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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지역

남한산성 종주(15.1.31)

by 산사랑 1 201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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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건강셀프등산회 제419차 산행으로 문경 백화산이 계획되었으나 오후 집안행사로 인하여 참석이 곤란하여 아침 일찍 홀로 남한산성 종주를 하였다. 남한산성은 14.8월 야간산행(393차 산행)이후 약 5개월 만에 추진하였으며, 남한산성은 인조 당시 병자호란의 치욕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당시 조선은 인조반정으로 새로운 임금을 옹립하였으나 연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의 난이 일어나 인조는 공주 공산성까지 피난을 가는 등의 여러 사건으로 전쟁을 치룰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흥강자로 떠오는 청나라를 오랑캐라 하여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전쟁을 하고자 하면서 내세운 대책은 전쟁이 발생할 경우 강화도로 피난을 가서 대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백성들은 어떻게 되든 자기들만 살면 된다는 정말 무책임한 계획이었으며, 전쟁이 발발하자 7일만에 한성이 함락당하고 만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의 29일보다 훨씬 빠른 시간으로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 갈 시간이 없어 결국 남한산성으로 도피를 하여 47일만에 항복을 하고 심전도에서 한 번 절을 할 때마다 세번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히는 것을 세번 해야 하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을 당하게 된다.

 

치욕의 역사가 숨어있는 남한산성에 이번에는 남한산성유원지입구에서 ~ 남문 ~ 서문 ~ 북문 ~ 동문 ~ 남문의 성곽일주 ~ 남한산성유원지입구로 원점회귀로 추진하였으며 약 4시간이 소요되었다.

 

 

장대 중 현재 유일하게 보전되어 있는 수어장대..

 

《장대》

장대는 전쟁시 장군의 지휘소로 남한산성에는 5개장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영조때 증축한 수어장대만 보존되어 있다.(수어장대는 최초 서장대로 단층이었으나 영조가 2층으로 증축하였다.)

 

 

산행은 07:50분에 시작되었으며..

 

들머리인 남한산성유원지 입구에서 약30분 후에 남문에 도착하였다(8:10분)

 

남문은 남한산성의 정문으로 4대문 중에 규모가 가장 크며, 조선시대 임금들의 출입문으로 1,779년(정조 3년)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하고 지화문(至和門)이라 하였다고 한다.

 

 

남문 위에서 본 모습..

 

서문 가는 길에서 햇빛을 받아 황금 빛을 띄고 있네요..

 

햇빛 머금은 소나무가 멋지네요..

 

성곽길은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있으며, 이런 성곽길을 걷다 보면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도 사라지고..

 

남한산성 성곽 주변은 소나무로 되어 있어 운치가 있습니다..

 

팔각정으로 되어 있는 영춘정..

 

영춘정 앞에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들..

 

 

수어장대로 나가는 제6암문(서암문)

 

수어장대..

 

수어장대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로 주변에는 청량당과 매바위가 있으며, 또한 보호수인 향나무가 있다. 청량당(청량산 정상 482.6m)은 동남쪽 축성을 책임지던 이회장군을 기리는 사당으로, 이회는 성 축조시 기초가 튼튼한 완벽한 시공을 하다가 기일내에 완공하지 못하여 성 축조비를 착복하였다는 모함을 받고 참수형을 당한 장군으로 그 후 무고함이 밝혀져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청량당을 세웠다. 또한 매바위는 이회가 결백하다며 그 증거로 수어장대 앞의 바위에 매 한마리가 앉을 것이라고 하여 죽기 전에 매가 날아와 그의 결백을 증거 했다는 바위라고 한다.

 

수어장대에 있는 보호수인 향나무..

 

수어장대에 있는 소나무..

 

 

 

 

성곽의 돌을 자세히 보면 형태와 새갈이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보수시기에 따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비깥쪽은 아직 눈이 녹지 않고 있네요..

 

멋진 소나무가 반겨줍니다..

 

서문입니다..

 

서문 외곽 모습..

 

 

남한산성의 소나무들..

 

제5암문..

 

제5암문을 나서 연주봉 옹성으로 가는 길..

 

 연주봉 옹성길이 상당히 운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연주봉 옹성 전망대..

 

북문입니다..

 

구비구비 성곽길이 이어지고..

