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골】
몽골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564,500 평방미터로, 국경의 길이는 8158km인데 이중 3485km는 러시아와, 4673km는 중국과 맞닿아 있다. 13세기 초 칭기스칸이 등장해 역사상 최대의 몽골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동서 여러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골제국이 멸망하고 남은 내륙 중앙부가 1688년 청(淸)에 복속되어 ‘외몽골’로 불렸다. 1911년 제1차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으나 1920년 철폐되었고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영향을 받아 1921년 제 2차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였다.
국호인 몽골은 본래 “용감한” 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이였으나, 칭기스칸에 의해 통솔된 몽골부(部) 발전에 따라 민족의 이름 “Mongol” 및 지역의 이름 “Mongolia"로 변화하였다.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북방 민족으로부터 전쟁에 시달려 온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사용한데서 비롯되었다. 본래 1924년 11월 26일 사회주의 혁명으로 수립된 정부는 국호를 “몽골 인민공화국(Mongolian Poeple's Republic)"으로 정하였으나 1922년 1월 개방 정책의 상징으로 국호를 몽골 공화국으로 고쳤다.
보통 우리가 “몽골”하면 대개 외몽골(外夢古, 몽골 공화국)을 말하는 것이며, 내몽골(內蒙古)이라고 부르는 내몽골 자치주는 중국 국경 안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분단국가다. 그러나 분단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민족적 친근감이나 통일에의 의지는 거의 없는 편이어서 한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 수도 : 울란바타르
현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는 36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이다. 툴(Tuul)강 위에 위치해있고 장대한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소나무로 뒤덮인 산들, 넓은 가로수길, 광대한 공공 광장과 많은 공원들의 결합이 도시에 웅대함을 주는 반면 게르(ger)지역과 혼잡한 장터는 시골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가장 가볼만한 장소들은 Sukhbaatar 광장, Gandan 사원과 Zaisan Hill 전쟁 기념관이다. 주요한 박물관은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Fine Arts, Choijin 라마사원 그리고 복드항궁이며, 다른 문화유적지로는 국립 예술 갤러리, 오페라와 발레 극장, 드라마 극장 그리고 캐시미어 공장이 있다.
'붉은 영웅'이라는 뜻인 울란바타르는 오르콘강의 지류인 툴라강 우안, 해발고도 1,380m의 초원성 고원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4700㎢이다. 기온은 여름에 27℃, 겨울에 -46℃까지 떨어져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이룬다. 인구는 장,단기로 체류하는 외국인과 국내 여행객을 포함하여 약 100만 명(862,842명-2006년 기준)이 살고 있다. 몽골 전체 인구의 1/3에 달하는 인구이다. 우리 교민은 울란바타르시를 중심으로 기업인, 선교사, 교육 및 의료인, 대사관 및 여러 봉사단체의 봉사단원, 유학생 등
약 3,0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몽골제국
테무진(칭기즈칸)은 1162년 Esugui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많은 부족 중의 족장이었으며 테무진이 9살 때 Tartars에 의해 살해되었다.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1189년에 Great Mongol State (대 몽골 제국)를 세웠다. 1206년경에 그는 81개의 다른 몽골 부족을 합병하고 몽골 대 제국을 건설했으며 칭기즈칸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1227년에 63세의 나이에 죽었다. 칭기즈칸은 위대한 장군이었으며, 정치가였고 국가적 영웅이었다.
13-14C에 몽골은 경제, 문화, 군사, 정치적으로 모두 발전을 이루었다. 이 제국은 분리되었던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거대하게 뻗어나갔으며 아직까지도 몽골 역사의 황금시대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 동안 몽골은 세계에서 최고로 강력한 국가였으며 몽골제국은 1368년부터 분열되기 시작하여 1691년 망했다.
