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진..
【초지진】
사적 제225호이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안산에 있던 초지량영을 강화로 옮겨 진으로 승격시켰다.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지은 요새이다. 초지진에는 군관 11인, 사병 98인, 돈군 (墩軍) 18인, 목자(牧子) 210명 등이 배속되어 강화해협을 수비하였다. 또한 초지돈(草芝墩), 장자평돈(長子坪墩), 섬암돈(蟾巖墩) 등 세 곳의 돈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 돈대와 본진 간의 협공 체제를 통해 수비력을 극대화하였다. 초지진에는 군선(軍船) 3척이 배속되어 있었고, 부속된 3곳의 돈대에는 각각 3개의 포좌(砲座)를 마련하고 화포를 설치하여 강화 해협을 수비하였다.
신미양요(1871) 때 미국 해병 450명이 20척의 작은 배로 상륙을 감행하여 초지진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화력의 열세로 결국 점령당했고, 군기고와 화약 창고 등 군사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다. 1875년에는 일본이 무력으로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면서 일시적으로 복구되었던 초지진 포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돈대와 터의 기초만 남아 폐허가 되었다가 1973년 초지진의 초지돈만 복원되었다.
현재 초지진의 진사와 주요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음식점 등 각종 시설이 들어서 축조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타원형의 돈대에는 포좌 3개, 총좌 100여 개, 실제 조선시대 말기에 사용하던 대포가 1문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성채와 돈 옆의 소나무에는 전투 때 포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미국 및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맞서 격렬하게 싸웠던 전투상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다.
초지진 내부에는 대포 1문이 전시되어 있으며, 21년 7월 부터 초지진 코스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
초지진의 멋진 소나무들..
초지진의 소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 된 수려한 모습의 노거수로 생물학적인 가치 및 역사문화적 가치도 크다고 합니다..
초지진 성벽과 소나무에는 신미양요 당시의 포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초지진에서 본 모습으로 함초가 곱게 피어 있습니다..
초지진을 둘러본 후 광성보로 이동합니다..
광성보 이동 중 본 멋진 도로..
광성보 안해루 입니다..
【광성보】
강화 12 진보(鎭堡) 가운데 하나이다.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徐元履)가 설치하였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축조된 오두(鰲頭)·화도(花島)·광성 등의 돈대(墩臺)와 함께 오두정 포대를 관할하였다. 1745년(영조 21)에는 돌로 성벽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두어 ‘안해루(按海樓)’라고 하였다.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곧 이 해에 미국 함대가 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는데, 광성·초지(草芝)·덕진(德津)·덕포(德浦) 등의 포대에서 일제히 사격하여 물리쳤다. 하지만 4월 23일에 초지진은 미국 해병대 450명의 상륙으로 인해 점령되었고, 이튿날에는 덕진진이 함락되었으며, 곧 광성보가 공격을 받았다. 당시 광성보를 지키던 중군(中軍) 어재연(魚在淵, 1823∼1871)과 수하의 장병은 열세한 무기로 힘껏 싸웠으나 중상을 입어 움직이기 어려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 1976년에 파괴된 성가퀴와 문루 등을 복원하고,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무덤과 어재연의 쌍충 비각(雙忠碑閣)을(雙忠碑閣)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출처 : Daum백과]
강성보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으며, 70세 이상만 무료로 하더군요..
광성돈대 안에는 대포, 소포 등 포가 3문있다.
광성돈대를 둘러보고 손돌목 돈대로 이동하는데 황금색의 모감주나무와 감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미양요 당시 순국 무명용사 탑..
신미양요 당시 사망한 어재연와 59명의 순절비인 쌍충비 / 아래는 어재연 순절바..
신미 순의총으로 신미양요 당시 순절한 무명용사 51인의 무덤입니다..
손돌목 돈대입니다..
