백과)

 

청동기 시대에 어떻게 강화도까지 흘러들어 왔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고구려 대막리지인 연개소문의 유적지..

석모도 가는 길에 있는 철쭉이 곱게 피어 있는 종이학 형상의 교회도 둘러봅니다/100년을 울린 교회 종도 있고..

망월 교회는 1900.4월 조그만 교회로 출발한 기독교 대한 감리교회로 지금의 종이학 교회는 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8년 공사를 착공하여 2000년 교회가 완공되었다. 교회 한쪽에는 ‘오다가다 쉬어 갈’ 이름의 원두막이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종이학 교회 한쪽에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1949년 봉헌한 2차 돌 예배당을 축소 복원한 성전을 만들어 두었다.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1949년 봉헌한 2차 돌 예배당을 축소 복원한 성전(아래 우측)

마을의 보호수..

보문사로 올라갑니다..

보문사도 입장료(1인 2,000원) 받고 있는데 조계종 산하 절에서는 정부 방침과 달리 70세 이상만 경로우대 적용을 하고 있으니이건 정말 돈독이 올라도 단단히 올랐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정청래 의원이 조계종을 봉이 김선달이라고 한 말 이후인 금년부터 조계종의 방침이라고 하니 정말 조계종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보문사는 동해의 양양 낙산사와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700여 년 된 향나무로 나무의 형태는 마치 용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여 기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보문사 향나무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보문사의 향나무는 보문사 석실(石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나무의 나이는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3.2m 정도이다. 높이 1.7m에서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동쪽 줄기의 둘레는 1.3m, 서쪽 줄기의 둘레는 1.5m이다. 나무의 형태는 마치 용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여 기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국전쟁 중에는 죽은 것 같이 보였으나 3년 후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보문사 향나무는 보문사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와 앞마당에 있는 느티나무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오래된 나무로써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보문사 석실...

보문사 석실

보문사 석실(普門寺 石室)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보문사에 있는 석굴사원이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나한상(羅漢像)을 모시는 나한전의 구실을 한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문을 만들고, 그 안에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 ·제화갈라보살, 나한상 등을 모셔두었다. 이 석불들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 나타난 대로 모셔 두었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불상의 제작연대는 그처럼 오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위키백과)

 

 열반에 든 석가모니불을 모신 와불(10m 길이)을 모셔 놓은 와불전..

와불전에서 본 보문사의 이모저모/석실과 향나무, 보문사 극락보전 등이 보입니다....

마애석불좌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연등이 걸려 있고..

소원을 적은 종이가 빼곡히 매달려 있는 마애불 소원지..

눈썹바위 아래에 소원등을 설치하였네요..

휴식을 취하는 관광객들..

눈썹바위 아래에 있는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마애석불좌상은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승려인 이화응(李華應)이 보문사 주지 배선주와 함께 조각한 것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석불좌상의 상부에는 거대한 눈썹바위가 있고, 좌측에는 비명(碑銘)이 있으며, 불상 앞에는 소규모의 석등이 있다. 이 석불과 석굴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찾는 여인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눈썹바위에서 본 교동도 방향..

눈썹바위에서 내려오면서 본 연등..

보문사 앞바다의 밀려오는 조수는 보문첩도라 해 강도 10경의 하나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보문사 구경을 마친 후 기념사진도 찍고..

 

일주문으로 나갑니다..

보문사 앞의 노점에서 더덕을 먹어보라고 건네는 상인..

보문사 관람을 마친 후 석모도수목원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