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의 방들】라파엘로의 벽화가 가득한 곳
율리우스 2세(1503~1513)는 교황이 되자 보르지아에 있는 교황의 거처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 가 보니 온통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알렉산더 6세의 공적을 미화한 벽화로 가득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율리우스 2세는 이 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자 1400년대 중엽 이 건물 2층에 증축된 4개의 방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2층으로 옮기니 이미 벽의 군데군데에는 페루지노(라파엘로의 스승), 피엘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이 벽화를 그려 놓았다. 이에 율리우스 2세는 자기가 살 방에 맞는 그림을 그려 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예술 고문으로 바티칸에 있던 브라만테가 그전부터 알던 라파엘로(1483~1520)를 추천한다. 이때 라파엘로의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다. 이에 율리우스는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서명의 방’에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한다.
이 약관의 젊은이는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에 흡족해하던 율리우스 2세는 그곳에 있는 벽화를 다 지우고 새로 그림을 그릴 것을 명했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1508~1512년까지는 서명의 방을, 1512~1514년에는 엘리오도르의 방을, 1514~1517년까지는 보르고 화재의 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1517~1524년까지 콘스탄티누스의 방에 그림을 그렸다. 라파엘로가 1520년에 사망하자 나머지는 그의 제자들이 완성했다. 제자 중에 뛰어난 인물로는 줄리오 로마노와 프란체스코 펜니가 있다.(출처 : Enjoy 이탈리아)
라파엘로의 방들 중 '서명의 방'에 있는 '아테네 학당'..

【콘스탄티누스의 방】
콘스탄티누스의 방은 교황이 외부 인사들을 초청하여 공식적인 파티를 여는 공간이었다. 라파엘로는 서명의 방 등 나머지 방의 장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마지막으로 이 방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이곳을 기독교를 공인한 고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업적을 소개하는 그림으로 가득 채울 예정이었지만 밑그림 작업 중 급사하고 만다. 이에 레오 10세는 라파엘로의 제자들, 특히 줄리오 로마노와 조반니 프란체스코가 스승의 뜻을 이어 벽화를 완성하도록 했다. 벽화 제작은 레오 10세의 뒤를 이은 하드리아노 6세(Hadrianus VI, 1522~1523 재위) 시절에 벽화 제작이 전면 중단되었다가 클레멘스 7세 시절 다시 재개되었다. 클레멘스 7세는 레오 10세와 마찬가지로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후손으로 둘은 사촌이다.
내부에는 〈십자가 현현〉,〈밀리우스 다리의 전투〉,〈콘스탄티누스의 세례〉그리고〈콘스탄티누스의 기증〉등의 대형 벽화가 마치 태피스트리나 커튼처럼 그려져 있다. 천장에는 〈기독교의 승리〉가 그려져 있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우상을 파괴한 자리에 십자가를 세운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천장화는 그레고리오 13세 시절, 토마소 라우레티(Tommaso Laureti, 1530?~1602)가 시작해 식스토 5세(Sixtus V, 1585~1590 재위) 시절인 1585년에 완성되었다.(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방들 중 콘스탄티누스의 방의 천장화인 '기독교의 승리'..
콘스탄티누스의 방 / 라파엘로 산치오의 '밀리우스 다리의 전투'/ 1520~1524년 제작..
〈밀리우스 다리의 전투〉
312년, 드디어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들의 싸움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부터 실시되어온 사분할 지배 체제로 인해 비롯되었다. 두 명의 황제와 두 명의 부제 사이의 알력으로 분열이 일어났는데, 비교적 기독교에 관대했던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와 대결하게 된다. 당연히 전투는 십자가 계시를 받은 콘스탄티누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막센티우스는 오른쪽 테베레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정중앙에 황금 갑옷을 입은 콘스탄티누스는 백마에 앉아 패자를 바라본다. 그의 뒤로 십자가가 보인다. 하늘 위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면상 천사들 오른쪽 구름은 어쩐지 사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교황 레오 10세의 이름 ‘레오’가 ‘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산치오와 줄리오 로마노 '십자가 현현'..
