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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베트남 호치민

베트남 호치민시 1일차 시내관광(18.1 28(일))

by 산사랑 1 2018.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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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동상과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베트남 호치민시 여행 첫째 날(18. 1. 27 ~28일) 


1시 09분 탄손누트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하는데 노비자를 여부 확인후 그렇다고 하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요구하여 사진으로 찍은 것을 보여 주고 통과하였다. 수화물을 찾은 후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심통님의 친구분(박목사님)을 만나 호텔로 가는데 거리에는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중국에서 열린 아세안 게임 축구 결승전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승전에서 베트남이 우즈베키스탄에게 1:2로 졌다고 하며, 만약 베트남이 이겼다면 완전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이곳이 공산주의 치하에 있어 자유를 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로는 곳곳이 폐쇄되어 있어 숙소까지 가는데 여러 번 돌아가야 했다. 베트남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며, 입국할 때 사과, 감 등 과일을 가져 올 수 있는 나라인 점이 특이 하였다. 숙소(호텔 25)에 도착하여 샤워하고 약 03:30분경 취침을 하였으며 06시에 일어나 호텔 밖으로 나가보니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떼를 지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잠시 구경한 후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로 쌀국수가 있어 이를 먹었다.

 

숙소근처의 로터리의 동상 뒤편으로 U23 아세안 축구경기 광고판이 보이고.. 


일요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오토바이들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식사 후 시내구경을 하기로 하고 첫 번째 방문지로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두 블록 반)에 있는 반탐시장을 들러보기로 하였다. 반탐시장 가기 전에 본 푸드 마켓이 있어 잠시 둘러보았으나,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일부 가게만 문을 열고 있었으며 가격이 아주 저렴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반탐 시장 가기 전에 본 푸드 마켓으로 잠시 둘러 보았으나,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일부 가게만 문을 열었다.  


반탐 시장에 도착하니 마침 꽃가게 앞에서 사진촬영중이라 잠시 구경을 하였는데 모텔(여성분)이 바구니에 들고 있는 것이 용과로 세째 날 무이네 가는 길가에서 판매를 하고 있어 실컷 시 먹었다.   


이곳이 반탐시장입니다..



꽃가게 앞에서 사진촬영 중이었는데 여성분이 바구니에 들고 있는 것이 용과..


반탐시장은 1900년 초에 지어진 호치민 최대의 재래시장으로 시계, 가전은 물론 각종 의류, 과일, 커피원두, 생선 등의 식료품을 팔고 있으며,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비슷하다. 이곳에서 망고를 잘라서 포장을 하는 것을 보고 하나(가격 50,000동/ 2,500원) 사 먹었는데 가격도 싸고 맛이 좋았다. 저녁에는 반탐시장근처에 먹거리를 파는 야시장이 들어선다고 한다.


시장 내부로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같이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상품을 팔고 있었다..


한국인 들이 좋아하는 베트남 커피 G7도 있네요..


반탐시장을 보고 인근에 있는 박물관과 호치민 광장을 둘러보러 갔는데 박물관은 지나쳤으며 옷가게가 나와 유럽에서 유명한 브렌디 옷이 보여 세 명 모두 하나씩 사서 입고 다녔다. 잠시 후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와 광장이 나왔으며,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앞에도 역시 많은 오토바이들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앞쪽으로 나오니 호치민 동상이 있는 광장이 나왔으며, 광장에는 웨딩 촬영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었고, 관광객들도 제법 보였다. 


호치민시 인민위원회가 보이고..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앞에도 역시 많은 오토바이들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요.. 


 

 

호치민 동상과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이번 여행에 함께 동행한 분들과 현지에서 동일한 제품의 옷을 사서 입고..

 

광장을 나와 오페라 하우스로 이동하였으며,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전통 극을 상연하고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를 잠시 둘러보고 노토르담 성당과 바로 옆의 중앙우체국을 들러보았다. 이들 건물들은 프랑스 식민시절의 건축물들로서 아름다웠다. 노토르담 성당 앞 공터에는 많은 버스들이 관광객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 같았다. 중앙우체국에는 편지를 직접 붙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와 그 앞에 있는 람손 광장입니다..


【오페라 하우스】

이 극장은 프랑스 식민시절에 세워진 극장으로 1893년에 프랑스 식민정부는 프랑스 제국에 걸 맞는 새로운 극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1895년에 디자인 경연을 통해 유진 페레(Eugène Ferret)의 디자인을 채택하였으며 페레씨는 파리에 Petit Palais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이 극장은 1898년에 완공이 되었으며, 당시에는 사이공 극장 (Théâtre de Saigon)이라고 불렸다. 이후 일제가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기간 동안 (1940 ~ 1945) 프랑스가 퇴각하면서 극장의 전면부를 파괴했고 (몰락하는 프랑스 제국을 보여주기 싫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이 후 1944년 폭격으로 인해 크게 부서집니다. 1950년대에 와서 기본적인 수리를 마친 극장은 북쪽으로부터 탈출한 집 없는 피난민들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1955년 이후 극장은 완전히 개축되어 국회 건물로 탈바꿈을 하였다. 이 후 1967년 수정 헌법이 발효하면서 다시 이 건물은 국회 하원 건물(Hạ Nghị viện)로 사용되다가 1982년이 되서 오페라하우는 극장으로 다시 재개관을 합니다. 이 후 1995 ~1998년에 걸쳐 사이공시 3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 원조를 받아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의 외관장식, 내부 인테리어, 조각 등등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오페하우스 앞에 있는 것인데 용도는 잘 모르겠다.