▶몽골의 Ger(게르.전통가옥)
몽골의 유목 생활양식과 순탄치 않은 날씨에 가장 적합한 Ger(전통가옥)는 수백 년 동안 가장 보편적인 가옥으로 존재하고 있다. 유목민들은 원형의 펠트로 덮여진 게르를 발전시켜왔는데, 그 게르는 그들의 일상생활의 어려움(추위, 바람, 햇볕)에 잘 견딜 수 있으며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세우고 분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주하기에 쉽도록 만들어졌다. 게르에는 아름다운 곡선과 남쪽을 향하도록 만든 장식이 된 문이 있는데 이 문은 항상 보다 햇빛을 더 잘 받을 수 있는 남향으로 낸다.
▶나담축제
나담은 몽골 전역에서 해마다 7월 11~13일 열리는 민족축제로`축제, 경기, 게임`의 뜻을 담고 있다. 칭기스칸이 13세기초 정복전쟁의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3개 종목(씨름·말달리기·활쏘기) 경기를 벌여 병사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 기원이 됐다. 몽골에서는 혁명 기념일인 7월 11부터 7.13일까지 3일간 몽골의 대표적인 축제인 나담축제가 열린다. 넓은 광장에서 민족가무 의 공연, 대통령의 축사, 몽골의 씨름 (씨름판이나 시간제한이 없고 먼저 무릎, 팔꿈치, 머리, 어깨, 등이 지면에 닿으면 지게 된다) 활쏘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참가), 경마(거리는 30km로 5세∼12세의 아이들이 참가)의 대회가 있다. 하계관광 시즌과 겹치므로 외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관람객이 많아지고, 울란바토르는 1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된다.
▶몽골의 성문화
몽골에서는 역사적으로 끝없는 부족 간의 전쟁에서 여자란 가축과 같이 약탈의 대상이었다. 전쟁에서 끌려간 여자는 약탈자의 성(性)적, 또는 노동력이 된다. 훗날, 절치부심 다시 찾아와 살아야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정조(貞操)란 없다. ‘징기스칸'의 어머니와 아내도 이런 과정을 겪었다. 징기스칸의 어머니 ’후엘룬‘은 다른 부족장 아들의 부인이었는데 아버지 ’예수게이‘가 약탈하였고, 징기스칸의 아내 ’보르테‘는 약탈당하였다가 2년 만에 다시 찾아 왔으며, 찾아 올 당시 임신 중이었다. 그래서 그의 큰아들 ’주치‘는 징기스칸의 아들이 아니라는 의혹이 있어 몽골 2대 대칸이 되지 못했다. 또한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 것은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형의 식구들을 보호하여 주어야만 하는 것이 이들의 의(義)였다.
근세까지도 ‘고비사막’에서는 낯선 손님에게 딸이나, 며느리를 동침시켜 아이를 갖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여자는 오직 노동력을 생산하는 공장인 셈이다. (출처 : 수필가 김용순님의 글)
▶몽골의 여행
몽골은 도로, 교통, 숙박시설 등 조건이 매우 열악한 나라 중에 하나로 여행하기엔 위험하기 보다도 불편하지만 아직 태고적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기에 그런 자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몽골 여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몽골에 가시면 동쪽으론 대초원과 남쪽엔 사막 그리고 서쪽의 호수와 북쪽으론 산림지역이 있다. 자연을 벗 삼아 하는 여행, 바로 이것이 몽골 여행의 진수이다.
몽골 여행 시 필요한 준비물
1.첫째 꼭 필요한 것
몽골의 건조한 기후에 견디려면 촉촉한 로션은 필수, 강렬한 태양에 피부가 쉽게 탈수 있으니 자외선 차단용 크림과 선글라스 그리고 모자와 야외로 나갈 시를 대비해서 막장갑(승마시 필요)과 침낭(장기 배낭 여행자의 경우)도 준비하면 좋다. 몽골은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여름에도 시골여행이나 게르에서 잘 때 추워서 새벽에 잠이 깨는 경우가 있다. 방한 점퍼(긴팔종류)와 속옷 세면도구 생명과 같은 여권과 항공권도 꼭 가져가야 된다.
2. 둘째 있으면 좋은 것들
작은 가방류(승마 소풍시), 손전등, 화장지, 물티슈, 비타민류 등인데, 몽골은 물이 귀해서 먼지나 가벼운 세면시 <물티슈>가 아주 좋고, 바지는 주머니 많이 달린 바지가 좋으며,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할 경우에는 약간의 선물 (과자종류, 학용품, 담배등) 준비 하면 도움이 된다.