【라파엘로 산치오와 줄리오 로마노 '십자가 현현'】
콘스탄티누스는 라이벌인 막센티우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entius, 306~312 재위)와의 마지막 접전이 있기 전 십자가를 목격하게 되고, “이것으로 너는 승리하리라”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십자가 현현〉은 바로 그 장면을 담은 것으로, 라파엘로의 밑그림에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1499~1546)가 완성했다. 그림 양쪽에는 교황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특히 오른쪽 교황은 발치 아래 새겨진 글자에 적힌 대로 기독교 초기 시절의 클레멘스 1세(Clemens I, 88~97 재위)이다. 클레멘스 1세는 레오 10세의 얼굴을 모델로 그렸다. 그림 왼쪽 둥근 천막에서 나온 콘스탄티누스가 손을 높이 쳐들며 몰려드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구름 가득한 하늘에 세 천사가 들고 온 붉은 십자가를 쳐다보고 있다. 그림 중앙 원경에는 산탄젤로 성의 모습이 보인다. 산탄젤로는 원래 130년경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로 지어졌는데, 13세기에는 교황 니콜라오 3세(Nicolaus III, 1277~1280 재위)에 의해 바티칸과 연결하는 통로를 건축해 이후 교황들이 환란을 겪을 때마다 비상용 탈출구 구실을 하게 된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산치오와 조반니 프란체스코 펜니 '콘스탄티누스의 세례'
【콘스탄티누스의 세례】
콘스탄티누스의 세례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장면을 담고 있다. 세례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라테란 대성당의 세례당이다.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바로 이곳에서 황제로 추대되었다. 정중앙에 옷을 벗은 채 무릎을 꿇은 콘스탄티누스는 가슴에 두 손을 포개어 복종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교황 실베스테르 1세(Silvester I, 314~335 재위)는 교황에게만 허용된 삼중관을 쓴 채 야트막한 그릇에 담긴 물을 대제의 머리에 붓고 있다. 바로 뒤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긴 십자 막대를 들고 서 있는데, 황제가 십자가로 인해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상기시킨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산치오와 조반니 프란체스코 펜니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압도적인 원근감이 눈길을 끄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황금 조각상을 헌정하고 있다. 기증장의 내용으로, ‘교황이 기독교 세계 전체를 관장한다’는 것과 ‘대제가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의 서쪽 지역을 실베스테르 1세에게 바친다’는 사실을 밝혀두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장(Donatio Constantin)’을 근거로 교황의 세속 통치권을 정당화하곤 했다. 르네상스 시절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 1407~1457)라는 인문학자는 이 기증장이 위조문서임을 밝혀냈지만 교회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은폐했고, 17세기에 와서야 위조임을 공식 인정한다. 그림 속 공간은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기 이전 성 베드로 성당 내부의 모습이다. 실베스테르 1세 교황은 이번에도 클레멘스 7세의 얼굴을 모델로 하고 있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
‘서명의 방’이라는 이름은 역대 교황들이 이 방에서 어떤 문서에 서명을 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방은 라파엘로가 제일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방이다. 이 방의 주제는 바로 신의 덕망(성사 토론), 이성(아테네 학당), 아름다움(파르나조)이다. 이 중에서 우리는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갖는다. 흡사 우리나라의 고려가요 중에 한림별곡과 같이 참으로 많은 학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아테네 학당〉은 바로 이성을 통한 진리 탐구라는 의미가 있고 유럽 역사에서 이름을 남긴 쟁쟁한 학자들을 이 그림에 다 모아 놓았다.(출처 : Enjoy 이탈리아)
서명의 방 천장화..
