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산성】
사적 제130호. 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로 인해 삼랑성이라고 하며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성곽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경주의 명활산성처럼 삼국시대 성의 구조를 찾을 수 있으므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측된다. 정족산성(鼎足山城)이란 이름은 세 개의 봉우리를 이어서 쌓은 성의 모양이 다리가 세 개인 솥을 닮았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성벽 길이는 2,300m에 달하며 거친 자연활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이다. 성 내에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전등사가 있으며, 1259년(고려 고종 46) 백승현(白勝賢)의 풍수설에 따라 고종은 왕업을 연장하기 위해 성안에 가궐(이궁)을 지었으나 현재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마니산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1660년(조선 현종 1년) 삼랑성 안에 새로 사고를 짓고 옮겨놓았는데 이를 정족산 사고라 하며, 무너진 것을 1998년 강화군에서 복원하였다.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며, 성안에는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의 승전비가 있다. 이 성에는 동. 서. 남. 북에 4대 문이 있고 1739년(영조 15년)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라 명명했다. 남문의 문루(종해루)가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76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남문을 제외한 3개 문에는 문루가 없다. 동문과 서문은 홍예문 식이며, 북문은 암문으로 되어 있다. (출처 : 다음 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작성)
정족산 남문..
강화여행 2일차(20. 3.20/금) 두 번째 코스 : 정족산성 일주
강화여행 2일차 코스로 온수리 성당을 둘러본 후 오늘의 메인인 정족산성 일주를 하였다.. 정족산성 일주는 20. 3월 한 바 있으며,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이번에 재 추진하게 되었다. 정족산성 일주는 온수교회 ~ 북문 ~ 정족산 정상 ~ 서문 ~ 남문 (전등사 구경) ~ 동문 ~ 온수교회의 원점 산행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산행 들머리인 온수교회..
• 온수교회(09:45) ~ 북문(10:15)(온수교회에서 약 30분 소요)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의 배웅을 받고 온수교회 위쪽의 솔향기 가득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진행하였으며, 약 7분 후에 이정표(전등사 북문 1.54km/온수 성공회성당 0.95km)가 나와 전등사 북문 반대방향으로 진행을 하였다. 작년에 북문으로 진행하였는데 성곽일주를 한 후 북문 반대방향(표시는 없음)인 동문으로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문방향으로 10분 정도 진행하면 산성 성곽으로 올라가는 곳이 나오며, 그곳에서 잠시 경치를 구경한 후 북문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이곳에서는 김포와 연결되는 초지대교, 산행전에 들렀던 온수리 성당과 들머리인 온수교회 등이 조망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길상면 방면의 논들이 황금들녘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의 배웅을 받으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20년 3월 산행 시에는 전등사 북문 방향으로 진행했으나 반대방향(동문 방향)이 산성 일주하기가 쉬운 관계는 반대로 진행함..
여기서 우측으로 살짝 돌아가면 산성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작년에는 쇠줄이 있었으나 철거를 했는지 보이지 않더군요..
김포와 연결되는 초지대교가 보이고..
산행 전에 들렀던 온수리 성당과 산행 들머리인 온수교회가 보입니다..
길상면 방향의 논들이 황금들녘으로 변해가고 있네요..
북문으로 가는 성곽의 라인이 자연친화적인 S라인으로 되어 있어 보기 좋았으며, 강 건너 문수산이 조망되었다. 북문에는 온수교회에서 약 30분이 소요된 10:15분 도착하였다. 북문은 멀리서 보면 출입문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고 유사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가 용이한 구조인 암문으로 되어 있었다.
성곽이 S라인으로 보기 좋습니다..
강 건너 문수산이 조망되고..
성곽 틈 사이에 피어 있는 꽃으로 색이 너무 곱습니다..
암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 북문입니다..
• 북문(10:16) ~ 정족산(삼랑성) 정상(10:35) ~ 서문(10:46)(북문에서 약 32분 소요)
북문 안에는 멋진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정족산 정상으로 진행하였으며, 정상가는 성곽길은 현재 성곽보수공사(21.8월 ~ 22.2월) 중이었다. 정상가는 길 도중에 마니산이 있는 화도면 방향의 논들도 익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정족산 정상은 북문에서 약 19분이 소요되었다.
이 구간(여기서 정족산성까지)은 성곽보수공사(21.8월 ~ 22.2월) 중입니다..
마니산이 있는 화도면 방향으로 이 논들은 간척지입니다..
정족산 정상으로 고도가 220m네요..
정상에서 마니산이 있는 화도면의 간척지가 한눈에 들어왔으며, 약 3분 정도 조망을 하고 서문으로 출발하였다. 서문 주변으로 소나무들이 울창한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서문 가는 길은 내리막길로 정족산 정상에서 약 11분이 소요되었다.
