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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 키라코롬 22차(23.7.14 / 금)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 타쉬켄트

by 산사랑 1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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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산 산지를 넘어가는 길..

 

키라코롬 22차(23.7.14 / 금)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자 중앙아시아 최대의 도시 타슈켄트(Tashkent) / 아미르 티무르 광장, 나보이 극장, 브로드웨이 거리. 숙소 : Grand Capital Hotel 

아침 5시 인근의 센트럴파크로 산책을 나갔으며, 가는 길에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공원은 놀이동산으로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었다. 차도에 운전자들은 사람이 있던 없던 신호를 지키는 것과 거리가 상당히 깨끗한 것이 그동안의 국가들과 달리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 페르가나는 계획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출을 보고..

놀이동산인 센트럴파크로 들어갑니다..

놀이 기구들이 다양하게 있고..

제법 큰 인공연목도 있고..

투영된 모습..

8시 10분 우리 일행은 차량 6대에 나누어서 타슈켄트(Toshkent)로 향했다. 차량은  현대 스타렉스를 개조한 것으로 쾌적하였다. 도로의 집들은 야트막하고 포도를 많이 심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감자밭도 상당히 넓다. 차종은 거의 대우, 현대 등 한국 차들이 도로를 달린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페르가나 분지 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나망간(Namangan)을 지나 휴게소에 10:15분 도착하여 약 30분간 쉬어 간다.

 

타슈켄트로 가면서 본모습..

차도에는 현대 등 한국 차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으며, 신차들을 수송하고 있네요..

도로가 약간 오르막이라고 에어켠을 끈 채로 달리니 더운 바람이 훅 끼쳐온다, 졸리고 잠이 몰려온다. 11:28분 텐산 산지를 넘어가면서 약 15분간 조망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멀리 설산이 보였으며, 도로는 구불구불 이어졌다. 이곳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휴식 후 꼬부랑길을 따라 내려간다. 광산 도시 앙그렌(Angren)을 지나 '돌(Tosh)의 도시(Kent)'라는 뜻을 가진 타슈켄트에 도착하니 오후 1시 40분이었다. 호텔(Grand Plaza Hotel)에는 14:02분 도착하여 수고한 기사에게 팁을 1인당 5000 솜 주었다.

 

텐산 산지를 넘어가는 길에 조망처가 있어 잠시 쉬어 갑니다..

조망처에서 본 굽이굽이 이어진 멋진 도로로 이 도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설산도 보이고..

이곳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도로입니다..

호텔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합니다..

타슈켄트(Tashkent)
타슈켄트는 소련 존속 당시 러시아 연방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키예프 다음가는 인구밀집지역이었으며 면적으로는 3번째였다. 차칼 산맥 서쪽의 치르치크 강 하곡 해발 450~480m 지점에 있으며 치르치크 강과 이어진 운하망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른다. BC 2(또는 BC 1) 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자슈·차치켄트·샤슈켄트·빈켄트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타슈켄트는 유럽과 동양으로 가는 대상로 연변에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중요한 교역 중심지이자 수공예 중심지로 유명했다.

1865년 러시아에 점령되었을 때는 7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성벽도시로 이미 러시아와의 교역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1867년 타슈켄트가 새로 설치된 투르키스탄 주의 행정중심지가 되면서 옛 시가지 옆에 유럽풍의 신 시가지가 들어섰다. 1917년 11월 무장봉기가 일어난 뒤 러시아 이주자들이 들어오면서 소련의 지배가 확립되었다. 타슈켄트는 새로 수립된 투르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의 수도로 남아 있었으나 1924년 자치공화국이 분리되면서 사마르칸트가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초대수도가 되었고 타슈켄트는 1930년에야 수도의 지위를 넘겨받았다.

나보이 오페라 발레 극장 등 우즈베크어와 러시아어로 공연하는 극장이 9개나 있다. 그 밖에도 예술 궁전과 여러 개의 박물관, 공원 및 운동 경기장이 있다. 타슈켄트는 1966년 일어난 지진으로 30만 명의 이재민이 난 뒤 광범위하게 재건되었다. 15, 16세기에 지어진 몇 개의 종교 건축물과 웅장한 영묘가 지진을 견디고 남았는데, 그중 하나인 바라크한 마드라사(신학교)는 현재 중앙아시아 및 카자흐스탄 이슬람교 협회의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인과 우즈베크인이 인구의 약 80%를 차지 하며, 그 외 타타르족·유대인·우크라이나인·한국인이 소수 거주한다.

