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본 북알프스
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충청)

화양구곡과 무이구곡(21. 7.17)

by 산사랑 1 2021. 7. 29.
반응형

화양구곡국가명승 제110호

2014 8 28일에 명승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괴산 화양구곡은 속리산 국립공원을 흐르는 화양천 3 구간에 걸쳐 하류에 해당하는 제1곡부터 상류에 해당하는 제9곡까지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곳이다. 아홉 개 골짜기 모두가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면서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화양구곡은 제1곡 경천벽(擎天壁), 2곡 운영담(雲影潭), 제3곡은 읍궁암(泣弓巖),4곡 금사담(金沙潭), 5곡 첨성대(瞻星臺), 6곡 능운대(凌雲臺), 7곡 와룡암(臥龍巖), 8곡 학소대(鶴巢臺), 9곡 파천(巴川)이다. 9개 골짜기의 이름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9개의 계곡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즉 화양구곡은 기암괴석이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경천벽,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치는 운영담, 송시열이 효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침마다 통곡하였다는 읍궁암,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흐른다는 금사담, 바위의 모습이 층층이 쌓인 듯한 첨성대, 구름을 찌를 듯한 바위인 능운대, 넓은 바위가 꿈틀거리는 용을 닮았다는 와룡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언덕 아래로 두루미가 집을 짓고 새끼를 키웠다는 학소대, 옥처럼 깨끗하게 계곡의 끝을 장식하는 바위인 파천(파곶이라( 불리기도 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4곡에 해당하는 금사담 주변은 송시열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지은 암서재(巖棲齋)가 있어 화양구곡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암서재 건물은 198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주변에 펼쳐진 선유동계곡과 함께 속리산의 북쪽을 수려하게 만드는 자연경관이다. 1975년에 화양동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에 속리산 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화양계곡은 넓고 깨끗한 암반과 맑은 하천, 우뚝하게 솟은 기암절벽과 울창한 수목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예로부터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따라서 화양동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출처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한국의 주자학자들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고, 구곡을 조성했다. 속리산의 화양구곡은 이런 경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주자학자들은 단지 주자의 학문만 본받으려 한 것이 아니다. 주자(이상적인 인간인 성인) 그 자체가 되고자 했다.

 

화양구곡 중 가장 아름다운 제4곡 금사담(맑고 깨끗한 물과 금사라기 같은 모래가 널리 펼쳐져 있다는 의미)과 암서재..

 층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여 유래된 화양 제1곡인 경천벽..

화양구곡의 제2곡인 계곡의 맑은 물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

바위와 솔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운영담으로 우측 바위 하단에 운영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제2곡을 자세히 보면 좌측 바위는 마치 사람 얼굴 형상을 띠고 있고 바위 사위에 나무들이 멋지게 자라고 있습니다..

송시열이 ‘효종의 승하를 슬퍼하여 매일 새벽마다 너른 바위에서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고 하는 제3곡인 읍궁암..

화양 구곡 중 가장 운치가 있는 제4곡인 금사담(맑고 깨끗한 물과 금사라기 같은 모래가 널리 펼쳐져 있다는 의미)과 암서재

겹쳐있는 바위가 약 100미터에 이르며 그 위에서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화양 제5곡인 첨성대..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이름을 붙인’ 화양 제6곡인 능운대(凌雲臺)

길게 늘어진 바위의 모습이 용이 꿈틀거리는 듯’ 한 모습을 한다고 하는 제7곡 와룡암..

'청학(靑鶴)이 바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라고 하는 제8곡인 학소대(鶴巢臺)

계곡 전체에 희고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흐르는 물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제9곡 파천으로 화양구곡의 백미이자 제일가는 비경.. 

 

화양구곡 등 우리나라 구곡의 원조인 중국 무의산의 무이구곡

 

무이구곡

무이구곡은 중국 푸젠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 계곡의 아홉 구비[九曲]로 약 8의 계곡에 자리한 구곡은 각각 승진동(升眞洞), 옥녀봉(玉女峯), 선기암(仙機巖),금계암(金鷄巖),철적정(鐵笛亭),선장봉(仙掌峯), 석당사(石唐寺), 고루암(鼓樓巖),신촌시(新村市)이다.

