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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지역

인왕산 ~ 북악산(22. 9.12)

by 산사랑 1 2022.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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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 북악산 연계 산행(2022. 9. 12일 토요일)】

 

인왕산(338m)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인왕산은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세종 때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경복궁 왼쪽에 자리한 인왕산은 예로부터 황제가 태어날 명당이 있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돌았다. 도성의 풍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한양을 대표할 풍경은 모두 이곳 인왕산 주변을 맴돌고 있다. 특히 필운대(弼雲臺), 청풍계(淸風溪), 반송지(盤松池), 세검정(洗劍亭)은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의 '국도팔영(國都八詠)'에 꼽혀 한양 명승지의 절반을 인왕산 자락이 차지했다.

 

정상에 오르면 경복궁을 중심으로 인왕산과 함께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내사산인 낙산, 남산, 백악산이 펼쳐진다. 북한산에서 볼 때, 북악산을 중심으로 좌측에 낙산, 우측에 인왕산이 있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룬다. 특이한 형태의 암석과 암벽의 웅대함이 등산객의 감탄을 자아내며, 정상에 서면 서울 중심가의 빌딩들과 청와대 부근의 녹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출처 : Daum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편집]

 

북악산에서 본 북한산 주능선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의상능선 일부, 문수봉, 보현봉,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능선이 그림 같고..

금일 산행은 건강셀프등산회 제842차 산행으로 근교 산행인 인왕산 ~ 북악산 이 추진되었으며 산행은 경복궁역 2번 출구 ~ 사직단 ~ 한양도성 성곽 길 ~ 인왕산 정상 ~ 창의문 ~ 북악산 ~ 칠궁으로 추진하였다.

 

사직단을 잠시 둘러 봅니다..

사직단

사적 제121호. 면적은 43,587㎡.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가리킨다. 두 신을 제사 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社稷壇)이다. 조선시대 사직단을 관장하던 관청은 사직서(社稷署)였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禮)』에 기록되어 있는 조선 초기의 사직단을 보면, 한가운데에 사단과 직단이 각각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였는데 너비는 2장 5자이고 높이는 3자였다. 유의 한쪽 면의 길이는 25보(步)였으며, 사방으로 홍살문이 있었다.

 

사직단은 임진왜란으로 건물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단만 남았다. 신위는 개성의 목청전(穆淸殿)에 묻어 보관되었다가 평양으로 옮겨졌으며,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게 되자 세자가 받들고 황해·강원도 등으로 다니다가 환도해서는 심의겸(沈義謙)의 집에 종묘의 신위와 함께 모셨다. 1596년(선조 29)에 신실을 지어 봉안하였다. 사직단이 완전히 중건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1603년(선조 36)에 사직단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1608년(선조 41) 종묘가 중건되기 전에 복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사직의 규모가 매우 축소되었으며 부속 건물 가운데 재실(齋室)로 쓰이던 안향청과 정문만이 남아 있다. 조선의 사직 제사는 1년에 3번, 봄·가을 납일(臘日)에 제사를 지내고, 기고(祈告) 제사도 사직에서 지냈다. 주현에서 지내는 사직 제사는 봄·가을 두 번 지냈으며, 국왕 대신 그 지역의 수령이 제사를 지냈다.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국가’ 자체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일 정도로 상징적인 곳이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일부 발췌)

 

종로 단군성전..

한양 도성탐방로로 진행..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습니다..

인왕산이 거대한 암반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곽을 따라 진행..

성곽길이 남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산..

인왕산과 북악산..

인왕산에서 최고로 멋진 바위..

옥개석..

인왕산 정상..

인왕산 정상 인증..

기차바위로 진행하면서 본모습으로족두리봉에서 보현봉~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능선이 그림 같습니다....

인왕산 정상(좌)과 안산 정상(우)..

기차바위로 북한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기차바위에서 본모습으로 영욕으로 얼룩 진 청와대를 당겨 봅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

연리지인 부부소나무로 특이합니다..

성곽 너머 있는 옥인박물관 옥식원..

성곽 너머 옥식원에 피어 있는 옥잠화..

 

인왕산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북악산 가는 길목에 있는 1.21 사태 당시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동상..

북악산 가는 관문인 창의문..

성벽 철조망 너머 밤나무에 토실토실한 밤이 엄청 달려 있네요..

북악산 성곽..

북한산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의상능선 일부, 문수봉,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악산 정상석으로 백악산이라 적혀 있습니다..

북악산(北岳山)

북악산(342m)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하며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북악은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중 하나로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북악은 남산에 대칭하여 칭했으며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 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등으로 불렸고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북악산은 1395(태조 5) 시축 한 서울성곽(사적 제10)의 기점으로서 북악산에서 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출처.[: Daum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편집]

 

1.21 사태 당시 무장공비가 쏜 총알 자국..

멋진 소나무 아래 청운대 표지석이 자리 잡고 있네요..

청운대는 백악산에서 가장 풍광이 멋진 곳입니다..

새로 개방된 만세동방 방향으로 하산을 합니다..

만세동방 약수터로 물은 먹지 말라고 적혀 있습니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본모습으로 남산과 광화문, 경복궁, 그리고 청와대가 조망됩니다..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가 한창입니다..

칠궁을 보기 위하여 효자동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산행을 마치고 칠궁으로 내려갑니다..

칠궁을 둘러봅니다..

칠궁

칠궁은 조선의 왕을 낳은 어머니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조선의 왕과 왕비는 종묘에 신주를 모시고 왕을 낳은 후궁 신주는 따로 모시는 공간을 만들어 왕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며 효를 다했다. 1908년에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다른 후궁의 사당들을 이곳으로 합치면서 모두 7개가 모였다고 하여 칠궁이라 이름 붙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희빈의 신주와 뒤주에 갇혀 죽었던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 씨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궁궐의 다른 전각들처럼 규모가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검소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차분해지는 장소이다.(출처 : 투어코리아 - No.1 여행·축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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