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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 흥인지문 ~ 남산구간 일부(20. 10.16)

by 산사랑 1 20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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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양도성 낙산구간에 이은 흥인지문 구간과 남산 구간 일부를 걸었다.

남산구간은 작년 3월에 걸었기에 이번에는 갈림길에서 버티고개로 내려가 장충동에서 뒤풀이를 하고 마무리하였다. 참고로 한양도성은 인왕산 구간, 백악구간, 낙산구간, 흥인지문구간, 남산구간, 숭례문 · 정동구간 등이 있다.

 

【흥인지문 구간】

 

흥인지문 구간은 흥인지문을 걸쳐 이간수문, 동대문 운동장 터에 세워진 DDP, 광희문을 연결한다. 간선도로 및 전차 도선이 이미 일제시대 때부터 놓였기 때문에 숭례문-정동 지역 더불어 한양도성이 가장 많이 파손된 지역이다. 오간수문도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 복원 같지 않게 복원되었다. 사실 사대문안을 관통하여 물길이 빠져나가는 청계천은 이전 조선 시대부터 사대문안구역의 하수도 역할도 맡았으며 운반된 퇴적물이 막혀 바닥 준설을 주기적으로 해줘야 했던 곳이다. 이후 한양공고부터 광희문(수구문, 시구문)에 이르는 구간은 그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흥인지문..

【흥인지문】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 대한민국 보물 제1호이며, 속칭 '동대문'이라 부른다. 본래 ‘흥인문’이었으나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비어있다 하여 ‘지’자를 넣어 무게감을 실어 주었다고 한다. 1996년 일제강점기 문화재 재평가작업을 통해 ‘흥인지문’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초부터 창건하기 시작해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다. 지대가 낮아 땅을 돋운 후 건설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성문을 건립할 때보다도 오래 걸렸다고 한다. 축조 당시 성문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다. ‘흥인(興仁)’이란 어진 마음을 북 돋운다는 뜻으로, 유교사상의 덕목인 ‘인(仁)’을 의미한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인문이 크게 손상되어 정비할 때에,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비어있다고 하여 ‘지(之)’자를 넣어 무게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등 현판이 세 글자인 다른 도성의 사대문과 달리 네 글자 현판을 달게 되었다.

 

완성된 지 50여 년이 지난 1451년(문종 1)과 1453년(단종 1)에 일부 보수작업이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1868년(고종 5)에 1년 동안 전면적인 개수 공사를 진행해 1869(고종 6)에 완공되었다. 한편, 일본이 1934년에 본래의 이름인 흥인지문이 아닌, 동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하면서 동대문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1996년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흥인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출처 : 다음 백과)

 

흥인지문 구간 : 흥인지문 ~ 광희문 ~ 남산 입구

 

동대문에 물건 구매하러 오는 분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골목이네요..

 

평화시장 앞에 있는 전태일 동상..

 

전태일은 대구 태생으로 초등학교를 4학년에 중퇴하고, 17세 때부터 평화시장의 의류 제조 회사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동료 재단사들과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만들어 평화시장의 노동 조건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노동청과 서울특별시에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묵살당했다. 1970. 11, 13일 22세의 젊은 나이에 노동자의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한 후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청계천..

 

 

오간수교에서 본모습..

 

【오간수교(五間水橋)】

청계천 오간수교(五間水橋)는 율곡로와 장충단로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폭 59.9m, 길이 23m의 다리이다. 조선시대에는 오간수교라는 다리가 없었다. 원래는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에서 광희문(光熙門)으로 이어지는 성벽 아래로 청계천 물을 흘려보내는 오간수문(五間水門)이 있었다. 오간수문은 ‘5간(五間, 다섯 칸)의 수문’이라는 뜻이다. 한양 천도 후 도성의 성벽을 쌓을 때 성안의 물이 빠져나가는 마지막 수문이었다. 오간수문 위로는 흥인지문에서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이 쌓여 있었다.

