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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13. 9.19)의 美를 찾아서

by 산사랑 1 201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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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2013. 9. 19일 목요일)】

 

경기도의 수부(首部)도시 수원은 조선 제22대 정조 대왕이 생부인 장헌세자(사도세자)를 향한 효심과 웅대한 개혁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운 계획된 신도시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園寢·왕세자의 산소)을 경기 양주 배봉산에서 지금의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조선시대 최고 성곽기술이 녹아 있다. 도심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7년 등재)인 화성(華城. 사적 제3호)이 팔달산을 중심으로 5.7㎞ (면적 37만1145㎡/약 11만2400평)에 걸쳐 펼쳐져 있는데, 정약용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의 협업 속에서 완성한 것이다.

 

화성은 화기 공격과 방어에 대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과학적인 설계로 축성된 성곽이다. 성의 부속 건물들 또한 모두 다르게 지어져 있는데, 다양한 건물군의 동시적인 건축물은 전세계에서 화성이 유일하다고 한다.

 

수원 화성(사적 3호)은 정조의 애민하는 마음과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성곽으로 꼽힌다. 아름다운 주변 풍광뿐만 아니라 역사성과 과학성, 축성에 대한 이야기가 그 매력을 더해준다.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지점에 행궁을 포함한 새 도시를 건설하는 일인 한편 부친의 넋을 달래려는 효심이 깃든 대역사(大役事)였던 것. 정조 18년(1794년)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해 만든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해발 143m의 수원 팔달산을 중심으로 성을 쌓기 시작한 지 2년 8개월 뒤 총길이 5,700m의 성이 완성됐다. 당초 10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이 들었던 것이 28개월만에 완성하게 된 것 중의 하나가 거중기(擧重機)로, 거중기는 40근(24kg)의 힘으로 625배나 되는 2만5000근(15,000kg)의 돌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실사구시의 과학정신이 화성 축조에 응용된 것. 화성의 동서남북으로는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이라는 큰 문을 만들었고 그 사이사이에 5개의 암문, 2개의 수문도 두었다. 그 밖에 적대, 공심돈, 봉돈, 장대, 각루, 포루도 만들어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화성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만들어진 도시 성곽으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 동안 조선시대 아름다운 건축미에 흠뻑 빠져들고 건강도 다질 수 있어 화성의 매력을 더해준다.

 

화성은 약 200여 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 일부가 무너졌다. 특히 6·25전쟁으로 크게 소실됐다가 1975년 보수·복원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화성의 사대문 중 팔달문은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성문만 남아 있다. 장안문은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됐다. 1978년 문루는 원래대로 복원됐다.

 

현재 수원 화성의 70~80%는 현대에 복원된 구조물로 이렇게 새로 복원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세계문화유산 중 기록유산으로 '화성성역의궤'가 선정이 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이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했는지, 그 의궤에 따라 복원된 수원화성도 덩달아 인정을 받아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돌 무게가 얼마고, 어떤 목재를 사용했고, 심지어 공사비로 얼마를 지출했는지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설계와 시공 부분은 그림과 해설을 따로 붙여 놓아 '화성성역의궤'만 있으면 화성은 얼마든지 다시 지을 수 있다. 이는 화성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학적이라는 반증이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도 당시 소견에서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한 과학적 특징을 골고루 갖춘 근대 초기 군사 건축물의 모범"이라며 "성곽은 이제 겨우 200년에 지나지 않지만 제각각 지닌 예술적 가치를 감안할 때 마땅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려야 한다."고 극찬했다.

 

서장대와 화서문 중간에는 정조대왕의 동상이 서있고 그 아래쪽에는 최근 복원한 화성행궁이 있다. 행궁은 임금이 지방 행차 시 머물던 별궁으로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으로 행차할 때 이곳을 자주 임시거처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봉수당, 장락당을 비롯한 총 576칸 규모의 거대한 행궁이다. 정조는 화성행궁에서 모친인 경의왕후(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경로잔치를 여는 등 백성에게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장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인 봉수당에서는 정조대왕과 왕비가 경의왕후에게 회갑연을 베풀어드리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화성행궁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신풍루 앞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일요일(오후 2~3시)에는 정조 17년(1793년)에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한 금위조직인 장용영(壯勇營) 수위식이 열린다.

