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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서울, 경기)

수원화성의 美를 찾아서(18.9.15(토))

by 산사랑 1 2018.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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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2018. 9. 15일 토요일)】

 

경기도의 수부(首部)도시 수원은 조선 제22대 정조 대왕이 생부인 장헌세자(사도세자)를 향한 효심과 웅대한 개혁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운 계획된 신도시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園寢·왕세자의 산소)을 경기 양주 배봉산에서 지금의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조선시대 최고 성곽기술이 녹아 있다. 도심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7년 등재)인 화성(華城. 사적 제3호)이 팔달산을 중심으로 5.7㎞ (면적 37만1145㎡/약 11만2400평)에 걸쳐 펼쳐져 있는데, 정약용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의 협업 속에서 완성한 것이다.

 

화성은 화기 공격과 방어에 대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과학적인 설계로 축성된 성곽이다. 성의 부속 건물들 또한 모두 다르게 지어져 있는데, 다양한 건물군의 동시적인 건축물은 전세계에서 화성이 유일하다고 한다.

 

수원 화성(사적 3호)은 정조의 애민하는 마음과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성곽으로 꼽힌다. 아름다운 주변 풍광뿐만 아니라 역사성과 과학성, 축성에 대한 이야기가 그 매력을 더해준다.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지점에 행궁을 포함한 새 도시를 건설하는 일인 한편 부친의 넋을 달래려는 효심이 깃든 대역사(大役事)였던 것. 정조 18년(1794년)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해 만든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해발 143m의 수원 팔달산을 중심으로 성을 쌓기 시작한 지 2년 8개월 뒤 총길이 5,700m의 성이 완성됐다. 당초 10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이 들었던 것이 28개월만에 완성하게 된 것 중의 하나가 거중기(擧重機)로, 거중기는 40근(24kg)의 힘으로 625배나 되는 2만5000근(15,000kg)의 돌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실사구시의 과학정신이 화성 축조에 응용된 것. 화성의 동서남북으로는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이라는 큰 문을 만들었고 그 사이사이에 5개의 암문, 2개의 수문도 두었다. 그 밖에 적대, 공심돈, 봉돈, 장대, 각루, 포루도 만들어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화성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만들어진 도시 성곽으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 동안 조선시대 아름다운 건축미에 흠뻑 빠져들고 건강도 다질 수 있어 화성의 매력을 더해준다.


화성은 약 200여 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 일부가 무너졌다. 특히 6·25전쟁으로 크게 소실됐다가 1975년 보수·복원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화성의 사대문 중 팔달문은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성문만 남아 있다. 장안문은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됐다. 1978년 문루는 원래대로 복원됐다.

 

현재 수원 화성의 70~80%는 현대에 복원된 구조물로 이렇게 새로 복원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세계문화유산 중 기록유산으로 '화성성역의궤'가 선정이 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이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했는지, 그 의궤에 따라 복원된 수원화성도 덩달아 인정을 받아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돌 무게가 얼마고, 어떤 목재를 사용했고, 심지어 공사비로 얼마를 지출했는지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설계와 시공 부분은 그림과 해설을 따로 붙여 놓아 '화성성역의궤'만 있으면 화성은 얼마든지 다시 지을 수 있다. 이는 화성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학적이라는 반증이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도 당시 소견에서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한 과학적 특징을 골고루 갖춘 근대 초기 군사 건축물의 모범"이라며 "성곽은 이제 겨우 200년에 지나지 않지만 제각각 지닌 예술적 가치를 감안할 때 마땅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려야 한다."고 극찬했다.

 

서장대와 화서문 중간에는 정조대왕의 동상이 서있고 그 아래쪽에는 최근 복원한 화성행궁이 있다. 행궁은 임금이 지방 행차 시 머물던 별궁으로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으로 행차할 때 이곳을 자주 임시거처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봉수당, 장락당을 비롯한 총 576칸 규모의 거대한 행궁이다. 정조는 화성행궁에서 모친인 경의왕후(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경로잔치를 여는 등 백성에게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장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인 봉수당에서는 정조대왕과 왕비가 경의왕후에게 회갑연을 베풀어드리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화성행궁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신풍루 앞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일요일(오후 2~3시)에는 정조 17년(1793년)에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한 금위조직인 장용영(壯勇營) 수위식이 열린다.

 

화성을 돌아보는 동안 최소한 세 번은 반하게 된다. 처음에는 보호와 방어라는 성곽의 1차적 용도를 뛰어넘은 우리나라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흠뻑 매료되고, 그다음에는 한 임금의 부모 공경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곽 트레킹으로 자신의 건강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매력이다. 또한 웅장함과 화려함, 실용성을 두루 갖춘 화성의 야경 역시 일품으로 다가온다.

 

(출처 :파이넨션 뉴스 등을 중심으로 재편집)


팔달산 정상에 있는 군사 지휘소였던 서장대..