【손돌목돈대】
손돌목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년)에 축조된 돈대로 덕진 돈대와 함께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으며,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있다.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 돈대 넓이는 2778m 2에 성곽 길이가 108m이다. 고종 8년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손돌목 돈대에서 본 모습..
손돌목돈대 앞쪽에 있는 멋진 소나무..
용두돈대로 가면서 본 손돌목돈대의 모습..
용두돈대 가기 전 옆쪽에 있는 광성포대(2004년 복원)..
용두돈대 가는 길..
손돌목돈대에서 동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용두돈대가 있는데, 그 앞의 염하(강화와 김포의 경계를 이루는 수역)를 뱃사공 손돌이 왕의 오해로 억울하게 죽은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고 한다. 염하 건너편 동남쪽에 덕포진이 있는데, 덕포진 언덕 위에 손돌의 묘가 있다.
용두돈대..
【용두돈대】
용두돈대 (龍頭墩臺)는 강화군에 있는 강화 53돈대 중 하나이다. 고려 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중시되었으며, 조선 숙종 5년에 돈대가 세워졌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로 훼손되었으나 현재는 복원된 상태이며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복원된 1977년 당시에는 강화전적지 정화기념비를 세웠는데, 앞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뒷면에는 이은상이 짓고 김충현이 글씨를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용두돈대에 포 2문 중 한 문이고/ 아래는 이은상이 짓고 김충현이 글씨를 쓴 비문과 염하강의 거친 강물..
어느 가게의 장독대들..
소나무길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광성보 구경을 마무리 합니다..
연미정으로 이동 중에 본 구름이 마치 용의 형상이네요..
월곳진과 조해루..
【월곶진과 조해루】
병자호란 이후 북방민족의 침입을 대비하여 국방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로 인식된 강화도에 군사조직으로 5진 7보가 설치되었고 방어시설로는 강화산성, 외성, 53 돈대가 숙종대에 설치되었다. 그중의 월곶진은 조강(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진 강)이 서해로 나가면서 강화해협인 염하와 서해로 나누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문수산성과 마주하고 있는 곳에 위치한 월곶진은 다른 진과 보보다는 높은 종 3품인 첨사가 담당하는 군사조직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산하에 옥창돈, 월곶돈, 휴함돈, 적북돈을 두었다. 월곶진은 한강과 임진강으로 가는 배가 썰물일 때 만조가 되기까지 닻을 내리고 기다렸던 곳이며, 한양에서 배를 이용하여 강화로 올 때 이곳에서 내려 검문을 받고 강화 동문을 거쳐서 강화로 들어가는 중요한 교통로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조해루(潮海樓)는 숙종 5년(1679)에 지어져 강화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검문하는 검문소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복원된 조해루는 월곶돈대와 연결되고 남쪽의 외성과는 연결할 수 없는 상태이다. 홍예식 성문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지은 전형적인 성문 건축물이다. (출처 : 한국 NGO신문)
* 갑곶돈대에서 적북돈대에 이르기까지는 7곳에 돈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접근이 가능한 곳은 월곶돈대뿐이다. 강화외성의 출입문인 6개의 문루(안해루, 공조루, 참경루, 진해루, 북파루, 조해루) 중에서 광성보의 안해루, 덕진진의 공조루, 용진진의 참경루는 복원을 마쳤고, 월곳진의 조해루가 2011년에 복원되었고 아직 갑곶진의 진해루와 북파루는 복원되지 않는 상태이다.
'20. 7.18일 탈북민이 월북한 배수로로 현재는 그물망을 설치하였더군요..