 

일제가 오간수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다리를 만든 뒤 오간수교라 불렀다. 오간수교는 1926년 확장되었다가 청계천 복개공사 때 완전히 사라졌다가 2005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신축했다. (출처 : 서울 중구 역사문화 자원)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동대문 문화역사공원】

공원 내에는 서울성곽과 이간수문(265m 8,030㎡) 외에도 동대문역사관(1,313㎡), 동대문유구전시장(4,460㎡), 동대문운동장기념관(339㎡), 이벤트홀(2,058㎡), 디자인갤러리(400㎡) 등이 들어섰다. 특히 동대문운동장을 기념하기 위해 남긴 야간경기용 조명탑 2기와 성화대도 자리한다. 문화재발굴조사를 통해 서울성곽(이간수문, 치성)이 드러났으며, 야구장 및 축구장 부지에선 하도감터를 비롯한 조선 전기~후기 건물지유구 44기와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등 조선 전기~일제강점기 때의 도자류 등 주요 유물 1,000여 점이 출토되었다. 현재는 서울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는 역사문화 테마공원이자, 현대의 디자인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전시관 및 행사장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출처 : 다음 백과)

 

동대문운동장에서 발굴된 이간수문..

 

【이간수문】

이간수문(二間水門)은 도성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도성 바깥으로 내보내는 성곽의 문이다. 두 칸 구조의 수문이라 이간수문이다. 수문 위 무지개 모양의 홍예와 물가름을 유도하던 배머리 모양의 석축이 두드러진다.

 

 

동대문 운동장에 있는 명품 소나무들

 

야간경기용 조명탑과 소나무..

 

핑크뮬리(우측)도 보이고..

 

동대문운동장에 있던 야간경기용 조명탑 2기는 성화대와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손기정이 처음으로 성화를 한 성화대도 보존되어 있고..

 

 

 

동대문 디자인 풀라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는 2004년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이라크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를 맡았다.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물이 흐르듯 유려한 구조가 특징이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도 고스란하다. 그녀가 잡은 테마는 ‘환유의 풍경(The Metonymic Landscape)’이다.

 

광희문(시구문)

 

【광희문】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 2동에 있으며,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으로 수구문 또는 시구문이라고도 한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쌓을 때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인 남동쪽에 세운 것으로, 1711년(숙종 37)에 고쳐 쌓았다. 1719년(숙종 45) 석축 위에 문루를 짓고 '광희문'이란 현판을 걸었다. 그 후 언제 무너졌는지 알 수 없으며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복원 시 홍예석축을 해체해 남쪽으로 15m 옮기고, 문루 12평을 새로 짓고 주변의 200평을 녹지화했다.(출처 : 다음 백과)

* 시구문은 시신이 나가는 문인데 병자호란 당시 산자들의 왕인 인조가 이 문을 통하여 남한산성으로 대피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 같다.

 

광희문 도로 건너 맞은편에 있는 성곽의 흔적..

 

광희문에서 남산구간으로 가는 길에 있는 건물들..

 

성곽과 교회가 부조화 속의 조화 같네요..

 

천주교 신당동 성당도 있고..

 

이 건물 외벽은 성곽의 바위들로 만든 것 같네요..

 

남산구간으로 들어갑니다..

 

장충체육관이 보이고..

【장충체육관】

서울특별시가 제1회 동아시아 여자농구대회 및 국제경기대회를 위해 1963년 2월 1일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산 4번지에 준공했다. 규모는 대지 1만 867㎡에 건평 7,755㎡로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와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때는 유도경기장으로 활용되었다. 겨울철에는 국내 배구와 농구 경기가 열리고 씨름경기 및 각종 문화행사도 개최되고 있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 필리핀의 원조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남산 성곽 길..

 

신라호텔 내에는 많은 조각품이 있으며 그중 하나입니다..

 

신라호텔 1경으로 신라주점이라고 하네요..

 

신라호텔 내의 조각품들..

 

 

 

성곽 바깥의 모습..

 

곽길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신라호텔이 보이네요..

 

여기서 성곽길은 우측으로 가야 되나 시간상 버티고개로 진행합니다..

 

성곽길은 여기서 끊어졌네요..

 

성곽마루..

 

실내골프장 뒤로 남산타워가 보이고..

 

베티고개로 내려와 트레킹을 마치고 장충동 족발집에서 간단히 뒤풀이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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