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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북알프스
백대명산 산행기/강원,제주

두타산 베틀바위(22. 6. 4)

by 산사랑 1 2022.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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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 베틀바위(22. 6. 4일 토요일산림청 선정 100 명산/인기백명산

 

두타산(1,353m)은 동해시 삼화동에서 서남쪽으로 약 10.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는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 당골을 품은 산으로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두타산은 백두대간의 줄기에 자리 잡은 산으로 영동과 영서의 분수령으로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청옥산을 지나 고적대에 이르는 산줄기는 험준한 준령으로 이어져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이 산줄기 또한 동해시와 삼척시 하장면의 경계가 된다. 북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어 험준하며, 서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하다. 북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이 무릉계곡을 지나 살내[箭川]를 이루며,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이 오십천을 이루어 동해에 흘러든다. 한편 남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하천은 골지천과 합류해 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이 두타산은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산이며, 두타산에서 삼화사에 이르는 3.1km의 계곡에는 무릉계곡을 비롯하여 두타산성, 금란정, 용추폭포, 쌍폭포와 삼척 쪽으로 오십천, 천은사 등의 수많은 관광명소가 있어 등산객의 발길을 쉬어 가게 한다.

 

두타산이라는 이름은 “항상 조용한 곳에 머무르고 의식주에 얽매이지 아니하며 번뇌의 티끌을 털고 도에 정진하는 것”이 불교의 두타행(頭陀行)에서 왔다. 두타산 산행은 표고 차이가 높아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처럼 느껴지지만 누구나 땀을 흘리면 정상을 만난다는 점에서 수행보다 좋다고 할 수 있다. 산의 모양새 또한 이를 행하기에 딱 어울리니, 용추폭포 위로는 보통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동천(洞天)이 흐르고 있어 무릉도원을 묘사한 도연명의 ‘도화원기’가 연상된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나 두타산은 피라미드 꼴을 이루고, 청옥산은 둥글고 완만한 곡선을 그려 두타는 ‘골(骨) 산’, 청옥은 ‘육(肉) 산’이라 하며, 두타와 청옥은 약 4㎞거리를 두고 이어져 있어 한 봉우리로 인식되기도 한다.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4m) 사이에 이어진 맵시 있는 골짜기가 무릉계곡으로 수백 명이 앉을 만한 무릉반석을 시작으로 계곡미가 두드러진다. 학소대, 옥류동, 선녀탕 등을 지나 쌍폭과 용추폭포에 이르면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른다. 쌍폭은 각각 20여 m의 거대한 물줄기가 좌우에서 굉음을 토하며 쏟아져 내려 장관으로 왼쪽 반달계곡에서 떨어지는 4단 폭포와 오른쪽 용추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나 절경을 연출하지만 밑으로 내려가 보기는 위험하고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 거인들의 계단처럼 켜켜이 쌓은 듯한 바위 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물줄기는 남성적인 두타산 상징으로 남을 만하다. 쌍폭에서 2분 거리의 용추폭포는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멋진 폭포로 상담, 중담, 하담의 3단 폭포와 담(潭)이 연이어서 매끈한 암벽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가 단단한 화강암을 깎고 다듬어 항아리 모양의 수줍은 자태를 드러내어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며, 하담은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선경을 보여준다. 쌍폭이 남성이라면 용추폭포는 여성적이다.

 

두타산 산행은 일반적으로 청옥산과 연계해서 산행을 한다. 약 8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해발 높이가 낮은 동해시 삼화리(표고 180m)에서 올라감에 따라 두타산까지는 1,170m, 청옥산까지는 1,220m의 표고차를 보여 백두대간의 서쪽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힘이 드는 것도 두타산 산행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두타산 정상은 청옥산(1403m), 쉰움산(683m), 덕항산(1071m)으로 내닫는 백두대간의 험산준령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을 발아래 굽어 볼 수 있어 백두대간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산세를 가진 곳 중의 하나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등산하고 내려오면 산이 가진 모든 진수를 다 경험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할 정도이다. 계곡은 무릉계곡이요, 폭포는 용추폭포와 쌍폭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암반 계곡과 희한의 극치인 폭포이다. 거기다 암릉이 있고 협로가 있고, 암봉이 있고, 좋은 전망대가 있고, 울창한 송림이 있고, 고산을 연결하는 보기엔 유장하나 너무 길어서 힘든 능선이 있다. 고원지대가 있고 아슬아슬한 슬랩지대가 있고, 무릉계를 내려다보는 시원한 암릉이 있고 두타에서 고적대까지의 장쾌한 스카이라인이 있고, 청옥에서 두타로 내려올 때의 빽빽한 활엽수림대가 있고 저지에서는 보기 힘든 거목 활엽수가 무성한 고개가 있다.

