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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영남)

경주 배동 삼릉과 대릉원(21.11.04)

by 산사랑 1 2021.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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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행 이틀 째 첫 번째 코스는 이른 아침 남산 지역에 있는 배롱 삼릉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아침에 숙소에서 일어나 배동 삼릉으로 향하였으며, 이곳은 12년 3월 남산 산행을 할 당시 둘러본 곳으로 이곳 소나무 숲은 제대로 자란 것이 한 그루도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으며, 그 연유로 인하여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경주 배동 삼릉으로 박씨 3 왕의 무덤이라고 하나 확실한 기록이 전혀 없는 곳이다..

경주 배동 삼릉사적 제219

경주 배동 삼릉(慶州 拜洞 三陵)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는, 신라 시대 왕릉군이다. 1971년 4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19호 배리 삼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세 고분 모두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나 아무런 장식이나 석조물이 없고, 현재 놓여 있는 3개의 상석도 모두 최근에 만들어놓은 것이다.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다. 아래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 왕의 무덤이라 전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 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 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근처 북쪽에 포석정이, 남쪽에 경애왕릉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에서 발췌)

 

배동 삼릉이 유명한 것은 제 멋대로 자란 소나무들이 연무가 살짝 끼어 있는 상태에서 붉은 해가 떠 오를때 모습 때문이다..

배롱 삼릉의 상징인 소나무 숲으로 구불구불하거나 옆으로 눕기도 하고 제대로 자란 소나무 한 그루도 없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삼릉 솔숲은 형산강 팔경에 선정되어 사진작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반대편에서 본 삼릉의 모습..

아침식사 후 대릉원후문으로 이동하여 천마총 등을 구경하였다(입장료 1인 3,000원)..

대릉원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공원. 1973년 ‘대릉원’이란 이름으로 1976년 개장했다. 정부의 경주종합개발계획에 의거, 1973년 발굴조사를 시작해 1976년 개장했으며 약 2년 반에 걸쳐 옛 고분을 복원했으며 그 주위를 공원으로 조성했다. 경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분군으로, 98호분인 황남대총과 155분인 천마총이 있으며 미추왕릉을 비롯한 23개의 고분이 분포한다. 특히 155호분에서는 천마도 기마인물도 서조도 등이 출품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 다음 백과)

 

대릉원 사진(출처 : 나무 위키)

철 모르는 영산홍이 곳곳에 피어 있고..

석조유물..

고분들로 대릉원에는 23기의 고분이 있다..

대릉원의 포토죤인 목련으로 3월 말 ~ 4월 초면 장관이며, 평소 주말에도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길게 서야 되는 곳이다.. 

평일이라서 길도 한적하고 고즈넉하여 산책하기 최고입니다..

연못에 비친 고분..

천마총에 들어갑니다..

천마총

천마총(天馬塚)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조성한 고분공원[大陵苑] 안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황남동 제155호분으로 관리되어 왔다. 당시 정부의 경주종합개발계획에 의거 황남동 제98호 고분의 내부를 공개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제98호분은 한국 최대형 고분이므로, 이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이 고분보다 소형의 고분을 발굴하여 경험과 정보를 얻은 후, 제98호분을 본격적으로 발굴한다는 방침을 세워 제155호분을 먼저 발굴하게 되었다. 1973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조사단에 의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제155호분 천마총도 대형에 속하는 고분이고, 당시까지 발굴 조사된 고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거의 완형에 가까운 고분이어서 신라의 왕릉급 대형고분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제공하였다. 제155호 고분이었다가 1973년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채색으로 천마를 그린 말다래(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 되었다. 무덤의 축조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봉토로 덮인 돌무지 덧널무덤으로서 바닥지름은 47m, 높이는 12.7m에 달한다. 무덤의 축조방법은 먼저 지면을 고른 뒤 바깥 둘레돌을 돌리고 그 안에 점토와 자갈을 다져쌓기 해서 올린 후 여기에 덧널을 동서방향으로 설치하고 덧널 주위에 돌무지를 쌓은 뒤 봉토를 씌웠다. 덧널 내부에는 강돌과 잔자갈로 석단을 돌리고 그 위에 유물을 배열했으며 석단 내부에 널을 동서방향으로 안치했다. 석단 바깥쪽에는 널과 직교하여 남북방향으로 껴묻거리 상자를 놓았다.

 

천마총에서는 장니 천마도(국보 제207호), 천마총 금관(국보 제188호), 천마총 관모(국보 제189호), 천마총 금제 허리띠(국보 제190호) 등 부장품 1만 1297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천마총 금관은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가장 크다고 하며 단군 이래 한국인이 고스란히 발굴해낸 최초의 금관이다. 천마도는 자작나무 수피로 만들어 천 수백 년간 산성 토양 속에 파묻혔는데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이 기적이라고 한다. (출처 : 다음 백과 / 나무 위키 등을 중심으로 재작성)

 

천마총은 1973년에 발굴을 실시하였다..

천마총 금관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죽제 금동 천마문 말다래..

