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산 산행(2021. 7. 17일 토요일)】
도명산(643m)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있으며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천혜의 계곡 화양구곡을 품고 있는 명산으로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소나무의 풍치 절경이 한 폭의 동양화를 이룬다. 산세도 완만하고 철계단, 통나무 계단 등으로 초보자들도 등산할 수 있게 잘 정비되어 있다.
낙영산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화양천에 그 맥을 가라앉히기 전 바위로 불끈 일으켜 세운 산으로 이름처럼 삼체불 부근에서 도를 닦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성을 드리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명산은 비록 높지는 않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면 마치 산자락에 진주알을 뿌려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기암괴석과 천년노송이 넘쳐나고 산행 도중 곳곳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정상에서 멀리 보이는 속리산 주능선, 즉 천왕봉에서 입석대, 문장대를 거쳐 묘봉, 상학봉에 이르는 장쾌한 조망들이 그림같이 다가오고, 정상주변에는 분재처럼 잘 자란 소나무 몇 그루가 무상한 세월을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산 정상 바로 아래 학소대 방향에는 최고 30미터나 되는 수직암벽에 각각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삼체불이 있다.
도명산이 있는 괴산군은 화양구곡을 비롯해 갈은구곡, 쌍계구곡, 선유구곡, 고산구곡, 연하구곡, 풍계구곡 등 전국 시·군 가운데 가장 많은 7개의 구곡이 설정된 지역이다.
도명산 정상..
▶ 09:35 ~ 16:10분 산행(약 6시간 35분 산행/ 식사와 휴식 2시간 포함)
금일 산행은 건강셀프등산회의 제766차 산행으로 1010년 전인11.3.5일(216차 산행) 다녀온 바 있는 화양구곡을 품고 있는 괴산 도명산이 추진되었으며, 이번 산행은 화양 2곡2 주차장 ~ 화양 3교~ 성 터 ~ 도명산(중식) ~ 학소대 ~ 화양 2곡 주차장의 9km, 4시간 코스로 추진하였다. 도명산이 있는 괴산군은 화양구곡을 비롯해 갈은구곡, 쌍계구곡, 선유구곡, 고산구곡, 연하구곡, 풍계구곡 등 전국 시·군 가운데 가장 많은 7개의 구곡이 설정된 지역으로 멋진 계곡들과 많은 산들을 품고 있다. 건셀 애마는 07:00에 교대역을 출발하여 산행 들머리인 화양리 주차장에는 09:25분에 도착(주차비 : 5000원)하였다.
산행 추진 : 화양2곡 주차장 ~ 화양 3교 ~ 성 터 ~ 도명산(중식) ~ 학소대 ~ 화양2곡 주차장의 9km, 4시간 코스로 추진
• 화양동 주차장(09:35) ~ 도명산 정상(12:30)(들머리에서 약 2시간 55분 소요)
화양동 주차장에서 약 10분간 정비를 한 후 화양계곡을 따라 진행하였으며, 약 6분 후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 출입을 체크하고 있는 곳에 도착하여 심폐소생술 체험을 하였다. 그곳에는 화양계곡을 소개하는 것이 있는데 화양계곡은 당초 황양 나무(회양목)가 많아서 황(黃)양(陽) 동(洞)으로 불리다가 효종 때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1666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와서 중화의 화(華)와 일양래복(一陽來腹)의 양(陽)을 따서 화양동으로 고쳤다고 한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화양구곡은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라 불릴 정도로 바위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의 조화가 이름난 곳으로,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의 주자가 무이산 계곡에 무이구곡을 정한 것을 본 따 화양계곡의 아홉 명소들을 골라 화양구곡으로 정하여 지금까지 불리어지고 있다고 한다. 화양구곡은 1곡 경천벽, 2곡 운영담, 3곡 읍궁암, 4곡 금사담, 5곡 첨성대, 6곡 능운대, 7곡 와룡암, 8곡 학소대, 9곡 파천이다.
심폐소생술 체험을 하고..
화양구곡 소개와 유래..
