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본 북알프스
해외여행/스페인

그라나다 여행 2일차(22.11.13/일) 알람브라 궁전(3-1) 헤네랄리페 별궁

by 산사랑 1 2023. 8. 19.
반응형

길게 조성된 정 중앙에 수로를 설치하고 좌우로 분수를 만들어 물소리도 아름다운 헤네랄피네 정원..

그라나다 여행 2일 차(2022.11.13/일)

오늘은 알람브라 궁전과 사끄라몬떼 집시동굴마을 &알바이신 야간 워킹투어(나스라 궁전 12시 30분)를 할 계획이다. 아침 08시 30분 숙소를 나와 알람브라 궁전에는 09시 5분에 도착하여 그라나다 나스르 왕조의 알람브라 마지막 궁전, 헤네랄피네 별궁으로 이동하였다.

 

숙소에서 이동 중에 본 알람브라 궁전은 언덕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

알람브라 궁전이 보입니다..

나뭇잎이 물들어 가고 있네요..

성벽이 상당히 높습니다..

가을이 완연합니다..

많은 건축가들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예술 건축물로 동양의 타지마할과 서양의 알람브라 궁전을 꼽는다. 둘 다 이슬람 건축물이다. 과연 알함브라의 매력과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가톨릭교가 이 땅을 휩쓴 지 이미 오래지만 알함브라 궁전은 여느 아랍 궁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랍어로 ‘붉은빛’이라는 뜻의 알함브라는, 겉으로 보면 붉은빛이 도는 견고한 돌조각을 쌓아 만든 밋밋하고 조악한 궁전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축 양식이나 화려한 장식도 없다. 큰 기대를 하고 온 관광객이라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실망은 순식간에 환희로 바뀐다.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투박한 껍질 속에 숨은 화려한 알맹이’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출처 : 세상을 바꾼 이슬람)

 

알람브라 궁전은 크게 세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나스르 궁전이 제일 유명하다. 세 구역은 알람브라의 대표적인 궁전인 나스르 궁전, 여름 궁전인 헤네랄리페 별궁, 성채인 알카사르다. 그중에서 나스르 궁전만 시간을 정해 입장을 하게 하는데 우리 표는 12시 30분 이어서 어제 론다 투어시 가이드인 박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우선 헤네랄피네 별궁으로 갔다.

 

헤네랄피네 별궁 가는 길의 멋진 멋진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프러스 나무의 키가 성벽보다 더 높습니다..

이른 아침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보입니다..

헤네랄피네 별궁으로 가는 길..

헤네랄피네 별궁 근처에는 키 큰 사이프러스 나무와 편백나무를 깎아 장식한 꽤 크고 작은 정원들이 연결되어 있다. 싸이프러스는 인상주의 화가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가 즐겨 그렸던 나무라고 하며, 이곳 사람들은 싸이프러스 나무가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합니다. 정원에는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연못은 작은 물길로 연결되어 있다. 정원을 지나 헤네랄피네 별궁으로 들어간다. 별궁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확인한다. 1492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 의해 함락된 헤네랄피네 별궁은 버려졌다가 비교적 최근인 1931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해서 1951년에 마무리했다.

 

작은 물길로 연결된 직사각형 연못으로 돈 정원..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비극적 이야기가 있던 때의 주인공인 당시의 술탄 아부 알 하산 알리와 그의 아들 보압딜(무함마드 12세)의 권력투쟁이 나스르 왕조가 몰락한 원인이 되었다. 아벤세라헤스의 비극 이후 보압딜은 아버지 하산을 몰아내고 스스로 술탄에 올랐다. 하산은 동생이 지배하고 있던 말라가로 피신했고 말라가와 그라나다의 내전에서 가톨릭 세력의 도움을 받아 아들 보압딜을 내쫓고 다시 술탄에 오른다. 이 와중에 가톨릭 세력은 알하마, 세테닐을 함락시키며 나스르 왕국을 압박했고, 가톨릭 세력은 보압딜을 석방하여 나스르 왕국의 내분을 야기했다. 론다 함락 이후 하산은 다시 폐위되었고 그의 동생 엘 사갈이 무함마드 13세로 술탄에 올랐으며, 1487년 말라가를 뺏긴 후 다시 조카인 보압딜에게 술탄의 자리를 뺏긴다. 보압딜은 무함마드 12세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술탄이 된다.

 

헤네랄피네 별궁은 무함마드 13세인 엘 사갈이 완공했는데 망해가는 왕국임에도 별궁의 완공을 두고 “사랑하는 백성들이여! 너희가 살아서 지상의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현실 인식이 없던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술탄들인 아버지, 동생, 조카가 권력투쟁을 하는 사이에 가톨릭 세력들은 그라나다의 주변 무어인의 거점들을 차례로 함락시켰다. 결국 1492년 무함마드 12세인 보압딜은 무조건 항복을 하고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으면서 지금 ‘통한의 언덕’으로 불리는 곳에서 “스페인을 잃은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람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원통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는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에 대해 표현한 것이겠지만 한 왕조를 몰락시킨 왕이 할 말은 아닐 것이다.