 

산행 후 국내에서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동해시 천곡동의 ‘천곡동굴’을 찾으면 태고의 신비를 느끼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총길이 1,400m의 석회암 수평동굴로 4억~5억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에 종류석, 석순, 석주 등 20여 종의 2차 생성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본모습..

 

 12: 45분 산행 시작(산행시간( 약 3시간 45/식사 포함)

 

금일 산행은 건강셀프등산회 제825차 산행으로 안내(산수) 산행을 따라 40년 만에 개방한 두타산 베틀바위 산행이 추진되었으며, 산행은 무릉계곡 주차장 ~ 베틀바위 전망대 ~ 미륵바위 ~ 산성터 ~ 12산성폭포 ~ 두타산성 ~ 학소대 ~ 삼화사 ~ 무릉계곡 ~ 무릉계곡 주차장의 원점회귀 산행이 추진되었다.

 

산행 추진 : 무릉계곡 주차장 ~ 베틀바위 전망대 ~ 미륵바위 ~ 산성터 ~ 12산성폭포 ~ 두타산성 ~ 학소대 ~ 삼화사 ~ 무릉계곡 주차장의 원점회귀 

신사역에서 07:10분 출발한 산행 버스는 현충일까지 포함 3일의 연휴가 이어져 동해로 가는 차량 정체가 만만치 않아 무릉계곡 주차장에는 신사동에서 약 5시간 30분이 소요된 12;40분에 도착하였다. 오늘 산행은 17시까지 하산 완료를 해야 됨에 따라 최대한 빠르게 진행을 해야 될 것이라 산행을 단축해야 할 것 같아 당초 계획한 쌍폭포는 생략하기로 하였다.

 

 무릉계곡 들머리(12;50) ~ 베틀바위 전망대(14;05) (들머리에서 약 1시간 25분 소요)

 

들머리에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차량을 주차할 공간도 거의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은 차량이 주차해 있어 두타산 & 무릉계곡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잠시 정비를 한 후 12;45분 산행을 시작하였으며, 계곡을 지나 약 5분 후 베틀바위/무릉계곡 갈림길에 도착하여 잠시 인증을 한 후 베틀바위로 진행하였다. 잠시 후 숯가마터 표시를 지났으며, 들머리에서 약 17분 후 베틀바위 1.2km 지점을 통과하였으며, 다시 7분 정도 진행한 후 들머리 주차장이 보이는 조망처에서 잠시 조망을 하고 약 25분에 걸쳐 간단히 식사를 하였다.

 

계곡이 가물어 바닥이 다 드러났습니다..

베틀바위/무릉계곡 갈림길에서 베틀바위로 진행합니다..

베틀바위 1.2km 지점을 통과하고..

무릉계곡 주차장이 보입니다..

식사 후 조금 진행하니 거대한 바위가 우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약 5분 후 조망처에서 들머리 주차장을 역시 볼 수 있었다. 청옥산 방향의 거대한 바위에는 물줄기가 지나 간 깊은 골이 있는 것이 비가 오면 장관일 것이란 생각과 함께 비가 많이 오면 계곡물이 엄청 불어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조망을 한 후 다시 길을 나서니 멋진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는 것을 보고 40여 년 간 출입을 통제한 것이 잘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림은 한번 훼손이 되면 복구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데 이곳은 40여년 출입을 통제한 덕택에 멋진 소나무들이 훼손되지 않고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바위가 우뚝 서 있고..