길을 따라가다 보니 모양이 특이한 바위와 계곡물에 투영된 바위의 아름다운 모습 등을 볼 수 있었고 다리를 건너 2곡인 윤영담이 조망되었다. 제2곡인 운영담은‘계곡의 맑은 물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의미로 바위와 솔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자세히 보면 좌측 바위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곡인 경천벽은 화양동 주차장 밖에 있어 산행 후에 보았음)
모양이 특이한 바위와 계곡물에 투영된 바위의 아름다운 모습..
제2곡인 ‘계곡의 맑은 물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바위와 솔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운영담으로
우측 바위 하단에 운영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제2곡을 자세히 보면 좌측 바위는 마치 사람 얼굴 형상을 띠고 있고 바위 사위에 나무들이 멋지게 자라고 있습니다..
운영담을 지나면 근처에 송시열을 제향하기 위한 화양서원이 있어 잠시 둘러보았다. 화양서원은 전국에서 송시열을 제향한44개 서원 중 위세가 가장 큰 서월이었다. 이어 제3곡으로 ‘효종의 승하를 슬퍼하여 매일 새벽마다 너른 바위에서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고 하는 읍궁암을 지났다. 송시열은 노론의 정신적 지주로서 정조 때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스승인 송자로 격상되었던 인물로 효종을 도와 북벌론을 추진하였으나 효종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송시열이 효종의 죽음에 통곡한 사유를 짐작할 수 있으며, 송시열은 문인으로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끝없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송시열은 83세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화양서원의 건물 중 하나인 만동묘로 들어가는 성공문..
【화양서원】
1695년(숙종 21)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하기 위해 권상하(權尙夏)·정호(鄭澔) 등 노론이 건립을 주도했으며, 1696년 창건하고 사액을 받았다. 1716년(숙종 42)에는 어필로 편액을 받았다. 서원의 명칭인 '화양'의 뜻은 '중화의 정신을 널리 알린다'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화양서원이 위치한 곳은 송시열이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친 연고지이며, 일찍이 명나라 의종의 '비례부동' 4자의 친필을 얻어 암벽에 새기고 암자를 세웠던 곳이다. 원래 위치는 화양동 밖 만경대였으나 1709년(숙종 35)에 지금의 터로 이전했다.
초기 서원은 배향된 인물을 숭앙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기능을 수행했으나 점차 지역 사림들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향촌 사회의 여러 문제를 의논하는 운영 기구의 기능을 갖기도 했다. 후기에는 붕당 정치의 영향으로 서원 설립이 남발되면서 송시열을 제향한 서원도 전국에 44개에 이르게 되었다. 화양서원은 노론 집권기에 국가로부터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는 등 송시열을 제향한 서원 가운데 명성이 높고 위세가 가장 큰 서원이었다.
서원의 권세가 강해지면서, 제수에 쓴다는 명목으로 각 지역에 화양묵패를 보내어 강제로 돈을 걷는 등 백성들의 폐해가 심했다. 화양서원뿐 아니라 각 지역의 서원에서 두루 이런 폐단이 발생하자, 1858년(철종 9년)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의 주청으로 복주촌을 없애고, 재화 징수도 금지시켰다. 이어 1870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건물도 모두 헐리게 되었다.
광복 후에 화양서원 터에서 서원의 건립 취지와 배향한 인물에 대한 기록을 담은 묘정비가 발견되었는데, 이 비는 1716년(숙종 42)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윤봉구(尹鳳九)가 지었다. 묘정비는 서원 건물이 헐릴 때 매몰되었던 것으로, 후일 다시 만든 것을 포함하여 총 4개가 수습되었다. 화양서원 자리에는 현대에 들어 성공문, 외삼문, 숭삼문, 중반청, 존사청 ,풍천재, 비각, 사당 등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1999년에 국가사적 제417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다음 백과)
화양서원의 건물들(양추문, 증반청, 풍천재, 존사청)..
우암은 1689년에 제주로 유배의 길을 가면서 수암 권상하에게 화양동에 만동묘를 세울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의 마지막에 '만동묘에서 명나라 신종(神宗)과 의종(毅宗)을 제사 지내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신종에게는 멸망하는 나라를 지켜준 은혜에 보답하는 의리(義理)를 다하는 것이요, 의종에게는 나라가 망하면 국왕이 죽음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도(正道)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서원의 건립 취지와 배향한 인물에 대한 기록을 담은 만동묘정비..