소나무가 운치가 있네요..
성안의 빗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수구라고 합니다..
코스모스도 피어 있고..
• 서문(10:48) ~ 남문(11:12)(서문에서 약 24분 소요)
서문은 동문과 함께 홍예문 식으로 문루가 없었으며,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정상에서 내려오는 성곽길이 뚜렷하게 보였다. 언덕을 올라가 보니 멋진 조망이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서 천년고찰 전등사를 볼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성곽길이 뚜렷하고..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조망이 탁 트여 잠시 조망을 즐깁니다..
천년고찰 전등사입니다..
【전등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중창기문(重創記文)에는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이라고 하며, 이 기록에 의하면 현존하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확실하게 단정 짓기는 어렵다.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라고 했으나 1282년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불렀다고 한다.
1605(선조 38년), 1614년(광해군 6년)에 일어난 화재로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다음 해 4월부터 재건하기 시작해 1621년 2월 완성되었다. 1678년(숙종 4)에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가 건립되면서 왕조실록을 지키는 사찰로 왕실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되었다. 이 사고장본(史庫藏本)은 1909년 서울로 옮겨져 조선총독부 분실(分室)에 보관되었다가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07년 사각을 고쳐 짓고 별관인 취향당을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78호)·약사전(보물 제179호)·명부전·삼성각·향로각·적묵당·범종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산행을 하면서 높은 곳에서 절을 바라보면 유명한 절들은 명당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시 전등사도 멋지게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문 가는 길은 성곽길도 잘 조성되어 있고 멋진 조망을 보면서 내려갈 수 있었다. 남문은 서문에서 약 24분이 소요되었다. 남문은 정족산성의 정문으로 종해루라고 하며, 1739년에 중수하면서 문루를 설치하였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무너져 있던 것을 1976년 보수를 하였다.
멋진 경치가 펼쳐져 있네요..
유스호스텔(?)도 보이고..
성곽길도 잘 조성되어 있고..
남문에서 동문 가는 길이 뚜렷합니다..
이곳 성곽은 잘 보존되어 있네요..
정족산성 정문인 남문은 4대문 중 유일하게 문루가 있으며 종해루라고 하며,
1739년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였고 무너진 것을 1976년 보수를 하였다...
남문에서 인증을 하고..
전등사를 돌아봅니다..(별도 작성)
• 남문(12:16) ~ 동문(12:21)(남문에서 약 5분 소요)
남문에서 전등사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 약 1시간에 걸쳐 전등사를 구경한 후 다시 남문으로 내려와 동문으로 향했으며, 동문은 남문에서 약 5분이 소요되었다.
동문입니다..
• 동문(12:22) ~ 온수교회(12:42)(동문에서 약 20분 소요)
동문에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격퇴한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있었으며, 또한 35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있었다. 동문에서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에 성곽 바깥에 멋진 건물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건물들은 전등각으로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대통령이 묵었던 여관이었으나 지금은 전등사 소유로 불교문화체험 장소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격퇴한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동문에 있네요(20. 3월 산행 사진)..
【양헌수 승전비】
화강암으로 건립된 비의 총높이는 181cm, 비신(碑身)의 높이는 163cm, 폭은 60cm, 두께는 27cm이며 단층 1칸의 비각 내에 안치되어 있다. 비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巡撫千摠梁公憲洙勝戰碑)’라고 음각되어 있고, 비 뒷면에는 병인양요 양헌수 장군의 공적이 수록되어 있다.
양헌수는 1848년(헌종 14)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65년 제주목사를 거쳤다. 1866년 프랑스군대가 강화도를 침공 점거하자, 경초군(京硝軍)과 포수 총 549명을 거느리고 통진에서 강화도에 잠입하여 정족산을 점거하고, 11월 9일 산성을 공격하는 프랑스군 160명과 격전을 벌였다.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6명이 사살된 것을 포함하여 60∼7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프랑스군은 다음날인 11월 10일 강화도를 철수하였다. 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의 군대는 전사 1명, 부상 4명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화력이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전과를 올린 것은 양헌수의 뛰어난 전략 때문이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동문 바깥에 있는 전등각으로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이 묵었던 여관이었으나 지금은 전등사의 불교문화체험 장소로 사용 중..
이곳은 성곽이 제법 정비가 되어 있네요..
오전에 북문 갈 때 올랐던 곳입니다..
오전에 정족산성으로 올라갔던 곳으로 이제 내려갑니다..
온 교회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산행 후기
정족산성은 산행길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것이 마치 남한산성의 축소판과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산행 간 천년고찰 전등사도 구경할 수 있으며, 전등사를 구경하지 않은 경우 소요시간이 약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아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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