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본 북알프스
백대명산 산행기/서울,경기

남한산 & 행궁(23. 9.30) 트레킹

by 산사랑 1 2023. 10. 8.
반응형

건강셀프등산회 제901차 산행은 추석 다음날 남한산이 추진되었다. 날씨가 선선하여 산행하기 적절하였으며, 산행은 장경사 주차장 ~ 벌봉 ~ 남한산 정상 ~ 북문(수리 중) ~ 서문 ~ 행궁 ~ 동문 ~ 장경사 주차장의 원점으로 추진하였다. 추석 다음날이라서 그런지 산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호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행궁에 도착하여 휴식 중에 비가 왔으며, 다시 동문을 지날 때 비가 그쳤다. 여유롭고 호젓한 산행의 멋을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하루였다..

 

남한산 정상..

【남한산성 산행(2023. 9. 30일 토요일)】인기 백대명산 제95위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都城)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으로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 암문(暗門)·우물·보(堡)·누(壘) 등의 방어 시설과 관해(官해), 군사 훈련 시설 등이 있다. 이 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백제(百濟)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온조왕대(溫祚王代)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3년(67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 (晝長城, 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로서 현재 남한산성이 위치한 곳이라고 믿어져 내려온다. 고려시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둘레가 3,993 보이고, 성내에는 군자고(軍資庫)가 있고, 우물이 7개인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또한 성내에 논과 밭이 124 결(結)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개수를 본 것은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고 난 1624년(인조(仁祖)2)이다. 인조는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여장(女墻) 1,897개·옹성(甕城) 3개·성랑(城廊) 115개·문 4개·암문 16개·우물 80개·샘 45개 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純祖) 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처음 축성의 목적을 대변해 주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이 73칸 반의 규모이고, 하궐(下闕)이 154칸이나 되었다.

 

1798년(정조(正祖) 22) 한 남루(漢南樓)를 세우고 1624년에 세운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을 1829년(순조(純祖) 29)에 수리하였다. 관해(官해)로는 좌승당(左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을 비롯하여, 비장청(碑將廳), 교련관청(敎鍊官廳)·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의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종각(鐘閣)·마구(馬廐)·뇌옥(牢獄)·온조왕 묘(溫祚王廟)·성황단(城隍壇)·여단(여壇) 등이 이루어졌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을 총괄하였다.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는 처음에 총융청(摠戎廳)이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守禦廳)이 따로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수어사인 이시백(李時白)은 서성을, 총융대장(摠戎大將) 이서(李曙)는 북성, 호위대장(扈衛大將) 구굉(具宏)은 남성, 도감대장(都監大將) 신경진(申景縝)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元斗杓)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수항단(三田渡受降檀)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나, 그 뒤 계속적인 수축을 하여 경영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남한산성 행궁 좌승당 뒤편 후원에 있는 정자  이위정에서 본 좌승당과 내행전의 아름다운 모습..

산행은 장경사주차장 ~ 벌봉 ~ 남한산 정상 ~ 북문 ~ 서문 ~ 행궁 ~ 동문 ~ 장경사 주차장의 원점회귀 추진

 

장경사지 옹성..

벌봉으로 가는 제3 암문..

《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로 대다수 규모가 작으나, 이곳 제3암문은 원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주출입구로 다른 암문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다.

 

벌봉 가는 문을 지나 잠시 가면 무너진 성곽에서 홀로 기나긴 세월을 지키고 있는 멋진 소나무..

벌봉으로 가는 제13 암문..

봉암신성신축비..

무너진 성벽에는 세월이 무심한 듯 이끼만 켜켜이 싸여 있고..

벌봉입니다..

남한산 정상은 이곳에서 100m 위쪽에 있다고 하나 현재 공사 중이어서 갈 수는 없습니다..

남한산 정상인증..

벌봉에서 다시 성안으로 들어갑니다..

제3암문으로 다시 나옵니다..

한강이 조망되고..

제4암문..

물봉숭아가 간간이 보입니다..

성 밖의 멋진 소나무..

하트 형상이네요..

물봉숭아의 아름다운 자태..

소나무와 성벽 사이로 난 아름다운 길..

북문은 공사 중이고..

보수하기 전 북문의 모습(19. 9월)..

서문입니다..

식용버섯이라고 합니다..

서문 전망대에서 본모습으로 롯데타워 뒤로 남산이 보이고..

서문전망대에서 노을과 야경이 정말 예쁘고  아래 사진들은 예전에 보았던 일몰과 야경입니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어도 낙조는 예쁘네요(20.8.23일)..

일몰 후의 빛이 도시를 붉게 물들이고(19. 9.13일)

남한산의 야경은 정말 멋집니다(19.9.13일)

다시 서문으로 되돌아갑니다..

수어장대..

파노라마로 본모습..

다른 각도에서 본 수어장대..

수어장대에 있는 수고 400년 된 보호수 향나무는 벽을 뚫고 나와 있습니다..

남한산성 축성과 관련된 민간신앙처로서 마을의 신을 모시는 신당의 성격인 청량당..

수어장대 옆에 있는 멋진 소나무(앞과 뒤에서 본모습)..

달을 맞이한다는 영일정..

행궁 입구인 한남루..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가 한봉에서 홍이포를 쏘아 기둥이 맞았다는 외행전..

파노라마로 본 외행전..

남한산성 행궁 좌승당 뒤편 후원에 있는 정자 이위정에서 본 좌승당과 내행전의 모습..

종로에서 동문 가는 길에 있는 산성교회..

동문 위쪽의 성벽들은 보수 중으로 통제를 합니다..

동문에서 본모습..

동문에서 장경사 가는 길의 성곽들..

보수 중인 성곽..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술이 특이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일조를 하였다..

장경사 절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