 

 

남한산성의 특징은 성벽을 따라 소나무들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한산성 소나무》

남한산성의 소나무는 일제시대 당시 국유림으로 조성하여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으로 보호하여 서울 근교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문 ~ 북문에 대다수가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문에서 남문 방향의 소나무의 자태는 너무 아름다워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이 구비구비 이어지는 성곽 길이 계속되고..

 

일부 구간은 눈이 얼어 있어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더군요..

 

오늘 아침도 영하 9도로 상당히 춥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병자년 당시 겨울은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었으며 노숙(露宿)한 군사들 중 추위와 굶주림에 죽는 병사가 속출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조선은 결국 최명길의 주화파가 내세운 강화론이 우세하여 성문을 열고 항복하게 된다. 후세 척화파인 김상헌은 명예를 얻었지만 최명길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최명길은 당시 정세를 정확히 진단을 하여 조선이 청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토록 강화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만약 전쟁을 하려면 조선의 모든 전력을 압록강에 집결하여 청과 일전을 하자고 하여 여기서 패하면 항복을 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척화파들은 백성들은 어떻게 되든지 여부는 따지지 않고 오로지 청나라가 오랑캐라서 청에 굴복하면 않된다는 명분으로 청과 전쟁을 하자고 하면서 대책이라고는 강화도로 도피하여 청과 전쟁을 한다는 것이었다. 병자호란 결과 죄없는 양민들 약 20만명(일설 50만명)이 청에 끌려 갔으며, 여기서 돌아온 아녀자들은 화냥년이라고 하여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다.

 

 

외곽에 있는 것은 새로이 만든 것 같네요..

 

장경사지 옹성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네요..

 

 당겨본 장경사지 옹성..

 

일단의 산객들이 성곽을 따라 걸어 갑니다..

 

장경사지 옹성..

 

동문 ~ 북문이 2,9km로 오르락 내리락코스가 많아 성곽일주에서 가장 힘이 드는 코스입니다..

 

 

정말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멋진 풍경입니다..

 

동문에서 남문으로 올라가는 성곽길,,

 

동문이 보이네요..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여 이에 감명 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인 송암정 지역..

 

《송암정》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 도중 기생2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유생이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므로 이에 감명 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임.

 

 

生과 死 너머 남문가는 길이..

 

동문입니다..

 

성곽이 잘 보수되어 있고요..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술이 특이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일조를 하였다.

 

복원중인 옹성치(검단산이 보이네요..)

 

남한산성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제2옹성이 나오는데 이곳은 다른 옹성과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으로 현재 제2옹성 앞 쪽을 옹성치(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적을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물 중의 하나로 남한산성에 5개가 있다)를 복원 중에 있다.

 

제1남옹성을 발굴하고 있네요..

 

《옹성》

옹성은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경사가 완만한 지역의 성문 밖에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은 이중 성벽으로 총 5개(동문, 북문 각1개, 남문 3개)가 있다

 

마치 뱀이 기어가는 형상으로 남한산성 성곽은 곡선미가 아주 뛰어 납니다..

 

남문이 보이네요..

 

유원지 입구로 하산을 합니다..

 

유원지입구의 맨발걷기 체험장에 있는 것으로 발이 제2의 심장이라고 하네요..

 

사실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작가 김훈 선생의 작품에서 병자호란 당시 한겨울 고립무원의 남한산성내에서 벌어지는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 간의 말싸움과 '죽어서도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처절한 고뇌를 엿보게 해주는 역사가 있는 곳이다. 죽어서 자기 혼자만 명예를 얻는 길과 살아서 치욕은 당할 지라도 그 길이 백성들을 위한 길이라면 과연 어느 길이올바른 길일까?...최명길의 선택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당시 사정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조선은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도 없는 전력으로 청나라에서는 포위만 한 채 조선의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기다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결국 청의 뜻대로 이듬해 당시 임금인 인종이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남한산성은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항전 전적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치욕을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남한산성은 2014년 6월2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World Heritage Committee) 제38차 회의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에 선정됐다. 남한산성은 동아시아에서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를 지닌 군사 유산으로 세계 유산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양동·하회' 이후 4년 만이며, 국내 11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은 석굴암·불국사와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년), 창덕궁, 수원 화성(1997년), 경주 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하회·양동 역사마을(2010)과 이번에 지정된 남한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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