【라파엘로 산치오〈서명의 방 천장화〉】
〈서명의 방 천장화〉에서 둥근 원 속 여인들은 철학, 신학, 문학, 법학을 의인화한 것으로, 그림 내용을 상기시키는 글자판을 든 천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 신학의 경우는 “신성한 것에 대한 지식(DIVINAR PER NOTITIA)”, 철학은 “원인에 대한 지식(CAUSARUM COGNITIO)” 등의 글이 그것이다. 특히 철학의 여신은 손에 자연(NATURALIS)과 도덕(MORALIS)이라는 이름의 책을 들고 있다. 이들은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과 내용상 연결되는데, 고대 철학자들의 모습을 가득 담은 〈아테네 학당〉은 철학과, 〈성체 논쟁〉은 당연히 신학이, 시인들의 이상향을 그린 〈파르나소스〉는 시, 그리고 〈정의〉는 법학으로 연결된다.
네 개의 사각 그림은 각각 ‘천지 창조’,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아담과 이브’, ‘솔로몬의 재판’을 담고 있다. 악기의 신인 아폴론이 자신에게 감히 연주 실력을 뽐내는 마르시아스와 대결하여 승리한 뒤 그의 살가죽을 벗겨버리는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부분은 네 벽면 중 예술과 관련한 〈파르나소스〉, 그리고 천장 원형의 문학 그림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솔로몬의 재판’의 경우는 〈정의〉와 법학과 이어진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천지 창조’는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그 삶을 기록하는 철학, 신학의 원형 그림과 〈아테네 학당〉, 〈성체 논쟁〉과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담과 이브에서 라파엘로가 그린 이브의 모습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레다와 백조〉의 여성상과 흡사하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그림을 위해 그린 밑그림을 모사한 바가 있고, 이를 참조하여 이브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School of Athens..
【라파엘로 산치오〈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
‘아테네 학당’은 17세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조반니 피에트로 벨로리(Giovanni Pietro Bellori, 1615?~1696)가 그림이 고대 철학자들로 가득한 것을 두고 붙인 이름이다. 서명의 방에 있는 이 작품은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으로 예술, 수학, 철학, 신학 등 각 학문을 대표하는 54명의 인물을 담겨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데모크리토스, 라파엘로 등의 인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플라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데모크리토스는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플라톤(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상.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그가 이상주의자임을 나타낸다.) 2. 아리스토텔레스(손바닥을 땅으로 가르키고 있으며, 현실주의자임을 뜻한다.) 3. 소크라테스 4. 알렉산더 대왕 5. 아이스키네스 6. 알키피아데스 7. 제논 8. 에피쿠로스 9. 페데리코 곤자가 10. 아베로에즈 11. 피타고라스 12. 히파티야(여성 수학자) 13. 헤라 클레이토스(미켈라젤로의 얼굴이다.) 14. 디오게네스 15. 유클리드(브라만테의 초상이다.) 16. 조로아스터 17. 프롤레아이오스
18. 라파엘로의 자화상(살짝 곁눈질을 하고 있는 얼굴)
중앙에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며 나오는 사람이 플라톤인데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이다. 바로 옆은 아리스토텔레스인데 손바닥은 수평이다. 플라톤은 이상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론을 뜻한다. 계단 중앙에 널브러진 채 앉아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남자는 디오게네스로 세속적인 잣대를 벗어나 유유자적 자유롭게, 스스로 말하길 ‘개처럼’ 살았다 해서 그는 견유학파로 불린다. 여기서 중앙의 13번은 실제 밑그림에 없던 그림이었다. 엑스선의 촬영 결과 나중에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를 덧붙였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얼굴은 학자들의 주장대로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부분은 학술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다. (출처 : Enjoy 이탈리아)
검은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은 라파엘로의 자화상(살짝 곁눈질을 하고 있는 얼굴)이다..
히파티야(여성 수학자) 옆의 남자는 파르메니데스..
성사 토론 / 성체 논쟁은 라파엘로가 무려 40여 점 이상의 습작을 남길 만큼 공을 들인 작품이다..
