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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 카라코롬 28일차(23. 7.20/목) 히바 자유여행(2-1)/칼타 미나렛, 쿠냐 아르크

by 산사랑 1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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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 카라코롬 28일 차(23. 7.20/목) 히바 자유여행

옛 호레즘 왕국의 요충지였던 히바(Khiva), 이찬칼라(Ichan-Qala), 칼타 미냐렛, Djuma 모스크 등. / 숙소 : Old Khiva Hotel 또는 동급(조식포함)

 

히바는 호라즘(Khorazm) 왕국과 히바 한국(khanate)의 수도였다.
우즈베키스탄 서부 호레즘 주의 도시. 약 1500년 전부터 존재했던 유서 깊은 도시로 우르겐치 시에서 남서쪽으로 35km정도 떨어져 있다. "히바"라는 이름은 호라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무다리야 강 하류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인 이곳에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 시절부터 카라쿰사막의 출입구이자 실크로드의 중요 경유지로 도시가 발달했다.

샤이바니의 우즈베크 칸국에서 갈라진 히바 칸국의 수도였으며, 이찬 칼라 등을 비롯한 유적지들이 많은 역사 도시이다. 우르겐치 문서에도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호라즘 지역의 중심지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코네우르겐치(투르크어로 "코네"는 "옛날", "구(舊)"를 뜻했다)였으나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작은 도시가 되었으며, 심지어 강줄기조차 방향이 바뀌면서 사실상 폐허가 된 도시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르겐치 남부로 옮겼는데 지금의 우르겐치(우즈베키스탄) 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의 구역 중 일부가 히바였다.

1500년대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트란스옥시아나를 점령했으며, 이곳에서 우즈베크 칸국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1506년 부하라에서 부하라 칸국이 세워졌고, 1510년 히바에서는 히바 칸국이 세워졌다. 히바 칸국은 1873년 8월 12일 제정 러시아가 이곳을 정복한 뒤로도 계속 남아 있다가 1920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히바의 중심인 이찬 칼라(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는 성곽 도시로서, 그 성곽과 내부의 건축물들이 거의 통째로 남아 있는 역사 도시이다. 1920년대 러시아 혁명의 후폭풍으로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 구간이 잘 보존돼 있고 훼손된 구간도 1970년대부터 재건 중이다. 성곽 내에는 전부 고풍스러운 옛 건물들 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볼거리도 많다. 랜드마크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푸른색 원통형의 '칼타 미노르 미나레트'로, 1852년 착공했지만 1855년 미완성인 채로 공사가 중단됐다고 한다. 주요 관광지로 궁전인 쿠냐 아르크와 타시 하울리 궁전, 주마 모스크, 파흘라반 무함마드 영묘, 무함마드 아민 칸 메드레세 등이 있다. 

이찬 칼라를 들어가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대부분의 개별 건축물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성곽 서문에서 팔고 있는 패스를 구매하는 것이 좋다. 청록빛 탑 외에도 거대한 성벽 역시 인상적인데, 부하라와 비교해 보면 좋다. 투르크메니스탄과 가깝기 때문인지 투르크멘인들도 적지 않게 존재하며, 투르크멘 또는 카라칼파크 느낌도 난다.(출처: 나무위키)


05시 동녁하늘에 여명이 트기 시작할 때 숙소를 나와 이찬칼라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성벽은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 형태로, 둘레는 모두 2km를 조금 넘는다. 성곽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정문인 서문으로 들어가 성곽 내부를 둘러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식사 후 입장료 패스 150,000 솜(7년 전 45,000 솜)을 끊고 살펴볼 것이지만 지금은 발길 닿는 대로 가보기로 하였다.

 

05시 동녁하늘에 여명이 트기 시작하고..

히바의 상징과도 같은 이찬 칼라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북문으로 갑니다..

북문의 모습..

동문의 모습으로 이 문은 또한 과거에 노예 시장이 있었기에 '노예의 문' 이라고도 불렸다

동문은 시인이자 씨름 선수였던 파흘라반 마흐무드(Pakhlavan Mahmud or Palvan )의 이름을 따서 빨반 다르바자 (Palvan-Darvaza)라고 불린다. 팔반은 힘센 사람(strongman)이라는 뜻이다. 이 문은 또한 과거에 노예 시장이 있었기에 '노예의 문'이라고도 불렸다.

 

영묘 주변의 무덤들..

다시 성벽 외부를 따라 서문으로 돌아갑니다..

정문인 서문으로 돌아옵니다..

낙타위의 사람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서는 학자란 느낌이 들었는데 이 사람이 대수학의 아버지인 알 콰레즈미라고 합니다..

낙타 위의 사람이 호라즘의 위대한 수학자로 대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알 콰레즈미라고 합니다..

저녁에 본 모습..

