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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강화산성길

고려역사가 살아 숨쉬는 강화산성 일주(20.3.20)

by 산사랑 1 2020.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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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사적 제132호. 1232년(고종 19) 6월 몽골군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로 천도하면서 궁궐을 짓고 도성(都城)을 축조하였다. 다만 이때 왕궁과 도성 시설을 모두 갖추지는 않고, 1234년 1월부터 송도(松都)의 것과 비슷하게 도성과 궁궐, 각 관청을 건립하였다.『강도지(江都誌)』에 의하면 강화의 성은 내성, 중성, 외성의 3중 방어 체계로 이루어졌다. 내성은 둘레 약 1.2㎞의 길이로 쌓은 토성으로 1234년(고종 21) 1월부터 축조되었다. 중성은 둘레 약 9㎞의 길이로 쌓은 토성으로 1250년(고종 37) 내성을 지키기 위하여 축조되었다. 외성은 강화도 섬을 두른 토성으로 1233년(고종 20)부터 쌓기 시작하여 1237년에 일차 완성되었다. 이 세 개의 성은 1259년 고려가 몽골과 강화할 때 모두 헐렸다.

 

조선 초에 고려 때의 내성을 축소하여 석성(石城)을 축성하였으니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그러나 강화산성은 1637년(인조 15)에 병자호란이 일어난 뒤 청나라 군사에 의해 다시 파괴되어, 1677년(숙종 3)에 강화유수 허질(許秩)이 고려 때의 내성 규모로 크게 고쳐 쌓았다. 1709년(숙종 35)에 강화유수 박권(朴權)이 중수한 뒤에도 조선 말기까지 계속 보수하였다. 이 때 성벽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도 두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무너진 상태이다. 성 안에는 남장대(南將臺)·북장대(北將臺)·서장대(西將臺) 등의 장대와 비밀통로인 암문 4개 그리고 2개의 수문이 있었다.

 

1970년대 시행된 강화전적지 정화사업을 통하여 1975년에는 남문 안파루(晏波樓), 1977년에 서문 첨 화루(瞻華樓)와 북문 진송루(鎭松樓) 등을 복원하였고, 2003년에 동문 망한루(望漢樓)를 복원하였다. 현재 성의 동쪽 부분은 없어졌으나, 남북쪽 산자락은 복원 정비되어 있다. 강화산성은 구한말에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강화도조약 체결 등 수많은 외세 침략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출처 : 다음 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편집)

 

1977년에 복원한 북문인 진송루에서 인증..

 

강화여행 2일차(20. 3.20/금) 첫 번째 코스 : 강화산성 일주

 

강화여행 2일차에는 강화산성, 정족산성, 전등사, 장화리 일몰 등을 볼 계획이다. 아침 6:30분에 일어나 어제 만들어 먹었던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고 첫 번째 코스인 강화산성을 보러 출발하여 08:20분 강화산성 서문에 도착하였다. 강화산성 코스는 서문(첨화루) ~ 남산(남장대) ~ 남문(안파루) ~ 견자산 ~ 동문(망한루) ~북산(북장대) ~ 북문(진송루) ~ 서문(첨화루)로 원점회귀할 계획이다.

 

강화별장에서 본 아침 풍경..

 

강화산성 코스는 서문(첨화루) ~ 남산(남장대) ~ 남문(안파루) ~ 견자산 ~ 동문(망한루) ~북산(북장대) ~ 북문(진송루) ~ 서문(첨화루)로 원점회귀할 계획..

 

서문 반대편에 차량을 주차한 후 연무당 옛터에서 잠시 정비를 한 후 남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연무당 옛터는 1876년 강화도조약이 최종 조인된 장소로 이 조약으로 인하여 일본에 강제적으로 부산, 인천, 원산을 개항하였다. 강화도조약은 일본에게 유리한 불평등 조약으로 우리 민족의 암울했던 과거사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기적비가 세워져, 민족 자주의식을 드높이 간직해야 한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강화산성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서문..

