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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서해

백령도 여행 2일차(2-2) / (23.10. 5일)/ 천안함 추모공원, 중화리교회, 사곳해변, 콩돌해안, 끝섬전망대

by 산사랑 1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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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위령탑..

콩돌해안..

2일 차 일정 : 두무진 육상관광 ~ 천안함 추모공원 ~ 중화리교회 ~ 식사 후 사곳해변 ~ 콩돌해안 ~ 끝섬전망대

두무진 육상관광을 마치고 천안함 추모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추모공원에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이 있다. 천안함 사건은 천안함 위령탑 비문에 새겨진 것처럼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역에서 경비 작전을 수행 중이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두동강이 나 104명의 승조원 중 46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국방동우회에서는 헌화와 묵념으로 고인들의 숭고한 희생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천안함 46용사..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우리의 용맹스러운 용사들과 함께 서해를 지키던 한국 최정예 전투함, 천안함(PCC-772)은 서해의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역에서 경비 작전을 수행 중 갑자기 엄청난 수중 폭발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으로 선체는 함수와 함미로 절단되었고 함미함체는 곧바로 침몰하였다. 함수함체는 오른쪽이 기운 상태에서 부력을 잃었다. 침몰 직전의 함수 함체에서 104명의 승조원 중 58명은 해군 고속정과 해경함에 의해 구조되었으나 46용사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출처 : 천안함 위령탑 비문에 새겨진 내용)

 

헌화 묵념으로 고인들의 숭고한 희생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천안함위령탑은 북녘땅이 바라다보이는 백령도 연화리의 언덕꼭대기에 있다. 높이 8.7m 규모의 주탑은 대리석으로 만든 세 개의 기둥이 하늘로 향하여 한 곳으로 모아져 있고, 세 개의 기둥은 각각 대한민국의 영해와 영토, 국민을 굳건히 지킨다는 정신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천안함 위령탑과 피격사건 개요..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피격되었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께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한창인 백령도에서 남서쪽으로 1.8㎞ 지점을 순찰하던 천안함의 선미에서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해군장병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이 출동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을 구조했다. 40명은 사망했고, 6명은 실종됐다. 이 46명은 영결식이 치러진 이후 국립공원 현충원에 안장됐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 과정과 함수와 함미 수색 인양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이 잇따랐다. 3월 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수색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했다. 4월 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 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이 사건에 의한 전사자에 대한 호칭은 ‘천안함 46 용사’로 결정되었으며, 전원 1계급씩 추서진급되었다. 영결식은 4월 29일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되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사병 3 묘역에 천안함 희생자 합동묘역을 조성했다.

 

사건 초기 천안함 실종자 수색과정과 천안함 사고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면서 사고 원인에 대해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 정부는 2010년 4월 4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한국을 포함한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같은 해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조사 결과는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안건으로 회부됐고 안보리는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조사결과에 비춰 우려를 표명한다. 공격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사단은 발표문에서 어뢰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천안함이 절단됐으며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에서 폭발하였고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 규모의 어뢰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한을 지목한 데는 조사과정에서 수집한 어뢰파편에 '1번 어뢰'라는 한글이 적혀있었다는 점 등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발표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출처 : 다음백과)

 

천안함 위령탑 참배를 마치고 내려갑니다..

천안함 위령탑에는 안보현장답게 전차, 다련장, 155m 평사포, 40mm 발칸포 등이 주변에 있더군요..

 천안함 추모공원을 돌아본 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설립(1896년)된 중화리 교회로 이동하였다. 중화동 교회에 있는 기독교 역사관에서는 한국기독교 100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설립(1896년)된  중화동 교회..

한국 땅을 가장 먼저 밟은 네덜란드의 귀츨라프 선교사는 1832년 7월, 훗날 대동강에서 순교한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는 1865년 9월에 각각 백령도를 방문한다. 서투른 소통방식에도  이들이 머무는 동안 섬에는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들의 손에 들린 성경이 사람들에게 건네졌다. 중화동 교회는 한국 최초로 설립된 황해도 소래 교회의 지원을 받아 1896년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남한의 최초 교회가 되는 셈이고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교회가 이곳이다.

중화동 교회에 있는 기독교 역사관으로 한국기독교 100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19세기 초부터 백령도와 그 주변지역에서 전개된 기독교의 선교역사를 모아 그 기록들을 정리하고 이것을 현실감 있게 전시한 서북해안 유일의 기독교 역사 기념관이다. 내부에는 초기 중화동교회 모습, 최초 백령도에 복음을 전파하는 서양선교사 활동 모습등을 재현하고 있어 백령도가 초기 한국 선교에 있어 중요한 교두보였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출처: 백령도 중화동교회 뉴스다임)  

 

한국 땅을 가장 먼저 밟은 네덜란드의 귀츨라프 선교사(좌)/ 대동강에서 최초로 순교한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우)..

한국기독교 100년 선교 역사..

