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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 산행기/서울,경기

삼성산 & 삼막사(25.3.8일)

by 산사랑 1 2025.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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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三聖山, 해발 481m)】

 

삼성산은 서울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안양에 걸쳐 있는 산으로 원효와 의상, 윤필 등 세 고승이 677년 암자(삼막사)를 짓고 수도에 전진해 이들을 가리켜 ‘삼성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 불가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 후기에 발간된 읍지(邑誌)인 <여지도서>에는 ‘민간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무학, 나옹, 지공 세 큰 스님이 각각 절 지을 곳을 점치고 살았기 때문에 삼성산이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고 적혀 있다.

 

삼성산은 관악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에서 우뚝 솟아 오른 바위산으로 바위 모양이 호랑이가 걸터앉은 모습, 즉 호암(虎巖)이어서 일명 호암산(虎巖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삼성산이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 과천과 한양에 호환(虎患)이 많다는 술사의 말을 듣고 호랑이의 살기를 누르기 위해 호압사가 건립되었으며, 태종이 "호압(虎壓)"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유래야 어떻든 삼성산은 불가의 큰 스님들이 여럿 거쳐 갔고 1839년 기해박해 당시 모방 신부인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해 이 산에 묻혔다.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은 삼성산에 올라 경복궁을 바라보며 나라와 세종의 일을 걱정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전하고 있다.

 

삼성산은 산이 품은 내력을 제쳐두고라도 멋스러운 암릉이 산꾼들을 불러 모은다. 조망 또한 뛰어나고 일몰과 야경도 볼 만하다. 산행 코스는 다양하다. 관악구에서는 미림여고와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하는 게 일반적이다. 금천구에 터를 잡은 호압사나 안양에서 오르는 코스도 여럿이다. 등반로는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초행길이라면 헛갈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느 코스에서 오르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만나고 찢어지기를 거듭한다.

 

이중 서울대 입구 만남의 광장을 들머리로 삼는 게 좋다. 정상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거리는 멀지만 능선을 따라 암봉을 하나씩 찍고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행은 만남의 광장을 출발해 맨발공원을 거쳐 깃대봉에 오른 뒤 능선을 타고 국기봉, 정상을 찍고 원점 회귀한다. 또 정상에서 삼막사를 거쳐 안양으로 내려서거나 무너미 고개를 타고 관악산까지 도전해 볼 만하다.

건강셀프등산회 제981차 산행은 삼성산이 추진되었으며, 날씨가 다소 풀려 산행하기에는 적절하였다. 산행은 관악역 ~ 국기봉 ~ 삼성산 ~ 삼막사 ~ 경인교대의 약 5시간이 소요되었다. 모처럼 만에 다시 찾은 삼성산의 멋진 경치도 보고,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천년고찰 삼막사를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었다.

 

삼성산 들머리를 출발합니다(관악역 0.4km, 삼성산 4.7km)..

특이한 바위도 보고..

사자바위가 보이고..

국기봉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수리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사자바위입니다..

사자바위전망대에서 본 경인교대로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네요....

사자바위를 배경으로..

멋진 소나무..

삼막사가 보입니다..

멋진 소나무들이 있고..

모처럼 바위도 타 봅니다..

오늘 들러 볼 삼막사..

【삼막사】

삼막사는 677년(문무왕 17) 원효·의상·윤필이 관악산에 들어와 막(幕)을 치고 수도하다 절을 지은 천년고찰이다. 규모는 작지만 볼거리는 알차다. 산정을 등지고 안양시를 굽어보고 있는 대웅전은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망해루는 청명한 날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가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명부전에 보관된 십대왕상은 삼막사에서 보물로 대접받고 있다. 2.55m 높이의 삼층석탑과 조선 정조 때 인물인 김창영의 탄생 전설을 지닌 거북모양의 감로정석조, 자연암석에 양각한 마애삼존불, 사적비, 삼귀자 등이 삼막사의 내력을 대변해 준다. 칠성각 옆에는 남녀의 성기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남녀근석’(경기도민속자료 제3호)이 마주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이 바위를 만지면 ‘자식이 생긴다’ 거나 ‘집안이 번영한다’는 등 남근 숭배 사상과 결부된 다양한 속설들이 전해지고 있다. (출처 : 스포츠 경향 등에서 발췌)

 

국기봉입니다..

국기봉 인증..

삼성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멋진 소나무 사이로 삼성산 정상이 보이고..

관악산 기상대가 보입니다..

바위에 뿌리내린 멋진 소나무..

위에서 내려다본 삼막사..

삼각점(고도 455m)..

삼성산 정상이 지척입니다..

누군가 바위에 글을 새겼는데 이는 자연훼손이므로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삼성산 정상에 도착하고..

삼성산 정상인증..

이곳은 아직 잔설이 남아 있습니다..

반월암을 지나면 삼막사가 나옵니다..

삼성산 삼막사 일주문입니다..

