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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1~ 2일차(3-1) (22.11.14~15일/ 월~화) 가우디 투어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by 산사랑 1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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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페드 레라(채석장)’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카사 밀라(밀라의 집)..

바르셀로나 여행 1~2일 차(22.11.14~15일/월. 화)  가우디 투어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숙소에서 07시 20분 나와 약 20분 거리에 있는 기차역에 도착하여 0815분 출발하는 렌페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출발하였다. 약 1시간 20분 지나 코르도바에 도착하였다. 이번 여행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코르도바를 2일 정도 포함하였지만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도중에 빼고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것으로 수정을 하였다. 바르셀로나에 도착 후 숙소를 찾는다고 애를 먹었다. 숙소가 부킹닷컴에 있는 주소와 조금 달라 약 2시간을 허비하였지만 취사가 가능한 아파트라서 모처럼 삼겹살도 구워 먹고 계란도 삶아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 내일 가우디 투어 만남의 장소인 카사 바트요를 사전 답사차원에 들러 보고 첫째 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기차역 가는 길에서..

숙소 근처에 있는 건물인데 여기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건축물이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네요..

시내 근처입니다..

카사 바트요로 인체의 집’이라는 의미로 카사 델스 오소스(Casa dels ossos)라고도 한다...

카사 바트요는 바르셀로나의 사업가였던 바트요가 의뢰해 설계한 것으로 1905년부터 약 3년간 지어졌다. 카사 바트요의 외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해골 모양의 테라스와 뼈를 형상화한 기둥이다. 그래서 ‘인체의 집’이라는 의미로 카사 델스 오소스(Casa dels ossos)라고도 한다. 가우디의 특징인 곡선 구조는 실내에서도 확실히 드러나며, 반투명한 유리를 통해서 푸른빛이 비쳐 마치 물속처럼 보이는 효과를 표현한 엘리베이터도 카사 바트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이다. 현재는 글로벌 캔디 브랜드 츄파춥스 회사의 소유이며, 가우디 탄생 150년 기념으로 2002년부터 바르셀로나 시와 함께 일반인에게 오픈하기 시작했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카사 바트요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로,  바다를 연상시키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외관은 단연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바르셀로나 여행 2일 차 : 기우디 투어

오늘은 가우디 투어를 할 계획이다. 투어는 카사 바트요 맞은편에서 만나 설명을 듣고, 카사 밀라, 구엘 공원, 점심 바르셀로네타, 산 파우 병 원,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를 둘러보는 코스이다.

첫 번째 장소인 카사 바트요에는 08시 50분 만나 설명을 듣고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가우디 사랑한 것 3가지는 독립성 강한 민족인 카탈로냐, 그리고 신과 자연이었다. 이것이 카사 바트요에 녹아 있다. 바다를 표현한 아름다운 저택 카사 바트요에는 카탈루냐의 수호성인 산조르디의 일화가 들어있다. 그리고 지붕이 용으로 되어 있고 용이 잡아먹은 처녀들을 깔아 앉고 있다, 자연인 바다가 표현되어 있고, 그리고 십자가가 있어 가우디가 사랑한 3가지 요소가 모두 녹아있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외관,  십자가, 그리고 까탈로냐의 수호성인 산조르디의 일화가 들어 있는

가우디가 가장 사랑한 것 세 가지가 모드 들어 있는 건물이다..

바다를 형상화한 건물이라서 그런지 외벽을 덮은 초록색 세라믹 조각은 용의 껍질을 표현하였고, 기둥과 발코니는 동물인지 사람인지 모르는 뼈를 표현하였다. 바다'를 표현한 카사 바트요는 당시 직물업자인 바트요의 주문에 의해 건축되었으나 현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막대사탕인 츄파춥스 가문이 새 주인이라고 한다.

카사 바트요 근처에 있는 이 건물도 상당히 유명하다고 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카사 바트요를 둘러본 후 5분 거리에 있는 카사 밀라로 이동을 하였다. 카사 밀라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팬이었던 페드로 밀라 이캄프스가 카사 바트요를 보고 의뢰한 연립 주택으로, ‘카사 밀라(밀라의 집)’라는 이름보다 ‘라 페드 레라(채석장)’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거대한 돌덩이처럼 생긴 건물의 외관에서 가우디가 추구하는 곡선과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이 한눈에 느껴진다. 