타슈켄트(Tashkent)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자 중앙아시아에서 최대 도시로서 250만 명의 인구의 대도시라고 한다. 카자흐스탄 국경에 가까운 우즈베키스탄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타슈켄트는 실크로드의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오래된 도시이긴 하지만 사마르칸트나 브라하처럼 찬란한 도시가 아니었다고 한다. 1865년 러시아군이 점령하면서 1867년부터 투르키스탄 총독부가 설치되었다. 타슈켄트가 수도가 된 건 1930년에 소련 지배하의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사마르칸트로부터 천도해 온 뒤부터 중앙이시아의 중심도시로 급 부상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66년 4월 26일 대지진으로 오래된 도시의 70%가 파괴되었고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졌기 때문에 타슈켄트는 도시 복구를 위해 대대적인 소련의 지원을 받고 주변의 소련 위성국으로부터도 지원을 받아 거대한 광장과 직선형이며 넓은 도로와 수많은 분수대 및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져 있는 계획된 새로운 도시로 다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 형태는 소련식으로 되어 있지만 소련의 여러 위성국의 기술자들이 복구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그들 나라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건물이 지어졌다고 한다. 1991년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우즈베키스탄은 독립이 되었고 타슈켄트는 당시 소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었다고 한다.

 

티무르 동상..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다 오후 4시 숙소를 나와 걸어서 티무르 동상이 있는 아미르 티무르 광장에 자리한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은 눈부신 파란 돔과 화려하게 장식한 인테리어를 갖춘 인상적인 건물이다. 들어가면서 만나는 것은 중앙에 있는 코란의 모조품과 거대한 초상이 맞아준다. 그리고 티무르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의 전시품이 방문자의 관심을 끌지만 사진은 찍지 못하게 하였다. 바깥의 정원은 말 등에 탄 티무르의 조상을 담고 있으며 도시에서 가장 좋은 정원과 분수의 몇몇에 의해 둘러 싸여있다.

 

 티무르 동상 뒤로 티무르박물관이 보이고..

티무르박물관을 구경하러 갑니다..

 티무르 박물관은 눈부신 파란 돔과 화려하게 장식한 인테리어를 갖춘 인상적인 건물입니다..

코란의 모조품..

다시 봐도 멋진 건물이네요..

박물관을 구경한 후 지하철을 타고 4 정거장 후에 있는 필리페(오쉬, 볶음밥)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갔다.  우즈베키스탄의 지하철은 매캐한 냄새가 나서 별로 쾌적하지 않습니다. 식당은 엄청 컸으며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필리페(오쉬, 볶음밥) 양은 많았으나 조금 느끼하였다. 그 이유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볶음밥을 만드는데 기름이 많이 남아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지하철은  매케한 냄새가 나서 별로 쾌적하지 않습니다..

이 탑을 기준으로 하면 식당을 찾기가 쉽습니다..

식당은 엄청 컸으며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맛은 우리 입맛에는 다소 느끼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볶음밥을 만드는데 기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녁식사 후 브로드 웨이(Broadway)를 찾았다. 그림을 팔고 있는 브로드 웨이 양쪽으로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다수의 사람들이 밤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화가들 몇 사람이 있었지만 손님이 없어 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브로드웨이는 그리 길지 않았으며, 노래방을 겸비 한 한국 레스토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둘러본 후 발길을 돌려 나보이 극장(Navoi Opera & Ballet Theatre)을 찾았다. 16세기 우즈베키스탄의 유명한 시인인 알리세르 나보이(Alisher Navoi)의 이름을 딴 이 극장은 옛 소련연방 시절 모스크바와 민스크의 볼쇼이 극장과 더불어 3대 오페라 극장으로 불렸던 극장으로 일본군 전쟁 포로들을 동원해 지었다고 한다. 여름철이라 공연이 없어 문은 잠겨 있었다. 사진을 찍고 발길을 돌려 브로드 웨이로 다시 돌아왔는데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화가는 여전히 졸고 있었다. 김밥, 만두, 컵라면, 핫도그 등을 판매하는 한국 거리 음식점이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브로드웨이를 지나 호텔로 돌아와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브로드 웨이 양쪽으로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다수의 사람들이 밤의 낭만을 즐기고 있네요..

그림을 그려주는 브로드 웨이 거리에 화가들은 손님이 없어 졸고 있고..

브로드웨이 거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노래방이 있는 한국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16세기 우즈베키스탄의 유명한 시인인 알리세르 나보이(Alisher Navoi)의 이름을 딴 나보이극장으로 발코니가 있네요..

나보이 극장 앞의 분수대에는 물이 힘차게 뿜어져 나오고..

모스크바와 민스크의 볼쇼이 극장과 더불어 3대 오페라 극장으로 불렸던 극장이라고 합니다..

극장 입구 문과 천장의 모습..

화가는 여전히 졸고 있습니다..

김밥, 만두, 컵라면, 핫도그 등을 판매하는 한국 거리 음식점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