 

남송(南宋) 때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 11831183년 무이구곡의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썼고, 이듬해무이구곡도가(武夷九曲圖歌)를 썼다. 무이구곡도가는 첫 수를 제외하고는 무이구곡의 산과 물의 경치를 묘사하고 있다. 자연 묘사를 주로 하면서 도학(道學 : 주자학․성리학)을 공부하는 단계적 과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무이구곡 일곡에 있는 대왕암(300여 m)은 무이산에서 가장 웅장한 바위산으로 옥녀봉 맞은편에 있으며,

구름을 뚫고 하늘을 받치고 우뚝 선 모습이 영웅의 형상을 띄고 있어 2곡에 있는 옥녀봉과 사랑에 빠집니다.

 

2곡에는 무이계곡의 백미인 옥녀봉이 있으며 주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二曲亭亭玉女峯(이곡정정옥녀봉) 두 굽이돌아 우뚝 솟은 옥녀봉이여

揷花臨水爲誰容(삽화임수위수용) 꽃을 들고 물가에서 누구를 기다리시나

道人不復荒坮夢(도인부부황대몽) 도인은 황대몽 다시 꾸지 않으리

興入前山翠幾重(흥입전산취기중) 흥에 겨워 앞산에 들어가니 프르름이 겹겹이네

 

3곡 소장봉(小藏峯)에 이르면 절벽 틈에 설치된 특이한 것들이 드러나는데

배 모양의 목제 관이 가학선관(架壑船棺)이고 무지개다리판 모양으로 선관을 고정시키는 목판이 홍판교(虹板橋)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가학선관은 골짜기에 설치한 배라는 뜻으로 배 모양의 관(棺)을 말하고,

신선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남긴 배(舟)로서 배 안에는 유골이 있었다고 하는데,

비바람에도 썩지 않고 천년을 그대로 있었다고 합니다.

 

4곡으로 들어갑니다.. 멋집니다..

4곡으로 돌아들면 엄청난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는데 그것이 대장봉(大藏峯)이라 하며,

도가(道家)가 대장경을 숨겨둔 곳이라고 합니다.

대장봉 아래의 와룡담은 구곡 중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고 하네요..

 

뗏목은 5곡으로 들어섭니다..

5곡은 무이구곡의 중심으로 계곡 북쪽으로는 은병봉이 우뚝 솟아있고 그 아래 주희가 세운 무이정사가 있습니다.

주희는 5곡에서 산은 높고 구름이 깊어 연우가 항상 평립의 입구에 가득한데,

나그네(주희)는 수풀을 거닐 때 들려오는 뱃사공의 노랫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진다고 노래했습니다. 

 

주희는 6곡에 이르러 북쪽에 우뚝 솟은 천유봉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자연의 극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육곡창병요벽만(六曲蒼屛繞碧灣) 모자종일암자궐(茅茨終日掩柴關) 육곡의 푸른 병풍은 물굽이 휘감아 돌고 이끼는 종일토록 사립문 덮고 있네.’‘객래의도암 화락(客來倚櫂巖花落) 원조불경춘의한(猿鳥不驚春意閑) 나그네 노에 몸을 기대니 바위엔 꽃잎 휘날리고 봄빛에 원숭이와 새소리에 봄날이 저무네... 병풍 같은 기암은 남아 있으되 선장봉 아래의 집도 없고, 새며 원숭이의 소리로 저무는 봄날을 맞이할 수도 없지만 그 유장한 가락은 계곡 내에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는 듯했다.

 

 

 뗏목들이 암릉을 따라 휘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인 사진으로만 보던 천유봉 제일의 경관입니다..


7곡으로 흘러가면서 보았던 절경입니다..


제8곡인 고루암의 둥근 바위 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네요..


주희가 읊은 9곡으로

 ‘구곡장궁안활연(九曲將窮眼豁然) 상마우로애평천(桑麻雨露靄平川) 

‘어랑갱공비원로(漁郞更貢批源路) 제시인간별유천(除是人間別有川)

장차 구곡의 시야가 열리니 평천이 흐르고 뽕나무와 삼이 이슬비에 젖어 있으니’

어부는 다시 도원을 찾지 마라. 이곳 외의 별천지를 본 적이 없었노라.’ 

 

 물속에 투영된 모습이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