【라파엘로 산치오〈성체 논쟁〉】
〈성체 논쟁〉은 신학과 관련한 주제의 그림이다. ‘성체 논쟁’은 미사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 기도에 의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는 ‘화체설’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이 그림은 전형적인 움브리아 화풍의 그림이면서 색채를 넣은 베네치아 화풍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그림을 상하로 나누었고, 구름을 가운데 두고 위에는 여러 성인들과 선지자들이 평온한 모습으로 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와 요한에게 둘러싸여 있고 발아래에는 성령을 뜻하는 비둘기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에 누가 있나 잘 보아야 한다. 바로 하느님이다. 실제로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하느님의 얼굴을 잘 살펴보자. 그리고 이 그림의 주요한 점은 원근법의 구도다. 소실점이 제단 위의 성체가 된다. 상단이 천상의 공간으로 천사를 비롯한 신구약의 성인들이 자리한다면, 하단에는 지상의 공간으로 교회의 승리를 상징하는 역사상의 인물들이 라파엘로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들과 뒤섞여 있다. (출처 : Enjoy 이탈리아 등에서 발췌)
【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 Incendio di Borgo)】
라파엘로의 방 시리즈 중 마지막이 ‘보르고 화재의 방’이다. ‘보르고 화재의 방’이라는 이름은, 교황청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847년에 바티칸의 보르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화재를 레오 4세 교황의 강복으로 가볍게 진압했다는 기적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보르고 화재〉는 그나마 라파엘로가 제자들의 도움 없이 완성한 것으로 이 방의 벽화들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출입문 가까이에는 〈카롤루스의 대관식〉 장면이, 마주하는 벽에는 이슬람과의 해상 전투 장면을 담은 〈오스티아 전투〉가 그리고 나머지 벽에는 〈보르고 화재〉와 〈레오 3세의 선서〉가 그려져 있다. 속된 말로 죽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던 라파엘로는 보르고 화재의 방 작업을 끝내자마자 콘스탄티누스의 방 장식에 착수했지만, 스케치와 구상만 해둔 상태에서 병으로 급사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화재의 방이야말로 라파엘로의 교황궁 장식 마지막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산치오와 제자들 '카롤루스의 대관식'..
【라파엘로 산치오와 제자들 〈카롤루스의 대관식〉】
교황은 카롤루스 대제를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칭하며 황제의 관을 수여한다. 라파엘로는 〈카롤루스의 대관식〉에서 재건축 이전의 성 베드로 성당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림 오른쪽 레오 10세의 얼굴을 한 레오 3세가 황제에게 관을 수여하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카롤루스 대제의 모습이 레오 10세 시절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를 닮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레오 10세가 1515년 당시의 외교적 상황에 의해 볼로냐에서 맺은 프랑스와의 협정을 상기시킨다. 이는 프랑스 국내의 고위 성직자를 선출할 때 후보자 지명 권한을 프랑스 왕에게 주도록 하는 다소 굴욕적인 협정이었다. 그럼에도 레오 10세와 라파엘로는 세속의 왕이 결국 교황에게 모든 것을 위임할 것을 그림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산치오와 제자들 '오스티아 전투'..
【라파엘로 산치오와 제자들 '오스티아 전투'】..
'오스티아의 전투'는 레오 4세 재위 시절인 849년, 사라센 해적이 교황령인 오스티아 해안을 거쳐 로마로 이어지는 티베르 강의 하구까지 진격해오자 이를 저지하면서 벌어진 전투 장면을 그린 것이다. 로마는 나폴리 왕국의 도움을 받아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원경에는 로마의 갤리선과 사라센 해적선 간의 전투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중간쯤에 있는 사라센의 배가 침몰하고 있다. 그림 왼편 교황 레오 4세는 뒤편에 늘어선 성직자들과 함께 이 승리를 신에게 감사드리고 있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사라센 인들의 뒤틀린 누드와 다양한 자세의 인체들은 라파엘로의 제자 줄리오 로마노의 솜씨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결국 호시탐탐 기독교 사회를 넘보던 투르크 인들에 대한 레오 10세의 징벌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산치오 '보르고 화재' / 벌거벗은 남자는 막 담을 넘어 화마로부터 벗어나고 있는데 근육이 터질 것 같다 ..
