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셀프등산회 제917차 산행은 남한산이 추진되었다. 산행은 남문주차장 ~ 남문 ~ 동문 ~ 남한산 정상 ~ 벌봉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남문 ~ 로터리주차장으로 남한산을 일주하였다. 남한산은 눈과 얼음으로 땅이 꽁공 얼어 있어 산행이 쉽지는 않았으나, 날씨가 좋아 멋진 조망을 볼 수 있었다. 조용히 사색을 하면서 한가롭고 여유롭고 호젓하게 산행을 즐겼으며, 간간이 눈발이 날려 더욱 운치가 있는 산행이 될 수 있었다. 산행은 남한산 일주에 벌봉과 연주봉 옹성을 추가하고 땅이 미끄런 관계로 평소보다 믾은 시간인 약 6시간이 소요되었다.
남문에서 동문가는 길의 제3옹성 있는 곳에서 본 수묵화 모습..
【남한산성 산행(2024. 1. 20일 토요일)】인기 백대명산 제95위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都城)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으로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 암문(暗門)·우물·보(堡)·누(壘) 등의 방어 시설과 관해(官해), 군사 훈련 시설 등이 있다. 이 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백제(百濟)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온조왕대(溫祚王代)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3년(67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 (晝長城, 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로서 현재 남한산성이 위치한 곳이라고 믿어져 내려온다. 고려시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둘레가 3,993 보이고, 성내에는 군자고(軍資庫)가 있고, 우물이 7개인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또한 성내에 논과 밭이 124 결(結)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개수를 본 것은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고 난 1624년(인조(仁祖) 2)이다. 인조는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여장(女墻) 1,897개·옹성(甕城) 3개·성랑(城廊) 115개·문 4개·암문 16개·우물 80개·샘 45개 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純祖) 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처음 축성의 목적을 대변해 주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이 73칸 반의 규모이고, 하궐(下闕)이 154칸이나 되었다.
1798년(정조(正祖) 22) 한 남루(漢南樓)를 세우고 1624년에 세운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을 1829년(순조(純祖) 29)에 수리하였다. 관해(官해)로는 좌승당(左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을 비롯하여, 비장청(碑將廳), 교련관청(敎鍊官廳)·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의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종각(鐘閣)·마구(馬廐)·뇌옥(牢獄)·온조왕 묘(溫祚王廟)·성황단(城隍壇)·여단(여壇) 등이 이루어졌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을 총괄하였다.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는 처음에 총융청(摠戎廳)이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守禦廳)이 따로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수어사인 이시백(李時白)은 서성을, 총융대장(摠戎大將) 이서(李曙)는 북성, 호위대장(扈衛大將) 구굉(具宏)은 남성, 도감대장(都監大將) 신경진(申景縝)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元斗杓)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수항단(三田渡受降檀)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나, 그 뒤 계속적인 수축을 하여 경영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산행추진 : 남문주차장 ~ 남문 ~ 동문 ~ 남한산 정상 ~ 벌봉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남문 ~ 로타리주차장으로 추진
남문유원지에서 남문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본 모습들..
약수는 부적합으로 되어 있고, 공원 관리자들이 도로를 점검하고 있었다..
남한산 남문인 지화문..
남문 밖으로는 성남누비길로 이어지고 있다..
남한산성의 정문인 남문으로 4대 문 중에 규모가 가장 크며, 조선시대 임금들의 출입문으로
1,779년(정조 3년)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하고 지화문(至和門)이라 하였다고 한다.
남문에서 본 동문 가는 길(좌)은 눈이 쌓여 있으나 / 서문으로 가는 길(우)은 눈이 녹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은 눈으로 쌓여 있고..
복원이 완료된 제1 옹성..
《옹성》
옹성은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경사가 완만한 지역의 성문 밖에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은 이중 성벽으로 총 5개(동문, 북문 각 1개, 남문 3개)가 있다. 제2남옹성은 둘레가 318m로 다른 옹성과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소나무 한 그루가 고고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네요..
복원된 남장대터(우측)에 멋진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고..
남장대터 앞에 제2남옹성이 있고..
남장대터에서 본모습으로 청계산과 관악산도 보이고..
청계산 뒤로 관악산이 보이고(좌)/ 청계산을 당겨 잡은 모습(우)
남장대터의 멋진 소나무를 다시 봅니다..
바깥쪽에서 암문(좌)과 안에서 본모습(우)..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술이 특이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일조를 하였다..
제3옹성치 뒤로 검단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보이고..