 

1876년 인천, 부산, 원산 3개 항에 일본의 치외법권을 인정한 강화도조약이 조인된 장소인 연무당 옛터...

 

연무당 옛터에서 잠시 머문 후 석수문을 지나 성곽 길을 따라 올라갔으며, 멀리 남장대가 보였다. 조금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남문을 경계로 북산으로 올라가는 성곽 길도 보였다. 들머리에서 약 25분 정도 올라가니 남장대가 보였으며, 조금 올라가니 한강하구와 그 너머 강 건너 북녘땅 개풍군이 보였다. 남장대에서 북쪽 방향으로 국화저수지가 보였고, 남장대에는 들머리에서 약 30분이 소요되었다.

 

화재 지정된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0호(1995년 3월 31일 지정)로 지정된 이 수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어 강화읍을 통하여 흐르는 동락천을 가로지르는 수문으로서 조선 숙종 37년(1711)에 축조되었다.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으로 된 이 수문은 화강암으로 축조하였으며 길이는 18.2m, 높이 2.7m, 홍예의 높이는 1.7m, 폭은 3m이다. 1910년 갑곳리 선착장을 신설하고 그 옆 동락천 하구의 교량으로 사용하다 1977년 하수문 자리로 이축하였다가 1993년 동락천 복개공사로 인하여 상수문 자리로 이전 복원되었던 것을 최근 서문으로 다시 이전, 현재에 이르고 있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남산으로 이어지는 성곽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멀리 남장대가 보이네요..

 

도로 때문에 성곽이 일부 끊어져 있네요..

 

남문을 경계로 북산으로 올라가는 성곽길도 보입니다..

 

성곽길을 따라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고..

 

여기도 잘 정비되어 있네요..

 

이 아래에 암문이 있으며. 강화산성에는 4개의 암문이 있습니다..

 

남장대가 보입니다..

 

한강하구가 보이고 강 건너는 북녘땅으로 개풍군입니다..

 

남장대 주변으로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남장대에서 북쪽 방향으로 국화저수지가 보이네요..

 

남장대는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 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2008년 발굴된 남장대 터를 기초로 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2010.12월 하였다.

 

 

진달래로 유명한 고려산이 보이네요..

 

나무 아래 강화도령 첫사랑길의 표시가 있네요..

 

 

남장대에서 약 5분 정도 머물며 경치를 조망한 후 남문으로 출발하였다. 남문 가는 길에 강화대교 방향으로 강 건너 김포 문수산이 보였으며, 성곽길은 일부를 제외하고 잘 보수되어 있었다. 남문은 남장대에서 약 25분 소요되었다. 남문은 1975년에는 복원되었으며, 현판에는 강화도의 옛 지명인 강도남문(江都南門)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대쪽은 물결이 늦게 오는 누각이란 뜻의 안파루(晏波樓)가 적혀 있었다.

 

강화대교 방향으로 강 건너 김포 문수산이 보입니다..

 

남장대를 다시 돌아봅니다..

 

이곳도 성곽이 잘 보수되어 있네요..

 

일부는 아직 보수가 되지 못한 곳도 있고..

 

 

남문이 보입니다..

 

2017년 MBC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를 여기서 찍었네요..

 

 

현판에 강화도의 옛 지명인 강도남문이라고 적혀 있네요..

 

 

남문에서 약 5분 정도 머물며 주변을 둘러본 후 동문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남문에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가 서 있고, 동문으로 가다가 뒤돌아보니 남장대가 그림같이 보였다. 잠시 진행하다 보니 성곽을 복원하려고 그러는지 나무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들이 성곽길을 대신하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 봄의 전령사인 보라색 제비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문 느티나무로 수령이 450년 되었다고 적혀 있네요..

 

 

동문 방향으로 가다가 뒤 돌아본 성곽길에 느티나무가 보입니다..

 

철종을 왕으로 모실 때 지났던 행렬도..

 

멀리 남장대가 보입니다..

 

코로나 19로 힘은 들어도 농사는 지어야 되겠지요..