이곳에서도 무릉계곡 주차장에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네요..

청옥산 방향의 거대한 바위에는 물줄기가 지나 간 깊은 골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잠시 뒤 하늘을 향하여 입을 벌리고 있는 물고기 형상(?)의 바위를 볼 수 있었으며, 약 4분 후 베틀바위 500m 팻말을 지났다. 잠시 후 가대한 암봉이 마치 병풍바위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나중 병풍바위 전망대에서 보니 전망대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곳 베틀바위와 미륵봉 주변에는 회양목 군락지가 있다고 하며, 잠시 후 암벽을 수직으로 올라가는 거북이 형상의 바위를 볼 수 있었다. 연이어서 바위와 소나무가 멋지게 어우러진 것도 볼 수 있었는데 예전 황산 서해대협곡 트레킹을 할 때 보았던 것과 흡사하였다. 베틀바위 전망대 입구에 도착하니 수문장같이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베틀바위 전망대에는 들머리에서 약 1시간 25분이 지난 14:05분에 도착하였다.

 

하늘을 향하여 입을 벌리고 있는 물고기 형상(?)의 바위.. 

가대한 암봉이 마치 병풍바위처럼 우뚝 서 있고..

베틀바위와 미륵봉 주변에는 회양목군락지는 있다고 하네요..

암벽을 수직으로 올라가는 거북이 형상의 바위가 있네요..

바위와 소나무가 멋지게 어우러지고..

베틀바위 전망대 입구에도 멋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베틀바위 전망대에는 들머리에서 약 1시간 25분이 지난 14:05분에 도착..

 베틀바위 전망대(14;15) ~ 산성 12 폭포(15;05분)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약 50분 소요)

 

베틀바위 전망대에 도착하니 뾰족한 바위들이 하늘을 향하여 뻗어 있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40여 년 만에 개방되어 많은 산객들이 다녀간 곳으로 차일피일 미루자 이번에 올 수 있었는데 소나무와 어우러진 바위들이 멋들어지게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보니 찬사가 절로 나왔다. 비록 설악의 공룡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비경을 가진 곳이 그리 흔하지 않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바위 틈새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나무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면서 나약한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본모습..

베틀바위

무릉도원 명승지 내에는 능선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지쪽은 학소대, 음지쪽은 베틀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베틀 바위는 높은 산에 가리어 음산한 음지에 기암절벽형이 마치 베틀 같아 보여 베틀 바위라 한다. 베틀 바위와 관련된 전설에 의하면 하늘나라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벌을 받아 하강하여 이곳 무릉도원 명승지 소금강 골에서 삼베 세필을 짜고 개과한 후 승천했다 전해진다. 베틀 바위를 가는 등산코스로는 무릉도원 명승지 입구에서 무릉반석을 지나 삼화사, 두타산 성을 본 후 두타산을 통해 하산하는 14.9㎞의 코스로, 4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출처: 동해관광 홈페이지)

 

올라오면서 보았던 거대한 암봉이 뒤에서 우뚝 서 있고.

뾰족한 암봉과 소나무들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고..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소나무,,

규모가 조금 작아 아쉽지만 위용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인간의 나약함을 비웃듯이 바위 틈새 곳곳에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봅니다.. 

베틀바위에서 약 10분 동안 멋진 경치도 보면서 휴식을 취한 후 200m 떨어진 미륵봉으로 진행하였다. 미륵봉 가는 길에서도 멋진 소나무들을 볼 수 있었으며, 약 7분 후에 미륵봉에 도착하였다. 미륵봉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미륵불, 선비, 부엉이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운악산의 미륵바위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륵봉 가는 길에서도 멋진 소나무들..

바위가 특이하게 생겼네요..

미륵바위 직전의 깊은 협곡..

미륵바위입니다..

 미륵바위를 둘러본 후 산성길을 따라 산성 12 폭포로 진행하였으며, 길은 완만한 숲길로 이어졌다. 길가에 쪽동백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길을 내면서 복원한 숯가마터도 볼 수 있었다. 산이 깊고 나무가 많아 숯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 숯을 저자거리로 가져가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생각하니 억척스런 삶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산성12폭포에는 베틀바위에서 약 50분이 소요된 15:05분에 도착하였다.

