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
교동도(喬桐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면적이 44.32㎢ 섬으로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는 지명을 부여받았고, 조선시대 강화도호부와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교동도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고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평야가 있는 북녘 땅이 지척인 곳으로 6.25전쟁 당시 이북 황해도 및 인근 주민들이 피난처로 임시 거주하던 곳이다. 종전 후 북쪽 고향땅만 바라보며 돌아갈 날만 하염없이 기다리던 실향민들의 60여년 세월이 그대로 남아있기에 시간이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섬이다.
교동도는 작아 보이는 섬이지만 이곳에는 현재 17 개리에 약 3,200명이 살고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섬이다. 섬은 간척사업을 하여서 인지 섬의 서쪽으로 제법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교동도에서 재배된 쌀은 미네랄이 풍부해서 인기가 좋다. 예전에 다녀 온 백령도의 경우에도 주민들 대다수의 주업이 농업인 것과 같이 섬에 의외로 농지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 활동되었으며, 특히 연산군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1506. 9. 2일 교동으로 유배되어 11.6일 사망 시까지 교동에 유배되어 위리안치되었으며, 유배지는 신골(봉소리), 연산골(고구리), 읍내리 세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華蓋山, 260m)으로 이 섬의 주산을 이루며, 봉황산(75m)·율두산(89m)·고양이산(35m)·수정산(75m) 등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들이다. 화개산의 명칭은 산정의 형태가 솥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화개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화개산 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1976년에 조성된 88.5ha의 교동도 고구저수지의 연밭에는 연잎은 거의 떨어지고 막바지였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었고 낚시꾼들도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고구저수지..
고구저수지는 낚시장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하며, 강태공들이 제법 있더군요..
연밭에는 백련과 홍련, 그리고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연밥이 익어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하트 모양이네요..
물속에 투영된 모습이 예쁘네요..
인근의 닭장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닭들의 모습..
교동도 화개산 산행 후 들렀던 대룡시장
대룡시장은 한때 시간이 멈춘 시장으로 “잊어버린 시간을 찾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지”로 각광을 받아 건셀에서는 그동안 두 차례 찾은 바 있었다. 첫 번째는 2012.12.15일(309차 산행) 창우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갔었고, 두 번째는 2016.01.20일(471차 산행) ‘14년에 완공된 연육교를 통하여 찾았다. 사실 섬 트레킹을 할 경우 배를 타고 가야 제 맛이 나는데 연육교가 완성되어 이제는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낭만이 사라져 추억 하나를 빼앗겨 버린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화개산 산행을 마치고 면사무소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본 '길에서 묻다'라는 조그만 교회..
‘길에서 묻다’라는 조그만 교회는 제주 올레길 13코스(용수 ~ 저지)를 걸을 때 본 것과 똑 같은 형태의 교회였다. 순례자의 교회는 교회 벽면에 "길 위에서 묻다"라는 짧은 글귀가 쓰여 있고 교회 내부로 들어가 보면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방명록이 있는 것이 제주 순례자 교회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구경을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관계자 한분이 나와 교회에 대하여 물은 결과 순례자를 위한 교회는 금년 3월에 착공하여 약 5개월 만에 완공을 하였다고 하며, 제주 순례자 교회를 만든 것과 동일한 제단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순례자들을 위한 '길에서 묻다'란 아주 작은교회 내부에는 성경책이 비취되어 있습니다..
"길 위에서 묻다"라는 짧은 글귀가 쓰여 있는 순례자의 교회에서 잠시 쉬면서 언젠가 누군가가 걸었고 앞으로 또 누군가가 걸을 이 길에 대한 감흥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길을 걸으면서 그들이 찾고자 하는 원하는 답을 얻기를 기원하였다.
순례자 교회에서 대룡시장으로 내려가다가 본 목화꽃..
교동초등학교가 100년이 넘었고/도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슬레이트 지붕 집도 볼 수 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대룡시장으로 들어 갑니다..
대룡시장은 과거 6.25 민족전쟁의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형성되어 교동리 상권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곳으로 2012년 방문 당시에는 1960~7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시간이 멈춘 곳이었다. 당시에는 마치 드라마 세트장같이 잡화점, 이발소, 장의사, 미용실, 구멍가게, 지물포 등의 두어 평짜리 가게들이 좁은 도로를 마주 보며 어깨를 맞대며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 ’ 60~’ 70년대에는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여 이곳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활기에 차 있었으나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변해버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연육교가 완성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함에 따라 예전 1960~70년대 풍경이 많이 사라져 버려 더 이상 시간이 멈춘 곳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60~70년대 풍경이 일부 남아 있고..
교동 이발관은 1박 2일의 은지원이 벌칙으로 머리를 깎은 곳으로 이날은 문이 잠겨 있었다.
우측 사진은 12년 들렀을 때의 사진으로 현재 이발사님이 계속하는지 알 수 없다.
조그만 담벼락에 벽화가 있는 이런 풍경도 조만간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교동 극장도 가게로 바뀌었고..
교동 스튜디오에서는 교복을 빌려주며 잠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보도록 합니다..
빨래터는 16년도에는 없었는데 새로 만들었네요..
815 광복절과 어울리게 무궁화나무에 꽃이 만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적의 사고를 반영한 카페로 '60~70년대를 상징하는 대룡시장과는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뻥튀기 벽화..
60~70년대의 가족계획과 쥐잡기 포스트로서 지금 세대들은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교동 제비집으로들을 위해 교동도의 스토리와
지역주민의 경제, 교육, 정보, 문화생활 등에 도움을 주기 위한 공간으로 새로 만들었네요..
2012년 첫 번째 방문 당시 사진으로
당시에는 약사가 없어 약방이 있었고, 방앗간, 정육점, 중화요리점도 있었으며
주억의 거리에서 단체인증도 하였는데 지금은 3명만 함께하고 있으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더군요..
두 번째 방문한 2016년 당시 사진으로
거리는 12년 당시와 비슷하나 12년에 없던 벽화들도 새롭게 있었고 조금 활기가 있는 느낌입니다..
대룡시장 구경을 마치고 숙소 이동하는 길에 들렀던 조그만 교회로 이 교회는 시각장애인의 훈민정음을 만든 송암 박두성과 관련이 있는 교회인 것 같으며, 교회 인근에 박두성 생가터가 있어 현재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 인근에 있는 가게에서 오리로스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삼인삼색으로 각각 자기 취향에 맞게 소주, 막걸리, 사이다로 갈증을 해소합니다..
내일은 석모도 상봉산 산행과 보문사를 들러 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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