 

길게 조성된 정 중앙에 수로를 설치하고 좌우로 분수를 만들어 물소리도 아름다운 헤네랄피네 정원..

이에 그의 어머니가 "왕조를 잃어버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군주로서 할 일인가"라고 질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압딜의 부인인 26세의 왕비는 죽어가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가족들 모두 함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때는 자신의 병약했던 막내와 불모로 잡혀있던 다른 왕자들이 풀려나 모두 함께 통한의 언덕을 넘어갈 때였다. 몰락해 가는 왕조의 운명보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이 더 행복했다는 것이 마음에 와닿는다.

옛날 어느 시인이 보지 못하는 맹인을 두고 한 말이 있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맹인이다.” 이 말은 아름다운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한 말일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었던 무함마드 12세와 맹인에 대해 이야기한 어느 시인의 말에도 그렇듯 알람브라 궁전은 정말 아름답다. 만약 그라나라를 정복한 가톨릭 세력이 무조건 항복을 한 무함마드 12세의 부탁대로 궁전을 완벽하게 보존했다면 어때을까 생각해 본다.

헤네랄피네(generalife)라는 이름은 얀나트 알 아리프(Yannat al-Arif, 우아한 천국의 정원)에서 유래한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처음 보이는 것이 아세키아 중정(Patio de Acequia)인데 ‘우아한 천국의 정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중정은 긴 직사각형 모양인데 가운데에는 이슬람 정원의 양식이 다 그렇듯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아치 형태로 물줄기를 뿜는 분수가 있는데 이것은 현대적인 기술로 설치한 것이 아니고 수압과 수량으로 나오는 분수다. 알람브라 궁전의 물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끌어 왔다고 하는데 물이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끌어올릴 때는 당나귀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 정복 후 헤네랄피네 별궁을 예배당으로 이용했다. 그 이후에 오랜 시간 동안 버려졌기 때문에 중정의 곳곳은 폐허의 모습을 조금 가지고 있다.

꽃이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매력을 풍깁니다..

아세키아 중정은 나스르 궁전의 아라야네스 중정과 비슷하다. 이슬람 문화의 정원은 비슷한 형태를 가진 것 같다. 아세키아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에는 나스르의 아라야네스와 달리 방이 없다. 더운 안달루시아의 여름에 별장처럼 사용하기 위해 지은 궁전이라 방을 만들지 않은 것 같다. 1층 회랑 바깥쪽으로는 나스르 궁전이 보이고 2층 공간도 막힌 방이 없이 사방이 뚫려 있어 내부는 나스르 궁전의 방들과 달리 훤하다.

 

아세키아 중정으로 들어갑니다..

아세키아 중정으로 들어가는 입구

아세키아 중정 정원의 분수는 바로 스페인 낭만주의 음악의 꽃으로도 불리우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에 영감을 준 정원이라고 한다. 1896년 기타 연주가이자 작곡자인 타레가는 그의 제자이자 유부녀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여행하다가 이 궁전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이 곡을 쓰게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아세키아 중정..

타레가는 기타의 현대적인 주법을 완성한 기타리스트로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비르투오소적인 테크닉 때문에 ‘기타의 사라사테’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였다. 그가 아니었으면 기타라는 악기는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하여 지금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1880년대부터 약 20여 년간, 서유럽의 예술음악들, 즉 바흐나 베토벤, 쇼팽 등이 작곡한 음악들을 기타로 편곡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대적인 주법들이 사용되었고, 새로운 음향 역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기타라는 악기의 레퍼토리는 매우 확장되었다. 게다가 그는 단순히 기타라는 악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고국인 스페인의 민속음악적 요소들을 기타 작품으로 만드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빛나는 산물이 바로 이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트레몰로 주법이 만들어내는 애잔한 분위기는 알람브라 궁전의 서글픈 역사를 잘 표현했다. (출처 : 클래식 백과)

 

아세키아 중정에서 나스르 궁전이 보인다.

아세키아 중정 2층으로 갑니다..

이층에서 본모습..

헤네랄피네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아세키아 중정을 지나 왕후의 정원으로 간다. 왕후의 정원(Patio de la Sultana)은 아세키아 중정과 달리 거의 정사각형의 모습이다. 양 옆으로 긴 연못에 가운데 분수가 있는 형태이며 한쪽으로 2층 회랑에 오르면 멋진 풍경이 보인다. 왕후의 정원의 벽면에는 죽은 나무가 ​ 하나 있는데 한 가지 전설이 있다. 술탄의 후궁이 병사와 사랑에 빠지자 술탄은 후궁과 병사를 처형하고 나아가 이들의 사랑을 하며 키스를 나눌 때 그늘로 가려준 사이프러스 나무까지 뿌리를 잘라 죽였다고 한다. 1492년 그라나다 함락 직전일 텐데 약 500년 전에 죽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다.

 

죽은 사이프러스 나무..

왕후의 정원..

나스다궁전이 보입니다..

화단의 화려한 꽃..

다음은 헤네랄피네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