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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지역

북촌 탐방과 북악산(23.12.7) 트레킹

by 산사랑 1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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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전망대에서 본 팔각정과 보현봉..

 

【북악산(23.12. 7/목요일)】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한다.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또한 북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이 청계천의 최장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장벽의 구실을 한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395년(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림과 시문으로 남겼다.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북악산 일대를 사적 및 명승지 제10호로 지정하였다가 2009년 명승 제67호로 지정하였다. 명승지정 명칭은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정하였다. 즉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북악산이란 이름 대신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으로 회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 :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는 서울 4 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 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三淸公園)이 있고, 동쪽에는 숙정문(肅靖門)이 있다.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 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이다. 이 문은 1396년(태조 5) 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다.

 

1968년 1·21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 개방 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 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2020년 11월 1일부터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 구간이 개방되었다. 북측면 개방으로 서대문구 안산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중단 없이 산행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다음 백과)

 

헌법재판소의 천년기념물 백송을 보러 들어갑니다..

수령 600년이 된 천년기념물 제8호 백송입니다..

【헌법재판소 천년기념물 백송】

소나무 종류 가운데 줄기 껍질에 흰 빛의 신비로운 얼룩무늬를 지닌 나무가 있다. 중국이 원산지인 백송이다. 백송은 옮겨심기가 잘 안 되는 까탈스러운 나무여서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나무에 속한다. 백송은 그래서 원산지인 중국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외교관이나 중국인과의 친밀한 교유관계를 가진 권세가들의 집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권세가들이 모여 살던 수도권에 오래된 백송이 집중돼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백송은 헌법재판소 경내에 서 있는 ‘서울 재동 백송’이다. 나무나이 600년, 높이 15m의 큰 나무다. 둘로 나뉜 굵은 줄기가 넓게 벌어져 큰비와 바람에 찢겨나갈 수도 있는 불안한 모습이지만, 백송 특유의 하얀 줄기 껍질만큼은 더없이 인상적이다.(출처 : 경향신문에서 발췌)

북악산으로 가는 길에 북촌을 잠시 둘러봅니다..

한복 차림의 외국인들도 보이고..

삼청동수제비 가게에서 빈대떡(11,000원)과 수제비(9,000원)로 식사를 합니다..

식사를 하고 북악산으로 올라갔으며, 코스는 삼청공원 후문 ~ 법흥사지 터 ~ 촛데바위쉼터 ~ 숙정문 ~ 말바위전망대 ~ 삼청공원으로 추진하였다..

계곡에 물이 조금 흐르고..

삼청쉼터로 진행합니다..

삼청쉼터입니다..

사방댐이 설치되어 있고..

두꺼비 형상의 바위도 있고..

법흥사터입니다..

소나무 사이로 서울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촛대바위 입니다..

촛대바위는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데크 길이 잘 만들어졌네요..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입니다..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문으로 1395년(태조 4)에 건립되었으며 당시에는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하였다. 이문은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그 결과 현재 이곳 소나무 숲길이 아주 운치 있게 되어 이곳의 풍경이 북악산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숙정문에서 본모습으로 삼청각이 보이네요..

숙정문에서 본 모습으로 삼청각이 보이고..

멋진 소나무가 있고..

말바위 전망대로 가는 멋진 성곽길..

삼청각입니다..

팔각정과 보현봉도 보이고..

말바위 안내소는 현재 공사 중이더군요..

멋진 소나무..

말바위 전망대에서 본모습으로 팔각정, 보현봉, 삼청각 등이 보입니다..

말바위 부근의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말바위 입니다..

말바위는 조선시대 말을 타고 온 문무백관이 녹음을 만끽하며 시를 읊고 쉬던 자리였다고 전해진다. 또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바위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