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순성길 백악산 새로 개방된 코스 트레킹을 마치고 백사실계곡, 세검정, 홍지문. 석파랑을 둘러보았다..
백사실계곡 가는 길은 가을로 물들어 있고..
백사실계곡 : 팔각정 ~ 능금마을 ~ 백석동천 ~ 현통사에서 마무리하고 세검정 터로 이동..
【백사실계곡】
백사실계곡은 백사실은 북악산(백악산) 아래 있는 계곡으로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문화사적(백석동천, 사적 제462호)과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우수한 자연생태지역으로서 도롱뇽,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다양한 생물체들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1 급수 지표종인 '도롱뇽'은 서울특별시자연환경보전조례에 의한 서울시 보호 야생동물로서 백사실계곡에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어 그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서울의 청정 계곡으로 도롱뇽이 산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터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깊은 숲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과 걸음을 막아서는 크고 작은 계곡의 정취는 이곳이 과연 서울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버들치, 도롱뇽 등의 서식지인 만큼 계곡에 발을 담그지는 말고 그저 풍광만 탐할 것을 권한다. 카페 산모퉁이와 군부대를 지나면 계곡 입구가 나온다. (출처 : 다음 백과)
능금마을로 예전에는 사과가 많았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고 한다..
백사실 계곡에는 개구리와 도롱뇽과 맹꽁이가 산다. 그리고 버들치가 있었다..
낙엽 되어 떨어진 은행나무 잎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여여롭다..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소나무..
계곡을 지나 만나는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로 연못과 우물도 있다..
백사실 계곡은 백사 이항복의 별장이 있어 그 호를 따 이름 지어졌다는 설이 구전으로 전해진다.
유치원 아이들이 이곳에서 행사를 하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작품들이 연 걸리듯 걸려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찾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계곡을 끼고 내려오면 바위에 터를 잡고 있는 조그만 사찰 현통사와 만난다..
현통사 앞에 흘러내리는 물길이 이상하다..
부암동으로 나오면서 본 집으로 불이 난 흔적이 있으며, 그냥 폐가가 되어 있는 것이 안/스럽다..
백사실 계곡의 마무리는 세검정이라 할 수 있다..
【세검정】
세검정은 세검정(洗劍亭)은 서울 창의문(彰義門) 밖에 있던 정자로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웠다고도 하며, 연산군(재위 1494∼1506)의 유흥을 위해 지은 정자라고도 전한다. 세검정이란 이름은 광해군 15년(1623) 인조반정 때 이곳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날을 세웠다고 한 데서 세검(洗劍)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평면상 T자형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영조 24년(1748)에 고쳐지었으나 1941년에 불타 없어져서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검정은 2009년 2월 5일로 세검정 터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이유는 멸실된 유적에 건물을 완전히 새로 복원한 경우는 '터'라는 한글 표현을 붙여주기로 하였다. 그래서 현재 명칭은 세검정 터이다. 세검정은 평화를 상징하는 정자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국적인 건축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위키 백과)
북악산 남쪽 기슭 백운대에서 이어지는 사천 계곡을중심으로 한 세검정 주변 일대는 경관이 아름다운 풍치지구로 유명하다.
세검정을 지나 홍지문으로 이동하였는데 가을이 절정이다..
【홍지문】
홍지문은 한성(漢城)의 북쪽에 있는 문이므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으나, 숙종이 친필로 '홍지문(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달면서부터 이것이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다. 기능적으로도 1413년 폐쇄된 숙정문 대신 실질적인 북대문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홍지문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숙종 41년(1715)에 건축되어 1921년까지 탕춘대성의 성문으로 그 역할을 하였으나 1921년 홍수로 붕괴되어 50여 년간 방치되어 왔다. 이에 서울특별시에서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하였다. 현재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화강암으로 중앙부에 월단(月團, 아치)이 꾸며지고, 그 위에 단층 문루가 세워져 있다. 석축 윗부분 둘레는 여장(女牆)이 있고, 문루는 평면이 40m 2로 우진각 지붕이다.
홍지문 북쪽으로 홍제천(모래내, 사천)을 가로질러 홍지문과 같이 설치하였던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도 1921년에 홍수로 유실되었으나 1977년 홍지문 복원 때 길이 26.72m, 폭 6.8m, 높이 5.23m, 수구 폭 3.76m, 수구 높이 2.78m의 5간의 홍예교(虹霓橋)로 복원하였다. (출처 : 위키 백과)
단풍이 절정입니다..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은행나무도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홍지문과 함께 복원된 오간대수문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반대편에서 본모습으로 이곳이 정문이네요..
북한산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탕춘대성 성곽..
홍지문을 지나 조선말 최고의 경선지로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의 별당인 석파랑으로 이동하였다..
석파랑은 금년 9월 인왕산~안산 산행 당시 잠시 들렀던 곳으로 당시에는 이른 아침이라 문이 닫혀있어 외부만 보았는데 이번에 볼 수 있었다..
석파랑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예가로 일본에 건너가 추사 김정희의「세한도」를 찾아온 소전의 집념이 지어낸 건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집을 짓기 위해 30년 동안 전국 곳곳을 수소문해 목재와 기와 등을 모았다. 운현궁·선희궁·칠궁·이완용의 별장 등의 자재들이다. 덕수궁 돌담이 철거될 때는 트럭 30대 분을 옮겨오기도 했다. 그 자취들을 모아 1963년부터 6년에 걸쳐 건축했다.
건물은 ‘ㄱ’ 자 형의 구조에 맞배지붕을 가졌다.
쇠똥구리로 우리나라에서 멸종되어 몽골에서 쇠똥구리를 가져와 복원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소똥구리가 1971년 마지막으로 발견되어 학계에서는 사실상 멸종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팔각형의 창이 이채롭네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촌으로 이동을 하여 통닭과 시원한 생맥주로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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