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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탈리아

이탈리아 20일차(25. 7.1) 로마 3일차(2) 콜로세움

by 산사랑 1 2025.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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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외부..

【콜로세움 Colosseum 콜로세오】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 로마를 상징하는 원형 경기장

 

콜로세오는 72년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원형 경기장으로, 80년 베르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총 5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기장이 그 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80여 개의 아치문을 통해 관중들이 입장하는 데 30분, 퇴장하는 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개폐형 지붕과 같은 놀라운 시설을 갖춘 콜로세오는 2007년 새롭게 선정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1층부터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는 이 경기장에서는 맹수의 시합이나 검투사 경기가 개최되었고,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로마 시민들이 함께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신분에 따라 자리가 달랐으며, 1층은 귀빈석, 2층은 일반석, 3층은 입석으로 이루어졌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검투사들의 경기가 계속되다가, 450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경기를 중지시키면서 끝이 난다. 이후 콜로세오는 지진의 피해를 입기도 하고 중세 교회를 짓는 재료로 쓰이기 위해 외벽 절반 이상이 뜯기게 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는 못해 아쉽지만 2,000년 전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의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출처 : ENJOY 유럽)

 

* 콜로세오, 포로로마노, 필라티노 입장 TIP!

콜로세오는 인기 관광지인 만큼 티켓을 구입하거나 입장하려면 줄을 오래 서야 한다. 세 곳은 통합 입장권으로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려면 포로 로마노나 팔라티노에서 티켓을 구입한 후 콜로세오에 입장하는 것이 좋다. 특히,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는 연결되어 있어 한 번에 두 곳을 모두 둘러봐야 하며, 한 곳만 보고 나가면 재입장이 불가능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팔라티노나 포로 로마노로 입장해서 두 곳을 모두 둘러본 후 콜로세오를 둘러보는 것이다. 로마 패스를 이용하면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콜로세움 내부..

로마 여행 3일차 오전에 포플로 광장, 스페인 광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잠들어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둘러보고 숙소에서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오후 4시에 로마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인 콜로세움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콜로세움 내부로 들어가니 십자가를 볼 수 있었다. 

 

콜로세움 내부에 있는 십자가 덕분에 현재까지 콜로세움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약 50년 후인 523년에 마지막 행사가 이루어졌고, 이후 방치되었다. 르네상스의 바람과 함께 로마에 건축 붐이 크게 일면서 콜로세움의 돌은 건축자재로 뜯겨나갔다. 만신창이가 된 콜로세움은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가, 1750년에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콜로세움을 기독교 순교지로 정하고, 그 안에 커다란 십자가를 세우면서, 역설적으로 현재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통로를 따라 많은 관광객들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긴 쪽으로 절반 정도는 4층 외벽이 멀쩡하게 남아있고, 반대쪽은 외벽 두 겹이 무너져 있다. 한 부분은 외벽이 모두 무너져 내부까지 뚫린 것을 현대에 복원해 놓았다.

콜로세움 내부 복도를 따라 당시 유물들을 전시해 두었습니다..

콜로세움 모형들도 전시되어 있고..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가 건축한 가장 큰 원형극장(경기장)이다. 경기장은 '모래'라는 뜻의 아레나(Arena)라고 불렀는데, 나무판을 깐 위에 모래를 덮은 경기장의 바닥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파노라마로 본 모습..

초기에는 '나우마키아'라 불리던 모의 해전까지 즐길 정도로 배수 시설을 완벽하게 갖춰 놓았다. 그 후 나우마키아는 물을 넣고 빼는 번거로움 때문에 폐지되었고, 그 대신 경기장 아래에 미로와 같은 지하 시설을 만들어 검투사 대기실, 맹수 우리, 무대 장치 보관실등으로 사용했다.

네로 황제는 로마 대화재 이후 화려한 황금 궁전을 세워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정치적 혼란기 이후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이러한 시민들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황금 궁전 자리에 대중을 위한 시설인 콜로세움을 건설하였다. 네로 황제(재위 54~68)가 만든 황금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의 인공호수가 있던 자리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72년에 착공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80년에 완성하였다.

