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본 북알프스
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서울, 경기)

강화 전쟁박물관 & 영산홍(22. 5. 4)

by 산사랑 1 2022. 6. 13.
반응형

강화 2박 3일 여행(22.5.4~5.6)의 첫 번째 일정으로 전쟁박물관을 찾았다. 전쟁박물관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영산홍이 만개하여 멋진 모습을 보여 주어 방문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전쟁박물관은 강화의 전쟁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었는데 정말 강화는 고려 천도 이후부터 조선말까지 큰 사건이 많았던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강화는 몽골의 고려 침략에 대응하여 1232년 강화로 천도를 하여 38년을 강화에 있으면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에는 정묘호란(1627년) 당시 강화 연미정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였고 병자호란(1636년) 당시 강화도로 피신한 왕자들이 청군의 포로가 되었으며 남한산성에 피신 중이었던 인조는 결국 삼전도에서 항복을 함으로써 전쟁이 끝났다. 그 후 강화는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병화를 입고 운요호 사건으로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조선이 망하게 되었다. 

영산홍이 너무 곱게 담을 덮고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강화 출신이라고 하네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문화와 석기시대 무기 등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강화 성곽 쌓는 모습으로 고려시대 강화 성곽은 토성이었다고 하네요..

고려군은 땅에서 몽골군은 말을 타고 전쟁을 하는 모습에서 당시 전력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네요..

정묘호란 당시 연미정에서 청나라와 강화조약을 맺고, 병자호란에는 왕자들이 강화로 피신을 왔는데

청군에 잡힘에 따라 남한산성에서 항전을 하던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었다..

조선군의 무기와 모자..

명령을 전달할 때 사용하던 영기..

신미양요(1871년) 당시 어재연 장군이 미군의 침략을 대항했지만 전사하고 이때 수자기도 미국에 빼앗겨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수자기는 2007년, 136년 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와 현재 국립 고궁 박물관에 있다.

1871년 발생한 조선과 미국 간의 전쟁. 1866년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은 조선에 대해 무력에 의한 강제 통상을 계획했다. 1871년 4월 덕진진과 광성보를 점령한 미국 함대는 조선에 심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교섭에 응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대원군의 결사항전을 본 미국은 결국 함대를 이끌고 청으로 돌아갔다. 이후 조선의 쇄국정책과 배외의식은 더욱 견고해졌다. (출처 : 다음 백과)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

운양호 사건이라고도 한다. 대원군이 실각하고 1873년 12월부터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조선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은 1875년 운요호와 제이정묘호를 부산에 입항시키고 조선의 항의를 무시하고 무력적 포함 시위를 단행했다. 9월 20일 운요호는 강화도 초지진으로 침입했으며, 강화해협을 방어하던 조선 수비병은 일본군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이에 운요호는 초지진과 영종진에 포격을 가하며 상륙작전을 벌였는데, 조선수비병은 일본군에 패했다. 일본군은 영종진에서 방화·살육·약탈을 자행한 뒤 퇴각했다. 이후 일본은 운요호 사건에 대한 사죄, 조선 영해의 자유항행, 강화 부근 지점의 개항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결국 1876년 2월 27일 불평등 조약인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하였고, 일본은 조선 식민지화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해병 2사단이 강화를 지키고 있다..

강화 비석군..

대포..

전망대에서의 조망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정을 마치고 강화 별장에 도착하여 오겹살 등으로 바비큐 파티를 합니다..

별장 앞에 있는 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