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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영남)

전천용굴, 문무대왕 수중능, 감은사지, 양남주상절리 등(21.11.04)

by 산사랑 1 202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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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을 구경한 후 식사를 한 후 경주바다로 이동을 하여 전천용굴, 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 수중능, 양남주상절리, 읍천항을 구경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가는 도중에 경주 중앙시장에 들러 '여여당' 주인의 딸이 운영하는 '경주 민속한우 직판장'에 들러 한우를 구매하여 숙소에 돌아와 '숙소 주인이 제공한 전어무침과 한우, 그리고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감은사

682년(신문왕 2) 신문왕이 부왕 문무왕의 뜻을 이어 창건하였으며, 사지의 부근인 동해바다에는 문무왕의 해중릉(海中陵)인 대왕암(大王巖)이 있다. 문무왕은 해변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려 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위독하게 되었다. 문무왕은 승려 지의(智義)에게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 것”을 유언하고 죽자 이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안장하였으며,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라 하였다.

 

그때 금당(金堂) 아래에 용혈을 파서 화룡(化龍)한 문무왕이 해류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682년 신문왕은동해의 호국룡이 된 문무왕과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아들로 태어난 김유신(金庾信)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보물인 신비스러운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었다.

 

그 뒤 이 절은 황룡사(皇龍寺)·사천왕사(四天王寺) 등과 함께 호국의 사찰로서 명맥을 이어왔으나,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절터에는 국보 제112호인 삼층석탑 2기가 있다. 제일 윗부분인 찰주(擦柱)의 높이까지를 합하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탑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이 탑은 고선사(高仙寺)의 삼층석탑, 나원리의 오층석탑 등과 함께 신라 통일기의 전형적인 탑파양식을 따르고 있다.

 

1966년 동서로 나란히 있는 쌍탑 중 서 삼층석탑에서 임금이 타는 수레의 형태인 보련형(寶輦形) 사리함이 발견되었는데, 보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1996년 동 삼층석탑이 해체 수리되면서 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것과 형태가 유사한 사리함이 발견되었고, 사리 10여과가 나왔다. 동탑의 사리함은 지붕인 천개(天蓋)의 양식이 서역의 영향을 받았음을 6세기에 조영된 중국 당대(唐代)의 둔황(敦煌) 막고굴(莫高窟) 벽화 및 구조 등과 비교하여 알 수 있었으며, 1966년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가 진신사리(眞身舍利) 임에 비해 동탑에서 나온 사리는 문무왕의 사리가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경주 석굴암 구경을 마치고 바다로 갑니다..

오후 첫 번째 일정은 전천용굴이며, 시간상 단용굴은 들르지 못하고 사룡굴만 볼 수 있었다. 

전촌항 용굴

네비에 <용굴>이라고 치면 <전촌항 공용주차장>까지 인도하고, 방파제 옆 주차장(제일 끝 부둣가 횟집> 앞 정도에 주차하고 나서 왼쪽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데크를 설치 해 놓았는데 데크를 따라 용굴까지 거리는 약 300미터 정도이지만 오르막 내리막을 두 번 정도 해야 하기에 시간은 약 10분 정도 걸림. / 일출각: 2월 말이나 3월경(?)

사룡굴 입구, 좌측에 있는 굴/ 아래는 우측에 있는 굴

전천항 용굴 가는 길에 있는 암초들..

국보 제112호인 감은사지 삼층석탑으로 제일 윗부분인 찰주(擦柱)의 높이까지를 합하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탑 중에서 가장 크다..

금당, 강당, 중문이 한 줄로 배치되어 있다.

금당 앞에 쌍탑이 있고 건물들을 회랑으로 두른 신라시대의 전형적 가람 배치가 보인다.

동서의 쌍탑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양탑은 같은 구조와 규모로 되어 있으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사후에도 동해에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뜻을 받들어 

문무대왕릉이 있는 동해의 물이 절 아래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배수시설을 설치한 점이 특징이다.  

이견대에서 본 문무대왕 수중능..

