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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지역

북악산 탐방(24. 3. 3)

by 산사랑 1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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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절을 맞이하여 북악산을 찾았다..

 

북악산 청와대전망대에서 본 경복궁으로 경회루, 향원정 등이 보입니다..

【북악산(24. 3. 1 금요일)】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한다.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또한 북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이 청계천의 최장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장벽의 구실을 한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395년(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림과 시문으로 남겼다.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북악산 일대를 사적 및 명승지 제10호로 지정하였다가 2009년 명승 제67호로 지정하였다. 명승지정 명칭은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정하였다. 즉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북악산이란 이름 대신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으로 회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 :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는 서울 4 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 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三淸公園)이 있고, 동쪽에는 숙정문(肅靖門)이 있다.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 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이다. 이 문은 1396년(태조 5) 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 개방 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 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2020년 11월 1일부터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 구간이 개방되었다. 북측면 개방으로 서대문구 안산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중단 없이 산행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다음 백과)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북촌을 지나 북악산으로 진행하면서 본 독립운동가의 길.. 

유관순 열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

북촌 청수정에 사람들이 조금 대기하고 있네요..

삼청동 수제비(빈대떡(11,000원)과 수제비(9,000원)) 가게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한국독립당 건물..

북악산 코스는 삼청공원 후문 ~ 청와대 전망대 ~ 만세동산 ~ 촛대바위쉼터 ~ 숙정문 ~ 말바위전망대 ~ 삼청공원으로 추진하였다..

계곡에는 봄이 왔음을 알 수 있고..

안내소 운영을 종료한다고 합니다..

삼청 쉼터로 수영장터만 남아 있네요..

사방댐이 설치되어 있고..

북악산은 멋진 소나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숙정문이 보여 당겨봅니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본 경복궁으로 경회루, 향원정들이 보입니다.. 

경회루의 멋진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24. 2.22일 사진)..

북악산을 배경으로 향원정도 맛깔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24. 2.22일 사진) ..

남산과 관악산(우측)도 선명하게 보이고..

청와대가 보입니다..

가까이는 청와대, 경복궁이 멀리는 남산과 관악산 등이 보이고..

멋진 소나무 뒤로 남산이 보이고..

고종이 먹었다는 만세동산으로 나라의 번창과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검은색의 버섯..

청운대 전망대에서는 아차산, 낙산 등이 보이고..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했다고 전해지는 촛대바위..

촛대바위는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입니다..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문으로 1395년(태조 4)에 건립되었으며 당시에는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하였다. 이문은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그 결과 현재 이곳 소나무 숲길이 아주 운치 있게 되어 이곳의 풍경이 북악산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숙정문의 멋진 소나무들..

말바위 전망대로 가는 멋진 성곽길..

말바위안내소에서 본모습..

말바위 전망대에서 본모습으로 보현봉, 팔각정, 삼청각 등이 보입니다..

말바위 부근의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본모습..

말바위입니다..

말바위는 조선시대 말을 타고 온 문무백관이 녹음을 만끽하며 시를 읊고 쉬던 자리였다고 전해진다. 또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바위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삼청공원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안국역으로 돌아가면서 본모습들로 이 기와집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통일호 열차 칸..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 집터도 있고..

은나무란 가게의 창문이 특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