알 콰리즈미

Muḥammad ibn Mūsā al-Khwārizmī(780?~850?)는 페르시아의 수학자로 페르시아 최초의 수학책을 만들었는데, 인도에서 도입된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하여 최초로 사칙연산(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만들고 0과 위치값을 사용한 수학자이다. 그는 ‘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알 콰리즈미는 바그다드에서 살며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칼리프 알마문에 의해 지어진 지혜의 집에서 연구하며 그곳의 학자로서 그의 동료들과 함께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에 어우르는 학문분야를 연구하며 또한 그리스 과학 서적 번역에도 힘썼다.

 

그를 통해 이차방정식에 대한 해법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연구되었다. 대수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Algebra’는 그의 저서 “al-jabr wa al-muqabala”에서 기원한다.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도 알 콰리즈미가 집대성한 연산 기술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알 콰리즈미의 라틴어 이름을 딴 것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천문 관측을 하여 지구의 자오선의 1도의 길이를 측정하였다. 그의 천문표에는 사인(sine)과 코사인(cosine), 삼각함수표가 있으며, 구면 삼각법에도 기여하였다. 한편,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수정하고 완성하였는데, “지구의 표면”이라는 책을 통해 2,402개 도시의 좌표 및 다른 지리적 특징을 찾을 수 있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알 콰리즈미 (지형 공간정보체계 용어사전, 2016. 1. 3., 이강원, 손호웅)

 

 

미나렛의 직경은 14미터를 넘으며, 바로 옆 무하메드 라힘 칸(Mohammed Rakhim Khan) 와 나무다리로 이어져 있다

칼타 미노르 미나렛

칼타 미노르 미나렛은 1851년 히바의 통치자 무하마드 아민 칸의 지시로 건립되었다. 설계상 높이가 70m로 계획되었지만, 26미터의 높이에 이르렀을 때쯤, 아민 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공사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와는 별개로 짧은 미나렛에 대한 전설이 있다. 히바에서 멋진 미나렛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부하라의 칸이 히바의 건축이 끝나면 해당 건축가를 불러 부하라에 더 멋진 미나렛을 짓기로 했다는 소식이 히바의 칸에게 전해졌다. 이에 히바의 칸은 미나렛이 다 만들어지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건축가는 미나렛을 다 짓지 않고 도망갔다고 한다.

 

히바의 랜드마크로 여겨지는 칼타 미노르 미나렛 &  무하메드 라힘 칸(Mohammed Rakhim Khan) 마드라사..

무하마드 아민 칸은 1851년 앞에 있는 칼타 미나렛과 함께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건축의 형태는 티무르 시기의 마드라사 건축과 유사하다. 2층으로 된 건물로 둘러싸인 안뜰이 있고, 네 방향의 중앙에는 이완이 있다. 부하라의 쿠켈다시 마드라사를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마드라사는 지금 호텔로 개조되어 활용되고 있다. 

 

 무하마드 아민 칸 마드라사와 연결되어 지어진 칼타 미나렛..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드네요..

아침 식사후 본격적으로 히바를 둘러보았다. 히바는 중심인 이찬 칼라(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대다수의 유물이 있기에 하루 정도만 구경하면 모든 것을 볼 수 있기에 볼거리 중심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서문에서 패스를 구입한 후 본격적으로 이찬칼라를 둘러보았다..


이찬 칼라를 들어가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대부분 개별 건축물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성곽 서문에서 팔고 있는 패스를 구매하는 것이 좋다.

음악박물관 앞의 동상들..

푸른 돔을 가진 히바의 수호성인 파흘라반 마흐무드의 영묘와 주변의 무덤이 보입니다..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

19세기 히바에 건설된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의 이름의 유례인 파흘라반 마흐무드는(Pahlavan Mahmud Khwarazmi, 1247년~1325년) 14세기 살았던 수피 시인이자 레슬링 선수이며 전사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현재 히바 이외에도 이란의 코이(Khoy)에 그의 영묘가 있으며 각각 둘 다 진짜 영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 영묘 모두 순례지로 인기가 있다. 1810년 히바 칸국 콩기라트 왕조의 무함마드 라힘 1세(Muhammad Rahim Bahodir, 재위 : 1806년~1825년)는 정치적 의도로 파흘라반 무함마드를 일종의 수호 성인으로 채택하고 그의 영묘를 건설했다.

 

건물 중앙은 티무르 양식의 파란색 돔으로 덮여있는 방으로 수피 신도들의 시설인 칸카이며, 그 주변에 영묘가 위치한다. 마흐무드의 영묘는 이 칸카의 서쪽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측면 방에 위치해 있다. 무함마드 라힘 1세의 영묘는 칸카의 북쪽 벽에 자리했다. 마흐무드의 시가 쓰인 유약을 바른 타일로 영묘 전체가 장식되어있다. 무함마드 라힘 1세가 본 영묘에 미리 자신의 자리를 지정한 것이 전례가 되어 이후 콩기라트 왕조 후기에 이곳은 히바 칸들의 왕실 영묘가 되었다. 이에 무함마드 라힘 1세의 영묘 이외에도, 얼러쿨리 칸(Olloqulixon, 재위 : 1825년~1842년)의 영묘와 아스판디여르 칸(Asfandiyorxon, 재위 : 1910년~1918년)의 영묘가 추가되었다. 이 외에도 여름 모스크와 쿠란을 보관하는 방, 순례자들을 위한 홀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 (투르크 인문백과사전)

 

히바의 랜드마크인 이슬람 호자 미나렛(Islom Xo‘ja minorasi)..