이견대와 문무대왕 수증능

이견대

사적 제159호이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깃들인 해중왕릉 대왕암(大王巖)이 보이는 감은사지(感恩寺址) 앞에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이 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처음 창건하였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었다. 아들 신문왕이 681년 7월 7일에 왕위에 올라 682년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아래에 동쪽을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는데,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 하였다고 한다. 682년 5월에는 왕이 이곳에서 용으로부터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관련된 「이견대가(利見臺歌)」라는 가요가 있었다고 하는데 작자는 어느 왕이라 하나 잘 알 수 없고 가사는 전하지 않지만,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어느 왕의 부자가 오랫동안 헤어져 지내다가 대(臺)를 지어 서로 만나보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이견대라 하고, 그 부자의 즐거움이 비할 데 없어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해파랑길 10코스의 백미로 천연기념물인 양남 부채꼴 주상절리..

【경주 양남 주상절리】
양남 주상절리군은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하며, 동해안을 따라 발달한 주상절리들의 발달 규모 및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받아 2012년 9월 25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주상절리는 주로 현무암과 같은 화산암에서 형성되는 육각기둥 모양의 돌기둥을 의미한다. 주상절리 명소로 유명한 제주도 중문 주상절리나 광주의 무등산 주상절리는 위로 솟은 주상절리이나, 이곳 양남 주상절리군을 이루는 주상절리들은 1.7 km 정도의 짧은 해안 사이에 부채꼴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위로 솟은 주상절리 등 다양한 모양을 가지는 주상절리들이 모여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둥글게 펼쳐진 형태의 부채꼴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사례이며, 이들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도 아직 밝혀진 바 없어 많은 지질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양남주상절리군을 이루는 현무암은 한반도와 붙어있던 일본이 잡아당기는 힘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동해가 형성되었을 때 만들어졌다. 잡아당기는 힘은 양남주상절리군 일대에도 영향을 주어 땅이 벌어지게 되었고, 벌어진 틈으로 땅 속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솟아오르면서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양남주상절리군은 주상절리 자체뿐만 아니라 동해가 만들어질 당시 환경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뛰어난 지질학적 가치를 가진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전망대 제일 위층에서 본모습으로 부채꼴 사이사이로 파도가 밀려옵니다..

아래 주상절리는 '19. 6월 해파랑길 10코스 걸을 때 본 주상절리들입니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에서 처음 만난 주상절리로 기울어진 주상절리라고 합니다..

두 번째 만나는 누워있는 주상절리입니다..

위로 솟은 주상절리..

전망대 2층에서 본 부채꼴 주상절리입니다..

읍천항 벽화마을입니다..

읍천항 백화마을

울산과 감포 사이에 있는 읍천항은 낚시터와 관광지로 관심이 주목되는 항으로 동해 근해에서 가장 높은 해수온을 보이는 읍천 앞바다는 사철 감성돔, 돌돔, 벵에돔 입질을 받을 수 있다. 바닥 지형이 잘 발달된 단층형으로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는데 특히 5월이면 벵에돔 입질이 절정이다. 인근에 위치한 관성해수욕장은 깨끗한 청정해역과 송림이 어우러져 반원형을 그리고 있으며 골프장, 콘도, 놀이시설 등의 관광지도 주변에 있어서 해양레저와 여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읍천항은 벽화마을로 유명한 데 이 벽화마을은 2010년 인근 월성원자력본부가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아름다운 지역 만들기' 사업으로 벌린 '읍천항 갤러리'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벌써 11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벽화가 희미해진 것들도 있어 보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둘째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인 '여여당' 주인의 딸이 운영하는 경주민속한우 직판장에서 한우를 구매하여 다음날 택배로 부치고 일부는 저녁에 넉으려고 구매하였다. 한우는 등심 100g에 14,000원으로 일반서민들은 먹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먹거리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쨋 날 저녁에 먹은 것으로 좌측은 '여여당' 주인이 제공한 전어회 무침이고, 우측은 한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