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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by 산사랑 1 2008.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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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어느 목사님의 용서란 제목의 설교 내용 중에서 우리가 알고 실천함이 좋을 것 같아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의 90%는 용서로 이루어지며, 인간의 삶에서 완벽한 대인관계가 불가능하므로 용서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또한 용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용서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므로 균형된 시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즉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범했을 때 철저하게 그 문제를 인식하여 당사자에게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과,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줄 때 지극한 사랑으로 용서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용서에 대하여 2가지 오해가 있으며

첫째는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오해로, 여순반란사건 당시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였을 뿐 아니라 양자로 삼은 손양흠 목사와 같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못하는 이유는 용서하겠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는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란 생각에 대한 오해로 궁극적으로 용서는 나의 행복을 위한 것임. 아침마당의 어느 아주머니의 얘기로 「초등학교 시절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약 1년에 걸쳐 성폭행을 당하였으며,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매우 치욕적인 행위로 분노가 점점 쌓여 마침내는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자라서 칼로 그 사람을 난도질 하는 꿈을 꿀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해자는 멀쩡하게 잘 사는데 파괴되어 가는 것이 자기임을 깨닫고 눈물로써 가해자를 용서하기로 하고 마음속에서 짐승같은 그 가해자를 끌어낸 후 자기를 찾게 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용필의 용서란 노래 중 「너를 용서 않느니 내가 괴로워 안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이다」란 가사가 있듯이 용서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해야 된다.


이러한 용서는 그저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댓가 지불을 통해서 얻어지는 덕목임을 명심해야 된다. 앞의 예의 손양흠 목사가 원수같은 사람을 양자 삼기까지는 피눈물을 쏟으면서 자기와 싸우고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결과 용서가 가능한 것임. 우리가 용서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서하겠다는 마음이 없고 궁극적으로는 대가를 지불하기 싫다는 반증임을 알아야 되겠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부, 자녀, 형제, 부모, 친척, 친구, 직장 동료 등에게서 상처받고 아직까지 분노하고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면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한번 용서해 보시면 어떨까요?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에서 "용서"란 나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고 또한 완전히 터놓고 사랑할 수 있는 나의 능력과 기쁨을 파괴하려는 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용서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은 아니다. 용서란 한 번으로 완성될 수 없고 수없는 반복을 통해서 마침내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 지고 이때가 되어야 비로서 자유로와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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