≪출처≫ : 몽골 문화원을 중심으로
【자이승승전탑과 이태준 열사공원】몽골여행 1일차(12. 7. 18) ▶ 자이승승전탑 관람 오늘은 건강셀프등산회 제288차 산행으로 트레킹전문여행사인 “산이 좋은 사람들”을 통한 4박5일 몽골 체첸궁산 산행과 테를지 트레킹의 첫 번째 날로 평소와 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잠시 산보를 하는데 비가 조금 내려 중단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한 후 짐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한 후 07:45분 집을 나와 개포동 9단지 앞에 있는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이동하여 08:00분에 공항버스를 타니 아무도 없었다. 잠시 뒤 대치동, 도곡동 등에서 여행객들이 타기 시작하였으며, 35분이 지난 08: 35분에 신사역에 도착하여 천송님이 합류하였다. 여기서 약 50분간 쉼 없이 달려간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최초집결지인 E카운터 앞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알고 지내던 국방등산회 사람들(당초 저녁 대한항공 편으로 몽골여행 계획이었으나 2주전에 몽골항공으로 변경하였으며, 22명이 함께하였다.)이 여기로 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웠으며, 초코님 일행을 필두로 우리 건셀멤버 12명이 도착하여 두타님이 기증한 유니폼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산이 좋은 사람들”에서 나온 직원과 조우를 하였다. 여기서 우리 팀과 산행과 여행을 함께할 5명과 합류하였다. 모든 인원이 합류한 후 수화물을 붙인 후 “산이 좋은 사람들”이 제공한 일정표에 의하면 12:2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다고 되어 있어 잠시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공항 면세점을 둘러 본 후 12:20분에 몽골비행기에 탑승을 하였으며 12:40분에 이륙을 하였다. 기내식으로 점심이 제공되는데 비프와 치킨 두 종류(돌아오는 날 아침에도 동일한 종류가 제공)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비프가 좋았으며, 약 3시간의 비행 후 15:40분(몽골시간 14:40분)에 도착하였다.(이후부터는 몽골시간으로 작성)
인천공항에서 단체유니폼으로 인증을 하고..
서울 집에서 아침 산보를 위하여 나오는데 헷빛을 머금은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멋있어서 찍어 보았음.
우리 팀을 몽골로 데려다 줄 몽골항공사 소속의 여객기..
비행 중 구름이 멋있어서..
몽골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징기스칸 공항으로 활주가가 짧아서 그런지 착륙시 많이 들컹거렸으며..
몽골공항 도착후 약 1시간에 걸쳐 수화물을 찾고 입국수속을 거쳐 16: 30분에 가이드(별칭 ‘앗싸’로 우리나라 광주에서 3년간 생활한 37세의 남성으로 재치와 순발력이 있었음)와 합류 후 버스에 탑승하여 약 40분간 이동 후 17: 10분경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자이승승전탑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는 가이드의 오늘 일정에 대한 소개와 함께 여행에 합류한 모든 분들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있었는데, 우리 팀 이외의 분들 중 부부는 서울에 거주하며 해외산행 경험이 많은 베타랑 이었고 전주에서 온 두분은 월간‘산’지에 호남의 산들을 연주한 산행 베타랑이었고, 광주에서 온 한 분은 이비인후과 의사로 자연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분으로 모두 대단한 분들이었다.
버스에 하차하는데 국방등산회 사람들도 도착해서 함께 계단을 따라 자이승승전탑에 올라갔으며, 계단입구에서는 울란바토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으며, 2$를 주면 독수리를 들고 사진을 찍게 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내려올 때 사진을 찍었음).
자이승전망대에 올라가는 계단입구에서 본 울란바토르 전경..
보그드 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자이승승전탑..