천마총 죽재 금동 천마문 말다래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와는 또 다른 천마도이다. 원래는 기존 천마도 2점과 같이 천마총에서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바로 전 국민에게 공개한 국보 제207호 천마도와는 달리 백화 수피제 천마도 말다래와 이 유물 2점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발견 당시 유물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비밀리에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 특별 보관되다가 2014년 3월, 발굴 40여 년 만에 처음 학계에 보존처리 공개한 것이다. (출처 : 나무 위키)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로 천마(?)로 추정되던 말의 머리에 날카로운 뿔이 2개 달려 천마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천마총 천마총 장니 천마도

경주시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 장니로, 국보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고분에 벽화를 그리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천마도는 지금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신라의 회화이다. (출처 : 나무 위키)

 

금형 말안장 꾸미개인 금동솟을장식

천마총 금동 말안장 꾸미개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말 장식으로 제작 연대는 5세기~6세기(서기 400~500년) 사이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의 기마병들이 위세용으로 말 위에 꾸미던 황금 장식이다. 황금으로 도금하여 원형을 뜬 후 화려한 장식을 한 것으로, 피장자의 높은 신분을 보여주는 위세품이다. 신라 마립간 시대 최고위층이 사용한 말갖춤 중 하나로, 신라의 금세공 기술 및 금속공예사, 그리고 기마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나무 위키)

 

금동투조 말안장 가리개 한쌍. 

천마총 금동투조 말안장 가리개 한쌍

천마총 금동투조 말안장 가리개 한쌍은 1,500여 년 전 신라의 지배자가 말을 몰며 사용하던 말안장으로 고대 신라의 화려한 기마문화를 증명하는 자료다. 사람이 말을 탈 때 말 잔등을 보호하고 편하게 탈 수 있는 말감춤류로 제작되었으며, 황금 도금으로 금형을 뜬 안장 틀에 정교하게 투조 기법을 사용하였다. (출처 : 나무 위키)

 

천마총 금관..


천마총 금관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관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금관으로 유명하다. 제작연대는 대략 5~6세기라고 추정한다. 아직 완전히 확정되진 않았지만 지증왕의 금관이라고 추정한다. 그 화려함이 당시 팽창기에 있던 고신라(古新羅)의 국력과 강력해진 왕권을 상징한다. 천마총 관모, 천마총 금제 허리띠 등과 함께 세트로 구성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재질을 조사한 결과 순도 83.5% 순금으로 판명되었다. 1978년 12월 7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천마총에 전시된 금관은 모조품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국보이기 때문에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출처 : 위키백과)

 

금제 조익형 관식(보물 618호)

천마총 금제 관식

천마총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신라의 황금 관식 2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8년 12월 7일 각각 대한민국 보물 제617호와 제618호로 지정되어 있다. 2점 모두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 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보물 제617호 나비형금제관식(금제접형관식) 높이 23㎝, 너비 23㎝. / 보물 제618호 금제조익형관식 높이 45㎝, 양 날개 너비 40㎝.

 

보물 제617호 나비형금제관식은 기존 조익형 관식과는 다르게 새 날개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비 모양으로 변형되어 있다. 경주 황오동 100번지 1호분 출토 은제 관식, 의성 탑리(塔里) 관식과 비슷한 양식이다. 조익형 관식의 착용자보다는 낮은 계급의 인물이 착용하던 형태다.

 

보물 제618호인 금제조익형관식은 새가 힘차게 날개짓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서기 300년~500년대에 크게 유행하던 양식으로, 신라뿐 아니라 동 시기 고구려와 백제의 금속공예품에도 이러한 양식이 많이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금관총 관식 및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 모관, 은모관, 은과대, 금동 재갈 등이 있다.(출처 : 위키백과)

 

천마총의 외래유물..

유라잔/야광조개국자/은제허리띠/삼강유리구슬/곱은옥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천마총 구경하고 나오면서 본 고분 앞에 '황남대촉사적기..

엄청 큰 감나무에 감이 많이 달려 있네요..

신라 최초의 김 씨왕인 김알지의 후손인 미추왕릉..

미추왕릉

김알지의 후예로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인 신라 제13대 미추왕(재위 262~284년)을 모신 곳이다. 백제의 여러 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13대 왕인 미추 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미추왕릉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유례왕 14년(297) 이서고국(伊西古國) 사람이 수도인 금성을 공격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군사가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 누군가 미추왕릉에 댓잎을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미추왕이 죽어서도 신라를 도와주었다 하여 미추왕릉을 죽장릉(竹長陵), 죽현릉(竹現陵)이라 부른다고 한다.

 

경주 황남동 무덤들 중 가장 잘 정비된 대릉원 내에 높이 12.4m, 지름 56.7m의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 무덤이다. 무덤 앞에는 혼이 머무는 자리인 혼유석이 있고, 담장을 돌려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무덤 앞쪽에는 숭혜전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794년 다시 세운 것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이다. 내부는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출처 ; 위키벡과)

 

다음은 보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