【라파엘로 산치오 '보르고 화재'】
레오 4세가 재위하던 시절인 847년, 성 베드로 성당과 산탄젤로 성 사이에 있는 보르고 지역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보르고 화재〉왼쪽의 벌거벗은 남자는 막 담을 넘어 화마로부터 벗어나고 있고 한 여인은 아이를 넘기고 있다. 화면 오른쪽 기둥들은 이미 균열이 생겨 곧 무너질 듯하고 사람들은 물 항아리를 들고 와 분주히 불을 끄고 있다. 그림 하단에는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들이 다양한 자세로 고통을 드러내 보인다. 멀리 배경 건물 아치 아래로 레오 4세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그는 손짓 하나로 이 화재를 진압하는 기적을 베푸는 것 같다. 왼쪽 하단에는 노인을 업고 나오는 어느 청년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는 불타는 트로이에서 아버지 안키세스를 구하는 아이네아스다. 라파엘로는 9세기에 일어난 이 사건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이야기와 겹쳐 놓았다. 등장인물들의 과장된 근육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라파엘로 산치오와 제자들 '레오 3세의 선서'..
【라파엘로 산치오와 제자들 '레오 3세의 선서'】
'레오 3세의 선서'는 '카롤루스의 대관식'과 함께 9세기 교황 레오 3세 재위 시절에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799년 레오 3세는 전임 교황인 히드리아노 1세의 조카가 교회 고위 성직자들과 공모한 반란으로 인해 간통죄의 누명을 쓰고 감금되었다. 위기의 순간, 레오 3세는 당시 서유럽 지역을 다스리던 카롤링거 왕조의 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 768~814, 샤를마뉴)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레오 3세는 카롤루스 대제의 프랑크 왕국 고위층들 앞에서 자신의 결백과 교황으로서의 정통성을 천명하게 된다. 화면 정중앙에 서 있는 교황 레오 3세의 얼굴은 당연히 레오 10세의 얼굴이다. 그는 두 손을 성서에 놓은 채 선언을 하고 있다. 시종이 그의 삼중관을 들고 있다. 라파엘로는 계단 위 상단에 성직자들을, 그리고 하단에는 세속의 기사들을 배치해 속에 대한 성의 우위를 천명한다. (출처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현대 종교미술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는 방도 있으며, 이 그림은 앙리 마티스, 성모자이다..
1964년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78)와 예술가들의 만남이 있었으며, 교황 바오로 6세는 1973년 바티칸 박물관 내에 현대 종교미술 컬렉션을 만들었다. 현대 종교미술 컬렉션은 현대회화, 그래픽 아트,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장품들은 라파엘로의 방과 시스티나 예배당 사이에 있는 보르지아 아파트의 55개의 방에 소장되어 있다. 소장 작품들은 전 세계 250여 작가의 800여 작품들로, 대부분 예술가나 수집가들에 의해 교황청에 기증되었다.
이 그림은 피카소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누구의 작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교황 율리오 2세(재위 1503~13)가 1506년에 벨베데레 정원에 당시 막 발굴된 '라오콘 상'을 전시하고 일반에 공개한 것이 바티칸 박물관의 시작이다. 바티칸 박물관의 일부로 공개되는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은 교황 식스토 4세(재위 1471~84) 시기인 1477~1481년에 지어진 것이다. '시스티나(Sistina)'는 '식스토(Sixtus)의' 란 뜻으로, 성당을 지은 식스토 4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길이 40.5미터, 너비 13.2미터, 높이는 30미터로, 예루살렘에 있던 솔로몬 성전과 같은 크기로 지어졌다. 이는 시스티나 성당이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이고, 로마가 예루살렘을 대신하는 기독교의 중심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이 직무상의 활동을 하는 장소로서 사용되어 왔고, 현재는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Papal Conclave)를 여는 장소로 사용된다.