노르트담 대성당 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1877~1883년 프랑스 사이공 정부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전형적인 신로마네스크 양식으로 40m에 달하는 두 개의 첨탑이 삐쭉 솟아 있다. 성당 정면으로 성모 마리아 상이 있으며 다른 성당과 달리 내부에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없다. 정문이 잠겨 있으면 통일궁 쪽으로 입장해야 하고 일요일 9시 30분에는 미사를 보기 위해 현지인들과 외국인 여행자들이 몰려 장관을 이룬다.



 

길거리에서 파는 조그만 소품들로 예쁘네요..


호치민 중앙 우체국으로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건축물로 외관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중앙 우체국

베트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우체국으로 1886~1891년 동안 프랑스 식민 정부에 의해 건축되었다. 동코이 거리 북쪽 끝에 있으며 19세기 프랑스 지배시대에 세워진 건축물로 호찌민에서 가장 큰 성당인 노트르담 성당 옆에 위치한다. 현재는 우체국 본연의 역할 이외에도 중요 건축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아치형의 높은 천장이 인상적이다. 호찌민 초상화와 식민시기 완성된 인도차이나 지도가 관광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국제 택배나 국제 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 기념 엽서 등을 살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베트남인의 영웅, 호치민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현지인은 물론 여행자들도 이곳에서 직접 편지와 엽서를 써서 보낸다.

 


 

서울의 현재 시간을 알려 주고 있네요..

 

중앙우체국을 구경하고 기념품을 구입한 후 통일궁을 구경하기 위하여 이동을 하였다. 그럼데 거리 곳곳에는 1968년 구정 대공세를 기념하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통일궁앞쪽에는 기념식을 거행할 대형 행사장을 설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968년 당시 북베트남은 수세에 몰린 정세를 타개하기 위해 구정을 맞아 1주일간 휴정을 제시한 후 기습적으로 베트남 전역을 습격하였으나 완패를 당했으나 미국대사관의 습격에 따른 미국민의 전쟁 염증으로 반전분위기가 급격히 고조되어 1975. 4월 30일 결국 패망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대성당 뒤쪽에 있는 건물..

 

일궁으로 가는 길에서..


1968년 북베트남의 구정공세 50주년을 기념하는 것 같네요..


【구정 대공세】

1968년 1월말 베트남은 모처럼 구정(舊正·Tet)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월맹(북베트남)측이 구정을 맞아 1주일간의 휴전을 선포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월맹군의 기만전술이었다. 1월31일 미명(未明)을 기해 월맹의 대공세가 불을 뿜었다. 월남(베트남) 전역의 14개 성(군) 주요 도시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친 것이다. 물론 이 구정대공세는 월맹의 완패로 끝났다. 월맹은 참전병력의 절반에 가까운 3만5000여명이 사살됐고 5800여명이 생포됐다. 반면 미군의 손실은 전사자 534명, 부상자 2547명에 불과했다.


이 전투를 기획한 것은 물론 월맹의 지도자인 호찌민과 국방장관 보응 우엔 지압이었다. 1967년에 이르러 월남은 군사력이 미군과 월남군, 한국군, 호주군, 태국군 등을 합쳐 13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자 월맹은 일거에 전세를 뒤집을 도박을 감행했는데, 이것이 바로 구정대공세였다.


그런데 승전을 했는데도 미국내 여론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국 언론이 월맹군의 손실은 치지도외하고, 미군의 손실만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전쟁에 염증을 느낀 미국내 반전 분위기는 급격히 고조됐다. 급기야 린든 존슨 대통령은 3월31일 월맹에 대한 북폭을 중지시키는 한편, 다시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월맹의 입장에서는 ‘패배한 전투’였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대승’으로 기록됐다.

(출처 : 경향신문 09. 1.30일)


 

통일궁으로 앞쪽에는 기념식을 거행할 대형 행사장을 설치하고 있었으며,

통일궁을 구경하는데 입장료는 1인 40,000동(2,000원)이고 한글 청취는 1인 80,000동(4,000원) 이었다..

이 건물은 1868년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인도차이나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1954년 베트남이 분단된 이후 남베트남의 대통령궁으로 사용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이 종결을 맞은 역사적 장소로 유명하다.


