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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 산행기/충청

광덕산(24.11.23) 추억을 찾아서

by 산사랑 1 2024.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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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광덕산 산행(2024. 11. 23일 토요일)】

 

광덕산(699.3m/廣德山)은 천안시 광덕면과 아산시 송악면에 걸쳐 있으며, 비록 높지는 않으나 연꽃처럼 펼쳐져 있어 속은 꽤 깊어 보이고 산줄기들이 꽃잎처럼 포개져 있으며 산세의 곡선이 부드럽고 거칠지 않아 여성적이나 높이에 비해 산세와 조망이 뛰어난 산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온양온천을 지척에 두고 있어 온천산행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광덕산은 내포지방이라고 일컫는 아산·당진·서산뿐만 아니라 평택·천안·대전 등 충남북 일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북으로 뻗은 산줄기는 망경산(600.9m)으로 이어지고, 남으로는 금북산맥까지 이르는 사이 좌우로 산줄기를 뻗어 넓은 품을 형성하고 있다. 광덕산은 자비를 널리 중생들에게 베푼다는 ‘광덕보시(廣德布施)’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세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태화산’이라고 불리다 조선 초에 바뀌었다고 한다. 산 어귀의 광덕사가 불교 포교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지금도 광덕산 주변에는 태화산이라고 쓰인 푯말과 비석 등이 적잖게 남아 있다.

 

천안 쪽 산행은 광덕사에서 시작한다. 광덕사는 그다지 크지 않은 절이나 역사는 천 년이 넘는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오면서(643년) 가져온 진신사리를 승려 진산에게 건네 창건됐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광덕사 사람은 부역을 면제한다.’는 교지를 내릴 정도의 대찰로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 큰 지장 도량이었다.”라고 한다. 대웅전 앞에는 천안이 호두과자로 유명하게 됐는지를 알 수 있는 수령 4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398호)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안내판에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에 유청신 선생이 원나라를 다녀오면서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묘목은 광덕사에, 열매는 광덕면 매당리 자신의 집 앞에 심었다.’고 쓰여 있다. 이 호두나무가 그 묘목은 아니지만 시배지임을 강조하며, 광덕면 일대엔 25만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호두나무를 알리려고 만든 허구이며, 광덕사도 진산의 생존연대와 광덕사 사적기로 미뤄 832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됐다는 설이 있어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

 

광덕사 위쪽에 기생 시인 운초 김부용의 묘가 있으나 잡초가 무성하다. 부용은 애초 유학자의 딸이었으나 집안이 기울면서 기생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함경관찰사 등을 지낸 김이양을 만나 소실이 됐다. 그녀는 시재가 출중하여 황진이, 이매창과 함께 조선의 3대 명기로 꼽힌다. 김이양이 죽자 ‘임이 묻힌 광덕산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 묘는 소설가 정비석(1911~1991년)이 ‘명기열전’을 쓸 때 찾아내 봉분을 만들고 비석도 세웠다.”면서 “매년 4월 마지막 일요일 묘지 앞에서 다례식이 열린다.”라고 한다.

 

조망이 좋은 광덕산 정상석 & 천안과 아산의 싱생협력..

▶10:20분 산행시작(4시간 10분 산행/중식, 휴식 포함)

 

금일산행은 건강셀프등산회의 제966차 산행으로 13년 전에 다녀온 천안 광덕산이 추진되었으며, 이번 산행은 광덕사주차장 ~ 광덕사 ~ 광덕산(중식) ~ 장군바위 ~ 부용묘 ~ 광덕사주차장의 6km, 4시간 원점회귀 코스 추진하였다. 13년 전에는 부용묘를 지나쳐 버렸으나 이번에는 찾기로 하였다. 광덕산은 천안의 진산으로 그동안 천안 인근의 산객들이 즐겨 찾았으나 전철이 천안역까지 연결되어 이제는 수도권에서도 많은 산객들이 찾는 산으로 정상에서의 전망이 좋은 산이다. 