콜로세움의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가문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세웠다고 하여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움(Amphitheatrum Flavium)'이었다. 콜로세움이라는 명칭은 이 플라비우스 원형극장 근처에 세워진 35미터의 네로 황제의 거대한 황금동상 콜로수스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 콜로서스 동상은 건설 당시부터 평판이 아주 나빴기 때문에 네로 황제가 실각한 이후 머리 부분이 태양신으로 바꾸어 그대로 두었는데, 여기서 유래하여 중세부터 콜로세움(Colosseum)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 구리로 재활용하기 위해서 완전히 철거되었지만 콜로세움이라는 명칭은 계속 남아서 원형극장 쪽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로마 제국 당시의 라틴어 이름은 '콜로세움'이나, 오늘날 이탈리아어로는 '콜로세오'라고 한다. 앞에 있는 로마 지하철역 이름도 콜로세오 역이다. (출처 : 나무위키)

콜로세움은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 527m, 높이는 48m로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많은 관중들이 출입할 때 15분이 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바닥충에 있는 80개의 아치에 각각 번호가 붙어 있어 입장권에 표기된 아치를 통해 질서 있게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땡볕이 심한 낮에 경기가 벌어질 때는 콜로세움의 천장에 미세노에서 파견 나온 해군 수병들이 범포를 덮어서 그늘을 제공했다고 하는데, 내벽 가장 위층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것들을 일종의 와이어(밧줄)로 연결해 접어놓은 천으로 덮었다.

콜로세움은 입장료가 없는 건 물론이고 관객들을 위한 점심 도시락과 포도주까지 공짜였다. 검투사들이 서로 죽이는 대결을 하기도 하고 바바리사자, 카스피호랑이, 아틀라스불곰, 유라시아불곰, 코끼리, 하마, 코뿔소 등 같은 맹수들을 싸움에 붙이거나 심지어는 검투사들이나 사형수들이 맹수들과 대결을 벌이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 대 황소의 투우 경기 또는 경기장에 물을 채워서 가상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항상 치고 박는 싸움만 한 건 아니었고, 동물들이 재주를 부리거나 하는 등 현대의 서커스와 같은 공연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코끼리, 호랑이, 악어, 하마, 기린, 코뿔소 등등 로마 시민들이 평소엔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이 콜로세움 안을 한 바퀴 돌아 행진하는 사파리 같은 공연도 있었다.(출처 : 나무위키)

 

새 한 마리가 반겨주고 있습니다..

네로의 기독교 탄압 당시에도 기독교인들을 콜로세움 한가운데에 묶어놓고(세워놓고) 사자를 풀어놓아 뜯어 먹히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네로 시절에는 콜로세움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 네로가 죽은 뒤 내전을 거쳐 황제에 오른 베스파시아누스가 시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네로가 세운 개인 궁전터에 짓기 시작한 것이 콜로세움이고, 티투스 황제를 거쳐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에 개장했다. 그러나 로마가 원형경기장에서 기독교인을 박해한 것은 엄연히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콜로세움은 도미티아누스 시기에 정식으로 개장했는데, 도미티아누스는 네로 이상으로 철저하고 조직적으로 기독교를 탄압한 황제였다. 

 

한편 중세 시대에 콜로세움의 공간을 이용해서 민가로 불하하기도 했고, 이탈리아의 프란지파니 가문은 콜로세움을 사들여서 요새화해 성채로 삼기도 했다. 바위를 빼다가 건축자재로 써버리는 일도 잦았다. 순교자가 생긴 장소에 대해 보여 주는 기독교적 숭배와는 영 딴판인 취급이었던 것이다. (출처 : 나무위키)

통로에서 본 외부 모습..

이러한 시설이 서기 80년에 완공되었다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완공됐을 당시의 원형 경기장의 크기는 일부만 남아있는 현재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외벽의 높이는 52m에 달했으며 상술한 네로의 개인 궁전에서 뜯어낸 각종 조각상들을 외벽의 아치 내부에 배치했다. 외벽 처마와 기둥도 1, 2, 3층이 각각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다른 외양을 취하고 있다. 베수비오 화산에서 나오는 화산재를 이용한 콘크리트 같은 특수 건축재와 무게를 분산시키는 아치형 구조를 채택해 비교적 적은 자재로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찬란한 위상을 자랑했던 콜로세움이었지만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그대로 방치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석재 장식 등은 계속 파괴되거나 도난되었고, 지금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구조체조차 상당수가 사라져 그냥 놔두면 연쇄적으로 무너질 우려가 있어 콘크리트로 버팀벽을 세워 놓았다. 참고로 콜로세움과 그 근처의 도로 정비를 시작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무솔리니였다. (출처 : 나무위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에도 관광객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제 거의 한 바퀴 다 돌았는 것 같습니다..

콜로세움 내부를 본 후 밖으로 나오니 더운 날씨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그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콜로세움을 본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대형마트를 발견하여 삼겹살을 구할 수 있어 저녁은 삼겹살에 와인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일은 바티칸 대성당 투어를 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