이어서 화양구곡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맑고 깨끗한 물과 금사라기 같은 모래가 널리 펼쳐져 있다’는 화양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과 주자의 운곡정사를 본뜬 암서재(巖棲齋)를 볼 수 있었다. 물가 바위 위의 서재에서 글을 읽었던 송시열의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갈 정도로 멋진 곳임을 알 수 있었다.
‘효종의 승하를 슬퍼하여 매일 새벽마다 너른 바위에서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고 하는 제3곡인 읍궁암..
화양서원 묘정비..
화양 구곡 중 가장 운치가 있는 제4곡인 금사담(맑고 깨끗한 물과 금사라기 같은 모래가 널리 펼쳐져 있다는 의미)과 암서재
바위가 옆으로 금이 가 있는 것이 조금은 특이하네요..
들머리에서 약 45분이 지나 화양 제5곡인 첨성대 입구에 도착(10:28분) 하니 도명산 3.2km 안내 팻말이 있었다. 도명산 산행은 화양 제8곡인 학소대까지 화양구곡을 구경한 후 학소대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첨성대로 내려오는 코스가 보편적이나 우리 팀은 첨성대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첨성대 입구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으며, 첨성대 근처의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금사당과 학소대 방향의 계곡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잠시 구경을 한 후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다 다른 조망처에서 채운암이란 사찰과 금사당에 있는 암서재를 조망할 수 있었다.
첨성대 입구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제4곡 금사당 방면의 계곡(좌측)과 반대편 쪽의 계곡..
날씨가 습해서 그런지 버섯들이 자주 보입니다..
바위에도 이끼가 내려앉았고..
채운암(사찰)과 암서재..
본격적인 산행 후 약 1시간이 경과하여 거북형상을 바위를 지나갔으며, 다시 약 28분 정도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니 멋진 조망처가 나왔다. 잠시 소나무 가지 너머로 보이는 멋진 산그리메를 감상하였으며, 다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약 5분 올라가니 도명산 0.61km(첨성대 2.6km) 팻말이 나왔다, 날씨가 무더워 계단 올라가는 것이 힘이 부치나 계단 너머로 멋진 경치가 보상을 해주었다. 멋진 조망을 보면서 잠시 진행하니 도명산 정상이 눈에 들어왔다.
거북형상의 바위..
짝궁둥이(?)
조망처에서 본모습..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날씨가 무더워 지치네요..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서 멋진 경치를 보상받습니다..
도명산 정상이 보이고..
다시 약 10분 진행하니 멀리 속리산 영봉들과 주변 일대의 산군들이 펼쳐져 있어 저절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정상까지는 멋진 솔과 암릉을 보면서 진행하였으며, 거대한 암릉으로 되어 있는 도명산 정상에는 들머리에서 약 2시간 55분이 소요된 12:30분에 도착하였다.
속리산 영봉들이 펼쳐져 있고..
한반도 형상의 바위굴을 지나..
멋진 풍광이 펼쳐지고..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네요..
도명산 정상으로 10년과 다른 정상석이 새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 도명산 정상(13:40) ~ 학소대(14:30)(정상에서 50분 소요)
도명산 정상에서는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속리산 주능선, 즉 천왕봉에서 입석대, 문장대를 거쳐 묘봉, 상학봉에 이르는 장쾌한 조망들이 그림같이 다가오고, 중앙으로 덕가산, 코뿔소바위 우측으로 조봉산이 펼쳐져 있었으며, 정상 주변에는 도명산 소나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한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어 과연 도명산이 명산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도명산 정상에서 본 파노라마로 좌측은 속리산 봉우리들이, 중앙은 덕가산과 금단산, 그리고 우측에는 조봉산이 그림 같고..
정상 뒤쪽 바위에서 날아보고..
도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품 소나무..
와송도 보이고..
도명산 정상 아래쪽으로 내려와 식사를 한 식사 장소 뒤쪽의 바위에서도 날아보고..
연속으로 잡은 모습..
정상에서 경치 구경 및 식사를 한 후 13:40에 학소대 방향으로 하산을 실시하였으며, 10여분 내려가니 마애삼존불상이 거대한 암벽위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곳에서 비가 살짝 지나갔으며, 약 10분 후에 비가 그친 후의 멋진 풍경을 살짝 볼 수 있었다.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마애삼존불상..