자이승승전탑은 1939년과 1945년 두 차례 일본과의 전쟁에서 러시아와 연합하여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과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혁명 50주년을 맞아 1971년 소련의 기증으로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남쪽으로 3Km 지점에 위치한 몽골에서는 명산 중 하나로 손꼽히는 보그드 산 정상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 오르면 톨 강과 울란바토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와서 몽골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되어 있다. 특히 할힌골 전투(현재 외 몽골 할하강 근처) 혹은 우리나라에서는 노몬한 사건으로 잘 알려진 이 전투는 1939년 일본 관동군, 만주군과 소련,몽골 연합군간의 대 전투였다. 당시 만주는 일본 관동군(關東軍)이 장악하였는데, 노몬한 부근은 국경선이 확실하지 않아 가끔 분쟁이 일어났다. 1939년 5월 몽골군이 할하강(江)을 건너오자 일본군은 불법월경(不法越境)으로 간주해 충돌하였는데, 이때 몽골과 상호원조조약을 맺은 소련이 기계화 부대를 투입하여 일본군을 전멸시켰다.
이에 일본은 만주에 주둔해 있던 항공 ·전차 병력을 총동원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였으나, G.K.주코프 지휘하의 소련군 및 몽골군의 반격을 받아 참패, 사상자(死傷者)가 17,500여명에 달하였다(소련, 몽골도 약 18,500여명의 사상자). 이 때는 셰계2차대전 직전으로, 양국은 서로 극동에서의 전쟁을 피하려 했기 때문에 그 해 9월 정전(停戰)협정이 성립되어 수개월에 걸친 국경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이듬해 두 나라는 만주 ·몽골의 국경선을 대개 소련의 주장대로 확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울란바토르 올라가면서 본 모습으로 한창 공사중이었으며..
자이승 승전탑입니다..
27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면 언덕 입구에 '소련사의 기억은 하늘의 태양처럼 영원하고 대지를 태우는 불처럼 신성하다'는 글귀가 씌어 진 승전탑이 우뚝 서 있다. 높이 솟은 기념탑의 전면에는 한손에는 총을 들고 한손에는 깃발을 높이 세워들고 있는 장병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고, 환형구조물 외부에는 몽골 혁명의 얼굴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몽골 공산혁명의 영웅인 ‘수흐바트르’도 확인할 수 있다. 이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난 후 소련군과 더불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리고..
뒤편에서 본 모습..
공사가 한창인 울란바토르 모습..
몽골은 구소련에 이어 두 번째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나라였으며, 소련이 해체된후 1991년부터 사회주의노선을 포기하고 자유시장 경제체제 지향 및 중립. 비동맹 민주국가 표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몽골의 상징 자이승승전탑은 몽골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방이 시원하게 탁 트여 울란바토르 전체를 파노라마처럼 조망할 수 있어 최고의 데이트 명소로 손꼽히고, 결혼식 사진 촬영장소로도 많이 찾는다.
중심가는 다소 깨끗한 것 같은데..
우리 가이드인 앗싸는 공짜로 하고(한 번 체험에 2달러)..
자이승승전탑 관람을 끝내고 바로 아래에 있는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을 찾았으며, 이곳은 일제강점기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몽골인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던 대암 이태준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태준 기념공원에서 본 자이승승전탑이 한 폭의 그림입니다..
대암 이태준선생은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세브란스의학교(현 연세대 의대)에 입학해 1911년 제2회로 졸업했다. 세브란스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1912년 중국 남경으로 망명해 '기독회의원'에서 의사로 일하다 처사촌이 된 애국지사 김규식선생의 권유로 1914년 몽골 후레로 가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했다. 특히 화류병 퇴치에 앞장섰고 몽골 마지막 황제 주치의가 되었으며, 1919년에는 몽골로부터 '에르데닌 오치르'라는 최고 훈장을 받았다. 1921년 2월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러시아 백군에 의해 피살당하니, 38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기념관 건립경위가 나와 있네요..
이태준 선생의 묘..
자이승승전탑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올라가고 있네요..
숙소인 팔레스 호텔..
식사후 인근 마트에서 라면등 필수품을 구매(50불)하였는데 거의 절반이 우리나라 제품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샤워 후 초코님 방에서 모여 간단한 뒤풀이를 한 후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종재기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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