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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카라코롬 23일차(23. 7.15/토)타슈켄트 ~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 비비하눔

by 산사랑 1 202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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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사마르칸트는 기원전에서부터 소그디아 인들이 개척한 동쪽이다. 중국과 서쪽의 페르시아 남쪽의 인도로 가는 무역로의 교차로이기 때문에 항상 번창하였다. 그래서 소그디아 인들이 수도로 삼았고 주변 강국들로부터 많은 침략을 당해 온 지역이다. ​BC 329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되었다. 6세기부터 투르크인, 아랍인 등의 지배를 받다가 13세기 콰레즘 왕국에 합병되었고 1220년에 징기즈 칸에 의해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마르카트 근교에서 태어난  티무르가 1365년 반란 이후 수도를 사마르칸트로 정하고 방대한 점령지로부터 받아낸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사마르카트를 재건하여 오늘의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1500년 우즈베크인들이 점령하여 부하라 칸국의 영토가 되었다. 1887년 러시아 제국의 지방 행정 및 철도 중심지가 되었고, 1924~30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였다가 1938년에 사마르칸트 주의 주도가 되었다. 고대·중세에는 중국과 인도로부터 연결되는 교역로의 교차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요 산업은 견방적·과일통조림·포도주·의류·가죽·신발·담배 제조업 등이다.

사마르칸트는 2760년의 역사를 가진 중앙아시아 최고의 실크로드 도시다. 그리고 14세기에 칭기즈 칸 이후 중앙아시아를 전체를 통일하고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던 티무르가 세운 제국의 수도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마르칸트에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도 역시 티무르 제국 시대의 작품들이다. 사마르칸트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그런 역사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충분할 만큼 흔적 또한 많이 남겼다. 가볼만한 곳은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울루그벡 메드레세, 쉬르도르 메드레세, 틸라카리 메드레세, 울루그벡 천문대, 샤히진다, 비비하늠 모스크, 구르에미르, 아프라샵 언덕, 아프라샵 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사마르칸트가 실크로드의 무역의 중심지로도 유명하지만 중국의 종이 제조 기술이 사마르칸트를 통하여 유럽에 전달되어 유럽의 르네상스를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BC 320년 알렉산더대왕, AD 629년 중국 당나라 시절 현장(삼장법사), 8세기 초 신라 승려 혜초, AD 1220년 칭기즈칸, 그리고 AD 1332년 아랍 여행가 이븐바투타까지 이곳을 거쳐 간 역사적 인물 또한 많다.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Registan Square)..

 

레기스탄 광장(Registan Square)
사마르칸트의 상징은 레기스탄 중앙 광장이다.  레기스탄 광장은  티무르 제국의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모든 상품이 몰려들던 교역의 중심지로 조명시설이 잘 되어 있어 야경을 꼭 봐야 될 곳이다. 이 광장의 왼쪽에는 티무르제국  창시자인 티무르 왕의 손자 울루그 벡의 명령에 의해 1417 년에서 1420년 사이에 건설된 울루그 벡 메드레세가 세워져 있다. 2세기 후 사마르칸트의 주지사 야한그도슈 바하도르(Yalangtush Bakhodur)의 명에 의해 쉬르도르 메드레세(Sher-Dor Madrasah)와 틸라카리 메드레세(Tilla-Qori Madrasah)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3개의 메드레세(이슬람 신학교)가 건립되어 있는 레기스탄 광장은 사마르칸트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고 2001년에 다른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이 세워지기 전에는 모래땅으로 대규모 노천 시장이 있었으며 공공 집회 장소로 왕명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곳이고 죄인 공개 처형 등이 행해졌던 곳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축제나 대규모 콘서트가 열린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 카라코롬 23일차(23. 7.15/토) 타슈켄트 ~ 사마르칸트, 비비하눔
중앙아시아 최고(最古)의 도시!! 사마르칸트(Samarkand)로 이동. 사마르칸트 도착 후 호텔 체크-인/개별 자유일정. 숙소 : Asia Hotel 또는 동급(조식포함)

이른 아침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건물들이 거의 새롭고 깨끗하였으며, 걷다 보니 한국의 코이카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이 주변에 관공서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한국의 롯데 호텔을 볼 수 있었다. 계속 가다 보니 대통령궁도 있었으나 이곳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어 내부는 볼 수 없었다. 대통령궁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 저녁에 보았던  나보이 극장을 둘러보고 호텔에 돌아왔다. 