 


건강셀프등산회 제 607차 산행은 산우님의 결혼식이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거행되어 예식 참여후 수원화성을 돌아보도록 계획하였다. 수원화성은 5년전 개인적으로 한 번 돌아보면서 그 아름다음에 감탄을 한 바 있으며, 건셀에서는 제461차 산행(15.11.22일) 산행시 다녀온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추억을 돌아볼 수 있었으며, 기회가 되면 야경을 함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함께 한 모든 분들 수고 많았으며, 다음주 산행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산우님 아들 결혼식에 참석 후 수원 화성을 돌아 봤습니다.. 


수원 화성 행궁을 먼저 둘러 보기 위하여 팔달구청 앞에서 하차를 하였고..


 수원화성 안내도..

 

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신풍루는 1790년 정조 14년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진남루라 했는데 이후 정조의 명으로 신풍루가 되었다. 신풍이란,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다.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이 수원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신풍루 좌우에는 수령 350년의 보호수가 자리 잡고..


신풍루 앞에서는 토욜 오후 두시부터 행사가 진행되며, 잠시 예행 연습을 하더군요..


거리에는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화성행궁 입장료(1500원)대신 수원시를 카톡친구로 하면 무료입장이 됩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며, 오늘 공연은 북청사자 놀이보존회에서 북청사자놀이를 합니다.



모든 출연진들이 선을 보이는데 어린이도 보이네요..


북청사자가 그럴듯 합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고 상민이 양반을 끌고 가네요..










칼춤도 선 보이고..




시간상 칼춤을 본 후 행궁 구경에 나섰다..


병사들의 복식이 전사되어 있는 남군영..


남군영은 장용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親軍衛)가 좌,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건물이다. 신풍루 좌우에 있는데 1789년(정조 13)에 처음 지었고, 1794년(정조 18) 좌우에 익량을 증축하여 모두 62칸의 규모를 갖추었다.


신풍류 다음으로 나오는 좌익문..


좌익문은 중양문 앞에 있는데,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道)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이다. 1790년 완성되었고 편액은 정동준이 정조의 명을 받들어 썼다. 남쪽 행각의 끝은 외정리소와 연결되어 있다.

       

안에서 본 신풍루..


중양문..


1790년(정조 14)에 완성된 중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 하였다.

정조대왕과 왕비가 경의왕후(혜경궁 홍씨)에게 회갑연을 베풀었던 "장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인 봉수당 내의 모습 일부....


화성전도..


행궁전도..


화성행궁은 576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되어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현재는 2단계 복원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고풍스런 저택과 교회 건물이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더군요..



행궁 뒤편을 따라 걸어 갑니다..


행궁 뒤편에서 본 행궁의 모습으로 신풍루, 좌익문 등이 보이네요..



행궁 구경을 마치고 행궁 우측 주차장 옆쪽으로 해서 올라갑니다..


유려한 곡선의 화성과 아름다운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수원 최고의 전망대인 서장대가 나오고.


서장대의 아름다운 모습..



수원 화성행궁 뒤편 팔달산 정상에 우뚝 솟은 서장대(화성 장대)는 화성의 남서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장대는 동장대와 함께 장수가 성의 안과 밖은 물론 인근지역까지 살피며 지휘하던 곳으로 화성을 축성한 정조대왕이 다섯 번을 오르며 화성장대라는 편액을 직접 썼다고 한다. 현재의 서장대는 2006년 방화로 불탄 것을 복원했으며, ‘화성장대’의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 있는 고궁박물관 편액을 모각해 달았다.

 

서장대 앞에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네요.. 


서장대에서 본 화성 행궁의 모습..


서장대 좌측으로 광교산 방면..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한 시설로 서장대에 있는 서노대(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노대 두군데가 있다)..


서장대와 서노대를 떠나며..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는 서이치..


‘치’는 꿩을 위미하며, 꿩이 자기 몸을 잘 숨기는 모양을 닮았다하여 "치"란 단어를 붙인 이 곳은 성곽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병사들이 외벽을 감시하기가 수월했는데 그 이전의 성들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시설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는 서포루..

포루(砲樓)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곳으로 화성에는 5개 포루가 있다.. 


화서문이 보이고..


서일치로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있다..


서북각루..

각루는 주변을 감시하고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곳으로 화성에는 총 4개소가 섪치되어 있다..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 등으로 성을 축조하여

당초 10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이 들었던 것이 28개월만에 완성하게 됩니다..


4대문 중의 하나인 화서문..

벽돌로 쌓은 반원형 옹성이 문을 둘러 싸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다. 


성을 따라 데이트를 즐기고 있네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수원 서북 공심돈..

공심돈은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적을 살필 수 있개 만든 망루의 일종 




초가집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북포루..

포루(鋪樓)치성위에 설치한 누로 군사들의 대기 및 휴식 장소로 화성에는 5개의 포루가 있다.


북서포루..


장안문이 보이고..

 

포루(砲樓)에 설치된 화포..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대부분의 성은 남문을 정문으로 쓰는데 화성만 북문인 장안문을 정문으로 쓴다. 그 이유는 정조가 서울에서 출발해 가장 먼저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장안문이었기 때문이다. 장안이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북동포루..


