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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북알프스
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서울, 경기)

양주 도락산(24. 2.17)

by 산사랑 1 2024.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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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셀프등산회 제921차 산행은 경기 양주 도락산이 추진되었다. 산행은 리치마트 ~ 도락산 정상 ~ 돌탑테마공원 ~ 가남 1리 새낭골 마을로 진행하였다. 경기 양주의 산 중에는 바위전시장인 불곡산이 워낙 유명하여 도락산은 여기에 가려 잘 찾지 않는 산인데 이번에 추진하였다. 산은 평이하였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격전지임을 알 수 있는 보루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돌탑테마공원에는 돌탑 앞에 1919년 3.1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민족대표 33인의 지도자에 대한 기록이 있어 독립운동 정신을 돌아보게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잔설이 남아 있었지만 겨우내 얼어붙은 땅이 녹아 여기저기 질퍽거려 봄이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산행 후 수육, 감자전에 막걸리 한잔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고, 가래비 3.1 운동 순국기념비도 둘러보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함께 한 모든 분들 수고 많이 하셨으며, 다음 주에도 행복한 산행에 동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도락산 정상..

 

도락산(양주) 440.8m.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응암리,백석읍 방성리 산 54의 양주 도락산은 18세기 중반의 문헌에서부터 확인된다. 해동지도(1760)에서 돌압산(突壓山)으로 기록된 이 산의 이름은 팔도 군현지도 (1767~1776)· 동국여도(1801~1822)까지 마찬가지였다가, 대동여지도(1861)와 대동지지(1864)에서 한자만 바꾸어 돌압산(突押山)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 후 신편 조선지지(1924)에서부터 도락산(道樂山)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여러가지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는 데 첫째, 고려 건국 후 지사(地士)를 시켜 송도 부근 500리 이내의 산천을 답사하였더니, 특히 도락산만은 송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하는 것 같다 하여 충신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의 한양 천도 후 지사를 불러 다시 한양 부근 500리 이내의 모든 산세를 답사하게 하였더니, 오직 이 산만이 한양을 배반하고 있다 하여 조정에서 산의 머리(산두, 山頭)를 치게 했다. 이에 머리가 떨어지니 두락산(頭落山)이 되었고, 이후 약 200년 전에 산 이름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음이 비슷한 도락산(道樂山)으로 고쳤다 한다.

 

둘째, 옛날에 모든 산이 서울 남산을 향하여 줄줄이 이동하는데, 불곡산이 길을 막고 터주지 않자 화가 나서 동쪽 방향 즉 덕계동 쪽으로 돌아앉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실제 돌악산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돌악산 정상에 있는 바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돌의 산이라는 뜻의 돌산이 한자로 표현되면서 돌악> 돌악산> 도락산으로 변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돌압산·두락산·돌압산·노락산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

 

 

산행추진 :  덕계역 ~ 리치마트 ~ 도락산 정상 ~ 돌탑테마공원 ~ 가남1리 새낭골 마을로 진행(10.4km) ~ 양주역으로 이동

리치마트(산행 들머리)..

길이 아주 평이합니다..

계단길도 있고..

60~70년대의 유물인 무전차고(?)..

실외 체육시설..

도락산 쉼터..

잔설 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소나무 쉼터..

산악오토바이와 자전거 출입을 통제하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

북한군 복장의 표적지가 보이네요..

멋진 소나무들도 보이고..

 

도락산 정상입니다..

도락산 정상인증(1시간 35분 소요/휴식시간 15분 포함)..

도락산 정상 앞쪽에 전망대가 있습니다..

도락산 정상 앞쪽 전망대에서는 덕계저수지가 보입니다..

덕계저수지..

덕계저수지는 그동안 농업용수로 활용돼 오다 회천신도시 등의 개발로 농업용수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양주시는 농업생산기반시설 용도폐지된 덕계저수지를 수변공원으로 조성, 시민들에게 여가 공간과 함께 지역 명소로 만들기 위해 덕계저수지 수변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의 기본구상 계획을 살펴보면 덕계저수지는 전망대와 출렁다리, 순환 산책로를 갖춘 수변공원으로 탈바꿈한다.(출처 : 경기일보)

이제 돌탑테마공원 방향으로 하산을 합니다..

예전 군부대가 있었던 진짜 도락산 정상..

멋진 소나무..

도락산에는 진행방향으로 정상능선에는 옛 삼국시대의 고구려와 백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4개의 보루(3~4~2~1보루)가

이어져 있어 이곳 일대가 삼국시대 각축장인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채석장으로 웅덩이는 돌을 캐고 난 자리 같은데 채석장 규모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오토바이 진입을 방지하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

양주의 진산인 불곡산이 보이고..

등로를 잠시 벗어나 180m 지점에 있는 삿갓바위..

삿갓바위에서 본 모습..

시산제를 거행하는 장소..

새낭골 약수터로 물맛이 좋더군요..

돌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돌탑을 쌓은 사람은 가납리 주민 김윤준(현 나이 79)씨로 2002년 월드컵 직후에 차기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쌓기 시작했으며, 돌탑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한달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돌탑의 크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평균 높이 4.7m, 둘레 4.8m 정도에 무게는 6~7t에 이른다고 한다. 돌탑을 쌓을 당시에는 2002월드컵 4강 주역들인 선수들과 감독인 히딩커, 그리고 박항서 코치 들의 약력과 캐리커처를 담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3.1만세운동 당시 민족지도자 33인의 약력이 담여 있다.(출처 : 조선일보에서 일부 발췌)

 

천도교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여서 인지 천도교 도사, 천도교 장로 등  천도교 요인들이 많이 있더군요..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1919년의 만세운동 추진과정에서, 종교계와 단체 등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독립운동을 결집하기 위해 각 종교계에서 추천한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1919년 초 만세운동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의 종교단체에서 각 교단의 추천을 받아 모인 민족대표들이다. 천도교 추천 15명, 기독교 추천 16명, 불교 추천 2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손병희가 이끄는 천도교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고, 3·1운동 때 태화관에서 이를 발표한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처 :다음백과)

33인은 천도교 15인, 기독교 16인. 불교 2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천도교계 인사는 손병희를 비롯 권동진·권병덕·김완규·나용환·나인협·박준승·양한묵·오세창·이종일·이종훈·임예환·최린·홍기조·홍병기 등 15명, 기독교계 인사는 길선주·김병조·김창준·박동완·박희도·신석구·신홍식·양전백·오화영·유여대·이갑성·이명룡·이승훈·이필주·정춘수·최성모 등 16명, 불교계 인사는 백용성·한용운 등 2명이다.

세심정..

등산을 마무리합니다..

산행 후 인근 식당에서 수육, 감자전과 막걸리로 산행의 여운을 음미하고..

가래비 3.1 운동 순국기념비도 둘러봅니다/ 얼마 후면 3.1절 이니 그 날은 태극기 계양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양주역 기는 버스를 기다리며..

집에 도착하니 멋진 석양이 반겨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