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16호로 지정
해미는 1414년(태종 14)에 충청도 덕산으로부터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옮겨온 곳으로,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한 1651년(효종 2)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성벽 밖에 2m 깊이의 해자를 팠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삼년산성 등이 산에 쌓은 산성이라면, 진주성, 공산성, 사비성은 강을 낀 산에 건설되었는데 해미읍성은 평지에 타원형으로 지은 것이 특징으로 대략 달걀 모양과 비슷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3,172척, 높이가 15척, 성 안에는 3개의 유물과 군창이 설치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6,630척으로 보로 계산하면 2,219보가 되고 높이는 13척, 치성은 382첩으로 되어 있으며, 사방에 문이 있다고 했다. 이 기록을 통하여 볼 때 해미읍성의 규모가 훨씬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에 이 성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의 표본으로 삼아 사적으로 지정하고 보수공사를 하는 한편, 성 안팎에 무질서하게 자리 잡은 민가를 철거·이전시키고 종합적인 보존계획을 세웠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으며 1981년에는 성 안의 일부를 발굴한 결과 관아 터가 확인되었다.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1천여 명이 이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출처; 다음 백과등을 토대로 재작성)
해미읍성..
해미읍성 정문인 진남문..
진남문은 해미읍성의 정문으로 세 관아문 중 유일하게 본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해미읍성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문루 형식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성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이며 옹성이 없다.
해미라는 지명은 조선 태종 7년 1407년에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병합하면서 정해현에서 해(海) 자를 따고 여미현에서 미(美) 자를 가져와 해미(海美)로 부르기 시작하며 유래되었다.
진남문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엿장수..
병사 1명은 졸고있나(?)..ㅎㅎ
조선시대 병영 깃발..
조선시대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불랑기(임진왜란 당시 중국이 가져온 대포) / 기원이 불명확한 대장군포
공성용 화포로 조선 후기에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별대완구 / 조선시대 주력화기인 화포..
임진왜란 당시 큰 역할을 한 천자총통/ 다연장 로켓인 신기전기화차로 설계도가 남아있다.
고려 때부터 사용한 검차 / 공성용 투석기..
투호놀이도 하고..
감옥 입구에 서 있는 300년 된 회화(호야)나무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이 나무의 가지에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 고문하였었고, 그 흔적으로 철사줄이 박혀있다.
2014. 8.15알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하여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앞에서 해미 순교자 3위의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였으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였다.
옥사..
감옥과 형벌(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장형/막대기를 다리 상에 끼워 비트는 주리 틀기..
말단관리 서리의 집..
지게..
부농의 집..
해미읍성은 서해안을 방어하는 중요한 지역이었기에 충청도 5개 영 중 하나인 호서좌영을 두었다..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
청허정 옆 대나무 숲..
청허정..
【청허정】
해미읍성 시설 중의 하나인 청허정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성현(1439~1504)이 지은 '청허정기'에 그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청허정은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성종 22년(1491)에 세운 정자이다. 청허(淸虛)라는 뜻은 "참된 생각이 없어 마음이 말고 깨끗하다"라는 뜻이다. 청허정은 해미읍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이곳에 올라서면 천수만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과거 시회를 하거나 문인들이 시를 읊었던 곳이다.
당시 충청도병사절도사영성(해미읍성)에 들렀다간 문인들이 가면서 남긴 시들이 남아있다. 조위(1454~1503)가 충청도병마절도사 이손(1439~1502)에게 올린 청허정이란 시가 있고, 절도사와 수령이 복무를 마치고 함께 청허정에 모여 지은 '청허정연회도', 이경전(1567~1644)이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1872년 고지도에는 청허정이 고지(古地)로 표기된 것으로 볼 때 고지도 작성 이전에 청허정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에는 청허정 자리에 신사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현재 청허정은 과거 관련 기록을 근거로 2011년에 개축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향토 숲..
소나무 숲이 아주 기품이 있습니다..
멋진 소나무가 한 그루 있고..
국궁체험장도 있고..
서문인 지성루..
군데군데 멋진 나무들이 남아 있고..
서산 9경 중 제1 경인1 곳이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곳인 해미읍성 탐방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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