동부각루(방화수류정)


수원천 버들마켓이 설치되어 있고..


수원천..



수원천의 북쪽에 세운 북수문(화홍문)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수원 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이 여름에 자주 범람하자 성곽을 신축하면서 준설하고 남북에 각각 수문을 만들었다. '화(華)'는 화성, '홍(虹)'은 무지개의 의미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은 '수원팔경'에 꼽힌다.



동부각루(방화수류정)..


'방화수류'는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앞내를 건넜다는 뜻이다. 방화수류정에서 보는 풍경은 화성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꼽힌다. 방화수류정은 전시에는 망루, 평시에는 정자의 기능을 했다.


화성의 성곽도 남한산성의 성곽같이 곡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곡선의 아름다운 美..



방화수류정 앞의 연못으로 정면에서 보면 매우 아름답습니다..


동북포루..





군사를 지휘하던 동장대..


연무대(동장대, 東將臺)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蒼龍門)'과 북쪽 수문인 '화홍문(華虹門) 사이의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이 트여 있어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좋은 군사요충지이다. 1796년에 수원화성이 완공된 뒤, 연무대는 병사들의 훈련장이었다. 칼과 창, 활을 다루는 공간으로 200년이 넘은 소문난 활터이다. 또한 연무대는 사직공원(社稷公園)의 황학정(黃鶴亭), 남산의 석호정(石虎亭), 전주의 천양정(穿楊亭)과 더불어 유서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출처 : Daum백과]

 


 


동북 공심돈..

수원화성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 중의 하나로 중국 요동지방에 있는 평돈을 모방하여 벽돌로 동그랗게 돈대를 쌓아 만들었다.

 

활쏘기 체험을 하고 있네요..



우측 동북노대(쇠내를 쏘는 방어시설)..

서노대가 성벽 안쪽에 만들어진 것에 비해 동북노대는 치성위에 벽독을 쌓아 만든것이 특이하다..


4대문 중의 하나인 창룡문

창룡은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으로 동문을 뜻한다..


창룡문 정면..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으로 규모와 형식이 화서문과 비슷하다. 주목할 것은 성문 왼쪽 벽에 있는 실명판이다. 화강석 벽을 다듬어서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팔달문, 화서문, 장안문의 실명판이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데 반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기구에 사람이 타고 있네요..


일정 시간 간격으로 기구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더군요..


이 기구는 끈이 달려 있어 수직으로만 올라갈 뿐 비행은 없습니다..


동일치..


동포루(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것)..


멋있는 고딕 양식의 교회가 눈에 확 들어 옵니다..



동이치..


봉돈(봉수대로 성벽에 총안을 두어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이포루..


수원제일교회로 정말 고풍스럽네요..


동삼치로 다른 치보다 규모가 크더군요..


동삼치에서 본 수원제일교회..


동남각루..




팔달문(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을 의미)으로 화성 4대문 중의 남문(보물 402호)이며,

오늘 트레킹은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트레킹을 마무리 하고 화성행궁으로 이동하던 중 해물요리로 뒤풀이를 하였습니다.


해물요리..


 


여기서부터는 2013.9월 개인적으로 들러보았던 사진으로 서장대까지 이어지며, 이 코스를 돌아야 전체를 도는 겁니다..


팔달문을 지나 성곽으로 올라가는 매표소..

 

팔달문..

 

남포루..

 

서남암문..

 

도로를 따라 소나무들이 멋지게 늘어서 있고..

 

서포루..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수원 화성의 70~80%는 현대에 복원된 구조물로 이렇게 새로 복원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세계문화유산 중 기록유산으로 '화성성역의궤'가 선정이 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이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했는지, 그 의궤에 따라 복원된 수원화성도 덩달아 인정을 받아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돌 무게가 얼마고, 어떤 목재를 사용했고, 심지어 공사비로 얼마를 지출했는지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설계와 시공 부분은 그림과 해설을 따로 붙여 놓아 '화성성역의궤'만 있으면 화성은 얼마든지 다시 지을 수 있다. 이는 화성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학적이라는 반증이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도 당시 소견에서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한 과학적 특징을 골고루 갖춘 근대 초기 군사 건축물의 모범"이라며 "성곽은 이제 겨우 200년에 지나지 않지만 제각각 지닌 예술적 가치를 감안할 때 마땅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려야 한다."고 극찬했다.

 

효원의 종(모든 이에게 효성심을 심어주고, 나라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수원시민의 염원을 담아 만든 종)

 

서장대에 다시 와서 성곽일주를 마칩니다..

 

서장대 앞에 있는 소나무가 아주 멋지네요..

 

서장대와 서노대..

 

화성 순환열차(서장대에서 동장대까지 운행/성인 1,500원)..

 

수원 화성의 성곽길은 당대 과학의 결정체요 멋진 경치까지 아우르는 소중한 세계문화유산 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회가 되면 화성의 야경을 함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에게 뜻한 바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전날 저녁에 보았던 집 베란다에서 보았던 일몰/ 야경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