 

나무를 모두 베고 그루터기만 남아 있네요..

 

그루터기 아래 봄의 전량사인 제비꽃도 보이고..

 

냉이꽃도 피어 있고..

 

남문에서 약 20여분 후에 한국전쟁 당시 전몰한 군경들을 모신 현충탑이 있었다. 현충탑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강화 나들길 표시 나무에 견자산이라는 표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문은 견자산 정상에서 약 4분 거리에 있었으며, 동문은 망한루(望漢樓)로 4개 성문 중 가장 늦은 2003년에 복원되었는데 성곽을 제외하고 모두 새로 지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몰한 강화 출신 군경 1033인을 모신 현충탑..

 

견자산 정상입니다..

 

마을에 둘러싸인 동문이 보입니다..

 

동문입니다..

 

동문은 망한루(望漢樓)로 4개 성문 중 가장 늦은 2003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성곽을 제외하고 새로 지은 것을 알 수 있네요..

 

강화나들길 15코스에 속합니다..

 

동문에서 약 5분간 머무른 후 북문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동문 주변에는 600년 된 느티나무가 있었으며, 성곽길이 끊어져 있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성곽길이 흔적만 남아 있지만 하늘과 맞닿아 있었으며, 북장대를 지나 진달래 명산이 고려산과 혈구산이 보였다. 북문으로 가는 조망처에서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조강(祖江) 너머 개풍군이 그림같이 보였다. 북문이 마치 학익진처럼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북문에는 동문에서 약 35분이 소요되었다.

 

600년 된 보호수인 느티나무(수고 19m, 나무둘레 7m)..

 

 

성곽길이 끊어져 있어 길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성곽길이 흔적만 남아 있지만 하늘과 맞닿아 있네요..

 

멀리 남장대가 보이네요..

 

성곽길 좌우로 혈구산과 고려산이 보입니다..

 

위쪽에 북장대가 있었으나 표시가 없더군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조강(祖江) 너머 개풍군이 그림같이 보입니다..

 

북녘땅이 지척이네요..

 

북문이 마치 학익진처럼 펼쳐져 있네요..

 

북문은 1783년에 건립하여 진송루(鎭松樓)라 했으나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했다. 전날 강풍이 불어온다고 깃대를 전부 눕혀놓았는데 이제 다시 깃대를 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북문에서 5분 정도 머문 후 서문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북문은 1783년에 건립하여 진송루(鎭松樓)라 했으나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강화나들길 1코스(성곽 역사 문화길)와 겹치고..

 

북문에 강화군청 소속 운동선수들이 보이네요..

 

깃대를 세우고 있네요..

 

북문에서 성곽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이 끊어져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여기까지 올라왔다가 길이 끊겨 다시 북문으로 내려가 강화 나들길 따라 진행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계속 진행하였으며 교통호가 있어 이곳에 군부대가 있어 성곽길을 연결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군데군데 생강나무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약 10분지나 강화 나들길과 다시 연결되었고 이후 성곽길은 흙길로 되어 있었다. 다시 평이한 길을 따라 진행하였으며, 서문에는 북문에서 약 35분이 소요되었다. 서문은 1711년(숙종 37)에 건립되어 그동안 퇴락되었다가 1977년에 개축되었다. 고려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강화산성 길을 돌아보는 데는 약 3시간에 소요되었다.

 

성곽길이 끊어져 있고 교통호가 있는 것을 보니 군부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생강나무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곳에서 강화 나들길과 다시 연결됩니다..

 

성곽길은 흙길로 되어 있네요..

 

소나무 사이로 길이 이어져 있네요..

 

계단을 따라 진행합니다..

 

서문이 보입니다..

 

서문은 1711년(숙종 37)에 건립되어 그동안 퇴락되었다가 1977년에 개축되었습니다..

 

 

서문에 있는 지도로 강화산성길이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약 3시간에 걸친 강화산성길을 마무리합니다..

 

다음은 정족산성 가는 길에 들렀던 온수리성당과 철종외가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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