 

산행추진 : 광덕사주차장 ~ 광덕사 ~ 광덕산(중식) ~ 장군바위 ~ 부용묘 ~ 광덕사주차장의 6km, 4시간 원점회귀

 광덕사 주차장 들머리(10:20) ~ 광덕산 정상(12:00)(들머리에서 1시간 35분 소요)

 

광덕사 주차장에서 잠시 정비를 한 후 10:20분 광덕산을 향하여 출발하였으며, 임도를 따라 8분 정도 진행한 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광덕사에 도착하였으며, 광덕사 입구에는 450여 년 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었고 광덕사 앞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호도나무(천연기념물 398호)가 있어 천안이 호두과자로 유명한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광덕사 주변을 15분 정도 둘러봅니다.

 

광덕사 일주문으로 '태화산 광덕사'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광덕산의 옛 이름이 큰 꽃이란 뜻의 태화산이었다. 광덕산이 처음 등장한 것이 세조실록이며, ‘태화산’이라고 불리다 조선 초에 바뀌었다고 한다.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오면서(643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광덕산 광덕사廣德山 廣德寺】

광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창건하였고, 832년(흥덕왕 7) 진산(珍山)이 중수하였으며, 1344년(충혜왕 복위 5)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의 하나로서, 사찰소유 토지가 광덕면 전체에 이르렀고, 89개에 달하는 부속암자가 있었다. 또한, 누각이 8개, 종각이 9개, 만장각(萬藏閣)이 80칸, 불에 타기 전에는 천불전(千佛殿)도 3층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타버린 뒤 1598년(선조 31) 희묵(熙默)이 중수하였고, 수 차에 걸쳐 중창, 개수한 후 1981년에 대웅전과 종각 등을 신축하고 천불전도 증축하였으며, 그 앞으로 석교도 가설하였다. 1996년 철웅(哲雄)이 15년 동안의 불사를 마무리 하여 대웅전 · 천불전 · 명부전 · 범종각 · 적선당 · 보화루 등을 중창하였다. 그러나 이 가운데 천불전은 1998년에 소실되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일부 발췌)

 광덕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누문 앞에 세 줄기로 굵직하게 뻗은 400여 년 된 호두나무(천연기념물 398호)..  

【광덕산 호도나무】

수령 40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바로 앞에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고려 충렬왕 16년(1290) 이곳 출신 역관 유청신이 원나라에서 어린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나무는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집 뜰에 묻었다고 한다. 지금 나무는 그 후계목으로 보고 있다. 호두란 이름은 원래 호도胡桃로 오랑캐 나라에서 온 복숭아씨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웅전, 범종각, 명부전, 적선당..

천불전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부도..

천불전으로 모든 문이 닫혀 있었는데 1998년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새로 만든 것 같은 불상과 탑..

산신각으로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더군요..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보화루..

고려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광덕사 삼층석탑으로 충남 유형문화재입니다..

적선당 뒤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범상치 않는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400년 수령의 광덕사 호두나무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로 천안호두과자가 명물이 된 것도 알고 보면 이 나무 덕이라 할 수 있다(광덕사로 들어가는 보화루 앞에 서 본모습)

광덕사 주변을 둘러본 후 다시 산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으며, 700여 개의 나무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을 달리기로 왕복하는 여성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팔각정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달리기를 하는 여성이 올라 와 확인을 해 보니 지금 10번째 올라왔다고 하며, 자신은 마라톤 선수이고, 다른 분은 코치라고 하였다. 700여개 계단을 10번 왕복을 하면 14,000개 계단을 달리기로 오르내린 것으로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희한하게도 광덕산정상, 장군바위, 광덕쉼터까지 모두 거리가 1.8km로 같습니다..

568개 계단이며, 다른 계단까지 합하면 정자까지 약 70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됩니다..

팔각정 정자에서 10여분 쉬어 갑니다..

팔각정 앞의

내려가는 두 사람이 700여 개 계단을 10번 왕복한 마라톤 선수와 코치라고 합니다..

팔각정 쉼터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니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을 지나 마지막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시야가 탁 트인 정상이 나타났으며 정상에는 들머리에서 1시간 35분이 소요되었다.

