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본 북알프스
그 섬에 가고 싶다/서해

연평도 트레킹 1일차(24. 6.4일) 조기역사박물관 ~ 군터널 ~ 등대 ~ 평화공원 ~ 구리동해변

by 산사랑 1 2024. 6. 16.
반응형

연평도 제1 비경인 가래칠기해변으로 가운데 병풍바위가 있습니다..

【연평도(2024. 6. 4~5일)】 

인천에서 뱃길로 145km 떨어진 연평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하며 북한의 부포리가 불과 10km 거리에 있는 서해 최대의 어항으로 통한다. 황해도 해주 수양산으로부터 일곱 번째에 있는 이 섬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곳으로써, 바다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친 형이라 하여, "연평도"라 한다. 또한 전초방위기지로써 1999년 연평해전 이후 일반에 널리 알려져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연평도는 섬 전체가 안보체험장으로 연평포격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연평해전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분단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연평도 평화기원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이와 같은 안보관광지를 걸어서 체험할 수 있으며, 북쪽 둘레길 구간에서는 북녘 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연평도는 우리나라 제일의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파시가 열려 많은 인기를 누리던 곳으로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를 치러 명나라로 가던 중 연평도에 잠시 들렀다가 가시나무로 조기를 잡았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임경업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당 충민사에서 섬 내 어민들이 오색만기를 내세우고 당굿과 배굿으로 북, 징을 울리며 배 안전을 기원하는 풍어제(문화관광상품)를 매년 3월경에 지내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조기섬 동상을 만나볼 수 있고, 전망대와 더불어 조기 역사관을 개관하여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4:40분 연평도에 도착하여 숙소(전원펜션) 사장님 차로 숙소로 이동하여 짐을 풀어놓고 연평도 트레킹을 합니다. 첫째 날은 숙소 ~ 조기역사박물관 ~ 군터널 관광시설 ~ 등대 ~ 평화공원 ~ 구리동해변 ~ 숙소로 원점회귀하였으며, 둘째 날은  숙소 ~ 연육교(일출) ~ 함상공원 ~ 책섬 연도교 ~ 삼형제바위 ~ 안보교육장 ~ 숙소로 돌아왔다.

소방지구대도 있고..

연평도 숙소인 전원펜션..

연평도 트레킹 코스 1일 차(파란색) : 숙소 ~ 조기역사박물관 ~ 군터널 관광시설 ~ 등대 ~ 평화공원 ~ 구리동해변 ~ 숙소

                                2일 차(붉은색) : 숙소 ~ 연육교(일출) ~ 함상공원 ~ 책섬 연도교 ~ 삼형제바위 ~ 안보교육장 ~ 숙소 

조기역사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본 소연평도..

어려운 환경이 닥쳐도 잘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식물인 인동초..

인동초 개화시기는 6~7월이고 둥근 열매는 9~10월에 검은색으로 익는다. 꽃의 색이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금은화(金銀花)’라고도 한다. 겨울에도 곳에 따라 잎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동이라고 한다.  한국·일본·중국에 분포한다. 유럽으로 건너간 인동덩굴은 그래도 꽃에 꿀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여 꿀젖이라는 뜻의 ‘허니 서클(Honey-suckle)’이란 이름으로 불린다.(출처 : 두산백과 등에서)

 

길가에 금계국들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저어새의 국내 최대 번식지인 구지도가 하나의 섬으로 보이고..

구지도는 저어새 이외에도 노랑부리백로, 2급인 검은머리물떼새가 서식하고 있다.

해당화도 곱게 피어 있고..

우리나라의 최대 조기어장이었던 연평도의 조기역사와 조기잡이방식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인 조기역사관은 공사중이나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봅니다..

조기잡이 배 모형 사진..

조기잡이 시절의 연평도의 추억..

조기의 수호신 임경업장군..

조기잡이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는데,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안목과 당섬 사이의 얕은 바다에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아서 조기 잡는 어살법을 주민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도 섬에는 임경업장군각(林慶業將軍閣)이 있어 주민들이 출어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이렇게 조기가 많이 잡혀서 연평도는 1960년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다.(출처 : 나무위키)

 

연평도 제1 비경인 가래칠기해변으로 마치 병풍을 쳐놓은 듯한 절벽인 병풍바위가 있는 곳이다.

꽃싸리가 활짝 피어 있고..

조기박물관을 나와 군터널관광시설로 내려갑니다..

터널 안에는 서해의 섬들에 대한 사진들이 걸려 있고..

터널 끝지점에 거치되어 있는 해안포..

해안포 앞에서 본 가래칠기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

군터널관광시설 구경을 마치고 다시 조기박물관으로 나갑니다..

연평도 조기 어업은 1968년까지 번창했다고 합니다..

전망대에서 본 가래칠기 해변의 멋진 모습우로 병풍바위가 우뚝 앞으로 나와 있습니다..

연평도 등대로 2019년 재점등하여 현재에도 불을 밝히고 있다고 합니다.. 

평화공원에 퇴역한 M47전차, 대잠헬기, 상륙장갑차들이 전시되어 있고..

연평해전 희생자 추모비..