【통일궁】

프랑스 식민 통치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독립 이후 남베트남 정부의 대통령 관저였다. 1962년 남부 베트남 공군에서 대통령 살해를 목적으로 폭탄 2발을 투하하여 건물 왼쪽 부분이 파괴되었다. 현재 건물은 1966년 신축된 것이다. 1층은 회의와 귀빈을 접견하는 장소, 2층은 정부 각료 회의와 국사를 논하던 곳이었고, 일부는 대통령 가족의 주거 공간이었다고 한다. 3층은 대통령 가족 도서관, 영부인 영접관, 4층은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의 휴식 공간이다. 지하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작은 통로를 통해 사령실, 암호 해독실, 통신실 등 군사 작전을 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1975년 해방군의 탱크가 통일궁으로 진입하면서 베트남 전쟁은 종결을 맞게 되었다. 이후 통일궁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학생과 관광객들에게 베트남의 산 역사를 교육하는 곳으로 애용되고 있다. 옥상의 헬리포트에는 당시 폭탄을 맞은 지점이 표시되어 있고, 뜰에는 이곳으로 진입한 두 대의 탱크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들입니다..



일궁 내부로 1층에 있는 주 연회장..


내각 회의실..


회의실..

 

지도 보관실..


통령 집무실..




부인 접견실..






령 침실..

 

부인 접견실 한쪽에 추상화가 걸려 잇고..


옥상의 헬리포트..

 

당시 폭탄을 맞은 지점 두군데가 붉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고..



통일궁에서 본 바깥 풍경..


하 방카의 통신실..


당시의 물건들..




대통령 침실..


통령 집무실..


시 주방시설..


차..

 

용차..


격실,,


바깥에 있는 나무로 형상이 특이 합니다..




걸거리에서 코코넛을 사먹고(하나 30,000동/1,500원)..


숙소로 가는 길에 서 본 공원의 나무로 엄청 납니다..



사원 같습니다..


점심은 14:00 심통님 친구 분이 추천한 야항론(맛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월남쌈 분팅유(구운 고기 쌀국수), 해물 누릉지 탕, 볶음밥(콩 간장과 함께 먹는다), 쌈 사탕수수와 어묵말이 등으로 포식을 하였다. 식사비는 120만동(4인 삼만원/1인 7,500원)으로 저렴한 편이었으며, 배 불리 먹을 수 있었다.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하였으며, 맛도 괜찮은 편이었다.


심은 베트남 전통음식점에서 고문님 친구가 소개해 준 야항론(?)/맛있는 식당)에서 하였다.. 

월남 쌈과 소스..

 

분팅유(구운 고기 쌀국수),


해물 누릉지 탕..


볶음밥(콩 간장과 함께 먹는다)..


쌈 사탕수수와 어묵말이..

 

당 전경..


식사 후 전쟁기념관 관람(1인 40,000동/2,000원)..

 

남전 당시 전투기도 전시 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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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당시 풀리처 상을 받은 작품..


1972년 6월 8일. 베트남 육군은 트랭방에서 수도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탈환하기 위해 4일간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베트콩의 저항이 완강해지자 베트남 공군의 지원을 요청했다. 공군의 전폭기들은 트랭방으로 이어지는 1번국도 위를 저공비행하며 빗자루를 쓸듯 폭격했다. 세상을 녹일 듯이 불비가 쏟아져 내렸다. 판 틱 킴 퍽이라는 사진 속의 소녀는 소이탄으로 불바다가 되어 버린 마을을 벗어나 달려 나오고 있었다. 달리며 울부짖는 것만이 뼈저린 공포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 처참한 순간을 베트남 종군기자인 현 콩 닉 웃이 포착해 카메라에 담았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해 온 그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전쟁에 무감각해진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전해 주었다. 이 사진이 베트남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미군의 잔학상이 드러나고..


고엽제 피해를 입은 산모가 낳은 아이.. 



고엽제 살포로 말라죽은 가운데 한 소년이 네요..


1968년에 한국군이 50,000명이 파견되어 있네요..


한국군인 청룡 맹호, 백마부대들의 진영도 표시되어 있네요..

 

실외의 전시장에서 녹화 중이네요..


감방으로 위가 유리로 되어 있어 일거수 일투족이 관찰되고..


두대네요..


철초망 안에도 사람을 넣어 두었군요..

 

마사지를 마치고 심통고문님 현지 친구 분 집근처인 한인타워로 이동을 하여 '한빛' 이라는 식당에서 한식으로 돼지숯불구이와 된장찌개 등을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약2시간 30분에 걸친 식사를 하고 사탕수수 원액 쥬스를 마신 후 숙소로 이동을 하여 오늘 하루를 마쳤다


고문님 현지 친구분 가족들과 함께 야외에서 식사를 합니다..

 

돼지숯불구이와 된장찌개 등으로 식사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