 

쪽동백을 볼 수 있고..

숯가마터..

산성12폭포로 열두 번 굽이치듯 내리치는 폭포는 보이지 않고 물이 지나가는 흔적만 보여 주네요..

마치 물만 있으면 언제든지 바다로 가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거북바위..

거북바위에서 본 산성12폭포..

거대한 수직의 암벽..

바위 사이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소나무..

거북바위를 지나 약 5분 후에 산성터에 도착하였으며, 그곳에서는 관음암(?)이 숲으로 둘러 싸여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산성터 앞에는 두타산의 명물인 백곰바위가 있으며, 그 앞에는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두타산성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압권으로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1224~1300)가 이곳에 은거하며 스스로 두타산거사(頭陀山居士)라 불렀으며, 한민족이 단군을 시조로 한 단일민족임을 처음으로 밝힌 역사서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이곳에서 작성했다고 전해진다.

 

멀리 관음암(?)이 보이고..

두타산성은 1414년 조선 태종 때 축성했다고 전해지나 102년 신라 파사왕 때 처음 쌓았다고도 하며, 이곳에서는 청옥산 정상을 포함해 두타산 정상을 향하는 거친 바위길이 한눈에 보인다. 두타산성은 높이가 1.5m 그 길이가 2.5㎞에 이른다고 기록돼 있으나 현재는 부분적으로 성벽이 일부 남아 있을 뿐이며, 임진왜란 때 왜병의 주력부대와 3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스러져간 의병들의 애잔한 항전사가 전해져 내려온다.

 

두타산성 터입니다..

두타산성

두타산성은 국민관광지 무릉계곡 내에 있는 석성으로 동석산성이라고도 불린다. 102년(신라 파사왕 23년)에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1414년(조선 태종 14년)에 삼척부사로 왔던 김맹균이 높이 1.5m, 둘레 2.5km의 산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 쳐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산성으로 피난하였다. 당시 아군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남북 15리 절벽에 도열시켜 적에게 위세를 보이자, 왜군들은 공격을 포기하고 백복령 방면으로 퇴각했다. 빨래하던 노파가 이 산성의 사정을 제보하듯이 이방의 계략대로 알려주었더니 왜군은 이기령을 넘어 우회 침공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치밀한 계략. 왜군들은 성중에서 전멸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고장 청년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을 격침했다는 항쟁지로, 현재 성터가 남아 있고 호국의 얼이 담겨 있는 곳이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거시기 같은 암봉도 우뚝하고..

백곰바위 앞쪽에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두타산의 명물 백곰바위입니다..

산성12폭포 방향의 멋진 암봉..

두타산성에서 약 5분간 머문 후 다시 출발하였으며, 약 15분 후에 괴산의 선유구곡중의 7곡인 은선암과 비슷한 형상의 멋진 곳이 나왔다. 이곳에서 다시 15분지나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하는 학소대가 나왔다. 계단식으로 쌓은 것 같은 기암절벽인 학소대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모형 학 두 마리가 설치되어 있다. 학소대에는 상류의 동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이곳을 지난다는데 가물어서 그런지 물이 흐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학소대에서 다시 약 8분 정도 내려가면 삼화사가 나왔다.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자장율사가 두타산에 이르러 "흑연대"를 창건한 것을 시초로 범일국사가 "상공암"이라는 암자를 세우고 고려 태조 때 "삼화사"로 개칭한 사찰이다.

 

괴산의 선유구곡중의 7곡인 은선암과 비슷한 형상의 멋진 곳이 나오고..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하는 학소대에 모형 학 두 마리가 설치되어 있고..

월정사의 말사인 삼화사..

삼화사

삼화사는 642년(신라 선덕여왕 11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처음에는 흑련대라고 했으나 864년 범일국사가 중건하면서 삼공암이라 부르며 사찰의 성격도 교종에서 선종으로 바뀌었다. 삼공암은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다. 왕건은 이곳에서 후삼국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 후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자 그 동안 고려와 후백제, 신라가 가졌던 증오와 갈등을 끝내고 화합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로 절 이름을 삼화사로 바꾸었다.

