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9코스에 있는 경포호에는 허난설헌 생가와 경포대 등의 명소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경포호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곳 명소들을 들러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될 수 있다..
갈대와 호수너머 경포호의 상징이 되어 버린 스카이베이호텔이 우뚝 서 있네요..
【경포호】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위치한 석호로 시가지로부터 북동쪽 약 6㎞ 지점에 있으며, 면적은 1.064㎢, 호수둘레 5.21㎞, 준설 후의 평균 수심은 약 0.96m이다. 호숫물이 거울과 같이 맑다고 하여 경호(鏡湖)라고도 불린다. 경포천 하구 일대가 사빈의 발달로 폐쇄되면서 형성된 석호로, 본래 경포호는 경포천과 안현천을 유역으로 하였으나 유역에서 배출된 토사의 유입과 인위적인 매립으로 호수의 면적이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왔다. 1966년에 실시된 경포천 및 안현천의 유로 변경과 호안공사로 현재와 같은 호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호반 서쪽의 경포대는 예로부터 경호를 배경으로 한 관동팔경 중의 하나로 유명하고, 현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호수 가운데에는 홍장암(紅粧巖)과 조암(鳥巖)이라는 바위섬이 있는데, 조암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쓴 ‘鳥巖(조암)’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주변에는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된 선교장(船橋莊)을 비롯하여 해운정(海雲亭)·방해정·경호정(鏡湖亭)·금란정(金蘭亭) 등의 옛날 건축물이 많이 있다. 호수를 동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해안사주는 이른바 경포해수욕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해안과 호수주위는 소나무숲과 벚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조성하고 있다. 해수욕장 가까이에 있는 경포대는 1326년(충숙왕 13)에 창건되었는데, 1508년(중종 3)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출처 : Daum백과]
경포호에 오리들이 놀고 있습니다..
경포호의 상징이 되어 버린 스카이베이호텔..
경포호 탐방 : 호수광장 ~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 3.1 운동 기념공원 ~ 경포대 ~ 홍장암 ~ 중앙광장
*선교장과 오죽헌을 트레킹 후 별도 방문
허난설헌 기념공원 가는 길의 멋진 소나무들..
소나무 숲속에 조성한 것으로 '오징어 게임'의 첫 번째 게임에 등장한 숨바꼭질 놀이도 있더군요
호숫길을 따라 조성된 조각들..
습지에 왜가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당겨 잡은 모습..
일송정 푸른 솔이 우뚝 서 있고..
허난설헌 기념공원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 숲길..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입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강릉시 초당동에 위치한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허난설헌 이 두 남매를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이다. 이 공원은 허난설헌 생가 터,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난설헌 생가터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사랑 마당이 있고, 그 안에 네모나게 지어진 본채가 있다. 본채는 두 개의 대문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갈리는데, 그 사이에 곳간이 있어 내외를 구분하고 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은 목조 한식 기와로 이루어진 단층 건물이다. 내부는 네모나게 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와 만나고 이어 주전시실과 소전시실로 이어진다. (출처 : 강원도청)
초당동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은 1912년 초계정씨(草溪鄭氏) 후손 정호경의 집(강원도 문화재자료 59호)으로 초당동고택초당동 고택이라 불렀는데 강릉시가 구입하여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으로 조성한 곳이다. 이곳에는 ‘허난설헌 생가터’라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옛 건물 한 동(棟)이 있는데 ‘생가(生家)’가 아니고 ‘생가터(生家址)’이니 이 건물은 아니고 그 터에 훗날 다른 건물을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허균(許筠)이 태어난 곳은 난설헌 남매의 외가가 있던 사천진리(沙川津里)로 그곳은 난설헌 남매의 외조부(外祖父) 김광철(金光轍)이 살던 집이다. (출처 : 여행과 낭만 카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기념관 내부에는 허초희와 허균 당대의 현실과 이들의 사상들을 알 수 있는 글들이 있다..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무고하게 역모 혐의를 받고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했다.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나였으며 당시 중국과 일본에 이름을 날린 여류시인이다. 하지만 15세에 안동 김 씨 가문으로 시집을 간 뒤 시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다가 두 아이를 잃고 쇠약해져서 27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자유인이자 개혁가인 허균..
기념관 내부에 있는 허엽의 가계도로 아버지 허엽과 장남 허성, 둘째 허봉, 허난설헌, 허균을 허씨 5문장가라고 부른다.
기념관 바깥에 있는 ‘허씨 5문장 비석’에는 이 다섯 명의 한시(漢詩)가 각각 새겨져 있다.
전통차 체험관은 코로나로 인하여 문을 닫았더군요..
난설헌의 생가터였다는 강릉 초당동 고택..
* 허난설헌 묘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草月) 읍 지월(池月)리에 있다. 남편 김성립 묘 아래에 있으며 허난설헌 묘 오른쪽에는 어릴 때 죽은 두 아이 무덤이 나란히 있다. 원래 묘는 오른쪽으로 500여 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중부고속도로 건설로 1985년 11월 24일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허난설헌 묘(21,01,16일 태화산 산행 후 들렸던 곳)..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동인의 영수였던 허엽(許曄, 1517~1580)의 딸로 본명은 초희(楚姬). 아버지와 오빠(허성 허봉) 및 남동생(허균)과 함께 ‘허씨5문장’으로 불렸다.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대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둘째 오빠 허봉이 당시 유명한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달(李達)에게 부탁해 시 짓는 법을 배웠다. 8살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 白玉樓 上樑文)을 지었다.
