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셀프등산회 제712~713차 산행인 강화 교동도 화개산과 석모도 상봉산 산행을 위한 강화 방문차 첫날 오전에 들렀던 강화 나들길 8-A코스인 동검도 ~ 황산도항 ~ 초지진을 둘러보았다. 서울에서 06:30분 출발할 때부터 많은 비가 내려 동검도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내려 차량으로 둘러보았다. 동검도는 옛날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선박은 물론 중국에서 우리나라 서울을 왕래하던 사신이나 상인들이 통과하는 동쪽의 검문소라는 의미가 있는 곳으로 섬 주변에는 간석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초지진과 포탄 맞은 흔적이 있는 명품 소나무..
강화 나루길 8-A코스 : 초지진 ~ 황산도 ~ 동검도를 역순으로 돌아봅니다..
동검교를 지나 동검도 선착장까지 둘러보고 다시 동검교로 돌아 나왔습니다..
【동검도】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와 연륙교로 연결되어 육지화되었다. 면적은 1.61㎢이고, 해안선 길이는 6.95㎞이다. 옛날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선박은 물론 중국에서 우리나라 서울을 왕래하던 사신이나 상인들이 통과하는 동쪽의 검문소라는 의미에서 동검도라 하였다고 전한다. 강화군 삼산면의 서검도와 대비를 이루는 지명이다.
섬의 중앙부에 산지가 솟아 있으며, 서쪽과 동북쪽 해안은 비교적 완경사지이다. 섬 주변에는 간석지가 넓게 분포하며, 그 가운데 일부는 간척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콩·고추 등이 재배된다. 연안에서는 숭어·준치·새우·낙지 등이 어획되고, 넓은 간석지에서는 굴·바지락·백합 등이 양식된다. 조선시대에 설치된 봉수대가 있다.
뻘이 갈라진 사이로 물이 흐르네요..
빗길에 동검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갑니다..
동검도 선착장 한쪽에 배가 정박해 있네요..
3일 연휴라서 이곳을 방문한 캠핑족의 텐드가 보이고 근처에서 라면을 끓여 먹더군요..
배 한 척이 뻘속에 외로이 고립되어 있고
선착장을 둘러보고 차량으로 이동을 한 후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어 봅니다..
갈매기 앞쪽에 있는 것이 함초이며 석모도 해변에 엄청 많더군요..
해안초소..
해무가 잠시 사라지면서 멀리 영종대교가 보이네요..
해안산책로 입구의 멋진 소나무..
동검리 시내버스 종점..
황산도로 연결되는 해안 태그 길 있는 곳에 후크선장이 먼바다를 보고 있네요..
섬과 뻘 속의 조그만 배가 운치가 있습니다..
이 나무 태그를 따라 걸으면 황산도 선착장이 나오는데 현재 보수를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더군요..
황산 선착장에 잇는 어판장이 배를 개조하여 만들었더군요/
어판장 앞쪽에 함초가 보이고(아래 좌측) 정박한 배 앞쪽에 초지대교가 보입니다(아래 우측)..
초지대교와 선박들..
후크선장이 있는 곳으로 연결되는 나무 태그인데 이곳도 역시 보수를 위하여 통행을 제한하고 있더군요..
해당화와 열매..
강화 나들길 8-A코스 안내표지..
황산 어판장을 끝으로 초지진으로 이동을 합니다..
초지진 외양으로 좌측으로 들어가며, 우측에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초지진】
사적 제225호이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안산에 있던 초지량영을 강화로 옮겨 진으로 승격시켰다.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지은 요새이다. 초지진에는 군관 11인, 사병 98인, 돈군 (墩軍) 18인, 목자(牧子) 210명 등이 배속되어 강화해협을 수비하였다. 또한 초지돈(草芝墩), 장자평돈(長子坪墩), 섬암돈(蟾巖墩) 등 세 곳의 돈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 돈대와 본진 간의 협공 체제를 통해 수비력을 극대화하였다. 초지진에는 군선(軍船) 3척이 배속되어 있었고, 부속된 3곳의 돈대에는 각각 3개의 포좌(砲座)를 마련하고 화포를 설치하여 강화 해협을 수비하였다.
신미양요(1871) 때 미국 해병 450명이 20척의 작은 배로 상륙을 감행하여 초지진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화력의 열세로 결국 점령당했고, 군기고와 화약 창고 등 군사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다. 1875년에는 일본이 무력으로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면서 일시적으로 복구되었던 초지진 포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돈대와 터의 기초만 남아 폐허가 되었다가 1973년 초지진의 초지돈만 복원되었다.
현재 초지진의 진사와 주요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음식점 등 각종 시설이 들어서 축조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타원형의 돈대에는 포좌 3개, 총좌 100여 개, 실제 조선시대 말기에 사용하던 대포가 1문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성채와 돈 옆의 소나무에는 전투 때 포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미국 및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맞서 격렬하게 싸웠던 전투상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다.
초지진의 소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 된 수려한 모습의 노거수로 생물학적인 가치 및 역사문화적 가치도 크다고 합니다..
초지진도 신미양요 당시 함포사격으로 초토화되었다고 합니다..
성벽 틈새에 부추가 자라고 있네요..
초지진 내부에는 당시 대포 1문이 전시되어 있는데 입장료(700원)를 받는 것은 조금 과한 느낌이 듭니다....
일행들이 초지진 대포를 둘러보고 있습니다..
사거리가 700m이나 포탄이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초지진 소나무의 아름다운 모습..
위 우축을 보면 신미양요 당시 포탄 맞은 표시가 있네요..
다음은 덕진진(남장포대,덕진돈대) ~ 광성보(손돌목돈대,용두돈대) ~ 강화외성 ~ 오두돈대 ~ 화도돈대 ~ 용당돈대 ~ 용진진(좌강돈대) 등을 둘러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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