한국 정착 3년 만에 다시 북한으로 넘어간 탈북민 김모(24) 씨의 '월북 루트'가 인천 강화군 연미정 인근 배수로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28일 "군은 (인천 강화읍 월미곳에 있는) 연미정 인근 배수로를 통해서 월북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월북한 김씨는 2017년 귀순 전 개성시 개풍군 해평리에서 거주하며 농장원으로 일했으며 재입북 전 동료 탈북민 성폭력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 17일 지인인 탈북민 유튜버의 차량을 이용해 강화도로 이동했고, 다음날 오전 2시 20분쯤 택시를 타고 월곳리 일대로 간 뒤 하차한 것으로 파악됐다. 군은 월곳리 일대에서 김씨 이름이 적힌 소지품이 들어있는 가방도 발견했다. 강화도 북동쪽에 있는 월곶리는 가장 가까운 북한 해안과 직선거리로 3㎞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다.(출처 : 한국일보 등에서 발췌)
황형택지..
【황형택지】
조해루에서 월곶돈대로 공터에 ‘莊武公黃衡將軍宅址碑’라고 쓰인 비 하나가 서 있다. 사각형의 난간으로 두르고 비를 보호하고 있다. 비가 세워진 이곳은 삼포왜란 당시 왜적을 무찌르고 1512년 함경도 지방 야인(野人)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국가에 공로가 많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황형(1459~1520) 장군에게 조정에서 땅을 하사하였다고 알리는 비이다.(출처 : 한국 NGO신문)
연미정..
【연미정】
월곶돈대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연미정’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 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강화 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연미정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서쪽으로 강화 들판과 강화산성이, 남으로 염하와 문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자 양쪽에는 5백 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으나 2019년 제13호 태풍(9.7일 한반도 상륙) 태풍 링링에 의해 한그루가 안타깝게 부러졌다. 예부터 느티나무는 장수목으로 수명이 길고 수형이 단정하며 수관 폭이 넓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정자나무이기도 하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며, 1244년(고종 31)에 시랑 이종주(李宗胄)에게 명하여 구재생도(九齋生徒)를 이곳에 모아놓고 하과(夏課: 여름철에 50일 동안 절에 들어가 공부하던 일)를 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 방어사로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정자를 하사하였으며, 연미정 기단석 좌측에 비 하나가 있는데 이곳에는 ‘莊武公黃衡將軍宅址’라고 쓰여 있다. 현재도 황씨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 연미정은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627년 1월, 후금 군사 3만여 명이 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침입한 정묘호란 당시 화의가 성립한 곳이 연미정이다.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 이북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현재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다.(출처 : 다음 백과를 중심으로 재조정)
느티나무는 2019년 발생한 태풍 링링에 의해 부러져 현재는 그루터기만 남아 있네요..
앞에 보이는 섬이 유도로 '96년 대홍수 때 떠내려온 황소를 5개월 만에 구조한 비무장지대 섬..
【유도(留島)】
연미정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섬이 있으니, 머무르섬, 바로 유도(留島)다. 머무르섬(유도)은 육지에서 500여 m 떨어져 한강하구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무인도로, 월곶면 보구곶리 산 1번지와 2번지 두필지로 되어 있다. 이 섬은 까마득한 옛날 홍수에 떠내려오다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과 함께 '머무른 섬→머무르섬'이 됐다고 전해온다. '머무르'가 변음(變音)되어 머머리, 머머루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유도(留島), 사도(巳島)라는 한자 지명이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은 무인도이지만 6·25 한국전쟁 이전에는 농가가 두 채 있었고 농사도 지었다고 한다.
1996년 대홍수 때 황소 한 마리가 떠내려와 이곳 유도에 고립되었다. 표류 5개월, 하루하루 말라가는 소를 우리 해병대가 데려와 '평화의 소'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소는 제주로 장가가 천수를 다했다. (출처 : 오마이 뉴스)
강 건너 북녘 땅 / 이곳 끝 지점이 북한과 가장 가깝기에 그곳까지 가서 월북했다는 설도 있음.. ..
연미정 구경을 마치고 강화 풍물시장에서 벤뎅기 삼종세트(회, 무침, 구이)로 식사를 한 후 조양방직(별도 작성)으로 이동하여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구경을 하였다
다음은 조양방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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