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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서울, 경기)

갑곶순교성지(20.8.15) 탐방

by 산사랑 1 2020.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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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 순교성지】

‘갑곶 순교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그 역사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강화도 갑곶 해안은 조선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의 경유지였다. 천주교 성직자들이 1850년 중순 강화도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천주교가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당시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은 1866년 천주교 금지령을 내려 몇 개월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수천 명의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 탈출에 성공한 리델 신부가 중국 톈진(天津)에 있는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그때 강화도를 점령하고자 했던 프랑스 함대가 프랑스인 신부 9명을 처형한 조선 정부의 책임을 물어 바로 이곳 갑곶 돈대로 상륙,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한다. 추후 프랑스군은 후퇴했지만 이로 인해 강화에서는 천주교회의 가장 극심했던 박해의 하나로 기억되는 ‘병인박해’가 시작된다. 갑곶 돈대에서 보이는 바다 건너편의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들이 이슬로 사라졌다.

 

또 하나는 1866년에 미국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터지는데, 이를 미국이 빌미 삼아 1871년 군함을 앞세우고 강화도 해역을 침범한 신미양요가 일어난 후 대원군은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미국 군함이 물러간 후 고종은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교서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미국 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등이 제일 먼저 잡혀 갑곶 진두(갑곶 나루터)에서 목이 잘려 효수당하기도 했다.

 

천주교 인천교구는 문헌상에 나와 있던 갑곶 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그 터를 매입한 후 2000년에 순교성지로 조성했다. 갑곶 순교성지는 순교자 묘역과 박순집의 묘, 예배당,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 우물터, 야외 제대(제단) 및 예수님상, 야외 미사 장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교성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중에 하나가 박순집(1830~1911) 베드로의 묘이다. 인천교구는 2001년 9월에 순교자들의 행적을 증언한 박순집의 묘를 이장했다. 박순집은 참수 희생자는 아니지만 당시 목숨을 걸고 순교자들의 시신을 안장하고, 순교자의 행적을 증언하였으며 성직자들을 보호한 인물로 기록에 남아있다. 박순집 일가도 수난을 피해 갈 수 없었으며 16명이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박순집은 여러 박해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남은 생을 하느님께 드리며 일생을 헌신하는데,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가 ‘증언록’을 남긴 것이다. 박순집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알렸다. 천주교 선교 초기 역사와 153명의 순교자 행적을 생생히 증언한 박순집 증언록은 총 3권으로, 현재 절두산 순교자기념관에 소장돼 있다.(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com)

 

갑곶돈대와 갑곶 선창장 집단 양민 학살지를 지나 갑곶 순교성지를 둘러보았다.

갑곶 순교성지..

 

우리 팀은 후문 주차장에서 야외 제대 ~ 십자가의 길을 둘러보고 성지 입구로 나왔다..

 

갑곶 순교성지에서 본 갑곶돈대 포..

 

순교자 박순집의 묘..

 

갑곶 진두(나루터)에서 처형된 순교자 세 분을 기리는 ‘순교자 삼위비’..

 

‘순교자 삼위비’는 갑곶 진두(나루터)에서 처형된 우윤집ㆍ최순복ㆍ박상손 세 분의 순교자를 기리는 것으로 이들은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함에 몰래 찾아갔다는 죄로 효수됐다고 한다.

 

갑곶 십자가..

 

갑곶 성당..

 

기도하는 예수상..

 

십자가의 길은 14처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부활하기까지의 열네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제1처 :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심..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해 사형선고를 받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부활하기까지의 열네 장면을 형상화한 십자가의 길은 천주교 성지에는 항상 있는 것이다. 지난 4월에 방문한 절두산 순교성지에서는 십자가의 길은 14처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추가한 15처로 만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제7처 :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제9처 :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제10처 :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

 

제11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제1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제13처 :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제14처 :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세 쌍둥이 은행나무..

 

‘세 쌍둥이 은행나무’는 연리지로서 은행나무가 똑같은 모습으로 세 쌍둥이처럼 서있는 것도 특이하지만 이곳 갑곶 순교성지에서 세 분이 순교한 것과 매치가 되어 정말 신비로웠다.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게 크기별로 있는데 실제 십자가를 짊어져 보니 상당히 무거웠다..

 

십자가 길과 연결되어 있는 야외 제대..

 

다음은 탈북민 김모씨(24세)가 지난 7월 월북한 장소인 강화 월곳리 연미정과 고인돌 1번인 대산리 지석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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