13년 전에는 광덕산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를 한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날씨가 좋아 정상에서의 조망은 좋았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오르막길..

광덕산 정상입니다..

광덕산은 산의 능선을 기준으로 지역을 양분하는데, 북쪽과 남쪽으로 충남 아산시 송악면과 천안시 광덕면의 경계를 이룹니다.

광덕산 정상인증..

정상에 있는 어느 산악인의 시비..

정상에서 본모습으로 주변의 산들이 발아래 있습니다..

산그리메가 멋지게 펼쳐져 있고..

산악구조대 초소도 정상에 있습니다..

저수지도 보이고..

광덕산 정상에서 페러글라이딩을 하고 있네요(11.3월 산행 당시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

 광덕사 정상(12:45) ~ 광덕사 주차장(14:30)(정상에서 1시간 45분 소요)

 

정상에서 조망을 하고 45분에 걸쳐 식사를 한 후 하산길인 장군바위 방향으로 이동을 하였으며, 하산 길은나뭇잎이 다 떨어져 겨울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으며,  약 30분 정도 지나 “허약한 청년이 이 물을 먹고 장군처럼 몸이 커졌다는 전설”이 있는 장군바위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부용묘가 있는 제3코스로 진행을 하였다.  

 

장군바위로의 하산길은 나뭇잎이 다 떨어져 완전히 겨울 풍경입니다..

장군바위 갈림길..

 “허약한 청년이 이 물을 먹고 장군처럼 몸이 커졌다는 전설”이 있는 장군바위..

장군바위에서의 하산길 초입은 다소 가팔랐으나 대체로 경사가 낮아 여유 있게 걸을 수 있었다. 장군바위에서 약 50분지나 부용묘에 도착하였다. 13년 전 산행 당시는 길을 잘못 들어 부용묘를 볼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운초 김부용은 허난설헌, 신사임당과 함께 조선의 3대 여류 시인이었으며, 황진이, 매창과 함께 조선의 3대 시기詩妓로 꼽히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운초는 가는 봄을 아쉬워 '꽃병에 매화를 꽃아 두어야겠다'는 시를 남겼지만, 시기가 가을이 가고 있으니 고운 단풍이나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운초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이곳 광덕산에 묻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절개가 있었던 여인인 것 같았다. 부용묘를 둘러본 후 주차장에는 광덕산 정상에서 약 1시간 45분이 소요된 14:30분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광덕사 방향으로 진행을 하며, 오늘 진행한 코스는 내일 개최하는 '천안시장배 전국생활체육 등산대회' 코스와 동일합니다..

대죽이 무성하고..

대죽길 사이로 진행합니다..

운초 김부용(1820~1869) 묘입니다..

운초 김부용은 허난설헌, 신사임당과 함께 조선의 3대 여류 시인이었으며,

황진이, 매창과 함께 조선의 3대 시기(詩妓)로 꼽히는 탁월한 능력과 절개가 있는 여인이라 할 수 있다.

운초는 가는 봄을 아쉬워 '꽃병에 매화를 꽃아 두어야겠다'는 시를 남겼지만,

지금 시기가 가을이 저물어 가고 있으니 고운 단풍이나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광덕사 천불전과 그곳으로 가는 다리 아래로 지나갑니다..

광덕사 일주문에는 '호서제1선원'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의왕으로 와서 만두전골(1인 4개 / 12,000원)과 막걸리 한 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만두가 먹음직스럽고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산행 후기

 

충북 천안의 광덕산은 13년 전에 다녀온 산으로 당시에는 부용묘를 찾지 못해 보지 못했으나 이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날씨가 좋아 정상에서의 멋진 풍광과 하산 길의 편안함에서 심신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13년이 지나 광덕산을 다시 걸으면서 무심한 듯 흘러가는 세월과 인생무상을 느낄 수 있었다, 13년 전 당시 72세의 에델님이 함께 하였는데 지금은 건강도 여의치 않아 바깥 출입도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흘러가는 세월은 붙잡을 수 없으니 건강관리를 잘 하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