 

이성계는 고려 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할 때 공양왕과 그 마지막 추종세력을 모두 삼척 앞바다에 수장했다고 한다. 그 원귀들을 천도하기 위해 조선 개국 이후 삼화사는 수륙재 도량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후 1747년에 홍수와 사태로 인하여 무너지자 옛터에서 조금 위로 옮겨지었지만 1820년에 다시 화재가 나자 1824년 재차 중건했다고 한다. 1907년에는 의병(義兵)이 숙박하였다는 이유로 일본군들이 방화해서 대웅전과 선방 등 200여 칸이 소실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삼화사 주위에는 많은 유적과 설화가 전한다. 고려 말에 민족의식을 고취했던 <제왕운기>의 저자 이승휴는 삼화사 주변에 용안당을 짓고 이곳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했으며, 10여 년 동안 불경을 탐독하다가 자신이 살던 용안당을 삼화사에 희사해서 간장암이라는 암자로 만들었다고 한다.(출처 : 위키백과)

 

삼화사 삼층석탑 뒤 적광전..

신라 선덕여왕 때(642년) 창건한 삼화사에 있는 보물 제1277호 삼층석탑과 보물 제1292호 철조노사나불좌상이 있다..

삼화사 천왕문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12지신상이 설치되어 있고 삼화사 일주문 나기기 전의 다리에서는 무릉계곡의 아름다운 모습과 용오름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삼화사를 지나면 무릉반석이 나오는데 무릉반석에는 매월당 김시습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남긴 글씨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특히 조선의 4대 명필로 꼽히는 양사언(1517∼84년)은 선경에 반해 무릉반석 위에 “신선들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리네.” 라는 뜻의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란 글을 새겼다. 무릉반석을 지나 무릉계곡 주차장에는 16:40분에 도착하여 약 3시간 55분의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삼화사 천왕문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12지신상이 설치되어 있다..

삼화사 일주문을 나갑니다..

삼화사 직전의 다리에서는 무릉계곡이 아름다운 모습과 용오름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릉반석에서 인증을 하고..

한말 유림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금란정..

무릉반석에 있는 양사언(1517∼84년)의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란 글(옥호거사가 썼다)을

보전하기 위해 1995년에 설치한 모형 석각

산행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오니 두타산 산행을 진행 한 안내(산수)산악회 등반대장이 하산을 하지 않았고 1시간 정도 지연될 것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두타산 산행 시간(당초 6시간을 5시간 30분으로 조정)을 보장하지 않고 시간 단축을 하다 보니 산행 절대시간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산행대장의 판단 미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경치 구경을 하지 못한 채 산행을 마무리(우리 팀도 쌍폭과 용추폭을 보지 못하고 하산하였음) 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17;44분 산행 버스는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으며, 귀경길은 막히지 않아 신사역에서 21;10분경에 도착하였다. 신사역에 도착하여 양평해장국 집에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귀경 후 신사역 양평해장국 집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산행 후기

 

두타산 베틀바위는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지난해 40년 만에 개방하여 많은 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산행은 베틀바위를 보고 산성 12 폭포에 들른 후 쌍폭포와 용추폭포를 보고 무릉반석으로 하산하는 것이 가장 좋은 코스이나 산행들머리에 도착이 지연되어 산행시간이 약 4시간 20분 밖에 주어지지 않아 쌍폭포와 용추폭포를 둘러보지 못하고 하산을 하였다. 그런데 안내(산수)산악회 등반대장은 하산을 하지 않았고 버스 출발은 1시간정도 지연될 것이라고 하였다. 처음부터 두타산 산행 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시간 단축을 하다보니 산행 절대시간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산행대장의 판단 미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경치구경을 하지 못한 채 산행을 마무리 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안내 산악회는 이점에 대하여 사과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될 것이다. 우리 팀은 비록 쌍폭과 용추폭은 보지 못했지만 베틀바위와 산성 12폭포 등 멋진 모습을 다소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어 그나마 나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