【삼막사】 조계종 용주사의 말사

서기 677년 원효ㆍ의상ㆍ윤필 등 3 승려들이 삼성산 기슭에 암자를 지어 수도한 데에서 시작하였다. 사실 세 고승이 각각 일막ㆍ이막ㆍ삼막을 지었는데, 그중 일막과 이막은 화재로 없어졌고 삼막만이 남아 절이 되었다고 한다. 한때 이름을 '관음사(觀音寺)'로 바꾸었다가 고려 태조 왕건이 중수하면서 다시 현재처럼 개명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으로 천도하자, 국사(國師) 무학대사가 이 절을 중수한 뒤 남서울의 수찰(首刹)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ㆍ명부전ㆍ망해루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요사채ㆍ칠성각 등이 있다. 원래의 대웅전은 1990년 12월 6일 화재로 소실되어 버려 지금은 육관음전이 대웅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근처에는 안양 8경 중 하나인 삼막사 남녀근석이 있다.(출처 : 나무위키)

 

멋진 소나무들이 많이 훼손되어 있더군요..

삼막사 범종각..

삼막사 동종..

【삼막사동종】

삼막사 대웅전 안에 있는 조선 중기의 동종. 1625년 작. 높이 102㎝, 입지름 61㎝. 종의 정상부분에 2마리의 용이 서로 맞대고 있는 용뉴는 있으나 음통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에는 범자를 2줄로 돌렸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의 범종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이며, 밑에는 유곽을 4곳에 배치했다. 연당초 무늬로 장식된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있으며,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과 위패가 1짝으로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조성자의 이름과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출처 : 다음백과)

 

 여섯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으로 대웅전 역할을 하는 육관음전..

육관음전(六觀音殿)】

육관음은 중생이 병마 등 갖가지 고통에 빠져있을 때 여러 모습으로 변해서 나타나 중생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복덕을 얻게 해 준다는 여섯 관음을 말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대웅전이 있었으나 1990년 12월에 화재로 소실되어 당시 주지였던 자승스님이 육관음전을 중건했다.(출처 : 헤럴드 경제 / 24.3월)

 

안양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청명한 날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가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망해루'..

멋진 소나무..

고려의 승장 김윤후가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해 승리를 거둔 처인성 전투를 기념한 살례탑으로 불리는  2.55m 높이의 삼층석탑..

【삼막사 삼층석탑】

삼막사 선실 뒤편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삼막사라는 절이름에는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 원효·의상·윤필 3 대사가 관악산에 들어와 장막을 치고 수도하다가 그 뒤 그곳에 절을 지어 이름을 이와 같이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고,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에 맞선 삼막사 승려 김윤후가 몽골군의 원수(元帥)인 살리타를 살해한 뒤 승적을 기념한 탑이라 전한다.(출처 : 위키백과에서 일부 발췌)

 

조그만 불상이 천 개 있다는 천불전..

삼막사의 내력을 알려주는 1707년 건립된 삼막사 사적비..

한국 불교계의 큰스님인 정대(正大)스님이 입적 전까지 지냈다는 선방(禪房) 월암당(月庵堂)..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월암당..

월암당과 연못..

원효대사의 석상을 봉안한 원효굴..

원효굴에서 본 월암당과 연못, 그리고 마애삼존불과 ' 남녀근석' 가는 길..

원효굴과 등용대..

일제강점기 예술인이었던 지운영이 삼막사에 백련암을 짓고 은거하며 거북귀[龜] 글자 3개를 돌에 새겨 넣은 삼막사 삼귀자(三龜字)..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을 보여주는 삼막사 마애삼존불과 ' 남녀근석' 가는 길..

남녀의 성기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남녀근석’(경기도민속자료 제3)이 마주 보고 있네요..

무병장수와 풍요한 삶을 기원하는 오랜 역사의 성기숭배 신앙의 상징물인 듯하다. 전망이 좋은 곳일 뿐만 아니라 자녀를 바라는 분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유명세를 타서 ‘안양 8경’ 중 하나라고 한다.

 

칠보전 안에 있는 자연암석에 양각한 마애삼존불..

【삼막사 마애삼존불상】

삼막사 칠성각 안에 있는 조선시대의 마애삼존불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높이 본존불 150㎝, 좌우협시보살상 93㎝. 불상의 무릎 아래쪽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1763년(영조 39)에 조성되었고, 전각은 1764년에 창건되어 1881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세로 200㎝, 가로 250㎝의 자연 암벽에 새겨진 삼존불상으로 얼굴 부분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보수했으며, 본존의 얼굴은 네모지고 납작한 편이지만 약간 양감이 남아 있으며, 머리 위의 육계(肉계)에는 반달형의 계주가 2개 장식되어 있다.

 

이 불상은 본존불이 보륜을 들고 있는 점이나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고 칠성각에 봉안된 형식 등으로 보아 칠성(七星)의 본존불인 치성광삼존불(熾盛光三尊佛)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얼굴의 세부표현, 각이 진 어깨와 평면화된 신체, 투박한 옷주름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우리나라 불상에서는 보기 드물게 칠성신앙과 불교신앙이 결합된 치성광여래의 예로 중요한 자료이다.(출처 ; 다음백과)

 

예전엔 칠성각으로 불렸던 칠보 전..

원효굴..

멋진 소나무도 있고..

삼막사를 구경한 후 경인교대로 하산을 합니다..

경인교대 가는 길이 두 갈래 있는데 도로를 따라가면 2.4km, 등산로를 따라가면 2.0km로 우리는 등산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경인교대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