열다섯 살 때 한 살 많은 안동 김씨 김성립과 결혼했다. 당시 양반가에서도 여성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분위기에서 시어머니는 시 쓰는 며느리를 달갑지 않게 여겨 시집살이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도 과거 공부를 핑계로 바깥으로 돌며 가정에 소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와중에 어린 아들과 딸이 죽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됐다. 게다가 아버지와 두 오빠가 8년 사이에 잇따라 사망했다. 겹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물일곱 살에 귀천했다.
허난설헌 기념공원을 구경한 후 다시 경포호 둘레길을 따라 걷습니다..
갈대, 마른 단풍의 벚꽃. 녹색의 소나무의 묘한 어울림이 보기 좋습니다..
잡초 제거하는 작업을 하시는 분들..
경포호 둘레길에 잇는 조각들..
오리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강릉 3,1 독립만세운동 기념탑..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경포호 주변에는 경포대를 비롯하여 정자가 12개나 있습니다..
경포대가 호수를 바라보고 우뚝 서 있습니다..
경포대 앞쪽에는 충혼탑이 있고..
경포대로 올라갑니다/ 현판은 헌종 때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익회(李翊會)가 썼으며,
‘第一江山’이라는 편액은 ‘第一’과 ‘江山’의 필체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북송의 서예가이자 산수화가인 미불(米芾)의 글씨로 알려지고 있다.
미불의 글씨 탁본 第一山(제일산)에 조선 후기 서예가 윤순(尹淳)이 강(江)을 써 붙여 만든 편액이라 한다.
【경포대】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고려후기 강원도 존무사 박숙정이 건립한 누정. 누각·조경 건축물로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보물 제2046호이다. 1326년(충숙왕 13)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박숙정(朴淑貞)에 의하여 신라 사선(四仙)이 놀던 방해정 뒷산 인월사(印月寺) 터에 창건되었으며, 그 뒤1508년(중종 3)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1626년(인조 4) 강릉부사 이명준(李命俊)에 의하여 크게 중수되었는데, 인조 때 우의정이었던 장유(張維)가 지은 중수기(重修記)에는 태조와 세조도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면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고 쓰여 있다. 현재의 경포대 건물은 1745년(영조 21)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세운 것으로서, 낡은 건물은 헐어내고 홍수로 인하여 사천면 진리 앞바다에 떠내려 온 아름드리나무로 새로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873년(고종 10) 강릉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건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현판은 헌종 때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익회(李翊會)가 쓴 것이다. 이 밖에도 유한 지(兪漢芝)가 쓴 전자체(篆字體)의 현판과 ‘第一江山(제일강산)’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第一江山’이라는 편액은 ‘第一’과 ‘江山’의 필체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또한, 내부에는 율곡(栗谷) 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 鏡浦臺賦〉를 판각한 것과 숙종(肅宗)의 〈어제시 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과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옛사람이 “해 뜨는 이른 아침이나 달 밝은 가을밤에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를 굽어보거나 호수 너머 동해의 푸른 바다를 대하면 속세는 간 데 없이 온통 선경이요.”라고 표현한 것처럼,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이 알맞게 우거져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경포대에 달이 몇 개인가? 하늘에 뜬 달, 사랑하는 님의 눈동자에 뜬 달, 술잔에 뜬 달, 경포호에 뜬 달, 바다에 뜬 달. 아쉽게도 바라로 이어지는 길목에 지금은 호텔이 가로막아 바다의 뜬 달은 볼 수가 없구나..
경포대에서 바다로 가는 길목에 호텔이 자리 잡아 경포대에서 바다에 뜬 달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경포호에는 참소리 축음기박물관도 있고..
손성목 영화박물관도 있습니다..
홍장암은 강원도 안렴사 박신과 홍장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바위로
박신과 홍장의 전설을 11개의 테마로 분류하여 조각품을 만들어 놓았다.
【홍장암】
홍장암은 고려 말 강원도순찰사 박신과 기생 홍장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오는 바위로, 경포팔경 가운데 5 경인 홍장암(紅粧岩)에 밤비 내리는 경치를 홍장야우(紅粧夜雨)에 해당된다. 고려말 강원도 안렴사 박신은 강릉지역을 순찰하던 중 강릉기생 홍장을 만나 서로 사랑하여 정이 깊게 되었다. 박신이 다른 지역을 순찰하고 돌아와 홍장을 찾았으나, 강릉부사 조운홍이 놀려줄 생각으로 "홍장이 밤낮 그대를 생각하다 죽었다"라고" 말하자 애절함에 며칠을 몸져눕게 되었다. 조부사가 측은한 생각에 "경포대에 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오니 홍장도 내려올지 모른다." 하며 데리고 가 호수의 신비스러운 운무 속에서 홍장이 배를 타고 선녀처럼 나타나게 하여 극적인 재회를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박신과 홍장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오는 곳이다.
이제 둘레길이 끝나고 경포바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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