 

 ‘라 페드 레라(채석장)’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카사 밀라(밀라의 집)..

바다의 물결을 연상하게 하는 곡선의 외관과 미역 줄기를 닮은 철제 발코니는 주변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르셀로나 시민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다. 옥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로마 병사와 타일로 만든 십자가 등 독특한 디자인의 굴뚝이 인상적이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의 풍경도 특별함이 느껴진다.

 

거대한 돌덩이처럼 생긴 건물의 외관에서 가우디가 추구하는 곡선과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이 한눈에 느껴지는 건물로 옥상에 투구를 쓰고 있는 로마 병사가 보입니다..

까사 밀러는 몬세라트(톱날산) 산을 모티브로 했기에 색이 없다. 테라스는 해조류를 의미한다. 즉 산과 바다를 전부 표현했으며, 사람얼굴 같은 환풍구는 스타워즈 감독이 이것을 모티브 했다. 정문이 큰 이유는 당시 밀러 가문이 바르셀로나에서 유일하게 차량을 소유하고 있어 차고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백 년 전에 이미 가우디는 현재를 예측하여 이를 고려하여 설계를 했다고 하니 가우디의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다. 아래층에는 가우디의 작품들과 가우디에 관한 영상들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으며, 그 아래층에는 당시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건축물이다.

 

몬세라트(톱날산) 산을 모티브로 했기에 색이 없고 테라스는 해조류를 의미한다. 까사 밀러는 산과 바다를 전부 표현했다..

해조류를 연상케 하는 테라스와 곡선의 미가 돋보이는 건물입니다..

 차고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설계했기에 문이 아주 크고, 백 년 후를 예측하여 설계를 한 가우디의 선견지명이 돋보인다..

카사 밀라는 곡선으로 되어 있고 돌로 만들었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하였다. 가우디는 신의 피조물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도 가우디가 사랑한 신이 들어 있다. 카사 밀라는 실제 크기의 1/10 크기의 모형 4700개를 만들어 끼어 맞추어 본 후 4700개의 돌조각을 만들어 끼워 맞춘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 창문 크기가 같은 것이 없다.

 

4700개의 돌조각을 만들어 끼워 맞춘 집으로  창문 크기가 같은 것이 없다.

여기가 인물사진 포인트입니다..

 카사 밀라는 여러 가지 악재로 결국 파산하게 된다. 첫 번째 악재는 당초 집수리 계획을 2년 잡았는데 6년이 걸려 비용이 엄청 추가되었다. 두 번째는 바르셀로나 건물은 규격화되어 있었으나 가우디는 빛이 많이 들어오게 했고 중정을 크게 뚫었는데 그게 3개나 되었다. 이를 위해 건물 크기를 키웠고 이는 시 당국과의 마찰 요인이 되어 당시 천문학적인 벌금이 부과되었다. 세 번째는 분양을 위해 홍보를 했는데 우주선, 쥐 등이 사는 집이란 혹평을 들었고 채석장 같은 집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내부도 곡선으로 되어 있어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가구도 곡선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여 분양이 잘 되지 않았다.. 곡선에 대한 가우디의 집념이 분양을 못하게 막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장미 굴뚝 때문에 가우디와 7년에 걸친 소송 끝에 패소하여 막대한 소송비용이 들었다.

건물 옥상은 장미 굴뚝으로 하늘에서 보면 장미 모습을 보인다고 하며, 장미는 성모마리아의 이콘으로 여기에도 가우디가 사랑한 신이 들어 있다. 이콘은 아이콘으로 카탈루냐의 성인인 '산 조르디'의 이콘은 창, 용, 백마 등이라고 한다. 밀러와 가우디는 장미굴뚝으로 7년간 소송을 하게 된다. 밀러는 장미 굴뚝을 반대했다. 건물 정면 위에 장미 문양이 있다. 당시 스페인은 모로코와의 전쟁 중으로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지도층에 대한 반발로 시위하고 부잣집을 태워버렸기에 밀러는 이를 고려하여 특이한 형사의 장미 굴뚝을 반대했으나 결국 소송 끝에 패소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가우디는 부자에 대한 실망으로 더 이상 부자집을 짓지 않겠다고 하였다. 밀러의 건물 지붕에는 터널 같은 것이 있고 거기에는 파밀리아가 보인다.

다음은 구엘공원과 가우디가 사망 한 산 파우 병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