 

 한국의 코이카 건물..

관공서들이 몰려 있고..

한국의 롯데 시티 호텔..

나보이 극장..

티무르 동상 뒤로 티무르박물관이 보이고..

우리가 묵었던 호텔입니다..

 

오늘은 사마르칸트로 이동을 하는 날이며, 8시 5분 호텔을 나와 일행 27명은 대형 이층 버스에 몸을 실었다. 편안하게 창밖을 구경하면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텐산에서 발원해 아랄해로 흘러가는 시르다리야 강 (Syr Darya)을 만났다. 흘러가는 강물보다 농업에 이용하기 위해 관개수로로 흘러가는 물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차도가 6차선으로 아주 쾌적한 것 같았고, 국립경기장도 멋지게 지은 것 같았다. 1966년 지진 이후 광범위하게 재건을 해서 그런지 도시가 아주 깨끗하다는 인상을 준다. 09시 20분 스타웨이 커피점에서 10분간 쉬어간다..11시 35분 휴게소에서 약 15분간 쉬어간다. 이제 1시간 정도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사마르칸트에 도착할 것이다. 이곳 우즈베키스탄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00$정도 밖에 되지 았지만 생활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회주의 국가는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민소득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차도가 6차선으로 아주 쾌적한 것 같고, 국립경기장도 멋집니다./ 대형 이층버스 기사

휴게소에서 쉬어 갑니다..

사마르칸트로 들어갑니다..

12시 40분 사마르칸트로 들어왔다. 12시 50분 숙소(Asia hotel)에 도착하였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15시 50분 레기스탄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의 50 솜 짜리 지폐에 레기스탄 광장이 그려져 있다. 첫 번째로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3개의 마드라사(Madrasa 신학교)를 구경한다.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울루그 벡 마드라사(Ulūgh Beg Madrasa)(좌) /  쉐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Madrasa)(우) / 틸라 코리 마드라사(Tilya – Kori Madrassah)


입장료 50,000 솜을 지불하고 먼저 왼쪽에 있는 울루그 벡 마드라사(Ulūgh Beg Madrasa)를 찾았다. ​1420년 티무르의 손자이며 샤 로흐의 아들인 울루그 벡이 세운 것으로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오래된 마드라사이다. 마드라사 안으로 들어서니 마당을 중심으로 수많은 방들이 있는 복층구조이다. ​위층은 숙소, 아래층은 공부방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방들이 상점으로 변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마드라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울루그 벡 마드레세(Ulugh Beg Madrasah, 1417-1420))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울루그 벡은 우즈베키스탄의 통치자이며 학자로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레기스탄 광장에 당시에 가장 큰 교육시설인 신학 대학을 세웠다고 한다. 울루그 벡은 부하라에도 신학 대학교를 세웠다. 이 신학대학교는 56mx81m의 2층 건물로 되어 있고 4개의 교실과 56개의 방이 있어서 100명의 학생들이 여기 머물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는 신학은 물론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치며 천문학 연구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모퉁이에는 미나레트가 세워져 있고 정문 정면은 광장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광장 오른쪽에 자리한 쉐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Madrasa)로 발길을 옮긴다. 셰르도르 마드라사는 '사자가 새겨진'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드라사로, 울루그 벡 마드라사 다음으로 오래된 건축물이다. 1636년 사마르칸트의 지도자 얄랑투쉬 바호두르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사슴을 쫒는 사자와 사람의 얼굴을 그려 놓았다고 한다.

 

사슴을 쫒는 사자와 사람의 얼굴을 그려 놓은 쉐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Madrasa)..

사원 양쪽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 등 미술품..

접시류 등..

코란..

천장의 화려한 모습..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틸라 코리 마드라사(Tilya – Kori Madrassah)이다. 1646년부터 1660년에 걸쳐 사마르칸트 지도자 얄랑투쉬 바호두르(Yalangtush Bakhodur)에 의해 건설된 틸라 코리 마드라사는 쉐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Madrasa)의 출입문에 그려진 문양이 이슬람 율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신학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그들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 출입문을 통과하여 좌측 건물로 들어서니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원의 한 벽에 메카 방향(qibla)으로 만들어져 있는 아치형 홈인 미흐랍(Miḥrab)과 천장이 화려하게 금색으로 칠해져 있기에 ‘황금을 입힌’이란 뜻을 가진 틸라 코리 사원 이름이 생긴 것이다. 사원 양쪽 공간에는 미술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틸라 코리 마드라사(Tilya – Kori Madrassah)..