이슬람 호자 미나렛(Islom Xo‘ja minorasi): 이슬람 호자는 1898~1913년 동안 히바 칸국의 대재상이었다. 1908년 그는 이 미나렛을 건립했다. 높이는 45m로 히바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관광객들은 미나렛 상부까지 올라가서 히바를 조망 할 수 있다.  역사 도시 히바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랜드마크, '이슬람 호자 미나렛(Islom Xo‘ja minorasi)'이다. 도시가 크지 않은 반면 45미터의 미나렛은 툭 튀어나와 어느 곳에서 봐도 눈에 띈다. 

 

이슬람 호자 미나렛이 보이는 이곳에서 인증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이슬람 호자는 1898~1913년 동안 히바 칸국의 대재상이었다. 1898년 26살의 젊은 나이에 대재상에 오른 그는 히바 정계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를 오가며 근대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자 한 이슬람 근대주의 개혁가, 자디디스트(Jadidists)였다고 한다. 그는 1908년 그의 이름을 딴 마드라사와 미나렛을 건립했다. 

 

이슬람 호자..

푸른 돔을 가진 파흘라반 마흐무드의 영묘 & 이슬람 호자 미나렛..

카지 칼론 마드리사..

앞쪽에서는  칼타 미노르 미나렛이 보이고 뒤쪽에서는 파흘라반 마흐무드의 영묘 & 이슬람 호자 미나렛이 보입니다..

푸른 돔을 가진 파흘라반 마흐무드의 영묘 & 이슬람 호자 미나렛으로 해가 떠오릅니다..

알라쿨루 칸 마드리사..

 

 

 

히바의 마드리사들..

식사 후 제일 처음 들렸던 굿은 쿠냐 아르크(Kunya Ark)였다. ‘오래된 궁전’ 이란 뜻을 가진 쿠냐 아르크는

17세기에 지어진 칸의 궁전으로 타쉬 하울리 궁전 (Tash-Khauli Palace)과 구별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쿠냐 아르크(Kunya Ark) 입구로 궁전으로 들어갑니다..

쿤 아크 (Koʻhna Ark)

쿤 아크는 이찬 칼라 성벽 서쪽에 위치한 요새형 궁전이다. 최초는 12세기에 건립되었고, 핵심부는 17세기 아랑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나 18세기 이란의 공격으로 모두 파괴되었고 지금의 모습은 19세기에 제건 된 것이라 한다. 서쪽에는 왕의 접견장이 있고, 북쪽에는 하렘이 있다. 2층 망루에서는 이찬칼라를 조망할 수 있어 이곳에서 조망을 하면 100,000 솜(7년 전 5,000 솜)의 입장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올라갈 수 있는 이슬람 호자 미나렛 전망대에 올라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약 20여분 조망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호레즘 샤크의 역사..

코란, 갑옷, 칼 등 무기류..

오래되었지만 화려한 문짝..

도기들..

2층 망루로 올라갑니다..

망루에서 본모습들..

쿠냐 아르크 뒤로 푸른색의 칼타 미노르가 보이고 그 뒤로 무하마드 아민 칸마드라사가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 성 입구가 서문인 아타 다르바자이다.

성벽이 멋지게 보입니다..

우측으로 무하메드 라힘 칸(Mohammed Rakhim Khan) 마드라사가 자리하고 있고

그 뒤에는 주마 모스크의 미나렛이 보이고, 좌측에 칼타 미노르 등 이찬칼라가 한눈에 들어온다..

쿠냐 아르크 뒤로 푸른색의 칼타 미노르가 보이고 그 뒤로 무하마드 아민 칸마드라사가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 성 입구가 서문인 아타 다르바자이다.

왼쪽에 알라쿠르 칸(Alloquli Khan) 마드라사, 중앙에 이슬람 호자(Islam Khodja) 모스크의 돔과 미나렛,

좌측에 칼타 미노르와 무하마드 아민 칸(Mohammed Amin Khan) 마드라사 등 이찬칼라의 전모가 보인다..

2층 망루 전망대..

북문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성벽..

이슬람 호자 미나렛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히바의 랜드마크라고 할 만합니다..

 무하마드 아민 칸 마드라사와 연결되어 지어진 칼타 미나렛..

1층으로 다시 내려가면서 본 것들..

칸의 왕좌(위 우측)

 

 

히바의 마드리사는 화폐, 음악, 의료 등 여러 가지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소규모의 전시실로 꾸며져 있었다. 

 

화폐 전시실..

각종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도 있고..

관광객에게 낙타를 태워 두 바퀴를 돌고 사진을 찍게 하더군요..

해먹 같은 것이 달려 있네요..

우즈베키스탄의 예술가로 국가상 수상자, 교수이자 작곡가라고 합니다..

피아노와 악보도 전시되어 있고..

1905년 칼리야 마드리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마드리사의 역사..

의료 관련 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