【제1 연평해전】 

1999년 6월 7일에서 11일에 거쳐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을 거듭하면서 남한 해군과 충돌을 지속하였다. 6월 15일 오전 어뢰정 3척을 포함한 7척의 북한 함정이 남한 관할해역을 침범하였다. 남한 해군이 이에 맞대응하자 북한함정이 소총 사격과 25㎜ 기관포 발사 등의 공격을 해왔다. 남한 함정은 40㎜와 76㎜ 기관포로 응사하여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대형 경비정을 대파했으며 중형 경비정 2척 반파, 소형 경비정 2척 파손이라는 전과를 기록했다. 북한군의 인명피해는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으나 30여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한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 일부에 경미한 파손을 입었고 군인 9명이 경상을 입었다.(출처 : 다음백과)

 

【제2 연평해전】 

1999년 6월 7일에 발생한 제1연평해전 이후에도 북한 경비정의 NLL침범은 간헐적으로 발생했으며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에도 북한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다시 NLL을 침범했다. 이에 남한 해군은 참수리 357, 358의 고속정 2대를 출동시켜 대응기동과 경고방송을 하며 접근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은 갑자기 아무런 징후도 없이 참수리 357호에 85㎜포를 비롯한 모든 포를 동원하여 선제 기습포격을 하였다. 양측 함정 사이에는 즉각적인 교전이 시작되었고 남한 해군의 고속정과 경비 중이던 초계함 등이 교전에 가담하여 북한 경비정에 대응사격을 함으로써 10시 43분 북한 경비정은 퇴각했다. 교전결과 북한경비정은 외부갑판이 대부분 파괴되어 반파되었고 전사 13명, 부상 25명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한 해군도 윤영하 대위를 포함한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으며 참수리 357 고속정은 침몰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

제1 연평해전엔 부상자만 나왔지만, 제2 연평해전엔 사상자까지 나왔다. 한국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했으며 19명이 상처를 입었다. 고 윤영하 소령은 퇴역한 참수리정을 대체한 윤영하급 미사일 고속함으로 부활했다. 만재 배수량을 570t으로 늘린 이 군함은 에서 으로 승격됐다.

연평도 포격전 사망자에 대한 묵념..

【연평도 포격전(延坪島 砲擊戰)】 

연평도 포격전은 2010.11.23일 오후 2시 30분경, 북한이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하자아군 해병대가 피격 직후 북한의 영토를 향해 대응사격을 가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병대원 전사자 2명, 군인 부상자 16명,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부상자 3명, 도합 사망자 4명과 부상자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연평도의 각종 시설 및 가옥이 파괴되어 재산 피해를 입었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 이후 조선인민군이 대한민국의 영토를 직접 타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으로 국제 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고, 당시 국제 사회는 북한을 규탄했으나 북한은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었으며 전적인 책임은 대한민국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피격사건에 이어 8개월 만에 벌어진 이 사건으로 인해 양측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출처 : 위키백과에서 일부 발췌 수정)

구리동 해변으로 이동합니다..

해병대 레이다기지..

민간시설인데 좀 거시기합니다..

구리동 해변입구입니다..

구리동 해변 좌우, 그리고 방갈로 시설..

【구리동해변】 

가래칠기해변을 지나 조금 더 북쪽 해안에 위치한 구리동해변은 길이 1km, 폭 200m의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연평도에서 해수욕을 즐기기 가장 좋은 해변이다. 해변에 앉아 오른쪽 숲으로 펼쳐진 해송을 바라보면 백로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해변을 둘러싼 기암절벽과 푸른 바다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 착각하게 한다. 연평도의 해변은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모두 바다 건너 북한 땅과 마주 보고 있어 해가 지면 출입이 통제된다. 해가 지는 석양을 만끽하려면 조기역사관 2층 관광전망대로 가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천 보물섬에서 놀자)

 

멋있는 일몰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립니다..

이곳에는 북한의 목함지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구리동해변을 둘러본 후 도로를 따라 면소재지로 진행하였으며, 도로 여러 곳에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적 포탄 낙탄장소가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당시의 치열했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회관, 충민사를 지나 연평면사무소를 보았는데 규모가 엄청 큰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평도 학교는 초중고가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나머지는 내일 보기로 하고 숙소로 이동하여 오늘의 트레킹을 마무리하였다. 저녁은 숙소에서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으로 오늘 하루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도로 곳곳에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적 포탄 낙탄장소가 표시되어 있고..

연평부대의 하나회관..

충민사가 계단을 따라가면 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히게 도와주는 서해의 신 임경엽 장군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사당(충민사)을 세우고 장군의 공을 길이 전하며 봄, 가을로 제사를 올리면서 풍어와 함께 해상의 무사고와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연평도에서는 고기잡이 때가 되면 전국에서 모여든 수천 척의 선박과 수만 명의 선원들이 임경업 장군의 사당에서 무사고를 기원하는 참배를 하고 나서야 출어를 했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연평 면사무소가 엄청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평초중고등학교가 하나로 되어 있네요..

숙소인 전원펜션..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으로 오늘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내일은 아침 일출을 본 후 안보교육장 등을 둘러 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