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2020. 11. 14일 토요일)】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한다.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또한 북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이 청계천의 최장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장벽의 구실을 한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395년(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림과 시문으로 남겼다.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북악산 일대를 사적 및 명승지 제10호로 지정하였다가 2009년 명승 제67호로 지정하였다. 명승지정 명칭은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정하였다. 즉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북악산이란 이름 대신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으로 회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 :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는 서울 4 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 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三淸公園)이 있고, 동쪽에는 숙정문(肅靖門)이 있다.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 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이다. 이 문은 1396년(태조 5)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다.
1968년 1·21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 개방 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 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2020년 11월 1일부터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 구간이 개방되었다. 북측면 개방으로 서대문구 안산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중단 없이 산행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다음 백과)
혜화문은 부암동 창의문에서 백악산을 너머 성북동을 지나 창경궁로 북쪽에 이르는
서울한양도성 백악 구간의 끝이자 시작하는 지점으로 이곳에서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혜화문】
혜화문(惠化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 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동쪽의 소문이다. 숙정문을 대신하여 한양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였다. 동소문(東小門)이라는 속칭이 있는데, 이는 조선 초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1592년 문루가 불타 1744년에 재건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었고 1994년에 원래 위치에서 북서쪽으로 13m 이동하여 복원되었으나, 모양도 실제와 같지 않게 엇비슷하게 지어진 것이며 현판의 글씨 또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 있다.
본래 홍화문(弘化門)이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발음이 같다 하여 혜화문으로 이름을 고쳤다. 일반적으로 홍예 안쪽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어야 하나, 혜화문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문 주변에 새가 많아 용 대신 새들의 왕인 봉황을 이용하여 새들을 쫓고 악한 기운을 막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위키백과)
추진코스 : 혜화문 ~ 와룡공원 ~ 말바위 안내소 ~ 곡장 ~ 백악산 정상 ~ 곡장 ~ 팔각정 ~ 백사실계곡 ~ 세검정 ~ 홍지문 ~ 석파랑
까치밥 홍시에 참새들이 주인행세하네요..
아래 사진처럼 성곽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반복하면서 약 15분 후 위 사진으로 이어집니다..
성곽 뒤쪽으로는 길이 연결되어 있지 않네요..
절정의 단풍나무, 은행나무와 푸르름을 간작한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깊어가는 가을의 멋을 느껴봅니다..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단풍나무..
성 밖의를 얹어 놓은 집 앞 마당에서
마늘을 까고 있는 주민의 모습에서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삶의 애환을 엿봅니다..
벌집 형태의 주택단지도 보이고..
성 밖으로도 나무 태그 계단길이 성곽을 따라 조성되어 있고, 와룡공원으로 이어집니다..
와룡공원을 지나면서부터는 이미 몇 차례 다닌 길입니다..
나무가 성곽을 사모하는지 성곽 쪽으로 휘어져서 자라고 있네요..
말바위 가기 전의 전망대에서 본 북한산 보현봉과 팔각정과 삼청각..
말바위입니다..
말바위는 조선시대 말을 타고 온 문무백관이 녹음을 만끽하며 시를 읊고 쉬던 자리였다고 전해진다. 또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바위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말바위 부근의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말바위 안내소 가는 길..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단풍나무가 있는 곳이 이번에 새로 개방된 곡장입니다..
기묘하게 틀어진 소나무..
숙정문으로 지금은 공사 중이라 바깥을 통제하더군요..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문으로 1395년(태조 4)에 건립되었으며 당시에는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하였다. 이문은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그 결과 현재 이곳 소나무 숲길이 아주 운치 있게 되어 이곳의 풍경이 북악산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철 모르는 개나리도 피어있고..
기품 있는 소나무..
촛대바위로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네요..
촛대바위는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군사시설문 지붕을 뚫고 자라고 있는 멋진 소나무가..
단풍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면 이번에 새로 개통한 곡장이 나옵니다..
곡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아래 왼쪽은 곡장에서 팔각정으로 나가는 문이고, 오른쪽은 곡장에서 청운대로 이어지는 성곽입니다..
이 성곽 바깥 길이 이번에 새로 개방된 길입니다..
북한산 보현봉과 지나 온 곡정 부근도 보이네요..
북한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좌로부터 족두리봉, 향로,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 문수봉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청운대에 도착하고(사람이 많아 일단 통과합니다)/ 북악산 가는 길에 있는 68년 1.21 사태 당시 무장공비가 쏜 총알 자국..
백악산 정상 가는 길에서 본 청운대로 역시 사람들이 많이 있네요..
청운대와 성곽 외곽으로 곡장까지 이번에 새로 개방된 성곽길이 보입니다..
백악산 정상 인증..
【북악산(北岳山)】
북악산(342m)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하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북악은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북악은 남산에 대칭하여 칭했으며,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북악산은 1395년(태조 5) 시축 한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기점으로서 북악산에서 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출처 : Daum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편집]
대여섯 번 갔었던 북악산 산행에서 이번에 최고로 많은 인파를 봅니다..
북악산 정상에서 본모습으로 청운대, 곡장 외곡길은 물론 멀리 북한산 보현봉, 형제봉이 보입니다..
곡장과 가야 할 팔각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곡장 직전에 있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고..
지나 온 북악산 정상이 보이고..
단풍나무 구멍이 난 곳에서..
곡장에서 북악산 정상가는 길..
곡장을 지나 팔각정으로 나가는 문..
팔각정입니다..
팔각정에서도 북한산 자락이 시원하게 보입니다..
북악산 정상인 백악산에서 창의문 구간은 새로 개방된 코스를 따라 팔각정으로 감에 따라
이번에는 생략하여 예전 산행(20. 2.8일)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북악산 출입문인 창의문으로 요즘은 주민등록증이 필요 없습니다..
북악산 성곽길도 예쁘네요..
북악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위용..
상당히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갑니다..
북한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족두리봉, 향로,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 문수봉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팔각정을 지나 걸었던 백사실계곡 ~ 세검정 ~ 홍지문 ~ 석파랑 구간은 별도로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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