비 갠후의 멋진 풍경을 살짝 보고..
정상에서 약 35분이 지나 학소대 1.1km(도명산 1.7km) 팻말을 지났으며, 이후 평이한 길을 따라 약 15분15 내려가니 다리가 있었는데 여기서 화양 제8곡인 학소대가 보였다. 학소대는 큰 소나무들이 운치 있게 조화를 이루며 우뚝 솟은 바위산으로 '청학(靑鶴)이 바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하여 학소대(鶴巢臺)라 불렀다고 한다.
8곡인 학소대가 보입니다..
'청학(靑鶴)이 바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라고 하는 학소대(鶴巢臺)
• 학소대(14:40) ~ 화양동 주차장(16:10)(학소대에서 1시간 30분 소요/ 50분 물놀이와 휴식)
학소대에서 1010여 분간 주변 경치를 구경한 후 14:40분에 화양동 주차장으로 출발하였으며,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은 다소 탁하고 거친 느낌이 들었다. 약 5분 후 마치 공룡 같은 바위가 보이는데 ‘길게 늘어진 바위의 모습이 용이 꿈틀거리는 듯’ 한 모습을 한다고 하는 제7곡인 와룡암(臥龍岩)이었다.
‘길게 늘어진 바위의 모습이 용이 꿈틀거리는 듯’ 한 모습을 한다고 하는 제7곡 와룡암..
와룡암 주변에 있는 원추리..
와룡암에서 약 10분 정도 머물며 주변을 둘러본 후 다시 55분 정도 내려오니 도로가에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이름을 붙인’ 화양 제6곡인 능운대(凌雲臺)가 나왔다. 능운대가 나무에 가려 본모습이 잘 보이지 않은데 1010년 전 사진을 보면 능운대 앞쪽이 마치 돼지머리 같았다. 능운대 맞은편 개울가 위에 보면 ‘겹쳐있는 바위가 약 100미터에 이르며 그 위에서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화양 제5곡인 첨성대를 볼 수 있었다.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이름을 붙인’ 화양 제6곡인 능운대(凌雲臺)
10년 전 산행시 본 능운대로 우측 바위가 돼지머리 형상을 하고..
‘겹쳐있는 바위가 약 100미터에 이르며 그 위에서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화양 제5곡인 첨성대..
이후 화양 제4곡인 금사담부터 제2곡인 운영담을 거쳐 화양동 주차장까지는 오전에 걸었던 코스로 계곡에는 다수의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팀도 제3곡인 읍궁암을 지난 곳에서 40여분 물놀이를 하면서 산행의 피로를 풀 수 있었다. 화양동 주차장에는 16:10분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4곡인 금사담과 암서재..
우리 팀도 물놀이를 하면서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날아도 보고..
이후 차량으로 이동 중 ‘층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여 유래된 화양 제1곡인 경천벽을 구경한 후 16:50분 서울로 출발하였으며, 귀경길에 괴산 옥수수(1자루 30개/18,000원)를 구매하고 19:20분 대모산입구역에 도착하여 오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층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여 유래된 화양 제1곡인 경천벽..
▶산행 후기
이번 산행은 화양구곡을 품고 있는 충북 괴산의 도명산을 1010년 만에 다시 추진하였으며, 다소 무더운 날씨 속에 산행을 실시하였다. 충북 괴산은 계곡과 멋진 바위가 조화를 이루어 화양구곡을 비롯해 쌍계구곡,선유구곡 등 7개의 구곡이 설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곡은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주자학의 창시자인 중국 주희 선생의 무의구곡을 흠모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중 화양구곡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이 말년에 거쳐했던 곳으로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라 불릴 정도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도명산은 이와 같이 아름다운 화양구곡을 품고 있는 산으로 솔과 바위가 아름답고 풍광이 수려하고 정상에서의 전망이 특히 아름다워 명산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화양 구곡의 마지막 9곡인 파천이 제8곡 학소대에서 1.3km(?) 위쪽에 위치하여 날씨가 너무 무더워 이번에도 보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쉬웠으나, 화양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산행의 피로도 풀고 더위도 날려버릴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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