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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 단종의 유배지 발자취를 찾아서(23. 2.26) 젖무덤과 청령포

by 산사랑 1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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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유배지인 청령포..

건강셀프등산회 제868차 산행으로 추진된 영월 잣봉 ~ 어라연 산행을 하기 전에 영월 8경인 선암(한반도) 마을, 선돌, 단종의 묘소인 장릉, 단종 유배지인 청렴포 등과 함께 단종의 유배길에 있는 쉼터와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영월군 북쪽 5리쯤의 동을지에 매장했다는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 기념관 등을 둘러 보면서 단종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첫 번째는 단종의 유배지 길 위에 있는 젖무덤이었다.

 

단종 유배지길의 쉼터에 있는 젖무덤..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33-1 앞 도로옆 단종유배지 가는 길의 쉼터에 쌍둥이처럼 나란히 세워진 봉분 위 삿갓 모양 돌덩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굼금했었는데 얼마 전 방송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젖무덤은 2007년도 단종의 모친인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은 후 3일 만에 죽어 어머니 젖을 먹지 못한 단종의 안타까운 사연과 그 그리움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단종의 유배지 길 쉼터에 조성했다고 한다.

단종의 유배지 길은 전체 길이는 43㎞. 통곡의 길(솔치고개~주천 10.5㎞)과 충절의 길(주천~배일치 마을 17㎞), 인륜의 길(배일치 마을~청령포 15.5㎞)등 3개 코스로 나누어진다

 

단종 유배길 쉼터..

단종은 12세에 즉위하였으며, 그 해에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유명무실한 왕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수양대군은 계유년에 김종서, 황보인 등이 안평대군과 결탁해 반역하고자 한 것을 평정했다는 의미로 계유정난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쿠데타였다. 이후 어린 단종은 저 이름뿐인 왕의 자리를 지키며 수양대군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1455년(단종 3) 윤 6월에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1457년(세조 3) 6월에 성삼문, 박팽년 등의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펼친 것을 기화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었다. 이때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노산군으로 강등됨과 동시에 영월로 유배된 단종은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획이 사전에 발각됨에 따라 사약을 받게 되었다.

 

만약 사육신 등의 단종복위운동이 없었다면 단종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찌 되었던 단종복위운동의 결과로 단종은 영월로 유배를 떠나게 되고 현재 영월은 어찌 보면 단종 덕을 많이 보게 된다.

 

사육신과 성삼문의 절의가..

영월 10경에는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묘소인 장릉이 포함되어 있어 이번에 둘러보았다..

청령포 주차장에 있는 단종을 호송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회단종이 작시조(懷端宗而作時調)〉..

단종의 유배지인 절해고도 같은 청령포..

청령포는 11년 전인 2012년 태화산 산행을 하고 들렀던 곳으로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은 육육봉이라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절해고도와 같은 곳이다.  배를 타고 청령포로 들어서니 수백 년 된 거송들이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어 보기 좋았지만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절해고도를 연상하게 되어 단종의 외로움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배(운임 : 3,000원)를 타고 청령포로 들어갑니다..

청령포 수림지는 천년의 숲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이 있다..

단종어소로 가는 길의 소나무 숲..

궁녀와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

단종이 머물렀던 본채인 단종어소(승정원일기를 토대로 당시 모습을 재현하였다)..

단종이 당시 거주했던 곳으로 소실되어 이 비를 세워 이소위치를 밝히고 있다..

담장 너머 멋진 소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청령포는 특히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답다. 창송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 있다. 아주 오랜 풍상을 겪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 육중한 몸을 굳게 버티고 서 있는데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 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그의 오열(音)을 들었다고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음송은 높이가 30m에 달하는 노거수로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란 형태다. 수령은 약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의 수령을 80년으로 추정하여 계산한 것이라 한다.

관음송(천년기념물 제349호)입니다..

전망대에서 본모습..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 송 씨를 그리워하여 직접 쌓았다고 알려진 망향탑..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 송씨를 그리워했듯이 단종비도 역시 단종을 그리워하며 영월을 보면서 단종의 명복을 빌어 주었던 곳이 동망봉이라고 한다.. 정순왕후 송 씨는 송현수의 딸이며 단종보다 한 살 위로 1454년 가례를 올렸다. 1455년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수강궁으로 옮겨 살았는데, 16세에 세상을 뜬 남편보다 64년을 더 살다가 중종 16년(1521) 세상을 떠났고, 현재 경기도 남양주의 사릉에 있다. 사릉은 그동안 비공개였는데 2013년 1월부터 공개하고 있다.

 

단종비가 영월을 보면서 단종의 명복을 빌어주던 곳인 동망정입니다(20.10월 한양도성순성길 2구간 걸을 때 사진)..

【동망정】

동묘역에서 약 10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자연 친화적인 도시근린공원으로 동망산에 자리하고 있어 동망산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숭인근린공원’에 동망정이 있다. 동망정은 조선 6대 왕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강원도 영월에 귀양 가서 죽임을 당하자 그의 비 정순 왕후 송 씨가 궁궐에서 쫓겨나 현재 청룡사 자리인 정업원에서 시녀와 같이 지내면서 단종이 유배된 쪽으로 매일 동쪽(영월 쪽)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 올라와 망왕의 명복을 빌었다 하여 동망봉이라 부르게 된 유래에 따라 이곳에 팔각 정자를 건립하여 동망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금표비( 영조 2년(1726)에 세워진 것으로 청령포의 동서 방향으로 300척, 남북으로는 490척 안에서 소나무의 벌목을 금하고 퇴적된 흙을 파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표소가 있는 곳..

청령포야 잘 있거라..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