 

중화동 교회를 구경하고 잠시 '서해최북단백령도' 기념비에 들러 인증을 한 후 하수오판매점에 들러 약 50여분  백령도 특산물이라는  하수오에 대해 설명을 듣는 헛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어제도 얘기했듯이 하수오는 백령도 툭산물에 포함되지 않는데도  까나리 여행사에서 용트림 바위는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하수오판매점으로 간 점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 시간이면  중화동 교회 인근에 있는 용트림 바위를 충분히 볼 수 있는데.. 어찌 되었던 하수오 판매점에서 시간을 보낸 후 메밀 칼국수로 점심식사를 하고 사곳해변으로 이동하였다. 사곳해변을 잠시 거닌 후 콩돌해변을 둘러보고 물수제비를 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번에 까나리여행사의 성의 없는 형태로 보지 못한 용트림 바위(2011.11.11일 본모습)

바위 스스로 하늘을 향하여 나선처럼 꼬여 오르는 형상 이므로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용트림바위로 불리며, 가마우지와 갈매기 서식지이기도 합니다.

서해최북단백령도 기념비..

점심식사한 곳인 사곶칼국수..

사곶해변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천연비행장으로 1997년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곳이다. 사곶 해변은 전 세계에 2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으로 나폴리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때 군부대 비행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이곳은 고운 모래알맹이들이 넓이 300m 길이 3Km의 넓은 백사장을 이루고 있어 피서지로서 세계최고를 자랑한다.(출처 : 옹진군청)

 

천연기념물 제391호인 사곳해변..

사곶해변

199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길이 3㎞, 폭 3백 m(썰물 때). 세립질 모래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의 수평에 가까운 평탄한 조간대로서, 물이 빠지면 중간 규모의 화물기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바닥이 단단해지는 천연비행장이다. 자갈은 없고, 세립질 모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천연비행장이다.

 

이곳은 원래 육지 쪽으로 모래 구릉이 여러 개 있고 그 사이에는 해당화가 피어있는 아름다운 해안이었으나 1975년 국방상의 이유로 약 3㎞의 거리에 시멘트 방벽을 쌓아 자연경관이 파괴되고 자연현상이 차단되었으며 장벽 안쪽에는 폭 100∼200m의 솔밭이 조성되었다. 이로 인하여 솔밭이 방풍림 구실을 하여 주민들은 모래가 바람에 운반되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시멘트 방벽을 제거하여 자연 해변으로 복원된다면 아마 이 지역은 바다로부터 육지 쪽으로 모래사장, 모래언덕, 해당화, 솔밭이 있는 그야말로 황해의 명사십리가 될 것이다.

 

사곶 사빈은 만조시에는 바닷물에 잠기게 된다. 사곶 해안은 백령도를 이룬 규암이 해수에 의하여 침식을 받아 고운 모래로 부서지고, 이동하여 온 모래들이 해안선이 오목한 곳의 조간대에 퇴적되어 형성되었다. 만조시 해수면의 위치보다 더 높은 육지 쪽에서는 바람에 의해 운반된 세립모래들이 쌓여 풍성사구를 형성했다. 이곳 사곶 사빈의 모래퇴적물들은 해류에 따라 운반되어 온 것으로 여겨진다. 사곶 사빈이 간이 비행장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래 퇴적물들이 세립질 모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래 입자들이 연마되어 있지 않고, 소금물이 입자들 사이에서 얇은 피막을 이루면서 서로 결합하여 있기 때문이다.(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사곶리 사곶해변..

사곶해변을 잠시 거닐어 봅니다..

콩돌해안(천연기념물 제392호)입니다..

콩알만 한 자갈들이 바닷가에 널려있어 콩돌해안이라 불리우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해안의 길이는 1km, 폭은 30m 정도이며, 콩돌들은 백령도 지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규암이 부서지고 해안 파도에 의해서 닳고 닳아서 만들어진 해안으로 콩돌을 만들어 낸 투명한 자갈이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피부염에 특효가 있다는 자갈찜질을 체험할 수 있다. 해안경사가 급해 갑자기 깊은 곳이 있으며, 물이 빠진 간조시간에는 해안 끝 절벽에 움푹 파인 곳이 생긴다. (출처 : 옹진군청)

백사장대신 콩돌이 약 1km에 걸쳐 형성되어 자갈파도 소리와 피부염에 특효가 있는 자갈찜질을 할 수 있습니다.

콩돌해변에서 물수제비를 날려봅니다..

콩돌해변을 둘러본 후 사곶해변 전망대에 올라 사곶해변을 조망하였다. 까나리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공식 일정은 여기서 끝나고 일부 일행들과 함께 끝섬전망대를 찾아 조망을 한 후 걸어서 숙소까지 돌아오면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은 삼겹살에 막걸리 한잔을 한 후 백령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내일은 아침 일직 대청도로 이동하여 대청도를 둘러보고 인천으로 갈 것이다..

 

사곶해변 우수조망처에서 본 사곶해변의 모습..

사곶해변 우수조망처에서 본 사곶해변과 황금들판..

끝섬전망대가 보이며,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끝섬전망대입니다..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용기원산에 자리 잡고 있는 국토끝섬전망대에서는 망원경을 이용해 북한의 섬과 육지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산 정상에 있어 좌측으로는 신항과 사곶해변, 우측으로는 하늬해변 등 백령도 곳곳을 볼 수도 있다.

끝섬 전망대 앞바다를 보면 용치가 길게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북녘땅 장산곶에서 길게 이어지는 북한 땅과 그 앞바다에서 조업을 하는 북한&중국 어선들을 볼 수 있었다. 

전망대 건물 안에 비치되어 있는 물범 박제..

숙소 돌아가는 길의 철책..

내일은 이른 아침 대청도로 이동하여 대청도나이테바위와 농여해변, 모래사막, 매바위전망대, 모래울해변, 광난두정자각, 해넘이전망대등을 돌아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