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등산회 5월 첫째 주 산행은 용마산 ~ 망우산을 추진하였다. 이코스는 서울둘레길 4~5코스와 중첩되고 산이 그리 험하지 않고 조망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산으로 오늘도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산행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제 동우회의 파크골프 일청이 춘천에서 열린 여파로 산행인원이 조촐하여 여유롭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산행은 용마산역 2번 출구 ~ 용마폭포 ~ 용마산 6보루 ~ 용마산 정상 ~ 깔딱고개 ~ 용마산 스카이워크 ~ 중랑전망대 ~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추진하였다, 산행을 마치고 버스로 중화역으로 이동하여 김시우초밥 가계에서 초밥에 소주 한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용마산 정상..

산행 추진 : 용마산역 2번출구 ~ 용마폭포 ~ 용마산 6보루 ~ 용마산 정상 ~ 깔딱고개 ~ 용마산 스카이워크 ~ 중랑전망대 ~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추진
중랑구 스포츠클라이밍 연습장..
인공폭포를 배경으로..
팔각정 갈림길에서 용마산 정상으로 가파른 계단길로 진행합니다 / 용마산역에서 용마봉 정상까지는 약 1.9km입니다..
계단 중간에서 본 북한산 ~ 도봉산의 모습..
서울 어린이대공원 놀이기구가 보입니다..
팔각정을 당겨 봅니다..
고구려 한강유역 진출과 관련이 있는 용마산 6보루..
이곳 전망대에서는 롯데타워, 관악산, 중랑천, 안산, 인왕산, 북악산, 삼각산등이 보입니다..
수도 서울이 산(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용마산 정상..
【용마산】
용마산(596m)은 경기도 하남시, 광주시에 걸쳐 있으며, 정상에서 북쪽으로 예봉산, 적갑산, 운길산이 손에 잡 일듯 보인다. 동쪽으로는 중원산, 유명산, 백운산, 용문산이 멀리 보이며 서쪽으로는 아차산과 그 넘어 북한/도봉 주능이 남쪽으로는 남한산의 줄기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발아래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 등 팔당호가 펼쳐진다. 용마산은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롯데타워가 보이고..
암사대교와 새로 건설 한 고덕토평대교..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20여 개이며, 고구려가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고덕토평대교 뒤로 예봉산, 예빈산, 검단산 등이 보입니다..
깔딱고개로 내려갑니다..
서울둘레길 4코스 종착지이자 5코스 출발지인 깔딱 고개 쉼터..
용마산 스카이 워크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새로 만든 용마산스카이워크입니다..
날씨만 좋으면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용마산 스카이워크로 최대수용인원이 42명이네요..
중량 전망대에서는 북한산 보현(좌측)봉 ~백운대(중앙), 도봉산(우측)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4년 새로 망우리공원으로 이장한 영랑 김윤식과 안귀련 묘비..
【영랑 김윤식】
영랑 김윤식은 1903년 1월 전남 강진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4세에 결혼하였으나 16세때 부인 김은초가 죽었다. 이후 휘문의숙에 입학하여 문예반 활동을 하며 안석주, 홍사용, 박종화, 정지용, 이태준 등과 교류를 가졌다. 그후 일본 유학 중 관동대지진을 목격하고 귀국했다. 친구인 최승일의 동생인 최승희와의 사랑은 어른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승희와의 사랑에 실패하고 강진 집에 내려와 목을 매 자살소동을 했던 동백나무가 서있다. 이 때의 심정을 담은 시가 바로 그 유명한 '모란이 피기 까지는'이다.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를 발표하여 등단했다. 첫시집 『영랑시집』은 1936년 박용철에 의해, 두번째 시집 『영랑시선』은 1949년 서정주에 의해 발간되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 <꿈 밭에 봄 마음> 등이 있다. 주로 언어의 조탁을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세련된 시형과 율격으로 섬세하고 투명한 감성의 세계를 고운 어조로 표현했다.
김영랑 생가는 전남도 지정 지방문화재 기념물로 지정되어 강진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영랑은 신사참배와 창씨개명과 단발령을 거부하였다. 선영의 부친과 조부 비석에 조선인, 상석에 태극 문양을 새기는 항일 자세와 일제의 탄압에도 지조를 지킨 군건한 민족 시인으로 살았다. 3.1혁명에 참여하여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백범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 광복군 군자금 등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에 건국포장을 받았다.
김영랑은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였다. 이후 9월 말 생가와 전답을 정리하고 서울시 신당동 290의 74호 단층집으로 이사했다. 석영 안석주가 김영랑 집 가까이에 살고 있었는데 안석주가 1950년 2월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 장례식 후 휘문의숙 동문들이 모여 다음은 누구의 차례인가 묻자 김영랑이 불쑥 '다음은 나네'라고 대답했다. 6.25한국전쟁 9.28 수복 전날에 김영랑은 파편을 맞고 다음날 사망했다. 전쟁 중이라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남산 기슭에 시신을 가매장했다가 1954년 11월 13일 문인장으로 망우리공원에 묻혔다. 이후 아내 안귀련이 1989년 타계하자 용인 천주교 추모공원으로 이장했다가 2024년 유족 의사로 망우리공원으로 돌아왔다.(출처 : 나무위키에서 일부 발췌)
박인환 선생의 "목마와 숙녀" 등 이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의 글을 새긴 비석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망우산 정상이 나옵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입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3·1 운동을 주도한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비롯해 위창 오세창, 호암 문일평 등 수많은 독립 열사와 애국지사, 시인 박인환, 소파 방정환, 죽산 조봉암 등 격동기였던 우리 근, 현대사의 역사적 위인 50여 분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고 2016년 망우리 인문학길인 ‘사잇길’ 2개 코스를 조성하면서 근현대 인문학의 보고(寶庫)가 됐다.
만해 한용운의 시 무궁화를 심으리라..
안중근 의사 동상에 '견의사의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남을 위해 의를 행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던져라 하는 뜻이 새겨져 있네요..
산행을 마치고 버스로 중화역으로 이동하여 김시우초밥 가계에서 초밥에 소주 한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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