 

화성을 돌아보는 동안 최소한 세 번은 반하게 된다. 처음에는 보호와 방어라는 성곽의 1차적 용도를 뛰어넘은 우리나라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흠뻑 매료되고, 그다음에는 한 임금의 부모 공경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곽 트레킹으로 자신의 건강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매력이다. 또한 웅장함과 화려함, 실용성을 두루 갖춘 화성의 야경 역시 일품으로 다가온다.

 

(출처 :파이넨션 뉴스 등을 중심으로 재편집)

 

팔달산 정상에 있는 군사 지휘소였던 서장대와 서노대(좌측)

 

▶15:15 트레킹 시작(약 1시간 40분 트레킹)

 

 

추석 명절날 오후 그 동안 마음속에 담아 주었던 수원 화성을 다녀왔다. 수원 화성은 정조대왕과 정약용의 꿈이 서려있는 곳으로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양재역에서 3000번 버스를 타고 팔달문에서 내려서 행궁으로 이동하여 행궁을 구경한 후 성곽일주를 하였다.

 

통상적으로 수원화성 성곽일주는 팔달문 ~ 서장대 ~ 화서문 ~ 장안문 ~ 동장대 ~ 창룡문 ~ 팔달문으로 하는 것이 보편적이나, 오늘 나의 일정은 화성행궁을 10분 구경한 후 서장대 ~ 화서문 ~ 장안문 ~ 동장대 ~ 창룡문 ~ 팔달문 ~ 서장대로 돌아 왔다.

 

 수원화성 안내도..

 

수원 화성을 출입하는 4개의 관문 중의 하나인 팔달문으로 이곳에서 화성 일주도로가 시작된다..

 

수원 화성 일주를 하기 전에 행궁을 먼저 들러 보았으며, 행궁 앞에 있는 고목..

 

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신풍루는 1790년 정조 14년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진남루라 했는데 이후 정조의 명으로 신풍루가 되었다.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이 수원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신풍류 다음으로 나오는 좌익문..

 

정조대왕과 왕비가 경의왕후(혜경궁 홍씨)에게 회갑연을 베풀었던 "장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인 봉수당..

 

봉수당 내의 모습 일부..

 

침전이었던 장락당..

 

화성행궁의 내당인 복내당으로 평소에는 화성 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신하들을 접견하던 유여택.. 

 

화성 행궁을 떠나며..

 

행궁을 나와 우측 주차장을 따라 올라가면 화성 성곽으로 갈 수 있으며,

화성열차 승차장을 지나면 유려한 곡선의 화성과 아름다운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수원 최고의 전망대인 서장대가 나온다..

 

수원 화성행궁 뒤편 팔달산 정상에 우뚝 솟은 서장대(화성 장대)는 화성의 남서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장대는 동장대와 함께 장수가 성의 안과 밖은 물론 인근지역까지 살피며 지휘하던 곳으로 화성을 축성한 정조대왕이 다섯 번을 오르며 화성장대라는 편액을 직접 썼다고 한다. 현재의 서장대는 2006년 방화로 불탄 것을 복원했으며, ‘화성장대’의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 있는 고궁박물관 편액을 모각해 달았다.

 

서장대에서 본 모습..

 

서장대 앞에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네요.. 

 

서장대에서 본 화성 행궁의 모습..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한 시설로 서장대에 있는 서노대..

 

노대는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노대 두군데가 있다..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는 서이치..

 

‘치’는 꿩을 위미하며, 꿩이 자기 몸을 잘 숨기는 모양을 닮았다하여 "치"란 단어를 붙인 이 곳은 성곽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병사들이 외벽을 감시하기가 수월했는데 그 이전의 성들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시설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는 서포루..

포루(砲樓)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곳으로 화성에는 5개 포루가 있다.. 

 

화서문이 보이고..

 

"치"가 외부로 돌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서일치로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있다..

 

서북각루..

각루는 주변을 감시하고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곳으로 화성에는 총 4개소가 섪치되어 있다..

 

4대문 중의 하나인 화서문..

벽돌로 쌓은 반원형 옹성이 문을 둘러 싸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수원 서북 공심돈..

공심돈은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적을 살필 수 있개 만든 망루의 일종 

 

 

북포루..

포루(鋪樓)치성위에 설치한 누로 군사들의 대기 및 휴식 장소로 화성에는 5개의 포루가 있다.

 

 

장안문이 보이고..

 

포루(砲樓)에 설치된 화포..

 

 

화성의 정문인 장안성..