사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로 미켈렌젤로의 '천지창조'인데 아쉽게도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천지 창조 -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가 4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전체에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기법을 이용해 그려진 프레스코화로, 천장 아래의 좁은 공간에서 떨어지는 안료를 맞으며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는 척추가 휘고 한쪽 시력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작품을 살펴보면, 천지가 창조되는 순간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의 창세기 아홉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그릴 때 노아의 이야기부터 거꾸로 그렸기 때문에, 처음에 그려진 노아보다, 점차 천지창조에 가까울수록 그림이 심플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창세기 9장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그림 중앙에 있는 아담과 신의 손끝이 맞닿아 있는 장면이다.
아담과 신의 손끝이 맞닿아 있는 장면으로 이전의 종교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다..
【미켈란젤로〈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1533년, 미켈란젤로는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 제단 벽화를 그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주제는 ‘최후의 심판’이었다. 이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로마 침략(1527)과 유린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후에 이루어질 두려운 심판의 날을 각인시켜 가톨릭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택한 주제였다.
총면적 167.14제곱킬로미터의 벽면은 391명이나 되는 역동적인 인물 군상으로 가득 차 있어 이전에 완성한 천장화와 더불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자세와 표정이 이 성당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는 물론 후대의 미술가들은 인체 묘사를 위해 굳이 실물 데생을 연구할 필요 없이 시스티나 성당으로 와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만 모사해도 될 정도였다.
막상 작품이 공개되자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이 놀라운 기교에 감탄하는 이들만큼 경악을 금치 못하는 측도 많았다. 신성해야 할 교회 제단화가 온통 벗은 몸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격이 팍팍하기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에게 평소 개인적 감정이 안 좋은 이들은 이런 비난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피에트로 아레티노(Pietro Aretino, 1492~1556)라고 하는 베네치아 출신의 화가이자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던 그는 평소에도 독설로 유명했는데, 미켈란젤로에게 그림 한 점 얻으려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적이 있어서인지 무서울 기세로 작품을 폄하했다. 그는 예수를 수염이 난 장년층으로 그리던 전통이 깡그리 무시된 것부터 시작해 심지어 예수의 중요 부위가 그대로 노출된 것에 격노했다. 결국 교황청에서는 외설 논란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마침내 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가능한 한 수치스러운 부분은 가리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안타깝게도 미켈란젤로가 얼마 못 가 사망한 탓에 덧칠은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졌다. 그의 친구이자 제자이기도 했던 다니엘레 다 볼테라(Daniele da Voltera, 1509~1566)는 1여 년간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수를 놓듯, 성스러운 인물들의 노출 부위를 가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덕분에 그는 ‘팬티 재단사’라는 뜻의 브라게토네(braghettone)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에도 검열은 수시로 진행되어 옷을 입히는 수정 작업은 18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제단화는 촛불 등에 그을리면서 생긴 때와 먼지, 누수 등으로 인해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최근에 안전하게 복구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화려해진 색상 탓에 과연 후손들의 이 의욕적인 복원 사업이 미켈란젤로의 참뜻을 거스른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최후의 심판 배치도..
〈최후의 심판〉 배치도
벽화는 최후의 심판과 관련된 여러 부분적인 이야기들을 하나의 화면에 모아놓았다. 화면 상단 루네트 부분에는 예수의 수난 장면에 사용된 이런저런 도구들을 들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로 아래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천국에 이른, 즉 축복받은 자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아래 중앙에는 나팔을 부는 천사들이 있고, 그 양쪽으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군상과 천국으로 올라가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화면 가장 아랫부분에는 부활하는 이들과 지옥으로 떨어진 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은 ' 바티칸 미술에서 꼭 봐야 할 그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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