다시 본  쉐르도르 마드라사(좌)와 울루그 벡 마드라사(우)..

이곳 바깥에는 웨딩 촬영을 하고 있더군요..

다른 각도에서 본  쉐르도르 마드라사(우)와 울루그 벡 마드라사(좌)..

  쉐르도르 마드라사..


마드리사를 나와 푸른빛 돔을 가진 비비하눔(Bibi-Khanum)을 찾았다. 입장료는 30 000 솜으로 이곳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이다. 비비하눔 신전 중정에는 쿠란(Quran)이 놓였던 돌로 만든 독서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 독서대 아래 구멍으로 기어서 지나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얘기 때문에 지금은 통제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비비하눔 모스크..

비비하눔 모스크(Bibi-Khanym Mosque)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비비-하눔 모스크는 중동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도까지 정복한 티무르 제국의 창립자 티무르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1399년에 수도인 사마르칸트에 당시 가장 큰 모스크를 건설하였다. 인도 원정 동안 수집해 온 호화로운 원석, 인도와 페르샤에서 200여 명의 건축 기술자와 장인을 데려오고  95마리의 코끼리를  인도에서 끌고 오고 1,500명의 노동자를 동원하였다고 한다. 모스크 건설은 5년 만에 1404년에 주요 부분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사원의 넓이는 가로 167m  세로 109m로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다. 북동쪽에서 광대한 높이 35m 높이의 아치형 입구를 통해 안뜰과 연결되어 있다.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원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아미르 티무르 시대에 왕비나 공주 그리고 귀족의 부인을 하눔(Khanum)이라고 불렸는데 비비하눔은 티무르가 사랑한 왕비로 인도 원정을 떠난 티무르를 위해 거대한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지진으로 파손된 모스크 내부 벽은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어 비비하눔과 건축가와의 사랑 이야기가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왕비를 사랑하던 건축가는 공사를 지연하면서 자기의 사랑을 받아주기를 요구하였다. 그러자 왕비가 하얀색 달걀과 갈색 달걀을 가져와서 색깔은 다르지만 맛은 별 차이가 없다고 하면서 다른 여자를 사랑하라고 하자, 건축가는 물과 화이트 와인을 가져와 보기는 똑같지만 맛은 다르다고 하면서 자기의 사랑을 받아 달라고 요구하였다. 왕비는 결국 건축가와 입맞춤을 허용해 주면서 사원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나 왕비의 볼에는 입맞춤 자국이 남게 되었다. 원정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거대한 모스크를 보고 기뻐했지만 왕비의 입맞춤 자국에 화가 나 건축가를 죽이고 왕비에게는 차도르를 쓰도록 했다고 한다.

 비비하눔 신전 중정에는 쿠란(Quran)이 놓였던 돌로 만든 독서대..

비비하눔 모스크를 본 후  샤히진다(Shah-i-zinda) 영묘를 보기 위하여 가는 길에 시압 바자르가 있어 잠시 둘러 보았다. 시압 바자르에는 견과류 등을 팔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시장을 잠시 둘러 본 후  샤히진다(Shah-i-zinda) 영묘로 이동을 하였다.

 

시압바자르 입구..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시장은 한가합니다..


 샤히진다(Shah-i-zinda) 영묘가는 길에 커다란 모스크가 보여 가 보니 우즈베키스탄 초대대통령이자 위대한 정치가인 카리모프의 아들의 무덤이 있는 신성한 장소라고 합니다. 초대대통령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신성하다고 하면 조금 이해가 되지만 아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 신성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이 샤히진다 묘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샤히진다 묘지는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이곳 묘지 주변에도 일반 사람들의 묘지가 있었으며, 이곳을 구경한 후 날이 더워 숙소로 되돌아갔다. 저녁은 한국 식당 아리랑에서 한식으로 먹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우즈베키스탄 초대대통령이자 위대한 정치가인 카리모프의 아들의 무덤이 있는 신성한 장소..

카리모프의 아들의 무덤..

일반인들의 무덤이 주변에 있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다시 본 레기스탄 광장의 마드리사들..

아리랑이란 한국 식당에서 한식으로 식사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