 

대부분의 성은 남문을 정문으로 쓰는데 화성만 북문인 장안문을 정문으로 쓴다. 그 이유는 정조가 서울에서 출발해 가장 먼저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장안문이었기 때문이다. 장안이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북동포루에 설치되어 있는 화포(홍이포)..

 

북동치..

 

화성의 성곽도 남한산성의 성곽같이 곡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북동 포루(砲樓) 

 

 

동부각루(방화수류정)

 

수원천에 오리가 노닐고..

 

수원천..

 

수원천의 북족에 세운 북수문(화홍문)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수원 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이 여름에 자주 범람하자 성곽을 신축하면서 준설하고 남북에 각각 수문을 만들었다. '화(華)'는 화성, '홍(虹)'은 무지개의 의미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은 '수원팔경'에 꼽힌다.

 

동부각루(방화수류정)

 

'방화수류'는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앞내를 건넜다는 뜻이다. 방화수류정에서 보는 풍경은 화성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꼽힌다. 방화수류정은 전시에는 망루, 평시에는 정자의 기능을 했다.

 

곡선의 아름다운 美..

 

 

 

방화수류정 앞의 연못으로 매우 아름답습니다..

 

동북포루..

 

 

 

동북 공심돈..

 

군사를 지휘하던 동장대..

 

동북 공심돈..

수원화성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 중의 하나로 중국 요동지방에 있는 평돈을 모방하여 벽돌로 동그랗게 돈대를 쌓아 만들었다.

 

동북노대(쇠내를 쏘는 방어시설)..

서노대가 성벽 안쪽에 만들어진 것에 비해 동북노대는 치성위에 벽독을 쌓아 만든것이 특이하다..

 

4대문 중의 하나인 창룡문

창령은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으로 동문을 뜻한다..

 

장룡문 정면..

 

동일포루(군사들의 대기 및 휴식 장소, 감시와 공격을 위한 누각)..

 

동일치..

 

동포루(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것)..

 

동이치..

 

수원제일교회로 고풍스럽네요..

 

봉돈(봉수대로 성벽에 총안을 두어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이포루..

 

동삼치..

 

동남각루..

 

남수문(수원천이 흐르고)..

 

뒤돌아 본 동남각루..

 

남수무을 지나면 시장으로 연결되어 있고..

 

시장 한 편에 있는 "불취무귀"는 정조가 화성 축조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면서 한 말로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정조의 본 뜻은

백성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팔달문(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을 의미)으로 화성 4대문 중의 남문(보물 402호)..

 

팔달문을 지나 성곽으로 올라가는 매표소..

 

팔달문..

 

남포루..

 

서남암문..

 

도로를 따라 소나무들이 멋지게 늘어서 있고..

 

서포루..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수원 화성의 70~80%는 현대에 복원된 구조물로 이렇게 새로 복원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세계문화유산 중 기록유산으로 '화성성역의궤'가 선정이 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이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했는지, 그 의궤에 따라 복원된 수원화성도 덩달아 인정을 받아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돌 무게가 얼마고, 어떤 목재를 사용했고, 심지어 공사비로 얼마를 지출했는지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설계와 시공 부분은 그림과 해설을 따로 붙여 놓아 '화성성역의궤'만 있으면 화성은 얼마든지 다시 지을 수 있다. 이는 화성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학적이라는 반증이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도 당시 소견에서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한 과학적 특징을 골고루 갖춘 근대 초기 군사 건축물의 모범"이라며 "성곽은 이제 겨우 200년에 지나지 않지만 제각각 지닌 예술적 가치를 감안할 때 마땅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려야 한다."고 극찬했다.

 

효원의 종(모든 이에게 효성심을 심어주고, 나라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수원시민의 염원을 담아 만든 종)

 

서장대에 다시 와서 성곽일주를 마칩니다..

 

서장대 앞에 있는 소나무가 아주 멋지네요..

 

서장대와 서노대..

 

화성 순환열차(서장대에서 동장대까지 운행/성인 1,500원)..

 

행궁 앞광장에서 연을 날리고 있더군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들러 보았던 수원 화성의 성곽길은 당대 과학의 결정체요 멋진 경치까지 아우르는 소중한 세계문화유산 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시간내에 성곽과 행궁을 둘러 보느라고 제대로 보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지만 다음에 시간을 내어 천천히 둘러보면서 화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늘을 나는 연처럼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에게 뜻한 바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