경치를 조망하는데 날씨가 좋아 정말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네요..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수묵화 같은 풍경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산성 밖의 마을과 첩첩산중..
동문 가는 길에서 본 망월사로 남한산성 내에 있는 9개 사찰 산성의 승병을 관할하던 절이었다..
동문 맞은편에 있는 제11암문으로 안쪽 계곡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300여 명이 순교했다고 하며..
동문입니다..
경사가 높은 곳의 성곽..
지나 온 남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여 이에 감명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인 송암정으로 보수 완료된 모습..
송암정 앞에 있는 生과死의 나무..
수묵화 같은 모습..
남한산 종로가 보고..
성곽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하고..
남한산의 성곽길은 성곽 축성술이 특이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일조를 하였다..
장경사 절..
장경사지 옹성(위)/ 옹성에서 본모습(아래)..
군포지애도 눈이 쌓여 있고..
동장대터 앞으로 벌봉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 곳으로 이곳은 여전히 복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벌봉으로 가는 제3암문..
벌봉으로 나가는 곳의 성벽에 눈이 쌓여 있고..
벌봉 가는 길의 멋진 소나무..
남한산 정상은 정상석이 있는 이곳에서 100m 위쪽에 있다고 합니다..
남한산 정상이 있는 곳인데 표식은 없으며/ 그곳에서 본모습으로 한강도 보이고/ 은고개의 가게(아래 우측)들도 보입니다
벌봉입니다..
봉암신성신축비가 있는 곳의 거대한 암석.
벌봉으로 가는 제13 암문에서 다시 되돌아갑니다..
이곳은 가파르고 얼어 있어 이번 산행에서 가장 쉽지 않은 곳입니다/ 제4암문(아래)..
성 밖의 멋진 소나무들..
성 바깥에 있는 멋진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
성안의 멋진 소나무들..
소나무와 성벽 사이로 난 아름다운 길..
복원 완료된 북문..
북문에서 성문 밖으로 진행합니다..
성문 밖에서 본모습들..
성벽 안쪽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연주봉 옹성으로 진행합니다..
남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봉 옹성..
갑자기 날씨가 흐려 시야가 좋지 못합니다..
다시 되돌아가서 계속 서문족으로 진행합니다..
야경의 명소인 서문전망대에서 본모습도 희미합니다..
서문입니다..
서문에서도 바깥쪽으로 진행합니다..
사람 얼굴 형상의 바위..
수어장대로 가는 제6암문까지는 현재 공사 중이고..
제6 암문입니다..
수어장대로 들어갑니다..
수어장대에 있는 수고 400년 된 보호수 향나무는 벽을 뚫고 나와 있습니다.
수어장대에 있는 수고 400년 된 보호수 향나무는 벽을 뚫고 나와 있습니다..
5개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수어장대입니다..
수어장대 옆에 있는 멋진 소나무..
남문 가는 길의 멋진 소나무들..
영춘정..
남문 가는 길도 눈발이 날려 희미합니다..
남문에 도착하여 남한산 일주를 완료합니다...
로터리 주차장 가는 길에 있는 비석 군..
한 해를 시작하면서..
지난 한 해는 기대로 시작해 실망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할 수 있다. 5년에 걸친 문제인 정권의 포퓰리즘과 실정에 실망한 국민들의 염원을 받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정말 기대가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드러난 모습은 공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문제인 정부와 닮은 꼴이었다. 나라는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 경기침체 등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정치권은 자기들 보스의 의중을 살피느라고 민생문제는 뒷전이었다.
여권은 대통령 눈치 보느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태원 참사 당시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질질 끌다가 이태원특별법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영부인은 정체가 불투명한 목사로부터 디올 백을 받은 것 때문에 특검의 빌미가 되고 있고 , 야권은 대장동 개발비리와 성남 FC 등으로 검찰 소환을 받고 있는 이재명 지키기에 여념이 없고, 다수만 믿고 모든 현안에 대하여 법안으로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하고 국회에 재부의 되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어찌하여 이 나라는 과정은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는 사라지고 상식이 통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을까? 지난 정부의 잘못을 개선하기는커녕 윤석열 정부도 이에 못지않으니 참으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 복이 없는 것 같다..
내년의 경제사정도 금년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을 것으로 예측이 되는데 정치권은 여전히 현안에 대한 타개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진흙탕 싸움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 나라가 어찌 될까 심히 걱정이다.. 정치권만 정신 차리면 나라가 잘 될 수 있을 것인데.. 올해는 총선이 있기에 제발 정신들 차리고 민생의 어려움에 귀 기울여 주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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